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응징하다 (2)
“제발 부탁입니다! 저를 당신의 노예로 받아주세요!”
재윤은 잠시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물론 세붐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노예 시스템이 뭔지 궁금했을 뿐이다.
별거 아니면 바로 죽여버린 후 절반의 보상을 마저 받으면 될 테니까.
“정말 노예로 받아주시는 겁니까?”
세붐이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그래.”
재윤이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잔혹의 고블린 세붐이 당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에 이어 알림이 무더기로 들려왔다.
[500코인을 얻었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잔혹의 보물 상자를 얻었습니다.]
[고블린에 대한 지식이 A급에서 S급으로 상승합니다.]
[당신의 민첩이 영구적으로 3 증가합니다.]
‘절반의 보상을 받는다더니 정말이었군.’
덕분에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본래 얻어야 할 경험치의 절반뿐이라 그럴 것이다.
그래도 보물 상자는 들어왔다.
또한 S등급 지식을 획득했고, 덕분에 민첩이 3 올랐다.
* 고블린
-획득 지식 등급 : S
-고블린에게 주는 피해 50% 증가
-고블린 처치 시 아이템 획득 확률 대폭 증가
-고블린의 전술 파악 3단계(MAX)
-고블린의 약점 파악 3단계(MAX)
-민첩 +3
이로써 민첩 스탯은 20.
스탯만으로 따지면 방금 전 레벨이 3단계 오른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노예】 세붐
* 노예 세붐
-주인 : 강재윤
-종족 : 고블린
-복종심 : 58/100
-충성도 : 1단계
-특수능력 : 죽음 칼날, 일검파, 대지의 가호
-권속 : 고블린 42, 오우거 1
그 사이 상태창에는 노예 관련 목록이 새로 생겨났다.
아래에는 그에 대한 설명도 보였고, 알림도 들려왔다.
[노예와 그 권속들은 주인에게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종심이 낮은 노예는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채찍질을 해서라도 복종심을 80 이상으로 유지하십시오.]
[단, 노예를 학대하면 충성도가 쉽게 오르지 않습니다.]
[충성도의 단계가 높아지면 노예와 그 권속들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의 부하들도 내 노예가 된 건가?’
재윤은 왠지 황당했지만 괴물 노예들이 44마리나 생긴 것은 틀림없었다.
‘과연 어느 정도 통제가 되느냐가 문제인데.’
일단 설명 창에 의하면 노예나 권속들이 재윤을 향해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설령 복종심이 0 이 된다고 해도 노예는 주인을 공격할 수 없었다.
다만 통제가 잘 되려면 복종심이 높아야 한다고 했다.
복종심이 낮을 경우 명령을 해도 잘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충성도까지는 바랄 것 없고, 복종심을 높여 완벽하게 통제만 된다면?’
그것은 재윤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괴물 노예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른 괴물들을 사냥하는데 활용할 수도 있고, 안전 지대를 방어하는 병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복종심을 100으로 만들어두는 게 좋겠지.’
시키는 것만 무조건 따라주면 된다.
충성도 단계가 오르면 능력이 상승한다지만, 그거야 철저히 복종한 뒤의 얘기일 것이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때 세붐이 재윤의 눈치를 보며 비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재윤은 차갑게 그를 노려봤다.
“넌 노예로서 자격미달이다. 충성도야 그렇다 치고 복종심이 고작 58밖에 안 되는 놈이 지금 살겠다는 거냐?”
“예?”
세붐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복종심이 몇인지 알지 못한다.
부하들의 복종심은 볼 수 있지만 말이다.
또한 재윤과 달리 충성도라는 개념은 알지 못했다.
그가 부하들에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복종심뿐.
58이면 정말 낮긴 했다.
그라도 부하 중에 그런 복종심을 가진 녀석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내 노예가 되려면 무조건 복종심이 100이어야 한다. 그만한 복종심도 없는 노예를 둘 바에는 그냥 죽이고 보상이나 챙기는 게 낫겠지.”
“잠깐만! 시간을 주십시오, 주인님! 복종심을 어떻게든 올려보겠습니다.”
세붐은 간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노예가 되었으니 이제 죽지는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복종심이 부족해서 죽게 생겼다.
그것도 재윤은 절대 복종심이라 할 수 있는 100을 요구하고 있었다.
‘내 부하들 중 제일 복종심이 뛰어난 오우거 놈도 94인데.’
