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새로운 능력 (2)
한편 재윤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자신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이민철은 다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그게 바로 새로 얻은 능력이냐?”
“바람 이동이라는 이동기야. 3미터 이내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어.”
“대박이네! 말로만 듣던 공간 이동 마법이잖아.”
이민철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일찍들 일어났군.”
그때 한태진이 현관문 밖으로 걸어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이민철이 미소 지었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물론이야. 다 자네들 덕분이지. 나는 아직도 어제 일이 꿈만 같네.”
한태진은 재윤과 이민철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장들 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리게. 지금 집사람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어.”
메뉴는 김치찌개라고 했다.
식재료가 모두 부식화되어 먹을 수 없게 된 다른 곳과 달리 이곳에 있던 것들은 멀쩡했다.
어제 안전 지대의 보호막이 사라졌을 때 혹시라도 모두 상해버릴까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 멀쩡하게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어차피 이 집에 쌓여 있는 식재료가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한태진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재윤 또한 그럴 거라 예상했기에 숲에 있는 딸기 모양 열매를 가리켰다.
“저 딸기처럼 생긴 열매만 있으면 한 사람이 대충 하루를 버틸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저 열매가 뭔지 궁금했어. 딸기라고 보기에 너무 크기가 큰데?”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이미 확인해봤죠. 맛은 그저 그렇지만 허기와 갈증이 풀리는 건 확실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민철이 즉각 열매 하나를 따서 베어 물었다.
으적!
그리고는 잠시 몇 번 씹더니 인상을 구겼다.
“윽! 이게 무슨 맛이지? 꽤 달콤해 보이는데 별 맛이 안 느껴지네.”
그는 도저히 못먹겠다는 표정이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그럴 거야. 그래도 목 마르고 배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그게 또 나름 꿀맛으로 느껴지거든.”
“크, 어쨌든 다행이다. 이것들만 있으면 최악의 경우에도 굶어죽을 염려는 없잖아.”
한태진 또한 표정이 밝았다.
“염려들 말게. 맛이 없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연구하면 되겠지. 안전 지대 내에 저런 식재료가 생겨나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야.”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말고도 또 먹을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릅니다. 이상한 풀들과 버섯 같은 것도 제법 보였으니까요.”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겠군.”
한태진은 여러모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각성자가 되지 못해 전투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가족들을 비롯한 안전 지대 구성원들의 식량 보급과 같은 것에 관심을 둘 생각이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탄식했다.
“돈이 있어도 소용없는 세상이 올 줄 몰랐어. 이런 세상에서 은행에 잔고 수백억이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
그 말에 이민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 진짜 은행 잔고가 수백억이었어요?”
“수백억이 아니라 수천억, 수십조를 가진 재벌이라고 해도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제는 돈 가진 자가 갑인 세상이 아니라 각성자가 갑인 세상이야.”
지구가 어디까지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지만, 전부 다 이런 상태라면 은행이고 뭐고 다 박살났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더 이상 기존의 화폐는 인정받지 못한다.
식량이나 파투스 무기 같은 것이 오히려 교환가치가 있을 뿐.
즉, 물물 교환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고 봐야 했다.
잠시 후 모두 2층에 있는 주방 식탁에 모여 앉았다.
“차린 게 별로 없어 약소하지만 많이 들어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게 최선이네요.”
“하하하! 이건 진수성찬인데요? 김치찌개 냄새 정말 죽입니다.”
이민철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윤도 이정숙에게 감사를 표했다.
“잘 먹겠습니다, 여사님.”
참치가 들어 있는 김치찌개와 따끈한 밥,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한 반찬이 놓여 있는 밥상.
본래라면 한국의 어느 집에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식단이지만, 재윤은 무척이나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음식은 두 번 다시 먹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맛도 맛이지만 집에서 먹던 기억이 떠올라 부모님 생각이 더욱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이정숙이 재윤을 향해 따스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어제 정말 고마웠어요.”
