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생존 공동체 (3) >
30대 남자가 앞으로 뻗은 지팡이에서 푸른 기운이 어렸다.
20대 남자는 앞이 랜스처럼 긴 창을 재윤을 향해 고정시킨 채 돌진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재윤은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려는 순간 앞으로 번쩍 이동해 쇠막대로 그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퍽!
두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터졌다.
즉사였다.
이 모든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죽은 두 남자 즉, 각성자 빙의괴물들이 성벽에서 내려와 재윤을 향해 돌진해오다 갑자기 픽 쓰러져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쇠막대를 손에 쥔 재윤이 서 있었다.
[204코인을 얻었습니다.]
[172코인을 얻었습니다.]
[빙의괴물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 빙의괴물
-획득 지식 등급 : E
-빙의괴물에게 주는 피해 5% 증가
-빙의 저항 +5
코인과 지식!
거기에 빙의 저항이 5 증가했다.
‘젠장!’
물론 사람을 죽여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 오재석 패거리를 죽인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코인이나 지식을 얻었다는 말은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코인과 각종 보상을 얻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었다.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린 자들이야. 좀비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좀비와 달리 빙의괴물은 그것을 조종하는 뭔가가 있었다.
악령인지 악마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놈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마치 인간을 아바타 삼아 게임을 즐기는 것 같았으니까.
“뭐야? 저 인간 놈! 제법 세잖아.”
“호호호! 센 만큼 경험치도 많이 주겠지.”
“크크, 그건 그래.”
“모두 모여라! 저 인간 놈은 파티로 죽인다!”
그 사이 성안으로 내려선 빙의괴물들.
눈빛만 빼면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었다.
말도 멀쩡하게 잘했다.
다만 그 말의 내용이 문제였다.
정말로 저들이 인간이라면 인간을 상대로 인간 놈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즉,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들이 저 빙의괴물들의 뒤에 있음이 분명했다.
“우하하하! 모두 공격! 저놈만 공격해라!”
덩치 큰 청년이 커다란 방패를 앞세운 채 재윤을 향해 돌진해왔다.
딱 봐도 탱커형 능력을 가진 빙의괴물.
서걱!
그러나 그 청년은 오던 자세 그대로 허리가 갈려 두 토막이 나버렸다.
“크아아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청년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재윤은 언제 이동했는지 이미 청년을 지나쳐 다른 빙의괴물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너희가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지만 내게 걸린 이상 살아돌아갈 생각마라.”
그 순간 앞에 있던 빙의괴물들 뿐 아니라 뒤쪽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민지 등을 포함한 지원조들의 표정이 일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사이 재윤의 손에는 쇠막대가 아닌 섬뜩한 핏빛 검신의 장검이 쥐어진 상태!
그로부터 피어나는 가공스러운 기세는 멀리서 봐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촤악! 촥! 서걱-
어차피 힘을 드러내기로 한 이상 감출 것도 없었다.
재윤은 광혈검을 휘둘러 빙의괴물들을 모조리 도륙해버렸다.
“으아악!”
“아악!”
“크아아악!”
순식간에 성안에 내려섰던 10여 명의 각성자 빙의괴물들이 죽었다.
성벽 위에서 빙의괴물들을 방어하며 아래쪽을 힐끔거리던 전투조원들도 크게 놀랐다.
“저럴 수가!”
“어떻게 각성자 빙의괴물들을 다 한 방에!”
“믿을 수가 없다!”
각각의 각성자 빙의괴물들은 전투조원 한 명의 전투력과 거의 비등했다.
물론 전투조원 중 최상위에 있는 이들은 혼자서 10명이 넘는 각성자 빙의괴물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지금 재윤처럼 무슨 허수아비를 베듯 일방적으로 학살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대단한 자군. 어쩐지 아까 처음 저 자를 보자마자 전신에 오한이 들도록 긴장감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 느낌이 진짜였어.”
경비대장 최진석의 말이었다.
그는 쥐고 있던 도끼로 자신 앞에 있던 빙의괴물 하나의 머리를 박살낸 후 재윤을 보며 놀라는 중이었다.
어느덧 성벽 위의 상황은 정리되었다.
빙의괴물들은 거의 다 죽었고 남아 있는 놈들은 전투조원들에게 포위되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저 자는 누굽니까?”
최진석의 옆에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
스포티한 짧은 머리에 날렵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그는 이곳 생존 공동체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최강의 각성자 차강혁이었다.
현재 레벨 28.
고대 용사의 창술이라는 A급 특화 능력의 보유자였다.
경비대장 최진석의 레벨은 26.
그는 고대 광전사의 투혼이라는 B급 특화 능력의 보유자로 도끼와 같은 둔기류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다.
