78화. < 재앙 파괴자 (1) >
성의 관리자 오르도가 펼친 보호막으로 인해 재윤과 생존 공동체 각성자들은 다크 엘프들이 보낸 수천의 괴물들을 어렵지 않게 격퇴했다.
특히 보호막 안에서 안전하게 전투를 벌인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재윤은 밖으로 돌진해 적지않은 괴물을 죽였다.
붉은 날개 뱀(C)
라이칸슬로프(D)
맹독 슬라임(C)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괴물들.
덕분에 지식들을 계속 얻었지만, 재윤이 집중적으로 해치운 녀석들은 히드라와 철갑 독지네였다.
둘 다 B급 지식 이상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토벌 임무서를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39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전투 중 재윤은 레벨 업을 달성했다.
아쉽게도 보스급 괴물들은 처치할 수가 없었다.
한 놈을 향해 접근하면 주변의 다른 보스급 괴물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보스 급 괴물들은 재윤을 지속적으로 노렸다.
재윤은 그놈들에게 포위되는 걸 피하기 위해 수시로 보호막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퇴각 시에도 보스 급 괴물들은 남아서 재윤이 추격하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재윤은 추격을 포기하고 보호막 밖에 널브러진 괴물들의 사체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집중 혈액 채취 대상은 물론 히드라의 피였지만, 괴물들의 사체가 빠르게 사라져버리는 터라 20여 병 정도 채취한 것이 다였다. 그래도 루팅 일꾼 베르타 덕분에 드롭템들은 모두 챙겼다.
“와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최진석과 채시은, 김민지 등을 비롯한 각성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그들은 보호막을 벗어나지 말라는 재윤의 당부를 철저히 지켰기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사망자 0
부상자 0
아군의 희생없이 수천 마리의 괴물들을 격퇴했으니 이는 기적과도 같았다.
모두 오르도가 재윤의 코인을 빌어 펼친 신비한 보호막 덕분이었다.
[당신은 성주로서 첫 번째 전투를 큰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당신의 명성이 Lv2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에는 없던 명성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름】 강재윤
【레벨】 39
【명성】 Lv2
성주가 되면서 생겨난 명성 레벨.
이것이 상승하면 성이나 안전 지대에 여러 유리한 효과를 주게 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효과는 없었다.
한편 고블린 세붐과 엘프 로사엔이 숲을 빠져나온 것은 바로 이때쯤이었다.
그 뒤를 흑색의 후드를 눌러쓴 다크 엘프 수십 명이 추격해왔다.
“놓치면 안 된다!”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재윤이 아직 보호막 밖에서 서 있던 터라 그는 단 번에 로사엔과 세붐의 모습을 발견했다.
“마스터!”
“주인님을 뵙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세붐이 다급히 외쳤다.
“지금 저 뒤에서 다크 엘프들이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놈들의 본거지에 들어가 보물을 훔쳐오다 걸렸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라.”
재윤은 최진석 등에게 로사엔과 세붐이 자신의 부하이니 경계하지 말라고 한 후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또한 그 역시 보호막 안에서 대기하며 다크 엘프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곧바로 암흑의 기운으로 뭉친 다크 엘프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세붐 녀석이 뭔가 중요한 보물을 훔쳤나 본데.’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한두 명씩만 보이던 다크 엘프들이 수십 명도 넘게 몰려올 리가 없었다.
그들로부터 피어나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놀랍게도 얼마 전 재윤이 죽인 킬리아 못지 않은 기세를 풍기는 이들이 10여 명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군.’
더구나 그들 중 한 명은 재윤이 지금껏 만난 어떤 적들보다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흑색의 후드 속은 온통 암흑.
그 가운데서 핏빛의 안광이 섬광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재윤이 노려보자 그가 보호막 가까이 날아와 우뚝 멈춰섰다.
“네놈인가?”
그가 재윤을 향해 물었다.
재윤이 되물었다.
“뭘 말이냐?”
“고블린 놈을 시켜서 도둑질을 해간 놈이 너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 나다."
사실 도둑질까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재윤은 당당히 인정했다.
도둑질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 대상이 사악한 다크 엘프의 물건이라면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 일.
그러자 다크 엘프의 두 눈에서 흉광이 번쩍였다.
츠츠츠츠!
콰콰쾅! 쿠콰콰쾅!
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기세가 그대로 충격파로 변해 주변의 땅을 초토화시켰다.
‘진짜 괴물이 따로없군.’
다행히 보호막 안쪽은 멀쩡했다.