“별 말씀을. 어차피 이런 세상에서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지성이에게 얘기 들었어요. 귀한 물약을 사용해 목숨을 구해주셨다고요.”
“때마침 제가 그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재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정숙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한태진도 마찬가지였다.
꼼짝없이 좀비들에게 죽을 아들을 살려줬으니 부모로서 당연히 재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성이 일은 영원히 잊지 않겠네. 어떤 식으로든 꼭 은혜를 갚고 싶군.”
물론 어차피 재윤이 이민철과 함께 안전지대를 방어해주지 않았다면 모두가 죽었겠지만, 그 전에 한지성을 살려준 것은 또 별개의 일이었던 것이다.
한지성도 그때 생각이 났는지 가슴을 쓸며 말했다.
“그때 재윤이 형이 아니었으면 나 죽었어요. 진짜로 딱 죽는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빠를 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어제는 경황 중이라 대충 스쳐봤는데 이제 보니 한혜미는 꽤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소녀였다.
뭔가 쑥스러움을 타는지 재윤을 향해서는 그렇게 한 마디만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재윤 또한 밥을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 터라 조용히 식사에 열중했다.
* * *
“파투스 무기를 수리하려면 괴물의 피가 필요해요. 다행히 어제 구해놓은 크로거의 피가 아직 몇 병 남아있으니 가능할 것 같군요.”
이정숙은 재윤의 골프 스틱을 수리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녀의 제작 레벨이 낮아 수리 시간이 다소 소모된다는 것이다.
제작 능력자인 그녀는 괴물을 죽인다고 해서 레벨이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제작을 할 때만 경험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레벨이 올라도 재윤이나 이민철처럼 스탯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작 레벨만 오를 뿐이었다.
또한 그녀가 만들 수 있는 파투스 장비도 오직 무기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은 제작 레벨이 낮아 기존의 무기나 도구를 파투스 무기로 변환시키는 수준이지만, 추후 그녀의 제작 레벨이 오르면 각종 재료를 조합해 상급 파투스 무기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 했다.
“수리가 최소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으니 그동안 편히 쉬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어제 만든 건데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혹시 모르니 챙겨둬요.”
이정숙은 재윤에게 작은 칼을 하나 건넸다.
* 평범한 과도
-등급 : 일반(★★)
-분류 : 파투스 무기
-내구도 40/40
-기본 공격력 : 1
-추가 공격력 : 1
-장착 제한 : 없음
-제작자 : 이정숙
과일을 깎는 칼이 괴물에게 데미지 2를 줄 수 있는 무기로 변한 것이다.
비록 데미지는 낮지만 그래도 파투스 무기다.
갖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쓸 데가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여사님. 잘 쓰겠습니다.”
“감사라니요. 이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랍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면에서 지원할 생각이에요. 수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부담갖지 말고 내게 가져다 주세요.”
모든 걸 떠나 이제는 재윤이 있어야 이곳 안전 지대를 지켜낼 수 있음을 알게 된 그녀였다.
재윤에게 많은 지원을 할수록 이곳이 더욱 안전해질 것이니 파투스 무기를 아낄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재윤은 무기를 수리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괴상하게 변한 세상에서 이정숙과 같은 제작 능력자는 어쩌면 전투 능력 각성자보다 더 희귀한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좀비나 크로거 하나도 당해내지 못하지만, 그녀가 만든 파투스 무기로는 일반인들도 괴물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이정숙의 제작 레벨이 높아지면 지금 재윤이 가지고 있는 희귀 등급의 골프 스틱보다 훨씬 강력한 파투스 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재윤으로서는 이정숙을 알게 되고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된 것이 상당한 행운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지금은 초보지만 나중에는 전설 등급 파투스 무기를 만들 능력을 갖춘 명장이 될 지도 모르니까.
곧바로 이정숙은 골프 스틱의 수리에 들어갔다.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재윤은 그 사이 바람 이동을 능숙하게 펼칠 수 있게 연습 해보기로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숲에는 장애물이 많아 이동기 수련을 하기에는 옥상이 딱이었다.
