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파티 사냥 (2)
한편 그때 한태진 등은 모두 마음을 졸인 채 한지성이 무사히 이민철을 데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성이가 무사해야 하는데 큰일이에요.”
“그러게 말이오. 내가 나갔어야 했는데, 왜 그놈이 나가서.”
한태진은 당장이라도 나가서 한지성을 찾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에 이정숙과 한혜미만 남게 된다.
잠시 후 안전 지대를 이루는 보호막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녀들 둘 만 남겨둘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저 한지성이 돌아오기를 노심초사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이정숙은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었다.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어두운 숲에서 아들 한지성이 혹시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걱정마, 엄마. 오빠 무사히 살아 있어요. 민철이 오빠도요.”
한혜미의 말에 한태진과 이정숙이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듯 쳐다봤다.
“전 이곳 안전 지대 관리자라 알 수 있어요. 혹시라도 누군가 죽기라도 했다면 수용 인원에 공백이 생겨요.”
【안전 지대 혜미】
-등급 : 1단계(★)
-관리자 : 한혜미
-수용 인원 : 5/5
-방어 전투 개시 2분 31초 전
안전 지대에도 이름이 존재했다.
이곳 안전 지대의 이름은 혜미.
한혜미가 운 좋게 이곳의 안전 지대 관리자가 되는 순간 이름을 지으라는 알림이 떴는데, 경황 중이라 그냥 자신의 이름을 말해 그것으로 확정된 것이었다.
“지금 모두 살아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봐요.”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한혜미는 아까 처음에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 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제법 의연한 모습으로 부모님들을 진정시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녀는 안전 지대 관리자인 자신이 흔들리면 방어가 쉽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방어 전투 개시 2분 전입니다.]
[전투에 대비해 주세요!]
‘2분 남았어.’
한혜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2분이 지나면 안전 지대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좀비와 같은 괴물들이 이 집으로 난입해 올 것이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대책을 찾기 위해 안전 지대 정보 창을 주시하며 알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알림은 그저 방어 전투가 임박했다는 내용 뿐이었다.
[방어 전투 개시 1분 전입니다.]
[전투가 개시되면 보호막이 사라지며 모든 안전 지대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안전 지대의 관리자인 당신은 이 안에서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이 지역을 벗어나거나 혹 죽게 되면 방어전은 실패하게 되며, 이곳 안전 지대는 영원히 파괴될 것입니다.]
[방어 전투가 개시되었습니다.]
[모든 안전 지대 효과가 사라집니다.]
‘시작됐어!’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제 앞으로 24시간 동안 이 집은 안전 지대가 아니었다.
팟!
그 순간 거실을 밝히던 LED 전등이 꺼졌다.
전기가 나가서였다.
안전 지대의 신비한 효과 중 하나가 바로 전기나 수도가 들어오는 것이다.
괴물들에 의해 발전소도 작동 중지되었을 텐데 대체 어디에서 전기가 공급될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었지만, 그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적은 사라졌다.
다시금 안전 지대의 효과를 누리려면 오늘의 방어 전투에서 무사히 생존해 있어야 할 것이다.
“전기가 나갔다, 혜미야.”
“이제 시작되려나 보구나.”
한태진과 이정숙의 긴장된 음성이 들렸다.
전기는 나갔지만 천만다행이도 랜턴은 아직 작동했다.
스마트폰도 통화는 안 되지만 랜턴 대용으로 쓸 수 있었다.
다만 배터리가 매우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 오래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쾅! 쾅! 콰앙!
곧바로 1층 현관문을 뭔가가 마구 후려치는가 싶더니 곧이어 문이 부서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민철과 한지성이 돌아와야 하는터라 문을 그대로 둔 것이 문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 앞에 소파나 가구라도 잔뜩 가져다놔 문이 부서져도 괴물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그저 약간의 시간을 버는 것일뿐 큰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괴물들은 그조차도 쉽게 뚫고 들어올 테니까.
