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또 다른 생존자들 (1)
재윤이 안전 지대에 1000코인을 투자한 덕분에 일일 임무가 생겨나게 되었다.
【괴물 토벌(일일)】
-분류 : 고정 일일 임무, 매일 자정 갱신
-내용 : 안전 지대 주위를 배회하는 괴물 3마리 처치
-보상 : 최하급 파투스 회복 물약 1병
이 일일 임무는 안전 지대에 거주하는 전투 능력 각성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재윤뿐 아니라 이민철도 해당되었다.
이민철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오오! 일일 임무라니! 정말 이거 매일 생겨나는 거 맞냐, 혜미야?”
“매일 자정이 지나면 갱신되어 받을 수 있어요. 하루에 한 번만 수행 가능하니 잊지 말고 매일 하세요.”
“파투스 물약을 받는데 당연히 해야지. 재윤아, 어서 일퀘하러 가자.”
“일퀘?”
“일퀘 모르냐? 게임에서는 이런 걸 보통 일일 퀘스트라고 하잖아. 일퀘는 그 줄임말이야.”
“그거야 나도 알아. 그래도 일퀘라고 하니 너무 게임같잖아.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고.”
“뭐 어떠냐?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으니 우리는 이 게임을 즐겨주면 되는 거지.”
“즐긴다고?”
“물론! 즐겨야지. 기왕이면.”
“하하, 멋진 생각이네.”
아침마다 일일 임무를 하며 이 게임 같은 세상을 즐기겠다니!
물론 조금 오버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는 말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민철의 저런 모습이 보기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나 엊그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의 얼굴에서 수심이 떠나지 않았었는데, 점점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는 이 괴상하게 변해버린 세상에 잘 적응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저기 크로거 세 놈이 있는데?”
때마침 안전 지대 밖에 크로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 3마리.
저 놈들을 해치우면 오늘의 일일 임무가 완수될 것이다.
다만 아직 이정숙이 무기 수리를 마치지 않은 상태라 지금 나가려면 바람의 화살로만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칼이 있었지.’
이정숙에게 받은 작은 칼.
그 또한 파투스 무기였다.
다른 이들은 이걸로 데미지를 2 포인트 밖에 줄 수 없겠지만, 재윤은 다르다.
약점을 공격하면 치명타가 발생하니까.
그뿐이 아니다.
크로거에 대한 C급 지식 덕분에 데미지를 15% 더 줄 수 있으니, 이 칼로도 무시 못 할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재윤은 곧바로 이민철과 파티를 맺고 밖으로 나갔다.
먼저 선두로 달려드는 크로거의 약점 부위를 향해 바람의 화살을 발사했다.
파악!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가 크로거의 목을 꿰뚫었다.
“쿠아아악!”
그렇게 한 마리를 처치한 재윤은 그 즉시 그 뒤에 있는 크로거를 향해 달려갔다.
“쿠아아아!”
크로거가 사납게 포효하며 달려들었지만 재윤은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하며 약점인 오른쪽 옆구리를 칼로 공격했다.
“죽어라, 괴물 놈!”
푹! 푸푹!
파투스 무기답게 질겨보이는 크로거의 가죽이 사정없이 베어졌다.
그러나 역시나 무기의 데미지 자체가 높지 않으니 단번에 치명상을 입히기는 무리였다.
크로거는 즉각 반격해왔다.
“크르르!”
쩍 벌어진 크로거의 커다란 입이 재윤의 어깨를 물려는 순간 갑자기 재윤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팟―
동시에 그렇게 사라졌던 재윤이 크로거의 뒤쪽에 나타났다.
바람 이동이었다.
‘이거 진짜 쓸만한데?’
방금 전 굳이 이 능력을 펼치지 않고도 피할 수 있었지만 연습한다 생각하고 한 번 해본 것이다.
재윤은 지체없이 크로거의 약점을 공격했다.
“그만 죽어라!”
푹! 푸푹!
크로거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재윤의 칼이 놈의 옆구리에 마구 파고들었다.
“꾸어어억!”
크로거는 맥없이 쓰러졌다.
설명은 길었지만 재윤이 바람의 화살로 크로거 하나를 쓰러뜨리고 연이어 또 한 마리를 해치운 것은 불과 수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 단번에 두 마리라니! 재윤이 너 갈수록 실력이 느는구나!”
이민철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아있는 한 마리의 크로거를 도발해 자신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동시에 망치로 놈의 머리를 마구 후려쳤다.