그때 다크 엘프가 재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위대한 어둠의 엘프들의 수장 파필리오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훔쳐간 물건들을 모두 돌려준다면 앞으로 이곳은 건드리지 않겠다.”
그는 재윤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섬뜩한 흉광을 번쩍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어리석은 행동을 하겠다면 네놈은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네놈뿐 아니라 이 성에 있는 모두가 지옥의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할 것이다.”
그의 음성은 정말로 지옥의 사신 같았다.
악마가 있다면 딱 지금 그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재윤은 차갑게 웃으며 광혈검을 앞으로 뻗었다.
“내 대답은 이거다!”
파아아앗-
그 즉시 검기파(Lv2)가 뻗어나가자 파필리오는 재빨리 망토로 몸을 감싸 그것을 막았다.
놀랍게도 망토에는 훔집도 나지 않았다.
뭔가 불가사의한 방어력을 가진 망토 같았다.
‘질풍의 화살! 바람의 화살!’
계속해서 재윤이 다시 필살기를 날렸지만 그 또한 파필리오는 망토를 방패삼아 가볍게 방어했다.
“겁쟁이 놈! 보호막 바깥으로 나올 배짱은 없느냐?”
그는 조소를 흘리며 재윤을 도발했다.
그러나 재윤은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파필리오 뒤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 눈치했기 때문이다.
‘지금 나가면 죽는다.’
설사 파필리오를 기습해 해치운다고 해도 그 즉시 다른 다크 엘프들의 공격에 처참히 당하고 말 것이다.
한 놈 한 놈이 보스급 괴물들.
포위되는 순간 도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헛소리 그만 두고 꺼져라!”
재윤은 재사용 시간이 돌아온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성에서는 파투스가 자동 회복되니 필살기를 종일 날려도 상관없었다.
‘검기파!’
그런 식으로 다시 필살기를 날려대니 결국 파필리오는 인상을 쓰며 멀리 물러났다.
망토로 계속 받아내기는 부담스러운 공격이었던 것이다.
“괴물들을 다시 불러라. 성을 포위해라.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결국 아까 패퇴했던 괴물들이 다시 불려왔다.
그러나 아까와 달리 보스 급 괴물과 다크 엘프들이 선봉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보호막을 영원히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너희들이 언제까지 그 안에서 버틸 수 있나 보겠다."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는 재윤의 성을 봉쇄한 채로 끝없이 버틸 작정인 듯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이런 상황은 재윤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재윤은 물론이고 성의 모든 각성자나 비각성자들은 성안에만 대기해야 한다.
보호막 밖으로 나가는 순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그러나 재윤은 이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거기서 계속 고생해라. 난 안에 들어가 편하게 좀 쉴 테니까.”
보호막이 있으니 굳이 이곳에 대기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지속 시간이 꽤 남아 있었고, 사라질 것 같으면 또 펼치면 된다.
재윤은 세붐이 훔쳐온 보물이 뭔지 확인도 할겸 성 안으로 들어갔다.
다크 엘프들은 이를 갈았다.
“이 성의 인간들을 모조리 다 죽이기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진영을 만들어라. 그리고 저 보호막을 없앨 방법을 찾아라.”
“예, 로드!”
다크 엘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 * *
“둘 다 고생 많았다, 고단해들 보이니 당분간 편히들 쉬어라.”
“감사합니다, 마스터.”
“예, 주인님.”
재윤은 세붐과 로사엔을 격려해줬다.
특히 코볼트로 변신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크 엘프의 소굴을 찾아내고 보물까지 훔쳐온 세붐에게는 많은 칭찬을 해주었다.
세붐 (충성도 Lv14)
그 사이 세붐의 충성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몇 배 강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를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순식간에 궁지로 몰아넣은 다크 엘프 전사의 전투력은 역시나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실 킬리아 급의 다크 엘프를 만났다면 세붐이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숲의 엘프답게 로사엔이 아주 적절하게 그를 따돌리고 세붐을 구출해온 것이다.
잠시 후 재윤은 세붐이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봤다.
어둠 엘프의 금낭 2개
암흑의 서 1권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 1개
총 4개의 물건이었다.
* 어둠 엘프의 금낭
-분류 : 알 수 없음
-설명 : 어둠 엘프들이 사용하는 주머니로 안에 뭔가 들어 있을 것 같다.
-개봉 제한 : Lv30
이 주머니를 열어보는 것은 레벨 제한이 붙어 있었다.
재윤은 하나씩 열어봤다.
[고대 엘프의 달빛 머리핀을 얻었습니다.]
