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생존 공동체 (2) >
“멧돼지가 쓰러졌다.”
“저 사람이 한 일이에요. 쇠막대로 한 방에 해치우다니 대단해요!”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눈빛을 보니 다행히 빙의괴물은 아니야.”
2남 2녀는 멧돼지 앞에 서 있는 재윤을 바라보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바닥에 있던 김민지가 곧바로 일어나 재윤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멧돼지가 달려오기에 그냥 쳤을 뿐입니다.”
재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 지었다.
김민지는 놀란 눈으로 재윤의 손을 가리켰다.
“쇠막대로 붉은 뿔 멧돼지를 단 번에 쓰러뜨리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각성자 맞으시죠?”
그때 재윤은 오른 손에 쇠막대를 쥐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위압감이 드는 광혈검을 꺼내기가 뭐해 그냥 아공간에 있던 아무 쇠막대를 하나 꺼내 휘둘렀고, 멧돼지는 즉사한 것이다.
"예."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란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전 지대의 소유자란 사실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는 이전에 오재석 패거리의 사건 이후로 사람들을 만날 때 더욱 신중해졌다.
“그럼 생존 공동체를 찾아오신 건가요?”
“생존 공동체요?”
“모르고 계셨나요. 각성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체이죠. 함께 괴물들을 상대하고, 함께 생존하자며 각성자들이 뭉쳤어요. 물론 비 각성자들도 있고요.”
그 말을 들은 재윤은 로사엔이 말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그곳이 바로 생존 공동체라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이곳에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당신도 혼자 떠돌지 말고 공동체에 있는 게 안전할 걸요. 자칫 빙의괴물이라도 만나면 혼자서는 꼼짝없이 죽고 말 거에요.”
“빙의괴물은 뭡니까?”
“괴물에게 빙의된 사람들을 말해요.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괴물들이죠. 그 괴물들에게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들은 눈빛이 괴물들처럼 검붉게 번쩍이고 있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괴물에 빙의된 사람들도 있다니!
그 괴물은 무슨 악령이라도 되는 건가?
“혹시 좀비를 말하는 건가요?”
“좀비는 밤에 스켈레톤들과 함께 나타나죠. 빙의괴물은 낮이건 밤이건 때를 가리지 않아요. 눈빛만 빼면 보통 사람이랑 구별도 안 가고요. 그래서 썬글라스로 눈을 가리거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을 보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해요. 그리고 빙의괴물들 중에 가장 무서운 것들이 바로 각성자 빙의괴물들이에요.”
“각성자처럼 전투 능력을 펼칠 수 있나 보군요.”
“네. 심지어 그들은 우리와 달리 사람들을 죽이면 레벨도 올라요. 점점 더 강해지니 상대하기가 까다롭죠.”
사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얘기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민지는 재윤에게 생명을 빚진 상황이라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를 보인 것이었다.
“민지 말이 맞아요.”
“지금 같은 세상에 혼자 떠도는 건 위험하니 같이 갑시다!”
“당신도 각성자이니 대우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김민지의 동료들도 재윤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였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재윤은 사양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인간들끼리 서로 뭉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모두가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낯선 사람들을 선뜻 공동체로 받아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뜻하지 않게 김민지를 위기에서 구해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린 것이다.
재윤은 멧돼지 사체를 가리켰다.
“그보다 저 멧돼지 사체가 사라지기 전에 고기를 잘라내야 하는 거 아닌지?”
사냥 중이었던 것 같아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자 김민지 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당신이 죽인 건데 우리가 고기를 얻어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그럼 이따 고기를 나눠드릴게요. 모두 서둘러.”
“고맙습니다, 새로 오신 각성자님!”
곧바로 김민지 등은 칼을 꺼내 멧돼지 고기를 잘라냈다.
세붐에 비하면 서툴기 이를데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넷이서 기를 쓰니 용케 한덩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멧돼지 사체가 사라지자 김민지 등은 뿌듯한 표정으로 일어나 말했다.
“당신 덕분에 무사히 고기를 얻었네요. 이게 아니었으면 우리 지원조는 오늘 허탕을 칠 뻔했는데.”
