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환상 전투 (1)
[각성자 이민철이 당신을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수락하겠습니까?]
“예.”
재윤은 즉시 수락했다.
[각성자 이민철의 파티]
-파티장 : 이민철(Lv15)
-파티원 : 박은빛(Lv9)
-파티원 : 윤현성(Lv10)
-파티원 : 강재윤(Lv22)
재윤이 파티에 가입하는 순간 이민철 등은 두 눈을 부릅떴다.
“오오! 너 레벨이 22냐?”
“세상에!”
“대박!”
상위 레벨로 오를수록 레벨업은 무척 힘들다.
그것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상식 중의 상식.
이민철만 해도 Lv15부터는 레벨이 잘 오르지 않아 힘겨워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재윤이 불과 이틀만에 혼자서 3레벨을 올려 22가 되어 나타날 줄이야.
촥! 촤악! 촤촥―!
재윤은 크로거들을 가지고 놀았다.
크로거들이 우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도 그것들의 공격을 장난처럼 피하며 놈들의 약점을 공격했다.
“쿠아아악!”
“꾸어억!”
그 움직임이 너무 빨라 어떻게 칼을 휘두르는지 잘 볼 수도 없었다.
그냥 휙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크로거들의 몸에서 피가 튀었고, 그러다 그것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모습만 보일 뿐.
어느새 이민철의 주위에 몰려있던 크로거 10여 마리가 모두 쓰러졌다.
“우와아! 정말 대단하군요! 덕분에 지금 막 레벨 11 됐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윤현성이 재윤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방금 전 재윤 덕분에 크로거 토벌 임무(D)가 완료됐고, 그로인해 레벨이 오른 것이다.
박은빛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덕분에 렙업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재윤은 미소 지었다.
“고맙긴요. 파티원끼리 당연한 거죠.”
“아까 구해주신 것도 그렇고 벌써 여러 번 신세를 지네요. 무엇보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박은빛은 방금 전 재윤이 일부러 파티를 맺고 크로거들을 해치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녀와 이민철 등을 비롯한 파티원들에게 조금이나마 경험치를 먹게 하려는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재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크로거 토벌 임무를 수행 중이니까.
【크로거 토벌(B)】
-임무 수행 중 : 74/120
방금 전 녀석들까지 74마리.
이제 46마리만 더 죽이면 B급 토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능력 강화석은 확실히 나올 거라 기대 중이었다.
“으하하하! 재윤아! 살아와줘서 정말 고맙다!”
이민철이 달려와 재윤을 끌어안았다.
“윽! 왜 이래 형? 징그럽게.”
“흐흐흐, 네가 죽지 않았다고 혜미가 말하긴 했지만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안심이 안 되더라. 후!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 그때 나만 살겠다고 도망쳐서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야.”
“무슨 소리야? 그때 형이 그렇게 안했으면 그게 더 위험했어. 덕분에 나도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그놈은 어떻게 됐냐?”
“그 뒤로는 나도 못봤어.”
그렇지 않아도 재윤은 조만간 아르툼을 손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아르툼에게 쫓길 때에 비하면 전투력의 차원이 달라졌다.
특히 비슷한 보스 급의 괴물인 광혈의 흡혈귀 루나티쿠스를 해치운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다.
만나면 싸워볼만 할 것이다.
레벨 25가 되어 광혈검을 손에 쥔다면 승산이 더 높겠지만, 어차피 근접해서 공격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도 가능했다.
원거리에서 놈의 공격을 피하며 바람의 화살만 날리면 되니까.
‘참, 피 뽑아야지.’
크로거의 사체만 십수 마리.
그대로 내버려두면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재윤은 곧바로 혈액 채취 도구를 꺼냈다.
쭈우욱―
갑자기 커다란 주사기가 나타나 크로거의 피를 뽑아대자 이민철 등은 깜짝 놀랐다.
“그거 뭐냐?”
재윤은 미소 지었다.
“피 뽑는 생활 능력. 운이 좋았어.”
“우와, 대박이네!”
“오오! 대단합니다!”
“주사기가 알아서 기가 막히게 잘 뽑네요.”
이민철 등은 재윤이 피뽑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피를 뽑으며 재윤은 이민철을 향해 물었다.
“그보다 여긴 별일 없었어?”
