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능력 (2)
설명을 보니 1칸의 아공간 인벤토리에는 혈액병을 종류와 상관없이 최대 100병까지 보관할 수 있었다.
【혈액병 인벤토리 7/100】
-비어있는 혈액병 7
‘인벤토리 1칸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네.’
생명력 물약도 이런 식으로 보관이 가능하다면 매우 편리할 텐데 아쉽게도 혈액병 전용 인벤토리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괴물 피가 들은 병을 가방에 넣고 다니려면 꽤나 신경쓰일 텐데 말이야.’
혈액병은 대략 500ml 정도의 용량.
10병만 넘어가게 되어도 무게가 상당할 것이다.
무게도 무게지만 백팩에 그것들을 담을 공간도 부족했다.
그런데 무려 100병이나 아공간에 보관할 수 있게 되니 마음놓고 괴물의 피를 채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재윤은 붉은 피가 반쯤 들어있는 병을 쳐다봤다.
‘저 피는 뭐지?’
흡혈귀들이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피를 뽑아 담아둔 것 같았다.
왠지 사람의 피가 아닐까 찜찜하기도 했지만.
‘괴물의 피일 수도 있으니 일단 보관해둘까?’
그런데 그것은 재윤이 손으로 만지자 그대로 연기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얻을 수 없는 물건이었나.’
혈액을 얻고 싶으면 직접 작업을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재윤은 주사기를 다시 살펴봤다.
* 괴물 혈액 채취 도구
-분류 : 파투스 생활 장비
-괴물의 혈액을 채취할 수 있다.
-사용 제한 : 괴물 혈액 채취(Lv1)
-1회 채취시 소요 시간 : 60초
[괴물 혈액 채취 도구를 손에 쥐면 채취 가능한 대상이 녹색의 빛으로 반짝입니다.]
[대상에 다가가 시동어를 말하면 자동으로 채취가 시작되며, 인벤토리에 있는 빈병 중 하나에 혈액이 채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이 주사기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윤처럼 괴물 혈액 채취 능력을 습득해야만 쓸 수 있는 특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럼 저 흡혈귀의 피를 뽑아볼까?’
아직 5층에서 죽은 흡혈귀들의 사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재윤이 주사기를 드는 순간 흡혈귀들의 사체가 녹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사이 관련 능력에 대한 설명이 알림으로 들려왔다.
[괴물 혈액 채취를 많이 하면 능력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비어있는 혈액병은 흡혈귀를 사냥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빈병을 어디서 얻나 했더니.’
흡혈귀를 해치우면 드롭템으로 얻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혈액 채취를 많이 하려면 흡혈귀 사냥을 많이 해야하는 것이다.
[괴물 혈액 채취 레벨이 높을수록 상위 등급의 혈액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강한 괴물일수록, 당신의 괴물에 대한 지식 등급이 높을수록, 보다 상위 등급의 혈액을 채취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알림은 유심히 잘 들어두어야 한다.
또 듣고 싶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능력이 생기면 비교적 친절하게 딱 한 번은 알려주지만, 그 후로는 재윤이 아무리 물어봐도 응답이 없었으니까.
스윽.
재윤은 주사기를 들고 흡혈귀의 사체 근처로 갔다.
‘직접 주사기를 꽂아 피를 뽑을 필요 없이 시동어만 외치면 된다고 했어.’
시동어야 간단했다.
“괴물 혈액 채취!”
그러자 주사기가 그의 손을 빠져나가더니 흡혈귀의 사체에 바늘을 푹 꽂았다.
[혈액 채취를 시작합니다.]
[60초 소요됩니다.]
[채취 중 적의 공격을 받게 되면 채취가 중단됩니다.]
쭈우욱―
곧바로 주사기 관에 붉은 혈액이 쌓이는 모습이 보였다.
60초는 금방 지나갔다.
[혈액 채취가 끝났습니다.]
[흡혈귀의 피(일반) 1병을 얻었습니다.]
혈액병 인벤토리 창이 갱신되었다.