“오늘 민지가 데려온 각성자라네. 사냥을 나갔다가 만났다고 했지. 그런데 저런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 게다가 저 붉은 검은 보통 무기가 아닌 것 같군.”
“특화 능력의 보유자가 분명합니다.”
차강혁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최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검술 쪽으로 최소 B급 이상이야.”
“우리는 이 성의 뒤쪽에 있는 운명의 탑을 통해 특화 능력을 얻었지만 저 자는 어디에서 특화 능력을 얻었을까요?”
“아루넬 님이 그러지 않았나? 운명의 탑으로 들어오는 문은 이 괴상한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다고 말이야. 저 자 역시 그 중 하나를 찾았던 것이겠지.”
그런데 그때였다.
재윤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던 차강혁이 돌연 성밖을 노려보며 다급히 외쳤다.
“빙의괴물들이 다시 몰려옵니다.”
“제기랄! 저놈들이 오늘 작정을 했군.”
최진석 또한 멀리서 몰려오는 빙의괴물들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구겼다.
“놈들이 또 몰려온다! 모두 각자 위치를 고수하라! 한놈도 들여보내면 안 된다!”
곧바로 그가 크게 외치자 전투조원들이 성벽 위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선 채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때 최진석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가만! 저 앞에 저년은 혹시?”
“페리나입니다.”
20레벨 전설 등급의 무기인 스켈레톤 백부장의 창을 손에 쥔 채 성밖을 노려보는 차강혁의 눈빛이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할! 저 끔찍한 엘프 년이 온 이상 또 몇이나 죽어나갈지 모르겠군.”
최진석의 눈빛도 떨렸다.
그녀는 그만큼 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신비한 은발을 흩날리며 빙의괴물들의 선두에서 달려오는 여성.
엘프 페리나.
그녀는 빙의괴물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다.
난폭하기 이를데 없는 각성자 빙의괴물들도 페리나 앞에서는 주인 앞의 개처럼 복종했다.
또한 그녀의 전투력은 차강혁과 최진석을 비롯해 공동체의 최강자 다섯 명이 모두 덤벼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
최진석 등이 그녀의 종족이 엘프이며 이름이 페리나라는 걸 알고 있게 된 것은 그녀 스스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페리나는 잠시 멈춰서서 오연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나는 위대한 어둠의 엘프 족 전사 페리나다. 이 세계는 이미 우리의 지배하에 들어왔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굴복하라! 그러면 어둠의 힘이 그대들에게 축복을 베풀 것이다.”
“닥쳐라! 미치광이 엘프 년! 오늘은 네가 죽는지 내가 죽는지 끝장을 보자.”
차강혁이 창끝을 겨눈 채 싸늘히 외쳤다.
페리나가 큭큭 웃었다.
“너 혼자서 내게 덤빌 배짱이 있어? 그렇다면 특별히 도전을 받아주지.”
순간 차강혁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너 따위에게 질 것 같으냐?”
그는 금방이라도 성벽 아래로 뛰어내릴 기세였다.
최진석이 급히 말렸다.
“진정하게. 저년은 우리가 힘을 합쳐야 상대할 수 있어.”
“맞아요, 강혁 씨. 진정해요.”
“진정해요, 형님.”
그 사이 1남 2녀가 그들의 주위로 달려왔다.
차강혁, 최진석과 함께 생존 공동체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최강자가 다 모인 것이다.
조상구 Lv25, 고대 기사의 방패술(B)
채시은 Lv26, 고대 대사제의 가호(A)
권수현 Lv25, 살라만더의 친구(B)
모두 B급 이상 특화 능력 보유자이며 20레벨 전설 등급의 무기를 각각 손에 쥐고 있었다.
차강혁이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빙의괴물은 신경쓰지 말고 오직 페리나만 막아야 합니다. 저 엘프가 성안으로 들어가면 끝장입니다.”
“물론이네.”
“일단 보호막부터 펼칠게요.”
곧바로 채시은이 차강혁을 비롯한 모두에게 보호막을 씌웠다.
300의 내구도를 가진 이 보호막은 적들의 공격에 쉽게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해주는 터라 모두가 반기는 능력이었다.
그 사이 권수현은 자그만 붉은 색 도마뱀을 손바닥 위로 소환했다.
살라만더라 불리는 이 도마뱀은 지금은 작아보이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거대하게 변해 적을 공격하는데, 그 위력이 매우 강력했다. 데미지로만 치면 차강혁도 살라만더에게는 밀릴 정도였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페리나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어리석은 놈들! 실력이 쓸 만해서 기왕이면 살려두고 부리려고 했더니 기어코 죽음을 선택하는구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멀리 있던 페리나가 마치 날 듯 공간을 달려와 차강혁 등의 앞에 내려섰다.