“말도 마라. 여긴 하루가 지날 때마다 계속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슨 일인데?”
그러자 이민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커다란 좀비 한 놈이 안전 지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좀비?”
“키가 5미터도 넘어. 밤이 깊어지면 그놈이 땅밑에서 올라와 안전 지대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그놈 때문에 한밤중에는 안전 지대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해졌어.”
5미터가 넘는 좀비라면 이민철 등의 힘으로는 상대하기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야. 웬 괴상한 난쟁이 괴물 놈이 혜미를 협박하고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제부터 환상으로 나타났는데 안전 지대를 넘기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거야.”
생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안전 지대 관리자인 한혜미를 괴물이 협박하다니.
“꽤나 무서운 환상이라는데 혜미 그 녀석이 제법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여린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독한 구석이 있더라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그냥 버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맞아. 우리도 만일을 대비해 그저 최대한 레벨을 올리고 있다만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야.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됐네. 근데 넌 이틀 동안 어떻게 지냈냐?”
“계속 괴물들과 싸우며 지냈지. 그래도 좋은 일은 있어.”
“좋은 일?”
“가면서 얘기 할까? 일단 이놈들 피 좀 다 뽑고.”
“하하, 그래.”
* * *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둑한 공간.
한혜미는 그곳에 선 채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여기는? 아, 내가 또 이곳에?’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침착해. 이건 환상이야. 현실이 아니야.’
벌써 네 번째다.
꿈도 아니었다.
그냥 환상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갑자기 그녀에게 닥쳐오는 악몽같은 환상.
“크크크크!”
어둠 속에서 나타난 피부가 파란 난쟁이 괴물.
그것은 신장이 4미터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괴물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좋게 말할 때 안전 지대를 내게 넘겨라.”
난쟁이 괴물의 두 눈은 잿빛으로 차갑게 빛났다.
한혜미는 덜덜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어서 대답해. 그럼 너와 너의 가족들은 살려주마.”
“닥쳐, 이 괴물아! 저리 꺼져.”
한혜미가 울부짖듯 소리쳤다.
난쟁이 괴물이 키득거렸다.
“계속 버티면 너뿐 아니라 모조리 다 죽인다. 이놈의 먹잇감이 되어 으적으적 씹히게 될 것이다.”
“이건 어차피 환상일 뿐이야. 넌 날 어쩌지 못해.”
한혜미는 두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맞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알림까지 떴다.
[안전 지대 혜미의 모든 권한을 잔혹의 고블린 세붐에게 넘기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다. 절대. 네버.”
한혜미는 코웃음 쳤다.
그러자 난쟁이 괴물이 차갑게 웃었다.
“크크! 끝까지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니 어쩔 수 없지.”
그 순간 다시 들리는 알림.
[잔혹의 고블린 세붐이 300코인을 소모해 환상 전투를 걸어왔습니다.]
‘환상 전투?’
[당신은 300코인을 소모해 환상 전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안전 지대 혜미의 재정 코인 잔액이 부족합니다.]
[환상 전투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런!’
한혜미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러다 바로 깨어나니 그녀의 방안이었다.
그 즉시 들리는 알림.
[앞으로 2시간 후 잔혹의 고블린 세붐과의 환상 전투가 시작됩니다.]
[패배 시 안전 지대의 전기 공급량이 감소합니다.]
[패배 시 안전 지대의 수도 공급량이 감소합니다.]
[패배 시 각종 코인 획득량이 감소합니다.]
‘아아, 미쳤어.’
그냥 환상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버텼는데 이런 식으로 환상 전투라는 걸 걸어오면 어쩌라는 건지.
[패배 시 안전 지대의 파투스 회복력이 감소합니다.]
[패배 시 안전 지대의 지속 시간이 줄어들어 방어 전투가 앞당겨집니다.]
그 사이에도 알림은 계속되었다.
환상 전투에 패배하면 파투스 회복력도 감소하는데다, 방어 전투까지 앞당겨진다니!
‘어쩌지?’
큰일이었다.
2시간 후면 그녀는 고블린 세붐과 싸워야 한다.
전투 능력 각성자가 아닌 그녀로서는 괴물과 싸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분명 대응법이 있을 거야.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건 말이 안 돼.’