“안 되겠어. 모두 3층으로 올라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지성이 이민철을 데려오기를 기대했던 한태진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집 안으로 괴물들이 난입한 이상 어쩔 수 없이 3층을 사수하기로 말이다.
“계단을 막아야 돼. 뭐든 다 가져다 막아.”
“알았어요.”
셋은 다급히 3층에 있는 소파, 의자, 탁자 등을 계단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안에 난입한 괴물들은 하필이면 크로거들이었다.
계단을 막는 방법이 좀비들에게라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크로거들은 좀비들보다 지능이 높았고 움직임도 민첩했다.
그것들은 계단을 막은 가구들을 주먹으로 마구 때려부수며 순식간에 3층으로 올라왔다.
“쿠아아아!”
“크르르르!”
거대한 악어 머리 괴수 두 마리가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자 한태진 등은 기겁했다.
“당신 어서 혜미랑 방으로 들어가!”
“당신은요?”
“난 신경쓰지 말고 빨리!”
한태진은 이정숙과 한혜미를 방안으로 들여보낸 후 골프 스틱을 쥐고 섰다.
어차피 통하지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보기 위함이었다.
“꾸악!”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태진을 향해 덤벼들려던 크로거 중 하나가 가슴이 피범벅이 된채로 널브러졌다.
팍! 팍! 콰직!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던 크로거는 뭔가에 연거푸 머리를 얻어맏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두 마리의 크로거를 가볍게 처치한 채 3층으로 올라선 남자.
다름 아닌 재윤이었다.
“다행히 제가 늦지 않았나 봅니다.”
혹시나 싶어 그는 이민철과 한지성을 뒤에 두고 전력을 다해 뛰어 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현관문이 부서져 있고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곧바로 뛰어올라와 크로거들을 처치한 것이다.
“오, 자네는?”
“한지성 씨는 무사합니다. 지금 민철이 형이랑 같이 이곳에 오고 있어요.”
한태진의 안색이 환해졌다.
꼼짝없이 죽을 거라 생각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던 그였다.
방금 전까지는 모든 게 절망뿐이었다.
그런데 재윤이 나타나 단번에 괴물들을 처치했을 뿐 아니라 아들 한지성도 무사하다고 하니 마치 꿈만 같았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살았어.”
“정말 감사해요. 대체 뭐라고 고맙다는 말을 해야할지.”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정숙과 한혜미도 나와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히 아들이 무사하다는 말에 이정숙은 눈물을 글썽였다.
재윤은 밝게 웃으며 골프 스틱을 들어 보였다.
“그냥 무기를 받은 보답이라 생각해 주세요. 덕분에 아주 잘 쓰고 있습니다.”
“아, 그건?”
이정숙은 재윤이 들고 있는 무기가 바로 그녀가 제작한 희귀한 크로거 골프 스틱임을 단 번에 알아봤다.
“뭐든 임자가 따로 있다더니 확실히 그렇네요.”
이정숙은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첫 제작 무기를 낯선 청년에게 준다고 했을 때 달갑지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처럼 잘한 일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이민철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지금쯤 재윤이 나타나 그녀를 도와줬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재윤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로 무기 때문에 이들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무기가 아니었다 해도 어쨌든 도와줬을 것이다.
굳이 이유를 따진다면 부모님 생각이 나서였다.
한태진의 가족을 볼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욱 절실히 났다.
‘두 분도 저들처럼 살아계실까?’
기적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부모님들도 어딘가 살아계실 것이다.
그 자신이 한태진 가족을 도와준 것처럼 다른 누군가가 부모님들을 도와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제발 살아만 계세요. 제가 빨리 강해져서 찾으러 갈게요.’
그런데 방금 전 크로거 두 마리를 해치우자 아까 낮에 받았던 토벌 임무가 다시 카운트되었다.