그런데 옥상에 오르자 한혜미가 서 있었다.
그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 재윤이 올라온 것조차 몰랐다.
그러다 재윤이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막 각성자님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어요.”
그녀는 재윤에게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각성자라고 불렀다.
이민철과는 본래부터 안면이 있어서 오빠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재윤과는 어제 처음 만나 아직 서먹서먹했다.
“날 찾아오려고 했다고?”
“네. 안전 지대가 1단계 2성으로 발전하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새로운 메뉴가 생겨났거든요.”
“새로운 메뉴?”
그러자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갑자기 이런 걸 여쭤봐서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혹시 코인 좀 있으세요?”
“코인은 왜?”
재윤은 어리둥절했다.
코인이야 물론 있다.
1613 코인.
그런데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는 걸까?
한혜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제 안전 지대에 코인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됐어요.”
“투자를 하게 되면 뭐가 좋은데?”
“일단 1000코인 이상 투자한 각성자는 안전 지대 수용인원과 별개로 거주 자격을 갖추게 되죠. 또한 그런 분은 제가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퇴거를 명할 수 없어요. 투자금의 열 배를 돌려줘야 하니까요.”
코인을 이렇게도 쓸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코인의 새로운 용도를 알게 된 것이었다.
현재 이곳 안전 지대 혜미의 최대 수용 인원은 10명이다.
이번에 재윤이 들어오며 6명이 채워진 터라 앞으로 4명만 더 받을 수 있는데, 만약 재윤이 코인 투자를 하게 되면 5명을 더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재윤은 수용인원과 별개로 거주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수용인원의 여유도 있는데 재윤이 피 같은 코인을, 그것도 무려 1000 코인이나 내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한혜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투자자에게는 또 다른 혜택이 있어요. 매달 안전 지대에서 얻는 코인 수익의 일부를 배당금으로 받게 되죠.”
주식을 투자했을 때처럼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뿐 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는 1000코인이 있으면 이곳 안전 지대에 각성자들이 매일 수행할 수 있는 일일 임무를 생성시킬 수 있어요.”
“일일 임무?”
“궁금하면 보여드릴까요?”
“나에게 보여줄 수도 있어?”
“그럼요.”
그 순간 재윤의 앞에 하나의 창이 떴다.
【괴물 토벌(일일)】
-분류 : 고정 일일 임무, 매일 자정 갱신
-내용 : 안전 지대 주위를 배회하는 괴물 3마리 처치
-보상 : 최하급 파투스 회복 물약 1병
-수행 자격 : 전투 능력 각성자
-임무 발생 조건 : 안전 지대 발전도 1단계(★★)
-투자 비용 : 1000코인
“파투스 물약이 보상이라고?”
“네. 마시면 파투스 10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해요.”
재윤은 내심 놀랐다.
안전지대가 아닌 곳에서 파투스 10을 회복할 수 있다면 유사시 파투스가 소진되었을 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가치로 따진다면 생명력 물약보다 훨씬 높다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생명력 회복 물약은 좀비나 크로거를 해치우면 종종 얻는 편이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파투스 회복 물약을 얻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만약 이 【괴물 토벌】 일일 임무가 생긴다면, 매일 파투스 회복 물약 한 병씩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임무도 매우 간단했다.
괴물 3마리를 처치하는 거야 일도 아니니까.
‘코인이야 또 모으면 되니 나쁘지 않네.’
당장 코인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지금은 어차피 능력 강화석이 없어서 전투 능력의 강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1000코인을 한 번만 투자하면 앞으로 매일 파투스 물약을 한 병씩 얻을 수 있는데다, 영구적으로 배당금도 받을 수 있다니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좋아, 1000코인을 투자하지.”
“와! 정말요? 고맙습니다.”
재윤이 흔쾌히 수락하자 한혜미는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