* 고대 엘프의 달빛 머리핀
-분류 : 보물
-설명 : 고대의 엘프들이 착용하던 머리핀으로 엘프가 착용시 특별한 능력을 펼칠 수 있다.
-장착 제한 : 엘프
이건 엘프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로사엔에게 주면 되겠군.’
로사엔은 지금 재윤이 머물고 있는 저택의 방 중 하나에 들어가 취침 중이었다.
세붐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무척이나 고단해 보여 한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재윤은 또 하나의 금낭을 열어봤다.
[고급 혈액 채취 도구를 얻었습니다.]
* 고급 혈액 채취 도구
-분류 : 보물
-설명 : 괴물의 혈액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괴물 혈액 채취 능력을 가진 자면 사용 가능하다.
-효과 : 혈액 채취 시간 5초 감소
‘오!’
이건 재윤에게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이 도구를 사용하면 괴물의 피를 뽑는 시간이 5초 더 줄어들게 된다.
현재 레벨 Lv18로 43초가 소요되는데, 이제 38초면 피 한 병을 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피 뽑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는데 잘됐다.’
괴물을 한 마리씩 해치우고 피를 뽑으면 모를까, 수십 마리의 괴물을 처치하고 하나씩 피를 뽑다보면 그 사이 사체들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록 5초 정도지만 혈액 채취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혈액을 확보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이것들은 뭘까? 이름부터 음산해 보이네.’
계속해서 재윤은 세붐이 가져온 다른 물건들을 살펴봤다.
* 암흑의 서
-분류 : 재앙
-설명 : 뒤바뀐 세계의 멸망을 불러오는 사악한 물건으로 악마의 힘을 통해 시체를 조종하는 비법이 숨겨져 있다. 파괴하면 소규모 재앙 하나가 사라진다.
-파괴 제한 : Lv35, 성주
-파괴 시 명성 상승
‘재앙으로 분류되는 물건?’
놀랍게도 이곳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 등급 아이템이었다.
재윤은 이걸로 뭔가를 얻을 수 없고 파괴만 가능했다.
설명을 보니 파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투스의 힘을 가진 성의 성주여야 하고, 동시에 레벨이 35가 되어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재윤은 두 조건에 다 해당했다.
‘왠지 이것도 재앙 급 아이템같은데?’
재윤은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도 살펴봤다.
*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
-분류 : 재앙
-설명 : 뒤바뀐 세계의 멸망을 불러오는 사악한 물건으로 마계의 마왕 데사오가 주입한 어둠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 파괴하면 대규모 재앙 하나가 사라진다.
-파괴 제한 : Lv70, 성주
-파괴 시 명성 상승
‘역시!’
마계의 마왕 데사오의 마력이 주입된 구슬!
이건 그냥 재앙도 아니고 대규모 재앙을 불러오는 물건이었다.
‘미치겠네. 마왕까지 이곳 세계에 힘을 뻗쳤다는 거야?’
재윤은 기가 막혔다.
말로만 듣던 마계나 마왕이 실제로 있다는 거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그놈까지 이곳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니!
이 뒤바뀐 세상의 모든 재앙을 없애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한 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고 보니 이것들이 바로 빙의괴물과 관련된 물건들이 분명해.’
암흑의 서에서 말한 악마의 힘이란 바로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에 깃들어진 마력을 의미할 테니까.
재윤은 세붐에게 다크 엘프 마법사가 있던 밀실에서의 상황도 모두 보고 받았다.
다크 엘프 마법사는 이 두 개의 물건을 이용해 인간 각성자의 시체에 코볼트의 정신을 빙의시켜 빙의괴물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이것들만 파괴하면?’
더 이상 빙의괴물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만 웅크리고 있던 다크 엘프 족장 파필리오가 왜 두 눈에 불을 켜고 나타나 재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세붐 녀석이 정말 엄청난 것들을 훔쳐왔군.’
역시나 보물 고블린이었다.
일어나면 또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 일단 암흑의 서부터 없애버리자.’
마왕 데사오의 마력구는 레벨 70이 되어야 파괴할 수 있다고 하니 지금은 그냥 아공간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책이니까 태워버리는 게 가장 깔끔하겠지.’
곧바로 재윤이 암흑의 서를 벽난로 안으로 집어던지려는 순간.
스스스-
갑자기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더니 재윤은 알 수 없는 공간에 서 있었다.
동시에 그의 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미모의 여성이 나타났다.
신비로운 남색의 긴 머리카락 아래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 부신 피부를 가진 그 여성은 보는 것 자체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인간, 정말 그것을 파괴할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