“어서 갑시다! 새로운 각성자라면 다들 환영할 겁니다.”
* * *
잠시 김민지 등을 따라 이동하자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성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웬 성이지?’
당연히 재윤은 아파트나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수백 명이 있는 안전 지대라면 그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성이라니!
“놀라셨나요? 저길 발견한 건 기적같은 일이죠. 저 성 안에 들어가면 각성자들의 파투스가 회복되거든요.”
“보호막 같은 건 없나요?”
“무슨 보호막요?”
“성 전체를 두르는 안전 지대 보호막 말입니다.”
그러자 김민지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공상과학 영화를 많이 보셨나봐요. 아무리 괴상한 세상이지만 저 큰 성을 어떻게 보호막이 둘러요?”
“안전 지대가 아니었나요?”
“안전한 장소는 맞아요. 저 성벽만 굳게 지키면 안은 안전한 공간이니까요.”
순간 재윤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안전 지대가 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
저곳은 재윤이 알고 있는 안전 지대가 아니었다.
보호막이라는 것도 없고, 수용 인원 제한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저 성 안에서는 각성자들의 파투스가 회복될 뿐 아니라 음식 같은 것도 썩지 않는다고 했다.
보호막만 없을 뿐 안전 지대에 있는 효과가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곳이네.’
어떻게 보면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안전 지대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수용 인원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보호막이 없는 터라 괴물의 공격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밤이 되면 간혹 좀비와 스켈레톤들이 나타나 공격을 해오죠. 하지만 낮에는 비교적 평화로운 곳이에요. 각성자들 중에서 저처럼 지원조로 분류된 이들은 낮에 사냥을 하러다니고 있어요. 당신은 강해보이니 전투조로 편성이 될 수도 있겠군요. 전투조는 지원조에 비해 많은 혜택이 있어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각 일원들은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각성자 중 전투력이 약한 이들로 편성된 지원조는 매일 사냥이나 채집을 해서 식량을 얻어와야 하고, 비각성자들은 성 안의 제반 잡무를 맡아야 했다.
그들과 달리 전투조는 전투가 있을 때만 전투를 하면 되고 모든 의무에서 면제된다.
또한 모든 식량이나 보급이 전투조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고, 그 다음이 지원조, 마지막이 비각성자들이었다.
그렇게 김민지에게 설명을 듣는 사이 재윤 등은 성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 우람한 덩치를 가진 네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김민지가 그들을 향해 씩씩하게 외쳤다.
“지원 6조 사냥 후 전원 무사히 모두 복귀했습니다.”
그러자 그 중 인상 좋아보이는 40대 남자가 김민지 등을 향해 말했다.
“어서들 돌아와라. 오늘 소득은 좀 있었냐, 민지야?”
“오늘 새로운 각성자 한 분을 모셔왔어요, 외삼촌. 이분 덕분에 멧돼지 고기도 얻었죠.”
김민지는 재윤을 가리켰다.
그리고 재윤에게도 말했다.
“인사드리세요. 이분은 공동체의 경비 대장님이신 최진석 대장님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강재윤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재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최진석이었다.
호수처럼 담담하게 가라앉아 있는 재윤의 눈빛과 절제된 움직임.
한 눈에 봐도 기세가 심상치 않아보여 그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재윤이 빙의괴물이 아니라는 것에 그는 안도했다.
또한 차분해 보이는 인상을 보면 심성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어서와요. 이곳 생존 공동체는 빙의괴물만 아니라면 각성자이건 비각성자건 생존자는 누구든 환영합니다.”
“이분 매우 강하세요. 저 쇠막대 하나로 붉은 뿔 멧돼지를 단번에 쓰러뜨렸어요.”
김민지의 말에 최진석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는 이곳 생존 공동체에서 전투력으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런 그 역시 전투 능력을 펼치지 않고 그저 쇠막대를 단 한 번 휘둘러 붉은 뿔 멧돼지를 해치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붉은 뿔 멧돼지는 그냥 멧돼지가 아니다.
괴물로 분류되는 만큼 무서운 괴력을 가지고 있어 지원조 각성자들 여럿이 달려들어야 해치울 수 있었다.
