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강해지다 (2)
“형편 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네만, 필요한 게 있으면 부담갖지 말고 얘기하게. 어떻게든 자네가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해주겠네.”
한태진은 재윤이 앞으로도 계속, 가능하면 영원히 이곳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물론 한혜미가 재윤을 안전 지대 거주자로 등록했지만, 재윤은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태진은 재윤이 혹시라도 다른 곳에 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한 달 후 다시 있을 안전 지대 방어 전투를 대비해 재윤은 반드시 이곳에 남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민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안전 지대를 소유하고 있는 한태진 가족이 갑(甲)이었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재윤과 이민철이 갑이고, 한태진 가족이 을(乙)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안전 지대가 있어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이 괴상하게 변한 세상에서 생존하기란 불가능하니까.
한태진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재윤이 계속 이곳에 머물러주길 사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걱정마십시오. 저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재윤은 스스로 다른 안전한 거처를 구하기 전까지 일단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안전 지대가 있는데 굳이 좀비 소굴과 같은 곳에서 불안하게 밤을 지새울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괴물들의 사체들은 항상 그렇듯 시간이 지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집이 워낙 넓어서 있을 공간은 많았다.
1층에 방이 몇 개 더 비어 있었기에 그중 하나를 선택했다.
개인 화장실과 샤워실이 붙어 있는 널따란 방.
방에 들어온 재윤은 당장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며칠 동안 몸을 씻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믿기지 않네.’
신기하게도 안전 지대 내에서는 전기와 수도가 모두 들어왔다.
당연히 온수 샤워도 가능했다.
전기가 들어오니 냉장고는 물론이고 에어컨, 정수기, 세탁기, 전자레인지와 같은 가전제품들도 모두 정상 작동이 되었다.
인터넷이나 통신이 되지 않을 뿐 컴퓨터나 스마트폰도 전원이 들어왔다.
가장 경악할 만한 일은 안전 지대 내부에 있으면 소진된 파투스가 자연 회복된다는 것!
그간 이민철이 재윤을 만나기 전에 레벨 1 상태에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덕분이었다.
이정숙 역시 파투스 무기를 제작할 때 소모되는 파투스가 안전 지대 효과로 회복되었다고 했다.
‘안전 지대 안에만 있으면 이런 세상에서도 그럭저럭 살만하겠구나.’
물론 그렇다고 안전 지대라 해서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을 뿐 음식 자체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서, 기존에 쌓여있던 식량이 떨어지면 결국 식량을 새로 구해야한다.
특히 휴지나 샴푸, 바디 워시, 비누, 세제 같은 공산품들이 떨어지면 그것들을 구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재윤은 곧바로 침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아무리 레벨이 올라 신체 상태가 회복되었다 해도 잠을 자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이 이상하게 변한 며칠 동안 제대로 잠다운 잠을 자본 적이 없었는데.
‘안전 지대가 좋긴 좋네.’
재윤은 모처럼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 * *
피곤에 지쳐 곯아떨어졌지만 깨어나 보니 아직 캄캄했다.
방안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반.
불과 3시간 정도 잠을 잤을 뿐인데 오래도록 푹 쉰 것처럼 전신에 활력이 넘쳤다.
더 이상 잠을 잘 필요가 없을 듯했다.
‘체력을 올려서 그런가.’
어제 레벨 10 이후 3단계나 또 레벨이 상승해 현재 레벨은 13.
보너스 스탯은 체력에 2, 지능에 1을 분배했다.
그러다 보니 체력 스탯은 10.
민첩과 쌍벽을 이루는 스탯이 된 것이었다.
【이름】 강재윤
【레벨】 13
【생명력】 100/100(↑20)
【파투스】 30/30(↑3)
【스탯】
근력 5
체력 10(↑2)
민첩 10
지능 5(↑1)
【코인】 358
【전투 능력】 바람의 화살(Lv3)
【생활 능력】 없음
【특성】 몬스터 지식 획득(S)
【보유 지식】 크로거(C), 좀비(B)
【임무】
-좀비 토벌(B) 수행중 : 69/120
-크로거 토벌(C) 수행중 : 17/60
지능을 1 올린 것은 전투 능력인 바람의 화살(Lv3) 데미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데미지를 높이려면 다음 단계로 강화하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
그러나 바람의 화살을 Lv4로 올리는데는 300코인 뿐 아니라 능력 강화석이라는 것도 필요했다.