나머지 고블린 병사들은 대체로 80후반에서 90초반이였고, 100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죽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제발! 주인님께 복종을! 복종하자. 주인님께 복종을······!’
그는 미친 듯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윤에게 곧바로 알림이 떴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6 올랐습니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5 올랐습니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3 올랐습니다.]
그렇게 잠시가 지나자 세붐의 복종심은 82까지 올랐다.
재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일단 안전 복종심이라 할 수 있는 80은 넘겼네.’
복종심을 높이는 데는 협박이 제법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만약 충성도의 단계가 높았다면 이때 하락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차피 1단계니 더 떨어질 것도 없었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1 올랐습니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1 올랐습니다.]
그 사이에도 세붐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재윤에 대한 복종심을 높였다.
“으으! 더 이상은!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요, 주인님.”
세붐은 재윤의 눈치를 봤다.
이쯤 되면 복종심이 100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재윤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84다.”
세붐은 절망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늘 중으로 90까지는 어떻게든 올려보겠습니다. 제발 조금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고작 90?”
“아무리 생각해도 100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연 그럴까?”
재윤은 아공간에서 혈액 채취 도구를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고블린 사체 2마리의 피를 뽑았다.
[고블린의 피(희귀) 1병을 얻었습니다.]
[고블린의 피(희귀) 1병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본 세붐이 몸을 떨었다.
“으······.”
그도 자칫하면 저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냥 쇠막대에 맞아죽는 것보다 더한 공포를 주었다.
“난 널 죽이면 경험치와 보물 뿐 아니라 제법 쓸만한 등급의 피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이런 걸 포기하는 대가로 노예로 받아주는데 그만한 복종심도 가지지 못하겠다는 건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
“너같은 놈은 그냥 죽여서 피나 뽑는 게 최선이다.”
재윤이 혈액 채취 도구를 들고 다가오자 세붐은 기겁했다.
“자, 잠깐만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위기 의식을 느끼자 그의 생존 본능이 극한까지 불타올랐다.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16 올랐습니다.]
[100/100]
[노예 세붐의 복종심이 절대치인 100을 달성했습니다.]
[세붐은 당신의 어떤 명령도 몸을 바쳐 수행할 것입니다.]
그 상황에 재윤도 놀랐다.
사실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늘 중으로 90 정도만 넘겨도 일단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단번에 100까지 오를 줄이야.
절대 복종심!
그것은 재윤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한다는 뜻이었다.
* * *
잠시 후 고블린 세붐의 소굴.
본래 세붐이 앉아야 할 두목 의자에 재윤이 앉아 있었고, 그의 앞쪽으로 세붐을 포함한 43마리의 고블린과 오우거 1마리가 오와 열을 맞춰 납작 엎드려 있었다.
재윤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다.
“이제 너에게 몇 가지 물어보겠다, 세붐.”
“뭐든 물어보십시오, 주인님. 제가 아는 것이라면 다 대답하겠습니다.”
“일단 너는 어디서 왔지?”
그러자 세붐은 즉시 대답했다.
“저는 본래부터 이 동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살고 있었다고?”
“예, 제가 있던 곳은 제칼드 대륙이라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동굴 안에 있는 놈들은 본래부터 제 부하들이었습니다. 오우거 거무즈 녀석은 새끼 때부터 제가 키워 저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죠.”
“제칼드 대륙이 어디에 있는데?”
“저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이 동굴을 제외한 모든 환경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재윤과 비슷했다.
건물 주변에 낯선 숲이 생겨나고 다른 세상처럼 변해버렸으니까.
“그리고 저에게는 없던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부하들의 복종심이 숫자로 보이기도 하고, 죽음 칼날 같은 강한 능력도 펼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안전 지대에 환상전투를 걸거나 환상으로 협박을 한다거나 하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괴상한 능력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세붐도 각성을 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너도 괴물들을 죽이면 레벨이 오르겠군.”
“레벨이 오른다는 게 뭡니까?”
“괴물을 죽이면 경험치를 얻어서 끝없이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러자 세붐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런 건 전혀 없는데요? 설마 인간들은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신기하군요.”
각성을 했지만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얘기였다.
능력이 고정되어 있는 대신 막강한 힘을 처음부터 부여받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럼 안전 지대 혜미를 공격한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지식 중에는 안전 지대를 소유한 후 잘 지켜나가기만 하면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세붐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동굴은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동안 오크 놈들의 습격을 두 번이나 받았으니까요.”
“오크라고?”