【크로거 토벌(E)】
-임무 수행 중 : 4/5
‘기왕이면 한 놈 더 나타나지.’
그럼 깔끔하게 임무의 완수 보상도 받게 될 텐데.
골프 스틱으로 피해를 주게 된 이상 재윤은 이제 크로거 3마리도 겁나지 않았다.
이렇게 그가 속으로 크로거가 한 놈 더 왔으면 하고 아쉬워하고 있는 줄은 한태진 등은 꿈에도 상상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 모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 돌아왔어요!”
그때 이민철이 한지성과 함께 3층으로 올라왔다.
한태진 등이 반색했다.
그런데 이민철은 뭔가 다급한 기색이었다. 그는 곧바로 재윤을 쳐다보며 외쳤다.
“지금 1층으로 좀비들이 들어오고 있어. 이대로 있으면 곧 여기까지 들이닥칠 거야.”
“그럼 어서 내려가야지.”
재윤은 즉각 2층으로 내려갔고, 이민철도 한태진에게 살짝 고개만 끄덕인 후 아래로 뛰어갔다.
일일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그러자 이정숙이 빠르게 외쳤다.
“저 괴물들의 피가 사라지기 전에 병에 최대한 담아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쓸 파투스 무기를 만들 수 있어요.”
한태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파투스 무기만 있으면 우리도 괴물들과 싸울 수 있을 거야. 3층으로 올라오는 놈들은 우리가 막아야지. 지성아! 어서 페트병 좀 가져와라.”
“예.”
곧바로 한지성이 빈 페트병들을 품에 들고 왔고, 그들 가족들 모두가 합심해서 크로거의 피를 병에 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재윤은 이민철과 함께 1층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민철이 주의를 끄는 동안 재윤이 골프 스틱으로 좀비들을 마구 후려쳐 쓰러뜨리면 되는 일이다 보니 전투는 매우 수월했다.
1층으로 난입했던 좀비 5마리가 쓰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재윤아! 나 레벨 올랐다.”
덕분에 이민철의 레벨이 Lv3으로 상승했다.
“축하해, 형.”
“고맙다. 오늘 최대한 레벨을 올려보자고! 흐흐, 저기 또 좀비 놈들이 온다.”
안전 지대가 사라지며 집이 위태한 지경에 놓였지만, 재윤과 이민철에게는 오히려 강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좀비에 대한 지식이 C급에서 B급으로 상승합니다.]
[좀비 타격 시 피해량이 증가합니다.]
[좀비 처치 시 아이템 획득 확률이 크게 증가합니다.]
[좀비의 약점 파악이 좀 더 수월해집니다.]
좀비들을 몇 더 해치우자 재윤의 좀비에 대한 지식 등급이 올랐다.
* 좀비
-획득 지식 등급 : B
-좀비에게 주는 피해 20% 증가
-좀비 처치 시 아이템 획득 확률 대폭 증가
-좀비의 약점 파악 2단계
크로거는 아직 C등급인데 좀비가 벌써 B등급!
하긴 좀비를 좀 많이 해치웠던가?
하도 많이 죽여서인지 처음에는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던 좀비들이 이제는 귀엽게 생각될 정도였다.
‘근데 약점 파악이 수월해졌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러고 보니 좀비의 약점을 의미하는 푸른색 부분들이 약간 커져 있었다.
재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저걸 의미하는 거였나?’
지금까지는 왼쪽 눈이 약점이면 눈알 부분만 푸른 색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지식 등급이 B로 상승하자 눈썹과 눈두덩 아래까지 그 빛이 확대되었다.
피해량도 상승했는데 약점 타격하기도 쉬워졌으니 좀비들을 상대하기가 더욱 수월해진 것이다.
“크아아아!”
“키키키!”
그 사이 좀비 3마리가 또 나타났다.
이민철은 잽싸게 도발을 펼쳐 그것들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재윤은 지체없이 골프 스틱으로 그것들을 후려갈겼다.
