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연결 (2)
‘연결?’
뜻밖의 알림에 재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두 안전 지대가 어떻게 연결됐다는 것일까?
[안전 지대가 연결되어 안전 지대간 교류가 가능합니다.]
[각 안전 지대에 등록된 거주자들은 연결된 안전 지대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나?’
이거야 당연히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성자들이 양쪽 안전 지대에 모두 등록이 되어 있거나, 관리자가 매번 거주자 등록을 해줘야만 출입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연결이 된 이상 둘 중 한쪽에만 등록해두면 된다.
그런데 연결이 되어 생겨난 이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안전 지대가 연결되어 관리자 통신이 개방되었습니다.]
[이후 각 안전 지대 내에서 관리자들은 서로 통신이 가능합니다.]
[또한 소유자는 어디서든 관리자들과 통신이 가능합니다.]
그 순간 재윤의 귀에 알림처럼 들려오는 음성.
《 형님, 저 경수입니다. 》
놀랍게도 안전 지대 기적의 관리자 경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 설마 안전 지대 혜미의 주인도 되신 건가요? 방금 전 그곳과 이곳이 연결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통신 가능 대상이 떠서 바로 연락드립니다. 》
그러고 보니 통신 가능 대상이라는 것이 새로 생겨났다.
【통신 가능 대상】
-기적 관리자 이경수
-혜미 관리자 한혜미
여기서 이름 부분을 터치하며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말이 들리는 식이었다.
덕분에 재윤으로서는 이곳 혜미에서도 기적의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연락 잘했다. 그 쪽에 무슨 특별한 일은 없어? 》
《 잠시 후 보급 창고가 완공되는 것 빼고는 별 일 없습니다. 》
《 오크들의 협박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 》
재윤은 혜미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준 후 주의 사항을 당부했다.
《 무슨 일 있으면 즉각 연락하고. 》
《 예, 형님. 》
이로써 앞으로 안전 지대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즉각 다른 안전 지대로 도움 요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혜미와 이경수도 마치 전화를 하듯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 참, 양쪽 안전 지대를 잇는 지하 보도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
《 지하 보도? 》
《 설명 창에 나와 있습니다. 》
재윤은 장황하게 늘어진 연결 관리 설명창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지하 보도 건설]
-연결된 안전 지대간 지하 보도를 건설할 수 있다.
-이 지하 보도로는 괴물이 침투하지 않아 안전하게 이동이 가능하다.
-안전지대에 등록된 거주자들만 이용 가능.
-제한 조건 : 연결된 안전 지대 중 한 곳 이상 2단계(★) 달성
-비용 : 500코인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그러나 재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본래 세상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이런 거야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닐 테니까.
‘그래도 황당하긴 하네.’
그리고 설명 창을 살펴보니 이후 안전 지대들의 단계가 높아지면 추가로 건설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것들이 뭔지는 단계를 높여보면 알게 될 것이다.
《 형님, 지하 도로가 건설되면 왕복이 많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하면 인원 투입도 가능하고요. 》
이경수의 음성은 매우 들떠 있었다.
《 이런 건 당연히 만들어야지. 》
《 그런데 이쪽은 지금 재정 코인이 부족합니다. 》
《 여기서 만들 테니 염려마라. 》
《 알겠습니다, 형님. 》
한편 한혜미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는 경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사이 그녀 또한 빠르게 설명 창을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옆에서 재윤이 이경수와 대화를 하는 것도 들은 터라 호기심에 두 눈이 빛났다.
“지금 재정으로는 지하 보도 건설이 어렵습니다. 환상 전투 승리로 300코인의 보상이 들어왔지만 아직 438코인 뿐이라서요.”
“부족한 건 내가 넣어주면 돼.”
재윤 또한 대략 관리창을 훑어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전 지대 혜미】
-등급 : 1단계(★★)
-소유자 : 강재윤
-관리자 : 한혜미
-수용인원 : 7/10
-재정 : 438코인 [입금][출금]
-고정 일일 임무 : 1개
-방어 전투 개시 26일 17시간 48분 전
【재정 수입 요인】
-안전 지대 1단계(★★) : 매일 20코인 증가
-상부상조(Lv1) : 매일 4코인 증가
-고정 일일 임무 : 1회 수행시마다 2코인 증가
【현물 수입 요인】
-매일 일일 임무 5회 완료시 : 파투스 물약 1병
【수용 인원 세부 사항 7/10】
-관리자 1
-전투 능력 각성자 3
-제작 능력 각성자 1
-비각성자 2
【안전 지대 고유 특성】
-상부상조(Lv1) [비각성자 2명 : 1일 4코인 재정 적립, 희귀 이상 아이템 획득 확률 0.2% 증가]
혜미에도 기적과 마찬가지로 비각성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상부상조(Lv1)라는 고유 특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엔 기적에는 없는 현물 수입 요인이라는 것이 보였다.