“그럼 나도 한 마리 정도는, 에잇! 죽어라! 죽어!”
퍽퍽!
재윤도 곧바로 가세하며 외쳤다.
“형, 그놈 약점은 복부야. 거기만 집중적으로 공격해.”
“그래? 좋았어.”
이민철은 재윤이 상위 등급 지식을 얻은 덕분에 크로거의 약점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어제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약점을 공격하면 데미지가 더 들어간다는 사실도 말이다.
“흐흐, 뒈져라! 이 악어 새꺄!”
퍽퍽! 푹 푸확!
“꿰에엑!”
망치와 칼이 연거푸 복부를 가격하자 크로거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민철이 환호했다.
“세 마리 다 잡았다. 이제 보상받으러 가자.”
일일 임무는 안전 지대 안에 있으면 자동으로 받아진다.
또한 임무 조건을 달성한 후에 안전 지대로 돌아오면 자동으로 완수되며 보상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안전 지대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태진과 한지성이 페트병을 들고 잽싸게 달려왔다.
“고생들 많았네.”
“와우! 형들 정말 대단해요. 우린 피 좀 담을게요.”
재윤 등이 안전지대 가까운 곳에서 사냥하면 지켜보고 있다가 피를 담아오라는 이정숙의 요청 때문이었다.
크로거의 피는 빨리 담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터라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안전 지대에서 너무 먼 곳까지 따라왔다가는 자칫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 있다.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서 사냥할 때가 피를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우리가 지키고 있을 테니 염려말고 피를 담으세요.”
“하하, 고맙네.”
재윤과 이민철은 그 사이에 또 다른 괴물들이 나타날 수도 있는 터라 곧바로 안전 지대로 복귀하지 않고 한태진 등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세상이니까.
“끝났네. 돌아가세.”
“고생하셨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모두 그 즉시 안전 지대로 복귀했다.
보호막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알림이 들려왔다.
[일일 임무 【괴물 토벌】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최하급 파투스 회복 물약을 얻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동시에 재윤과 이민철의 앞에 신비로운 자줏빛 액체가 들어있는 약병이 하나씩 나타났다.
* 최하급 파투스 회복 물약
-복용 시 소모된 파투스를 10분에 걸쳐 10 회복한다.
-재사용 시간 : 10분
설명을 보니 파투스 물약이 여러 병 있어도 단 번에 그것들을 다 마실 수는 없었다.
재사용 시간 때문에 한 병 마신 후 10분이 지나지 않으면 마셔도 회복력을 거의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파투스 물약을 먹는 즉시 파투스가 10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10분 동안 서서히 회복되는 식이었다.
그렇다 해도 안전 지대가 아닌 곳에서 파투스를 회복할 수 있는 만큼 매우 소중한 아이템임은 분명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일일 임무 보상으로 파투스 물약 뿐 아니라 경험치도 들어온다는 것.
다만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Lv16인 재윤은 물론이고 Lv8의 이민철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으니까.
물론 매일 할 수 있는 임무인만큼 누적되면 그 양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 *
재윤이 이민철과 안전 지대에서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그 사이 이정숙이 골프 스틱의 수리를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 만들어뒀는지 주먹밥 두 덩이가 들어 있는 도시락을 재윤과 이민철에게 하나씩 건넸다.
또한 깨끗한 페트병들에 정수기의 물을 담아 건네주었다.
“약소하지만 시장할 때 들어요. 재료가 변변치 않아 이게 최선이네요.”
“하하, 아닙니다. 정말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사님.”
재윤과 이민철은 각자의 가방에 그것들을 담아 등에 걸쳤다.
집에 굴러다니는 백팩이 10여 개도 넘었기에 그 중 편한 걸 챙긴 것이다.
가방이 있으면 괴물들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들을 담을 때도 편할 테니까.
유사시를 대비해 생명력 물약 2병과 오늘 얻은 파투스 물약 1병을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배터리가 충전된 헤드랜턴과 스마트폰도 챙겼다.
스마트폰은 통화나 인터넷이 불가능하지만, 시간은 볼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에 내장된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주변의 지형을 수시로 찍어두면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갈 생각이냐, 재윤아?”
“돌아오는 시간을 고려해봐야겠지. 날이 캄캄하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까.”
“그럼 일단 오후 2시 정도까지는 최대한 멀리 가보자.”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왕복시간을 고려해 앞으로 4시간 정도 한쪽 방향으로 이동해보기로 했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어 마구잡이로 이동했다간 방향을 잃기 딱 좋았다.