코인은 충분한데 능력 강화석이 없어서 강화가 불가능한 상황.
하지만 지능 스탯을 1 높이면 데미지가 3이 증가한다.
* 바람의 화살(Lv3)
-효과 : 대상에게 〈60 + 지능 스탯의 300%〉만큼 피해를 준다.
‘데미지 3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치명타까지 고려하면 절대 무시할 게 아니야.’
따라서 재윤은 지능 또한 체력과 민첩처럼 일단 10을 맞추기로 했다.
‘좀비나 크로거 말고 또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니 대비를 해둘 필요가 있어.’
전투 능력을 쓸 때 소모되는 파투스의 양이 제한되어 있는 만큼 한 방 데미지를 높여두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왠지 오늘은 정신이 더 맑은 기분인 걸.’
새벽에 일어나니 정신이 맑아진 것일까?
그보다는 아마도 지능 스탯을 1 올린 것 때문인 듯했다.
체력 스탯을 올리면 생명력과 활력이 증가하고, 민첩 스탯을 올리면 민첩성이 크게 증가하듯, 지능 스탯은 두뇌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할 테니까.
‘설마 지능 스탯을 계속 올리면 내가 천재라도 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능을 올려볼 수는 없는 일.
일단은 10까지 올려보기로 했으니 과연 머리가 얼마나 좋아지는지는 그때 가서 보면 될 것이다.
‘잠도 깼으니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안전 지대의 반경이 늘어났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확인도 할겸 재윤은 집밖으로 나가 보았다.
놀랍게도 집의 주변에는 투명한 물결같은 막이 생성되어 있었다.
‘저게 바로 안전 지대 보호막인가 보군.’
그 막은 집의 외부로 대략 20미터 가량 확장되어 있었는데, 그로인해 숲의 일부도 안전 지대가 된 것이었다.
그곳은 이제 정원처럼 거닐어도 되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어? 저 열매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재윤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주었던 거대 딸기 형상의 열매.
놀랍게도 그 열매가 안전 지대 반경 안에 10여 개나 보였다.
그냥 쉽게 눈에 띄인 것이 그 정도이니 수풀 사이에 가려진 것들을 잘 뒤져보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했는데.’
재윤은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고 씹었다.
으적! 쩝쩝!
역시나 맛은 그저 그렇다.
그래도 갈증과 허기가 한 번에 풀리는 효과만은 확실했다.
‘아직 좀비들이 돌아다니니 몇 놈 더 잡아볼까?’
안전 지대의 투명한 보호막 바깥으로 좀비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B급 좀비 토벌 임무를 수행 중인 재윤은 그것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잘됐어. 잠도 안 오는데 날이 밝을 때까지 저놈들이나 사냥하자.’
이민철이 깨어있다면 파티 사냥을 하겠지만,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는 일.
재윤은 곧바로 방에 들어갔다.
그는 어제 얻은 아이템들을 자신의 방안 붙박이 옷장 중 한 곳에 넣어두었다.
희귀한 크로거 골프 스틱 1개
최하급 생명력 회복 물약 9병
좀비 토벌 임무서(C) 1장
좀비 토벌 임무서(D) 2장
크로거 토벌 임무서(C) 1장
크로거 토벌 임무서(D) 1장
따로 보관할 장소가 없는 터라 이곳을 창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일단 무기부터 챙기고.’
* 희귀한 크로거 골프 스틱
-내구도 53/100
아쉽게도 내구도가 많이 하락해 있는데 이것을 복구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파투스 무기를 제작한 이정숙이라면 방법을 알고 있을지 모르니, 이따 그녀가 잠에서 깨면 물어보기로 했다.
‘물약은 1병만 챙기자.’
어차피 좀비들을 죽이면 물약은 또 드롭될 테니 많이 챙겨가봤자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토벌 임무서는 C급들만 한 장씩 챙겼다.
같은 종류의 괴물 토벌은 한 번에 한 종류밖에 못한다.
이미 좀비 B급과 크로거 C급을 수행 중이라 다른 것들은 임무 수락조차 불가능한 상황.
그것들을 다 완수하고도 토벌서를 얻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주머니에 넣어둔 것이었다.
어제 E급 임무 두루마리도 제법 얻었지만 그건 이민철에게 몰아주었다.