‘매일 일일 임무를 5회 이상 완료하면 파투스 물약이 들어온다고?’
개인적으로 파투스 물약 보상을 받는 것과 별도로 혜미의 창고에 파투스 물약 1병이 들어온다는 뜻.
그러나 이 요인이 충족되려면 이곳에 파투스 물약 일일 임무를 하는 전투 능력 각성자가 최소 5명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에는 재윤을 포함해 4명뿐이라 단 한 번도 이 요인이 충족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안전 지대가 연결된 이상 기적에 있는 각성자들도 이곳에서 일일 임무를 하는게 가능해졌으니까.
‘전투 능력 각성자들에게 이쪽 일일 임무는 필수로 지정해 둬야겠군.’
각성자들에게 임무를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 노력은 해줘야 한다.
이조차도 하지 않고 안전 지대에서 비각성자들처럼 숨어지내려는 각성자가 있다면 추방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지하 보도 건설부터 하고.’
재윤은 즉각 62코인을 혜미의 재정에 입금했다.
“이제 지하 보도를 건설해봐.”
“네.”
재윤의 지시가 떨어지자 한혜미는 즉각 관리자의 권한으로 지하 보도 건설 커맨드를 발동시켰다.
[안전 지대 혜미와 기적을 잇는 지하 보도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하 보도 건설 중 : 24시간 소요]
이 또한 보급 창고처럼 하루의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지하 보도만 완성되면 각성자들 뿐 아니라 비각성자들도 혜미와 기적을 매우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저, 그런데 이제 이곳 관리는 누가 하나요? 제가 기적으로 가게 되면 관리자가 비게 될 텐데요.”
한혜미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재윤 역시 그것을 고심 중이었다.
그가 이곳의 소유자가 된 이상 관리자는 언제든 교체가 가능했다.
그러나 각성자 중에서 관리자를 임명할 수는 없었다.
특히 전투 능력 각성자는 수시로 밖에 나가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리거나 방어 전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작 능력 각성자도 가능하면 제작 하나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안전 지대 관리자는 비각성자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
많은 이들의 안전과 생명이 걸려 있는 임무이다 보니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야 하고, 특히 괴물의 협박을 당해도 굴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했다.
‘혜미가 생각보다 잘해주었어.’
그녀를 그저 19살의 미성년자이자 어린 소녀로만 볼 것이 아니었다.
고블린 세붐의 협박에 맞섰던 용기는 각성자들이라고 해도 쉽게 낼 수 없는 것이니까.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앞으로도 관리자로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내가 볼 때 이곳의 관리자로는 아직까지 혜미 너만한 적임자가 없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관리자를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저를?”
“넌 이번에 고블린 세붐의 협박에 당당히 맞섰으니까. 그 정도 용기는 웬만한 어른들이나 각성자들이라고 해도 내기 쉽지 않아. 너라면 충분히 관리자로서의 소질이 있다.”
한혜미는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져 있었다.
설마 재윤이 그렇게 자신을 인정해줄지는 몰랐던 것이다.
재윤이 미소 지었다.
“조만간 널 도와줄 보조 관리자도 임명해줄 생각이야. 그러면 교대로 관리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 기적에서 출퇴근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설명 창을 읽어보니 안전 지대 관리자와 함께 관리 임무를 수행할 보조 관리자를 추가로 임명할 수 있다고 했다.
관리자가 로봇이 아닌 이상 밤에는 잠도 자야하고, 때로 휴식도 취해야 한다.
종일 관리 창만 보면서 지내다보면 과로로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윤은 이번에 기적에 가게 되면 이경수를 보조해줄 관리자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물론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강요하지는 않겠다.”
“하겠어요.”
“그냥 하는 말이라면 안 해도 돼.”
“아니, 진심이에요. 솔직히 무섭기도 하지만 사명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이 관리자로서의 삶이 왠지 저의 운명처럼 느껴져요.”
“운명이라고?”
“네. 운명이요.”
한혜미의 눈빛이 강렬히 빛났다.
재윤은 고개를 돌려 한태진과 이정숙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이 순해 보여도 아주 독한 구석이 있네.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말려.”
“공부도 아주 잘했어요. 전교 1등도 하고. 이제 그런 건 별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됐지만.”
그들도 동의한다는 뜻.
곧바로 재윤은 한혜미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잘해보자.”
“네, 열심히 하겠어요.”
한혜미는 밝게 미소 지었다.
* * *
잠시 후.
재윤은 이정숙이 차려준 아침을 든든히 먹고 잠시 이민철 등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아직 이민철 등이 환상 전투 사망 후유증으로 전투력 저하 상태에 있는 터라 그들은 오늘 저녁까지 안전 지대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래서 재윤은 혼자서 안전 지대를 나섰다.
그 사이 무기는 이정숙이 말끔하게 수리해주었지만, 재윤은 다른 무기들도 몇 자루 더 아공간에 챙겨넣었다.
