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흑요정이 원하는 것 (3) >
“꾸아아아아악!”
거대 히드라 보스가 비명을 질렀다.
광혈검의 무자비한 난도질에 놈의 허리가 반쯤 잘려 있었다.
급기야 몸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세차게 떨리더니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놈의 주위에 폭풍처럼 휘돌던 독안개가 폭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으으윽!"
재윤은 놈에게 치명상을 입힌 후 바람 이동을 펼쳐 최대한 독안개의 중심에서 벗어났지만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데미지에 광혈의 막은 이미 파괴된 후였다.
쿠우우웅!
그때 히드라 보스가 결국 완전히 쓰러졌다.
[히드라에 대한 지식이 C급에서 B급으로 상승합니다.]
그 알림을 듣는 것과 동시에 재윤 역시 의식을 잃었다.
[10단계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11단계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흑요정의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으음!”
시험이 종료되는 순간 재윤은 멀쩡한 모습으로 눈을 떴다.
주변은 운동장만한 전장이 아니라 본래 있던 루나티쿠스의 밀실이었다.
흑요정 소녀는 조금은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외네. 10단계는 실패할 줄 알았는데.”
“11단계에 도전하겠다.”
“이미 끝났다, 인간. 11단계 시작되자마자 그대는 죽어 있었으니까.”
그 말에 재윤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흑요정 소녀의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히드라 보스보다 0.1 초라도 늦게 쓰러진 덕분에 자신이 시험을 통과했을 뿐 사실은 같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통과해준 것으로 인정해주니 다행이긴 했다.
흑요정 소녀가 말했다.
“그대의 한계는 10단계까지다. 안타깝지만 나중에 더 강해져서 도전하길 바라마.”
“그럼 이 정도로는 내 부모님의 행방을 알만한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건가?”
“그에 대한 판단은 내가 아니라 운명의 룰이 결정한단다, 인간.”
흑요정 소녀가 오연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와 별개로 10단계까지 시험을 통과한 보상을 내릴 테니 받아라.”
[당신은 흑요정 시험을 10단계까지 통과했습니다.]
[통과 보상으로 10000코인을 얻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1단계 상승합니다.]
[극 능력 강화석 1개를 얻었습니다.]
[흑요정에 대한 지식이 F급에서 E급으로 상승합니다.]
[흑요정과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정신없이 울리는 알림.
대량의 코인이 들어오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보상으로 경험치를 줘서 레벨이 올랐다.
덕분에 레벨 35.
죽어라 히드라와 싸운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보상 중 가장 놀라운 건 극 능력 강화석이었다.
드디어 질풍의 화살이나 검기파와 같은 극 전투 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의 소원에 대해 운명의 룰이 판단한 보상이다.”
흑요정 소녀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납작한 원형의 물건을 하나 건넸다.
크기는 손바닥 절반 정도.
놀랍게도 나침반이었다.
“그 나침반의 자침은 남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설마 이 나침반의 방향이?”
나침반이 부모님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생존해 계시다는 뜻!
재윤의 표정이 급격히 환해졌다.
흑요정 소녀가 그런 그를 담담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인간. 확실한 건 그대의 운명과 관련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나의 운명이라고?”
“물론 그대가 간절히 찾기를 원하는 대상들이 있는 방향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일치하게 될 것이다.”
“아닐 수도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일치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재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자 흑요정 소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운명의 힘이 시켜서 하는 말이다.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 나머진 네 판단에 맡기마. 그리고 이건.”
그녀는 또 뭔가를 하나 건넸다.
대략 10센티 정도의 크기.
그녀와 똑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그만 인형이었다.
“이건 뭐지?”
“나에게 맛있는 걸 준 것에 대한 보답. 아공간에 넣어둬라.”
그 순간 들리는 알림.
[흑요정 테네르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 흑요정 테네르의 호의
-등급 : 알 수 없음
-테네르와 동일한 형상의 작은 인형. 어디에 쓰는지 용도는 알 수 없다.
“어디다 쓰는 건가?”
“받기 싫으면 도로 내놔라.”
“그런 건 아니고.”
재윤은 잽싸게 아공간에 인형을 넣었다.
흑요정이 준 선물이니 뭔가 대단한 용도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게 뭔지 이 괴상한 세계의 시스템에서도 파악하지 못한다니 특이하긴 했다.
그래도 흑요정 소녀의 이름이 테네르라는 건 알게 됐다.
그 사이 테네르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만 돌아가라, 인간. 시험에 또 도전하고 싶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10단계는 더 레벨을 올린 후에 날 찾아라. 그래야 한두 단계는 더 통과할 수 있을 테니까.”
“시험이 몇 단계까지 있는 건가?”
“그런 걸 지금 아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대가 쓰러뜨린 히드라 두목 따위는 이곳 세상에서 아주 약한 녀석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라.”
히드라 보스가 약한 녀석이라고?
그럼 대체 얼마나 강한 놈들이 많다는 말인가?