퍽! 퍽! 퍽!
각각의 약점 부위를 정확하게 강타!
좀비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맥없이 쓰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좀비들을 해치울 때마다 1 코인씩 따박따박 들어온다.
그것은 이민철 역시 마찬가지라 했다.
혼자 죽여도 1코인이었는데, 파티 사냥을 해도 각각 1코인이니, 무조건 파티를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으! 지겹게도 몰려오네. 와! 근데 저기 좀비가 뭘 떨어뜨렸는데?”
“드롭템들이야.”
재윤이 잽싸게 그것들을 주워왔다.
최하급 생명력 물약 2병과 피묻은 어둠의 반지.
반지는 희귀 1성으로 어둠 저항이 2 증가하는 옵션이 붙어 있었는데, 재윤은 이미 희귀 1성과 2성 반지를 양손에 착용 중이라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물약은 모아두었다가 반씩 나누고 이 반지는 형이 가져.”
“오오! 이거 희귀 반지잖아. 그것도 세트 아이템 중 하나인데? 정말 내가 껴도 되는 거냐?”
“난 이미 있어. 좀비들이 반지만 드롭하거든. 어차피 한 손에 하나 이상 못 끼어.”
“하하하! 득템이다!”
희귀 반지를 왼손 중지에 낀 이민철은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지었다.
“참, 근데 나도 방금 전 그 지식이라는 거 얻었다.”
“오, 그래?”
“좀비에 대한 F등급 지식이야. 좀비에게 주는 피해 2% 상승이라는데?”
“F등급? 그런 등급도 있나?”
이민철과 달리 재윤은 E등급 지식부터 얻었다.
크로거를 처음 1마리 처치하자마자 E등급.
좀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민철은 열댓 마리의 좀비가 쓰러지고 나서야 간신히 좀비 지식을 얻었는데 그것도 F등급이라니.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설마 지식 획득(S) 특성 때문에?’
그동안 남과 비교할 일이 없다보니 지식 획득은 괴물만 처치하면 쉽게 되는 줄 알았다.
등급도 빨리 오르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특성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라면 재윤은 지식 획득에 있어서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처음엔 뭔가 했는데 이 특성이 생각보다 대단한 거였어.’
그간 파악한 바에 의하면 지식 등급이 높아야 높은 등급의 토벌 임무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상위 등급의 지식을 얻게 되면 레벨 업은 물론 코인 획득에 있어서 훨씬 유리해지게 되는 것이다.
“재윤아! 저기 좀비들 또 온다!”
이민철이 다급히 외쳤다.
이번에는 좀비 6마리.
“으! 한 번에 여섯은 너무 많은데?”
“오른쪽 세 놈만 형이 일단 끌어들여. 왼쪽에 세 놈은 내가 알아서 할게.”
재윤은 그 말과 함께 바람의 화살을 소환해 왼쪽에서 다가오는 좀비 중 하나에게 날렸다.
“꾸아아악!”
머리가 터진 좀비가 바닥에 고꾸라지는 사이 재윤의 골프 스틱이 바람을 가르며 다른 좀비들의 약점을 강타했다.
퍽! 퍽!
그렇게 가볍게 3마리를 처치한 순간 바닥에 뭔가가 반짝였다.
웬 종이 두루마리였다.
‘좀비 토벌 임무서?’
재윤은 반색하며 그것을 주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필수다.
좀비들을 죽이기만 해도 대량의 경험치와 코인 보상을 얻게 되니까.
‘이번엔 좀 높은 등급의 임무가 나와주면 좋겠는데?’
그동안에는 D급과 E급만 나왔다.
이제 지식도 올랐으니 C급도 한 번 나와줄 때가 되었다.
[좀비 토벌 임무서(B)를 얻었습니다.]
‘어, 이건?’
놀랍게도 B급 토벌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