“그게 정말이냐?”
“정말이라니까요.”
그 순간 재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미 다른 분들이 다 잡아놓은 걸 막타로 운좋게 친겁니다. 별로 대단한 거 아니에요.”
재윤은 이곳에 부모님이 있는지 알아보러 왔을 뿐이다.
굳이 이곳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자칫 경계를 받거나 혹시모를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 우려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곳 생존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는 솔직히 큰 관심도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이곳에 없다면 내일이라도 조용히 이곳을 떠날 것이다.
“하하, 그럼 그렇지. 막타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대단한 건 분명합니다. 어쨌든 환영합니다, 강재윤 씨.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당신의 소속을 결정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최진석 뒤에 있던 남자 두 명이 재윤을 향해 다가왔다.
“따라오십시오, 강재윤 씨. 오늘은 임시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따라갔다.
김민지가 뒤따라오며 말했다.
“처음 오는 분들은 임시 숙소에서 하루 지내게 돼요. 거기 가 계세요. 조금 이따가 찾아뵐게요.”
김민지는 그렇게 말한 후 동료들과 성안으로 사라졌다.
재윤은 성문 바로 안쪽에 있는 허름한 막사 같은 곳으로 안내됐다.
“불편하더라도 이곳에서 오늘은 머무셔야 합니다. 식사는 잠시 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안내자 없이 단독으로 성안을 돌아다니면 안됩니다.”
“알겠습니다.”
재윤은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아무런 조사도 없이 성안을 활보하게 하는 건 매우 허술한 조치일 테니까.
막사 외관은 허름했지만, 내부는 비교적 깨끗했다.
식탁처럼 쓸 수 있는 탁자와 그 옆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투박한 모양의 침대도 놓여 있었다.
특이한 건 조명이었다.
막사 안에 전등이 설치되어 내부를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보호막 외에는 안전 지대 효과가 다 적용되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재윤이 소유한 안전 지대는 본래부터 전기가 들어오던 건물들이다.
반면에 이곳은 성이었다.
성인데 전기가 들어온 것도 특이하고 외형만 보면 이곳은 무슨 중세 유럽의 영주들이 소유한 성처럼 보였다.
엘프나 고블린, 오크들이 나타난 것처럼 다른 어딘가 있던 성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일까?
재윤은 길게 의문을 갖지 않았다.
어차피 이 뒤바뀐 세상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다. 왜 여기에 오니 나침반의 자침이 사라졌지?’
재윤은 임시 숙소인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운명의 나침반을 꺼내 살펴봤다.
그런데 아까 김민지 등을 만나기 직전에만 해도 멀쩡히 있던 자침이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방향을 가리킬 필요가 없어서일까?’
그럼 이곳에 정말로 부모님이?
그때 두 명의 남녀가 재윤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김민지와 오대현.
아까 만났던 일행 중 두 명이었다.
김민지가 말했다.
“나오세요, 강재윤 씨. 외삼촌께 특별히 허락받았어요. 우리가 함께 있는다는 조건으로 성안을 돌아다녀도 된다고요. 조금 있다가 저녁도 우리와 함께 먹어요.”
그녀의 외삼촌이 경비대장 최진석인 건 아까 대화를 들어 알고 있긴 했다.
기특하게도 그녀는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재윤을 여러모로 챙겨주고 있었다.
재윤은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혹시 이 성 안에 강두성 씨와 김지현 씨라고 계시나요?”
그러자 김민지가 미소지었다.
“역시나 찾는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했어요. 광장 게시판에 모든 이름이 적혀 있으니 함께 가요.”
“게시판에요?”
“여기 오신 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람 이름을 물어보는 거죠. 가족이나 애인, 친구 등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저도 그랬는데, 여기서 외삼촌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 게시판을 만들어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보면 이곳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인 것 같았다.
“어서 가보죠.”
재윤은 김민지를 따라 성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안은 꽤 넓었다.
심지어 성벽 안쪽으로 집들도 있었다.
집들의 외형도 훌륭했다.
널따란 광장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재윤은 감탄했다.