그런 괴물들에게 죽지 않으려면 레벨을 계속 올려야 할 것이다.
“레벨 45가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 테네르."
재윤은 밀실을 나왔다.
입구에는 로사엔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흑요정과 잘 얘기를 나누셨나요, 마스터?”
“그래.”
그녀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알 수 없는 막으로 가려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 * *
재윤은 기적으로 귀환했다.
루나티쿠스의 던전이 기적과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투스 차량을 이용해 로사엔과 함께 혜미로 이동했다.
이민철 등이 반색했다.
“재윤아, 어서와라. 혜미에게 얘기는 들었다. 그놈을 놓치지 않고 해치웠다고."
“형도 정말 고생 많았어. 오크 지휘관들이 여섯이나 남아 있어 걱정했는데.”
“세붐이 두 놈을 해치웠고 엘프 족장이 하나를 해치웠다. 우린 환상 전투에서처럼 세 놈만 상대했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재윤은 박은빛과 윤현성을 비롯한 다른 각성자들도 한 명씩 손을 잡아주며 격려해줬다.
그들은 이번에 오크 지휘관들을 처치한 덕분에 레벨이 모두 한두 단계씩 상승했다.
그때 이민철이 모두의 앞에 상자를 꺼내놨다.
“자아~! 드디어 이걸 열어볼 시간이 왔구나.”
오크 지휘관들이 드롭한 8개의 상자들.
이민철이 아공간에 보관했다가 재윤이 오자 꺼낸 것이다.
오크 지휘관의 물약 상자 5개
오크 지휘관의 장비 상자 3개
이걸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니.
“그냥 열어보지 그랬어.”
“어떻게 그러냐? 네가 오면 함께 열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리고 여기서 다섯 개는 재윤이 네 몫이잖아.
8마리의 오크 지휘관들 중 재윤이 2마리를 처치했고, 세붐이 2마리, 그리고 르티아가 1마리를 처치했다.
세붐과 르티아가 해치운 건 재윤의 몫이라 생각한 것이다.
곧바로 재윤은 8개의 상자를 모두 열었다.
그 중 전설 등급 장비가 3개나 나왔다.
오크 지휘관의 철벽 방패.
오크 지휘관의 불꽃 지팡이.
오크 지휘관의 생명 지팡이.
그 외에 능력 강화석과 파투스 물약, 생명력 물약 등이 수두룩했다.
“방패는 김지호, 불꽃 지팡이는 화염 속성이니 윤현성 씨가, 그리고 생명 지팡이는 박은빛 씨가 가지세요. 능력 강화석과 물약은 모두 고르게 분배합니다. 앞으로 장비는 계속 얻을 테니 조급히 생각말고 기다리면 모두 다 좋은 장비를 갖출 겁니다.”
“네, 소유주 님.”
재윤이 이렇게 장비를 지정해주자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서로 허물없이 지낸다고 해도 전설 등급이 포함된 아이템 분배는 어떤 식으로든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잡템이야 서로 양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민철은 재윤이 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모두들 재윤의 말이면 절대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없을 때는 민철이 형이 아이템을 분배할 테니 그렇게 알고 따라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재윤은 각성자들을 격려해주고는 세붐을 불러 칭찬했다.
이 녀석이 오크 지휘관을 두 놈이나 해치웠다니 놀라운 일.
그러고 보니 그 사이 녀석의 충성도가 무려 10단계까지 상승해 있었다.
세붐은 재윤을 보자 납작 엎드렸다.
“주인님, 약속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드디어 제 동생을 죽인 원수 놈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주인님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재윤이 동생의 원수를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준 것.
세붐의 충성도가 급상승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인 것이다.
“너도 수고 많았다. 이제 원수도 갚았으니 동생 일은 그만 잊고 마음 편하게 살아라.”
“앞으로의 삶은 주인님을 위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말도 아주 기특하게 하고 있었다.
“좋아. 기대하겠다. 네 부하들에게도 고생많았다고 전해라.”
“예, 주인님.”
곧바로 안전 지대 보호막 밖으로 나가니 엘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 돌아왔구나, 강재윤. 오크 로드 놈을 죽였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르티아의 표정은 로사엔과 비슷했다.
그는 오크들이 모두 죽어 기뻐함과 동시에 그간 죽어간 엘프들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있었다.
“정말 고맙다, 강재윤. 그대는 세마르 숲 엘프들의 영원한 은인이다. 앞으로 나와 세마르 숲 모든 엘프들은 그대의 일이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도울 것이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르티아, 당신이 원한다면 엘프들이 안전 지대로 들어와서 지내게 해주겠다.”
이번에 새로 안전 지대들을 확보해 수용 인원이 늘어났다.
엘프들이 들어오면 안전 지대를 방어하는데도 매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르티아는 씩 웃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배려는 고맙지만 우리 엘프들은 인간처럼 건물에서 지내는 건 매우 불편해서 말이야. 지금 우리가 있는 곳도 여기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안전하다.”