한혜미는 안전 지대 관리창의 장황한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이미 몇 번이고 읽었지만 상황에 따라 새로운 설명이 추가되곤 해서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강력한 적이 환상 전투를 걸어오면 코인을 소모해 거부하거나 그에 맞설 전투 능력 각성자들을 통해 환상 전투를 벌일 수 있습니다.]
[환상 전투에서는 패배해도 죽지 않지만, 패배시 안전 지대의 각종 능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거야.’
역시나 그 사이 이전에 없던 내용이 추가 되어 있었다.
환상 공격에 대한 대응법!
한혜미는 그걸 꼼꼼하게 읽어봤다.
환상 전투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환상 전투에 패배하면 안전 지대에 불리한 효과가 적용되지만, 승리하면 대량의 코인을 획득할 수 있으며, 심지어 괴물의 소굴이 있는 위치도 알게된다고 했다.
‘대응법은 알아냈지만, 민철 오빠랑 새로 오신 분들이 그 괴물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한혜미는 그것이 걱정되었다.
이틀이 넘게 복귀하지 않고 있는 재윤이 돌아온다면 모를까.
‘어? 저 분은?’
그러던 그녀는 이민철 등이 재윤과 함께 안전 지대로 들어오는 걸 보고는 안색이 밝아졌다.
* * *
재윤이 안전 지대로 돌아오자 한태진 가족은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한혜미가 괴물에게 환상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괴물이 환상 전투라는 걸 걸었다고?”
“잔혹의 고블린 세붐이라는 괴물이에요. 4미터도 넘는 커다란 괴물의 어깨에 앉아 있어요. 그 괴물의 몸은 온통 근육질이고 주먹은 마치 쇳덩이처럼 보였어요.”
재윤이 궁금해하자 한혜미는 알아낸 걸 모두 설명했다.
환상 전투에서는 현실의 장비가 그대로 적용되니 전투 시작 전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싸움을 걸어왔으면 싸워야지.”
패배해도 죽지 않는 환상 속의 전투라니!
‘별 괴상한 전투도 다 있군.’
어쨌든 절대 패배하면 안 된다.
그 경우 안전 지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기적에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안전 지대 기적의 관리자 이경수는 아직 환상 공격 같은 것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재윤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 오니 동맹이라는 게 뜨네.’
【안전 지대 동맹】
-동맹이 체결되면 각 안전 지대 소속 거주자들은 동맹 안전 지대 어디로든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재윤이 안전 지대 기적의 소유자로서 이곳 혜미에 들어오자 생겨난 메뉴였다.
그러나 이 얘긴 환상 전투를 끝내고 꺼내기로 했다.
“일단 무기부터 만들어야겠습니다.”
재윤은 이정숙에게 무기 제작을 부탁하며 크로거의 혈액 희귀 등급 10병을 건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귀한 재료를!”
“전투가 1시간 남짓 남은 것 같으니 그 전에 부탁합니다.”
“제작 레벨이 낮아 아까운 희귀 등급 재료를 날리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재료는 신경쓰지 마시고 날려도 좋으니 계속 시도해보세요.”
“알았어요. 그럼 최선을 다해볼게요.”
이정숙은 비장한 표정으로 그녀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한편 이민철 등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재윤아! 4미터도 넘는 괴물이라는데, 저번에 우리가 만났던 크로거 놈이랑 비슷한 전투력이 아닐까? 그 7미터도 넘은 큰 놈 말고 우리가 죽였던 놈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어.”
“뭐 짐작가는게 있냐?”
“혜미에게 들은대로라면 그 괴물이 오우거일 가능성이 있거든.”
“오우거?”
“틀림없어. 오우거일 거야.”
재윤은 오우거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은 덕분에 그것의 외모도 그림을 통해 알고 있었다.
오우거가 고블린의 부하라는 사실이 좀 의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 그 고블린이 오우거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재윤은 이민철에게 말했다.
“일단 난 일일 임무를 하고 올 테니 형은 잠시 쉬고 있어.”
“일일 임무?”
“보상으로 파투스 물약이 나오니 해둬야지.”
“하긴. 나도 그건 꼬박꼬박 하고 있다. 그래도 같이 가자. 쉬는 건 나중에 쉬면 돼.”
이민철뿐 아니라 박은빛과 윤현성도 재윤을 따라나왔다.
환상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괴물을 몇 마리라도 더 잡아 경험치를 얻겠다는 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