“그놈들은 꽤 무서운 놈들입니다. 강한 놈들도 많고요. 이미 안전 지대를 꽤 많이 확보한 것 같았습니다.”
“오크들이 안전 지대를 확보해?”
“그놈들이라고 무적은 아니니까요. 저희 고블린들처럼 그놈들도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는 것이겠죠. 몇 번 정찰을 가봤는데 그놈들이 인간들과 크로거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재윤의 표정이 굳었다.
말로만 듣던 오크들까지 나타났다.
게다가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니.
“거기 인간들이 몇 명이나 있었지?”
“제가 본 곳에만 수십 명도 넘었습니다. 아마 다른 곳까지 합치면 꽤나 많을 겁니다. 물론 말이 노예지 어차피 머지않아 오크들의 식량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놈들은 그저 싱싱한 고기를 먹기 위해 살려두고 있는 것 뿐이라서.”
싱싱한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고?
‘젠장!’
하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재윤은 크로거들에게 사람들이 잔인하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본 적도 있으니까.
오크들도 그런 괴물들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저 역시 오크 놈들로부터 저와 부하들을 지킬 안전 지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복수를 하려고 했죠.”
“복수?”
“그놈들이 제 동생을 잡아먹었습니다. 저는 오크 놈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이 괴상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오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인간들 뿐 아니라 괴물들도 이 괴상하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 얼마나 되는 괴물들이 이 괴상하게 변한 지구로 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다.
강자생존!
인간이건 괴물이건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이들만 살아남으리라는 것!
인간들이 괴물들을 모두 누를만큼 강해지지 못한다면 그것들에게 모조리 죽거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미 그런 비참한 상태가 되어버린 이들이 다수이겠지만.
‘어쨌든 이제 오크들과의 전투에 대비해야겠군.’
어차피 싸우기 싫어도 오크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세붐의 말대로라면 오크들이 조만간 재윤이 있는 안전 지대도 노릴 테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전 지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물론 재윤은 단순히 방어만 할 생각이 아니었다.
오크들을 다 죽이고 그놈들이 확보했다는 안전 지대를 빼앗을 것이다.
‘서둘러야 해. 혹시라도 두 분이 그곳에 갇혀계실지 모르니까.’
만약 오크들이 식량으로 비축해둔 인간 노예들 중에 부모님이 포함되어 있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오크들에게 쳐들어가는 건 무모한 일.
철저히 준비하고 승산을 높여 전투를 벌여야한다.
재윤은 세붐과 그의 부하들을 오크들과 싸우는데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참, 네가 말한 보물 상자는 어딨지?”
세붐은 재윤에게 특별한 자격을 갖춘 자만이 열 수 있다는 보물 상자가 있는 위치를 알고 있다고 했었다.
“그건 제가 열 수 없어서 동굴 안쪽에 숨겨뒀습니다. 명령하시면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당장 가져 와.”
“예, 주인님.”
재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붐이 동굴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재윤은 아까 세붐을 노예로 거두며 얻은 잔혹의 보물 상자를 열어봤다.
[250코인을 얻었습니다.]
[능력 강화석 1개를 얻었습니다.]
[잔혹의 팔찌(영웅)를 얻었습니다.]
* 잔혹의 팔찌
-등급 : 영웅(★★★)
-분류 : 파투스 장비
-내구도 140/140
-장착 효과 : 파투스 무기 기본 공격력 + 30
-부가 효과 : 아공간 인벤토리 +1
-장착 제한 : Lv20
‘오! 이건?’
양손목 중 한 곳에 장착할 수 있는 팔찌가 나왔다.
무기 기본 공격력이 30 늘어나는 놀라운 효과!
이 팔찌만 차면 기본 공격력 1짜리 일반 장비를 쥐어도 31의 공격력을 낼 수 있다는 뜻.
게다가 아공간도 한 칸 증가했다.
“주인님, 상자 가져왔습니다.”
그때 세붐이 커다란 황금빛 보물 상자 하나를 들고 와 재윤 앞에 내려 놓았다.
[봉인된 보물 상자]
-봉인을 해제하면 상자를 열 수 있다.
-봉인 해제 조건 Lv21
‘이래서 세붐이 열지 못했군.’
재윤과 달리 세붐에게는 레벨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자는 레벨 21을 달성한 각성자만 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상자의 봉인을 해제할 자격을 갖췄습니다.]
[봉인이 해제됩니다.]
곧바로 상자의 덮개가 열리며 그 안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