“흥! 모조리 죽여주마!”
“닥쳐라!”
곧바로 차강혁의 창과 페리나의 검이 격돌했다.
차창! 카카캉!
은빛의 검을 번개처럼 휘두르는 페리나의 검술은 차강혁을 금방 궁지로 몰아넣었다.
“죽어라, 이 마녀야!”
순간 조상구가 방패를 앞세우며 돌진했고, 최진석이 도끼를 휘두르며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 사이 채시은은 잽싸게 치유의 빛을 펼쳐 차강혁을 치료했다.
권수현이 소환한 살라만더가 거대하게 변해 화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대 1의 격돌이 펼쳐졌지만, 페리나는 그 다섯 명의 각성자들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다른 전투조원들은 그들의 전투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들과는 전투력의 격차가 크게 나는 터라 근처로 접근하는 건 오히려 전투에 방해를 줄 뿐이었다.
심지어 페리나가 슬쩍 휘두르는 검격 한 방에 죽어나갈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차강혁 등이 페리나와 전투를 벌이는 동안 전투조원들은 빙의괴물들이 성안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데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쯤 성벽 위로 올라와 난투를 벌여야 할 빙의괴물들이 뭔가에 가로막힌 채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 뭔가는 단 한 명의 사람, 다름아닌 재윤이었다.
빙의괴물들이 그가 휘두르는 검에 족족 토막이 나고 있었다.
즉, 빙의괴물들은 단순히 앞을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죽어나자빠지고 있는 상황.
각성자 빙의괴물이건 일반 빙의괴물이건 재윤이 휘두르는 검격 한 번을 버텨내지 못했다.
“크아아악!”
“아아악!”
“끄아악!”
목을 자르고 가슴을 베어내고 허리를 동강낸다.
재윤은 그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전쟁신의 검술(Lv35)이 발휘하는 절제되면서도 강력한 동작 앞에 빙의괴물들의 전투 능력은 무용지물이었다.
크로거 군장 아르툼의 필살기인 분노의 폭풍 질주조차 광혈검으로 베어버린 재윤이다.
별볼일 없는 각성자 빙의괴물들이 날린 전투 능력 따위는 그에게는 그저 가소로울 뿐.
그는 불덩이가 날아와도 베어버렸고, 바람의 화살도 광혈검을 휘둘러 흩어버렸다.
[82코인을 얻었습니다.]
[203코인을 얻었습니다.]
[38코인을 얻었습니다.]
들어오는 코인도 천차만별이었다.
강한 녀석과 약한 녀석들이 뒤섞여 있었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쟁신의 검술이 Lv36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레벨이 상승했다.
죽음의 숲에서 히드라와 철갑 독지네를 사냥하며 쌓인 경험치에 빙의괴물들의 경험치가 합쳐지며 레벨 상승을 위한 필요 경험치가 충족된 것이다.
또한 지식 등급도 계속 올라 C급이 되었다.
* 빙의괴물
-획득 지식 등급 : C
-빙의괴물에게 주는 피해 15% 증가
-빙의괴물 처치 시 아이템 획득 확률 증가
-빙의괴물 약점 파악 1단계
-빙의 저항 +15
드디어 약점 파악이 가능해졌지만, 굳이 약점을 공격하지 않아도 어차피 한 방일뿐이었다.
‘각성자들이 저 엘프를 상대하는 사이 이놈들을 다 죽인다.’
사실 처음부터 엘프를 상대할까 했지만 그보다는 이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해 즉각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나저나 저 엘프가 두목이라는 것이 정말 의외군.’
르티아나 로사엔과 같은 세마르 숲의 엘프들과는 그 기질이 너무 달랐다.
재윤은 설마 빙의괴물들을 조종하는 존재가 엘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급 생명력 물약 3병을 얻었습니다.]
[빙의괴물의 창(희귀)를 얻었습니다.]
[빙의괴물의 지팡이(영웅)를 얻었습니다.]
[독 저항의 비약 1병을 얻었습니다.]
어느새 빙의괴물들은 다 죽었다.
재윤은 드롭템들을 아공간에 챙겨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윤이 거의 오륙십은 되어 보이던 빙의괴물들을 모조리 도륙한 후 아이템을 챙기고 있는 모습을 성벽 위의 전투조원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한편 이 상황에 가장 당황한 것은 페리나였다.
그녀는 혼자서 차강혁을 포함한 공동체의 최강자들을 조금씩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설마 그 사이 빙의괴물들이 모두 죽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인간 각성자에게 말이다.
“죽여버리겠다!”
그녀는 차강혁 등을 내버려둔 채 곧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재윤을 향해 돌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