성 안이 안전지대 기적 못지 않게 안전하고 평화로워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곳곳에 걸어다니는 사람들 중 마주친 각성자만 벌써 이십여 명.
재윤은 한 눈에 사람을 보면 각성자인지 알 수 있다.
레벨이 오르며 자연스럽게 생긴 능력 중 하나.
‘이 성에는 각성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러한 의문은 게시판을 보며 곧바로 풀렸다.
광장 한쪽에 길게 이어져 있는 게시판에 이곳 공동체의 모든 인원의 사진과 이름은 물론, 각성자 여부까지 다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총원 521명.
그 중 각성자가 놀랍게도 73명이었다.
하긴 각성자가 이렇게 많으니 보호막이 없이도 괴물들로부터 지금껏 이 성을 지켜냈겠지만.
황당한 건 벌써 재윤의 이름과 사진도 게시판 끝쪽에 나와 있었다.
“언제 내 이름이?”
재윤이 놀라자 김민지가 설명해줬다.
“이 성에 들어오면 이 게시판에서 자동적으로 이름과 사진을 이곳에 계시해요. 각성자 여부도요.”
“놀랍군요.”
“더 놀라운 것들이 많지만 차차 아시게 될 거에요. 일단 찾는 분들이 있나 확인해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재윤의 눈은 게시판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아니 이미 모두 훑은 후였다.
그런데 없었다.
혹시 잘못 봤나 싶어 몇 번을 다시 봤지만 그 흔한 동명이인조차 없었다.
이름이 잘못 표기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진도 모두 살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럼 대체 왜 여기로 나침반이 날 안내한 거지? 자침은 왜 사라지고?’
재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자 김민지가 위로의 말을 했다.
“찾는 분이 안계시나 보군요. 기운내세요. 그리고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여기서 기다리다보면 혹시 그분들이 찾아올 지도 모르잖아요. 실제로 여기서 그렇게 만난 분들이 꽤 있어요.”
“맞아요. 힘내세요, 강재윤 씨. 우리 여기 있지 말고 저녁 먹으러 갑시다.”
함께 재윤을 안내하던 오대현도 재윤을 위로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비상! 비상!”
“빙의괴물들의 습격입니다!”
갑자기 성벽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민지 등도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빙의괴물이 나타나면 전투조들은 성벽 위나 성밖으로 나가 싸우고 우리 지원조들은 성안에서 대기하며 안에 침투한 적들과 싸워야 해요. 당신은 아직 소속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우리들과 함께 있어요.”
“그러죠.”
재윤은 마음이 여러모로 복잡했다.
그토록 기대하고 왔는데 부모님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하필 괴물들이 쳐들어왔다.
콰쾅! 화르르! 쿠콰아앙!
“끄아아악!”
“쿠아악!”
성밖에서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성벽 위쪽도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20미터도 넘는 성벽을 뛰어 올라온 빙의괴물 둘과 그곳을 지키는 전투조와의 싸움!
“크아아악!”
그러다 전투조원 중 한 명이 죽었다.
그를 죽인 빙의괴물 중 한 명은 눈빛만 검붉은 걸 빼면 멀쩡하게 생긴 30대 남자였다.
“으하하하하! 역시 인간 각성자 놈들을 죽여야 레벨이 빨리 오른다니까!”
“으히히히! 우리 오늘 레벨 업하러 왔단다, 인간들아!”
레벨 업이라니!
그러고 보니 저들은 빙의괴물 중 가장 무섭고 악랄하다는 각성자 빙의괴물이 분명했다.
“저놈들을 막아라!”
경비대장 최진석을 비롯한 전투조원들이 다급히 그쪽으로 달려가 놈과 맞붙었다.
그러나 계속 해서 올라오는 빙의괴물들을 모두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두 마리의 빙의괴물들이 방어망을 뚫고 성 안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두 눈을 두리번거리더니 재윤 등이 있는 광장 쪽으로 바람처럼 달려왔다.
“으히히히! 다 죽인다!”
“크하하하! 경험치를 내놔라!”
그런데 놈들이 하필이면 재윤을 향해 가장 먼저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