하긴 짙은 안개로 인해 엘프들이 아니면 그곳을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제든 위협적인 상황이 오면 이쪽으로 와서 도움을 구해라. 수용 인원의 여유가 있으면 보호막 안으로 들여보내주겠다. 내가 없어도 관리자가 그렇게 배려해줄 테니 부담갖지마라.”
“그러지. 그럼 이만 우린 가보겠다, 강재윤. 그대의 곁에 우리 세마르 숲의 엘프들이 있음을 잊지마라.”
르티아는 그렇게 말한 후 엘프들과 함께 그들의 숲으로 돌아갔다.
* * *
잠시 후 재윤은 기적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의 거처는 기적의 아파트 1401호.
예전 오재석이 며칠 동안 사용하던 집이었지만, 지금은 재윤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다른 집들보다 내부 시설이 가장 훌륭하게 갖춰져 있어 이경수가 추천한 곳이었다.
샤워를 한 후 침대에 앉아 아공간에서 아까 테네르에게 받은 황금 나침반을 꺼내 살펴봤다.
보통의 나침반과 달리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궁극적으로는 일치한다고 했으니 어쨌든 가보면 머지않아 부모님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부터는 멀리 탐색을 나가려고 했는데 잘됐다.’
당분간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 이동해볼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재윤은 곧바로 이민철 등을 불러 자신의 뜻을 밝혔다.
“이제 저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때로는 며칠 이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동안 이곳을 잘 부탁합니다.”
이민철 등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동안 재윤이 몇 번이고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염려마라, 재윤아. 어떤 놈들이 와도 잘 지켜낼 테니까.”
재윤은 미소 지었다.
든든한 탱커인 이민철이 없다면 안전 지대를 두고 쉽게 떠나기 힘들 것이다.
그가 있어 재윤은 안심할 수 있었다.
“돌아다니며 쓸만한 사냥터를 발견하면 바로 알려줄 테니 다들 그동안은 잠시라도 쉬고 있어요. 민철이 형도, 어머니와 함께 좋은 시간 보내.”
“물론이다. 그건 염려마라.”
사실 이민철은 다른 이유를 떠나 어머니 김미숙이 있어 더더욱 재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직 그녀는 오크들의 감옥에 갇혔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일단 어머니를 안정시킨 후 아버지를 찾아나설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
재윤이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주면 그는 매일 각성자들과 함께 파티 사냥을 통해 레벨을 올릴 것이다.
* * *
재윤은 이경수가 추천한 비각성자들 셋을 새로운 안전 지대의 관리자들로 각각 임명했다.
그 중에는 한혜미의 오빠인 한지성도 있었다.
한혜미는 이미 능숙한 관리자인 만큼 그녀의 오빠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동안 안전 지대의 중요한 일을 처리한 후 곧바로 재윤은 엘프 로사엔과 고블린 세붐만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로사엔은 숲이 있는 한 괴물들을 가장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세붐은 이제 오크 지휘관 두 놈도 상대할 만큼 강해졌으니 강적을 만나도 든든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일을 잊지 않았다.
어제 흑요정의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극 능력 강화석 1개.
이걸로 극 전투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극 전투 능력】 질풍의 화살(Lv1), 광혈의 의지(Lv1), 검기파(Lv1), 질풍 이동(Lv1)
이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극 능력 강화석이 많다면 어차피 다 올리면 되니 고민할 게 없지만 하나 뿐이니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다.
‘검기파로 하자.’
일단은 공격 능력을 올리는 게 최선!
광혈의 의지도 올리면 무적 지속 시간이 늘겠지만, 재사용 시간이 너무 길어서 큰 체감을 못 느낄 것이다.
그러나 검기파는 2분에 한 번씩 펼칠 수 있다.
질풍의 화살이 10초만에 주는 데미지를 단 번에 줄 수 있으니, 사실상 재윤이 가진 최강의 필살기는 검기파라 할 수 있었다.
[11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극 능력 강화석 1개가 소모되었습니다.]
[검기파가 Lv2가 되었습니다.]
* 검기파(Lv2)
-분류 : 극 전투 능력
-설명 : 파투스의 힘으로 검기를 생성해 날려보낸다.
-효과 : 대상에게 <2000 + 모든 스탯의 2000%>만큼 피해를 준다.
-유효 거리 : 30m
-파투스 2 소모
-재사용 대기 시간 : 110초
역시나 강화 효과가 상상을 초월했다.
데미지가 대폭 상승!
1단계에 비하면 2배의 데미지였다.
또한 유효 거리가 늘고 재사용 시간도 줄었다.
특히나 오크 로드의 공간 망토 효과로 이제 검기파는 40미터 밖에서도 날릴 수 있게 됐다.
‘공연히 극 전투 능력이 아니구나.’
그러나 재윤은 자만할 수 없었다.
흑요정의 시험에서 그가 사력을 다해 해치웠던 히드라 보스!
이 괴상한 세계에는 그보다 강한 녀석들이 수두룩하다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