【혈액병 인벤토리 7/100】
-비어있는 혈액병 6
-흡혈귀의 피(일반) 1
주사기는 언제 피를 뽑았냐는 듯 말끔한 상태로 재윤의 손에 다시 들어와 있었다.
‘이거 편하네.’
생각보다 재윤이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다.
혈액을 뽑는 것은 물론이고 빈병에 채워지는 것도 다 자동으로 되기 때문이다.
스스스.
그 사이 흡혈귀는 그대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괴물 한 놈당 한 병씩만 피를 뽑을 수 있나 본데?’
재윤은 옆에 있는 다른 흡혈귀의 사체들을 향해 걸어갔다.
‘내친김에 다 뽑자.’
지금처럼 마음 놓고 혈액을 채취할 기회가 언제 또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일.
공연히 빈병을 아껴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빈병이야 흡혈귀들을 해치우면 또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흡혈귀의 피(일반) 1병을 얻었습니다.]
[흡혈귀의 피(희귀) 1병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5층에 있는 흡혈귀들의 피를 뽑은 후 2층으로 내려가 3병, 그리고 1층에서 마저 1병을 채우는 순간.
[괴물 혈액 채취(Lv1)의 레벨이 Lv2가 되었습니다.]
[혈액 채취 시간이 1초 감소합니다.]
생활 레벨은 코인이나 능력 강화석이 없이도 그냥 채취만 많이 하면 알아서 레벨이 오르는 방식이라 별 부담이 없었다.
【혈액병 인벤토리 7/100】
-흡혈귀의 피(일반) 6
-흡혈귀의 피(희귀) 1
아쉽지만 흡혈귀의 피 7병 중 6병이 일반 등급이었다.
‘그래도 희귀 등급 피를 한 병 구한 게 어디야.’
재윤은 뿌듯하게 웃으며 혈액 채취 도구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골프 스틱을 손에 쥐고 건물 밖을 노려봤다.
‘그나저나 다시 사냥을 시작할 시간이 온 것 같은데?’
도망친 흡혈귀들은 완전히 멀리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건물 바깥 숲의 암흑 사이로 번쩍이는 하얀 안광들.
그 안광들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놈들이 다른 곳에 있는 흡혈귀들을 이쪽으로 데려오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다면 섣불리 건물 밖으로 나가기보다 안에서 싸우는 게 유리할 것이다.
재윤은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3층에 있는 한 방.
이 방은 발코니가 없고 창문이 비좁아 방문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었다.
동시에 천장이 높아 골프 스틱을 휘두르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여기라면 한두 놈씩만 저 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
흡혈귀의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한 번에 한두 놈만 상대한다면 겁날 것이 없다.
이제 약점 파악도 가능한 터라 골프 스틱으로 두 번만 후려치면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크카아아!”
“키키킥!”
그 사이 예상대로 흡혈귀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재윤은 방문을 열어놓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덤벼라. 알아서 죽으러 와주니 나야 고맙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 흡혈귀 하나가 재윤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퍽―!
그러나 재윤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회전해 골프 스틱으로 놈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순간적으로 약점 포착!
그 즉시 해당 부위 강타 후 재가격!
퍽!
“끄아악!”
흡혈귀가 쓰러졌다.
[6코인을 얻었습니다.]
[비어있는 혈액병을 얻었습니다.]
아까와 달리 흡혈귀를 죽이자 코인뿐 아니라 빈병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나 빈병은 알아서 아공간 인벤토리에 들어가니 따로 줍거나 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크카카카!”
그 사이 다시 나타난 건장한 체격의 남자 흡혈귀가 재윤의 목을 조르려 했다.
그러나 재윤은 잽싸게 뒤로 빠지며 놈의 약점인 오른쪽 허리를 빠르게 연격했다.
퍽퍽!
이제는 굳이 머리로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크아아악!”
[7코인을 얻었습니다.]
[비어있는 혈액병을 얻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바닥으로 드롭되는 아이템 하나.
그것은 다름아닌 귀고리.
‘저건?’
재윤은 또 다른 흡혈귀가 들어오기 전에 재빨리 그것을 주워들었다.