가능한 한 쪽 방향으로 가야 돌아올 때 편할 것이다.
이민철이 앞장 서고 재윤이 뒤따랐다.
앞에 가는 이민철이 괴물들이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사이 재윤은 스마트폰으로 지형이나 괴상한 형태의 식물들을 찍었다.
“재윤아, 저 앞에 크로거 놈들이다! 다섯 마리나 되는데?”
“그럼 해치워야지.”
골프 스틱이 수리된 상태라 부담이 없었다.
“흐흐, 좋아. 그럼 간다.”
이민철이 3마리를 도발해 끌어들이자 재윤이 달려가 남은 2마리를 공격했다.
휭휭! 퍽! 콰직!
한 놈은 머리, 다른 한 놈은 목.
재윤의 골프 스틱이 바람을 가르는 순간 크로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쿠아아아!”
“크르르!”
“이 새끼들! 어딜 덤벼?”
그 사이 이민철은 망치를 마구 휘두르며 크로거 3마리의 공격에 저항하고 있었다.
곧바로 달려온 재윤이 골프 스틱을 휘두르자 크로거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아싸, 레벨 업!”
“오! 축하해!”
“하하, 고마워! 이제 체력 올려야겠다.”
이민철의 레벨이 올라 Lv9가 되었다.
그러나 재윤은 Lv16이다보니 쉽게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사실 Lv10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그 전에 비해 경험치 요구량이 많아져 레벨업이 쉽지 않은 편이었다.
재윤도 토벌 임무 보상이 아니었다면 레벨을 Lv16까지 올리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크로거 토벌(C)】
-임무 수행중 : 25/60
다행히 크로거들을 해치우자 토벌 임무 조건이 카운트되고 있었다.
앞으로 35마리만 더 해치우면 크로거 토벌(C)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동한지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일곱 채의 건물들을 발견했고, 추가로 23마리의 크로거들을 더 해치웠다.
아쉽게도 건물들 어디에도 생존자는 없었으며, 안전 지대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거 우리 외에는 다 죽은 거 아니겠지?”
그러다 보니 이민철의 표정도 조금 어두워졌다.
그 역시 말은 안하고 있지만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그리고 결혼한 누나와 형.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는 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적을 바라고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볼수록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런 심정은 재윤도 마찬가지였다.
각성자들이 분명 더 있을 텐데, 두 시간이 넘도록 생존자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이민철의 말대로 자신들과 한태진 가족 외에는 정말로 다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우우우어어어!”
갑자기 들려오는 거대한 포효!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주변의 숲이 온통 흔들리는 듯 같았다.
이민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크로거는 아닌 것 같은데?”
“소리가 크로거보다 몇 배는 더 컸어. 이 정도 소리를 내려면 크로거보다 덩치가 훨씬 더 커야 하겠지.”
재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언제고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은 했다.
크로거나 좀비보다 더 강한 괴물과 마주칠 순간 말이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그때일 줄이야.
이민철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아.”
“일단 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어떤 놈인지 살펴보는 게 좋겠어.”
어떤 괴물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달려가 싸울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근처에 마지막으로 살펴본 5층 건물이 있어 즉각 그 건물의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쿠우우어어어어!”
그 사이 또 다시 포효가 울렸다.
아까보다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뜻.
“어, 저길 봐, 재윤아! 사람들이다.”
그때 옥상에서 아래를 살피던 이민철이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정말이었다.
안개를 뚫고 시야 거리 이내 나타난 두 명의 사람.
30대 남자와 20대 여자였는데, 그들은 다급한 기색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타난 거대한 몸체의 괴물.
“으으! 저게 뭐냐?”
“젠장! 엄청 큰데?”
언뜻 봐도 신장이 4미터도 넘어 보였다.
악어 머리에 거인의 몸체를 가진 괴수!
형상은 분명 크로거였다.
그러나 보통의 크로거에 비해 두 배도 넘는 덩치였다.
“쿠우우어어어어!”
놈은 도주하는 두 명의 사람을 뒤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녀가 멈춰서더니 괴물을 노려봤다.
남자의 손에서 불꽃이 형성되더니 자그만 불덩이로 변해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여자의 손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일어나 그녀와 옆의 남자의 몸을 감쌌다.
“오! 저 남자 손에서 불을 쐈는데?”
“저 사람들도 각성자가 분명해.”
그렇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각성자들이었다.
화르르! 푸확!
그러나 불덩이가 적중했지만 거대 크로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녀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돌아 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재윤과 이민철이 있는 건물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