날렵한 크로거 쇠막대의 내구도가 떨어지면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수리 가루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잔혹의 팔찌 덕분에 30의 데미지가 추가되니 파투스 무기이기만 하면 일반 등급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주인님, 나오셨습니까?”
재윤이 보호막 밖으로 나오자마자 고블린 세붐이 달려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오우거와 다른 고블린들은 재윤을 보자 납작 엎드렸다.
“저 녀석들과 함께 날 따라와라.”
“예, 주인님.”
오우거와 고블린들도 전투력 저하 상태에 있는 건 마찬가지.
무턱대고 밖에서 대기시키면 회복이 느려질 것이다.
그렇다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안전 지대 인근의 건물을 활용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건물은 좀비들의 소굴이었던 3층 고급 저택.
여전히 좀비들이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고블린들의 전투력이 좀비들보다 뛰어나다보니 신경쓸 것 없었다.
특히 세붐이나 오우거 거무즈에게 있어서는 좀비들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앞으로 너희들은 여기서 지낸다. 조를 편성해 안전 지대 주위를 정찰하며 오크들이 나타나는지를 계속 주시해라.”
“예, 주인님.”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세붐은 재윤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이곳으로 이동시켰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이 저택은 이제 고블린 부대가 머물 병영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날 이 지도의 그림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재윤은 봉인된 보물 상자에서 얻은 미지의 유적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예, 저를 따라오십시오, 주인님.”
세붐은 본래부터 보스급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터라 전투력 저하 상태라 해도 그리 약하지 않다.
다른 녀석들보다 회복도 빠른지 벌써부터 생생해 보였다.
‘내일부터는 이런 보물을 찾아갈 만한 여유가 없어. 오늘 중으로 끝내자.’
재윤이 오크들과의 전투에 대비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이민철을 비롯한 각성자들의 레벨을 올리는 일이었다.
안전 지대가 위협을 당하면 재윤이 없이도 다른 각성자들이 알아서 방어를 해낼 능력 정도는 갖추어야 할 테니까.
“주인님, 전방에 오크 놈들입니다.”
그렇게 세붐을 따라 이동한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세붐이 돌연 전방의 안개를 노려보며 말했다.
“오크라고?”
“예, 모두 일곱입니다. 정찰병들 같은데 지휘관 급은 없습니다.”
재윤도 전방에 뭔가가 있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오크들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그런데 세붐은 고블린 보스 특유의 감각으로 그것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몇 마리나 있는지는 물론이고 놈들의 전투력도 정확히 파악했다.
‘여러모로 쓸만한 녀석이네.’
일단 재윤은 세붐과 파티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알아봤다.
[괴물 노예는 경험치를 통한 성장은 불가능하지만 주인과 파티를 맺을 수 있습니다.]
[파티 전투 시 괴물 노예가 얻은 경험치 중 일부만 주인이 획득하게 됩니다.]
[다른 파티원들이 있다 해도 주인 이외에는 괴물 노예가 얻은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저 녀석이 괴물을 해치우면 경험치의 일부를 내가 얻는다는 얘기군.’
재윤으로서는 반가운 얘기다.
비록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어디인가?
노예가 획득한 경험치를 주인이 가진다는 뜻이니까.
재윤은 일단 세붐과 파티를 맺었다.
그러나 괴물이 많아서 혼자서 다 죽이기 힘들 때가 아니라면 세붐을 몰이꾼으로 쓰기로 했다.
직접 죽여야 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할 테니까.
“오크들을 겁줘서 내가 있는 쪽으로 몰아와. 죽이지는 말고.”
세붐은 재윤이 왜 이런 명령을 내리는지 이상했지만, 그가 괴물을 죽여야 강해지는 몸이라는 걸 기억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크 놈들은 똥고집같은 자존심이 있어서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웬만해선 도망같은 건 치지 않습니다. 팔다리가 잘리고 눈알이 터져나가도 덤벼드는 놈들이죠. 그래서 가서 놈들을 약올린 후 유인해 오겠습니다.”
“편한대로 해.”
그러자 세붐은 바람처럼 달려가 오크들 중 한 놈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재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자 그 뒤를 오크들이 악을 쓰며 우르르 쫓아왔다.
“쿠아악!”
“쿠악!”
세붐을 쫓아오는 7마리의 괴물들.
평균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체구로 전신은 근육질이었다.
‘저놈들이 오크?’
곰과 늑대를 합쳐놓은 듯한 흉악한 얼굴에 몸체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다.
상체에는 단단해보이는 갈색빛의 가죽 상갑을 입었고, 양손에는 도끼와 방패를 각각 쥐고 있었다.
인간뿐 아니라 크로거나 고블린도 잡아먹는다더니 확실히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물론 그래봤자 재윤에게는 경험치 덩어리에 불과할 뿐.
오크들과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놈들에 대한 지식도 획득해 둘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