[피묻은 어둠의 귀고리를 얻었습니다.]
* 피묻은 어둠의 귀고리
-등급 : 희귀(★★)
-분류 : 파투스 장신구
-내구도 26/26
-장착 효과 : 어둠 저항 4
-장착 제한 : Lv8
-착용 부위 : 귀
-세트 효과 : 5부위 장착 시 어둠 저항 +20, 지능 +5
그러고 보니 좀비들을 죽이고 얻었던 피묻은 어둠의 반지와 세트 아이템을 이루는 장신구였다.
세트 효과는 어둠 저항 20 증가도 훌륭하지만 지능 스탯이 5가 증가하는 것이야말로 대박이었다.
스탯 1포인트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아는 재윤이다.
5포인트를 올리려면 레벨을 5단계 올려야 가능한 것이다.
‘귀고리는 흡혈귀가 주는 거였나?’
어쨌든 이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전혀 기대도 안했던 세트 아이템 중 하나가 드롭되었으니까.
‘일단 장착.’
귀고리를 오른쪽 귀에 가져다대니 알아서 장착이 됐다.
[어둠 저항이 4 증가합니다.]
덕분에 어둠 속 시야거리가 더욱 늘어났다.
그것은 재윤이 전투에서 그만큼 유리해졌음을 의미했다.
‘귀고리 하나만 더 나와라. 목걸이도 나와주면 좋고.’
기왕이면 세트도 완성해 보자!
물론 왠지 목걸이는 흡혈귀가 아닌 다른 괴물이 드롭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잠시 기다려도 더 이상 흡혈귀들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흡혈귀들의 분노에 찬 거친 호흡 소리가 싹 사라졌다.
밖은 개미 새끼 하나도 없는 것처럼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설마 이 안에 들어온 두 녀석이 죽자 겁을 먹고 모두 달아난 것일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흡혈귀들이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아군까지 동원해 작정하고 몰려온 것을 보면 끝장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역시.’
순간 재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났다.
‘놈들은 지금 건물 안에 있다.’
조용히 숨 죽인채 재윤이 방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방안에서는 재윤을 쉽게 처치하기 힘들 것 같으니 밖으로 끌어낸 후 포위할 심산임이리라.
그러나 재윤은 당연히 방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당연했다.
그는 유리한 장소를 두고 불리한 곳으로 나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밖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잔머리 굴리지 말고 들어와라.”
재윤은 흡혈귀들을 도발했다.
“크카아아!”
그러자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흡혈귀 하나가 시뻘건 흉광을 번뜩이며 재윤의 앞에 나타났다.
퍽퍽!
물론 그 즉시 놈은 재윤의 골프 스틱에 맞아죽었다.
[6코인을 얻었습니다.]
[비어있는 혈액병을 얻었습니다.]
생활 능력을 얻은 이후부터는 흡혈귀들을 죽일 때마다 빈병이 따박따박 아공간 인벤토리에 쌓이고 있었다.
【혈액병 인벤토리 10/100】
-비어있는 혈액병 3
-흡혈귀의 피(일반) 6
-흡혈귀의 피(희귀) 1
‘피 뽑아야 하는데.’
근처에 흡혈귀의 사체들이 있지만 지금은 혈액 채취를 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그런 틈을 보였다가는 흡혈귀들의 공격에 당하고 말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채취하는 도중 공격을 받게 되면 중단된다고 했으니 전투 중에 피 뽑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스스.
그러다 보니 잠시가 지나자 흡혈귀의 사체들이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생활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은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전투에만 집중하자.’
그 이후로도 흡혈귀들은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려 이삼십 분 가까이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오기도 하고, 대여섯 마리가 연속으로 계속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재윤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방안에 들어간 흡혈귀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어느덧 밤이 지나고 아침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남아있던 흡혈귀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재윤을 노려보고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드디어 끝난 건가?’
재윤은 밤새도록 흡혈귀들과 싸웠고 결국 승리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녀석들이었어.’
그래도 덕분에 레벨이 올랐다.
레벨 19.
정신적으로는 좀 피곤하지만 체력적으로는 최상의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