종일 크로거와 좀비 사냥을 한 덕분에 이민철은 크로거 F급, 좀비 E급 지식을 얻었다.
덕분에 그도 이제 E급 좀비 토벌 임무는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나가볼까?’
재윤은 골프 스틱을 손에 쥔 채 안전 지대 보호막 밖으로 나갔다.
“키이이!”
근처를 배회하던 좀비 하나가 즉각 재윤을 향해 커다란 각목을 마구 휘두르며 덤볐다.
후웅! 후웅!
좀비들 중에는 가끔 이렇게 무기를 손에 쥔 녀석도 있었다.
바닥에 각목이 떨어져 있으면 본능적으로 주워 휘두르는 식이랄까?
물론 그래봤자 검도 유단자인 재윤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그는 골프 스틱으로 각목을 가볍게 쳐낸 후 좀비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직!
머리가 터진 좀비는 그대로 쓰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그 사이 두 마리의 좀비가 험악한 기세로 접근했지만 재윤에게는 경험치 덩어리들일 뿐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골프 스틱으로 좀비들의 약점을 후려갈겼다.
퍽! 퍼억!
휭휭 바람 가르는 소리와 뭔가가 터지는 소리들.
“꾸어어억!”
“쿠아악!”
좀비 하나는 목이 부러지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재윤은 이렇게 좀비 3마리를 가뿐하게 처치했다.
어제 좀비 소굴에서 도망나올 때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
하루 사이 어제와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파투스 무기 덕분도 있지만 레벨이 올라서일 것이다.
【좀비 토벌(B)】
-임무 수행 중 : 72/120
‘이제 48마리 남았네.’
그런데 근처에는 더 이상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 집으로 가보자.’
도저히 불가항력이라 생각되어 도망쳐나온 좀비 소굴.
아마도 거기라면 여전히 좀비들이 제법 있을 지도 모른다.
각종 기괴한 식물들이 숲을 이룬 채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이미 방향을 알고 있는 재윤은 금방 그곳을 찾아냈다.
음침한 핏빛의 안개로 뒤덮여 있는 3층 저택.
“키키키!”
“크아아아!”
역시나 예상대로 그곳엔 좀비들이 있었다.
‘좋았어.’
재윤은 쾌재를 불렀다.
좀비들을 보고 이렇게 반가운 마음이 들다니 왠지 황당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황당할 것도 없었다.
이제 그에게 있어 좀비들은 더 이상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경험치 덩어리일 뿐이니까.
좀비들을 많이 해치울수록 그는 더욱 강해지게 되니까.
‘숫자가 많으니 어제처럼 2층 발코니 앞으로 몰아서 올라오는 놈을 한 놈씩 처죽이는 게 최선이야.’
전투력이 늘었다고 무턱대고 좀비들과 난전을 벌이다간 체력이 빠르게 소모되게 된다.
그러다 자칫 수십 마리에게 포위라도 당하게 되면 재윤이 아무리 날고 기는 능력을 가졌다해도 좀비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재윤은 이 집의 구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구조를 이용해 좀비들이 하나씩 자신 앞으로 오게 만드는 방법도 말이다.
퍽!
“쿠아악!”
재윤은 가까이 접근하는 좀비를 골프 스틱으로 쓰러뜨린 후 현관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어제처럼 좀비들을 옥상까지 한 번 돌린 후 다시 1층으로 모두 유인.
밖에서 배관을 타고 2층 발코니 위에서 놈들을 기다렸다.
역시나 예상대로 좀비들은 어제와 동일하게 한놈씩 배관을 타고 기어올라왔다.
하긴 하루 사이에 좀비들의 지능이 갑자기 좋아질 리는 없을 것이다.
덕분에 재윤은 한 놈씩 골프 스틱으로 후려쳐 죽일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각개격파란 거지.’
어제는 바람의 화살만으로 상대하느라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파투스 무기가 손에 쥐여진 상태였다.
더구나 안전 지대로 돌아가면 소모된 파투스를 회복할 수 있으니, 바람의 화살을 펼치는 것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좀비 토벌(B)】
-임무 수행 중 : 120/120(완료)
[당신은 임무 【좀비 토벌(B)】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재윤은 좀비들을 죽이는데 온 정신을 집중했고, 어느덧 토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