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파티 사냥 (1)
바람의 화살이 아닌 골프 스틱만으로 좀비들을 해치울 수 있게 되면서, 재윤은 더 이상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좀비들을 피해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파투스에 대한 걱정 또한 크게 덜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투스가 모두 소진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는데 말이다.
“멋지다, 재윤아. 이제 네 뒤에만 있으면 좀비에게 죽을 걱정은 안해도 되겠어.”
이민철이 오른 쪽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재윤은 미소 지었다.
“내 뒤에 숨는 건 탱커로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이민철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맏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성 특성에 강철의 가호(Lv2)라는 강력한 방어 능력을 가진 그는 재윤의 뒤에 숨기보다 앞으로 나서서 좀비들을 도발해야 정상인 것이다.
“뭐 네 실력을 보니 굳이 내가 몸빵 같은 거 안해도 충분해 보인다만, 그래도 저 놈들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민철은 상당히 지쳐보였다.
여기까지 오는데 체력 소모가 컸던 까닭일 것이다.
“일단 형 레벨을 좀 올리자. 참, 방금 전 레벨 안 올랐어?”
“내 레벨? 아직 1 그대로인데?”
재윤이 좀비 3마리를 처치했지만 이민철의 레벨은 오르지 않았다.
이는 파티 경험치가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뜻.
그냥 옆에 함께 있다고 경험치의 일부가 들어가는 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잠깐! 혹시 파티 시스템 같은 게 있나 찾아볼게.”
재윤은 재빨리 상태 창을 열어 살펴봤다.
상태 창은 재윤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이전에 없던 것이 보였다.
【파티】 메뉴가 추가되어 있었으니까.
‘오! 여기 있네?’
재윤이 그곳에 슥 손을 대는 순간 곧바로 알림이 들려왔다.
[파티 창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초청을 원하는 각성자에게 초대장을 보내주세요.]
[상대가 응하면 파티가 맺어집니다.]
파티 창은 이미 활성화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재윤은 즉각 이민철을 초대했다.
파티 메뉴 중 초대 가능한 각성자로 이민철의 이름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곳에 손을 대자 즉각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형, 초대 받아.”
그런데 재윤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이민철에게 알림이 뜬 상태였다.
[각성자 강재윤이 당신을 파티에 초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이런 것도 되는 거였어? 물론 당연히 수락해야지.”
이민철은 반색하며 응했다.
[파티가 생성되었습니다.]
【각성자 강재윤의 파티】
-파티장 : 강재윤(Lv9)
-파티원 : 이민철(Lv1)
“오! 됐다! 형도 파티 창 보이지?”
“잘 보여. 근데 이걸 보면 꼭 무슨 게임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한 거냐?”
이민철은 재윤과 파티를 하게 되어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지금 상황을 바라볼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은 대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그러자 재윤이 씩 웃었다.
“형, 지금은 깊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파져. 일단은 살고 봐야지. 레벨을 올려 최대한 강해진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네 말이 맞다. 레벨부터 올리자! 저 좀비 새끼들 다 쓸어버리는 거야!”
이민철 또한 본래 그리 깊게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당장 답도 안 나오는 걸 고민하느니 재윤의 말대로 레벨부터 올리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로 들리는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일순간 이민철의 전신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뭐야? 벌써?”
그러고 보니 그 사이 근처로 접근한 좀비 두 마리를 재윤이 골프 스틱으로 가볍게 처치해버린 것이다.
그로인해 경험치가 들어오며 이민철은 그 즉시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해 Lv2가 되었다.
동시에 지쳐있던 그의 몸에 활력이 솟아났다.
좀비들에게 쫓기며 소진되었던 체력이 레벨 업으로 모두 회복되었다.
이민철은 즉시 보너스 스탯 1을 근력에 분배했다.
“하하하! 이거 진짜 신기한데? 근력을 올리니 갑자기 무슨 산삼이라도 먹은 것처럼 기운이 솟아난다.”
“레벨 업 축하해, 형.”
이민철이 뭔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재윤을 쳐다봤다.
그간 그 혼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레벨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드디어 나도 레벨이 올랐어.”
“고맙긴. 나도 형이 준 이 골프채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꽤나 곤란한 상황이었을 거야.”
재윤에게 있어 이 골프 스틱은 어둠 속의 희망과도 같았다.
이것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그저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났으니까.
당연히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이 골프 스틱을 가져다 준 이민철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민철이 미소 지었다.
“안전 지대에서 지내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서 그랬지.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이민철은 그보다 더한 고마움을 재윤에게 느끼고 있었다.
레벨이 올라 근력 스탯을 1 올려보니 비로소 각성자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갔다.
이대로 계속 레벨이 오른다면 자신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무서운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좀비들의 주의를 끌 테니 내 뒤를 따라와라.”
“좋아.”
재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론 이민철이 주의를 끌지 않아도 좀비 서너 마리 정도는 골프 스틱으로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민철이 탱커로서 주의를 끌어주면 그만큼 체력을 아낄 수 있으니 훨씬 효율적이었다.
‘앞으로를 위해 미리 호흡을 맞춰두는 게 좋겠지.’
이민철과 제대로 콤비를 이루기만 하면 혼자서 싸우는 것에 비해 몇 배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좀비나 크로거보다 훨씬 강한 괴물들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고려해볼 때, 강철처럼 막강한 방어력을 가진 탱커가 있다는 건 매우 든든한 일이었다.
“아아악! 사, 살려줘!”
그런데 이민철이 막 근처의 좀비들을 도발해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찰나,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잘 못 들었나?”
“나도 들었어, 형. 누가 쫒기는 것 같은데?”
비명까지 들리는 걸 보니 좀비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아악! 사람 살려요! 제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민철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귀에 익숙한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래도 지성이 녀석 소리 같다.”
“지성이라면? 혹시?”
“맞아. 한태진 사장님 아들 한지성. 아까 너도 봤던 그 녀석이야. 대체 그 놈이 왜 밖에 나온 거야?”
이민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와 별개로 전력을 다해 한지성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재윤도 마찬가지였다.
“으으! 저, 저리 가!”
이민철의 예상대로 비명의 주인공은 한지성이었다.
그는 아버지 한태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민철을 찾으러 나가려 하자 아들로서 가만 있을 수 없어 대신 나왔다.
밖이 겁은 났지만 아버지를 사지에 내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접근해오는 끔찍한 괴물들!
그것들은 움직이는 시체인 좀비였다.
그것들은 그를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귀신처럼 소름끼치는 눈빛에 맹수처럼 사나운 기세!
그것들이 휘젓는 손이나 팔에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찢겨나가고 뼈는 무력하게 부러졌다.
악몽 속을 누비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이민철을 찾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좀비들로부터 살아남는게 목적이었다.
미친 듯 도주하다보니 어둠 속에서 방향도 잃어버렸고, 들고 있던 랜턴도 박살나고 말았다.
“키키키!”
좀비들이 휘젓는 팔과 주먹에 몇 번 스쳤을 뿐인데 그는 만신창이 상태였다.
“으윽······!”
머리통이 깨지고 어깨뼈는 으스러지고, 등과 팔뚝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젠장! 나 죽는 거냐?’
운 좋게 좀비들을 피해 집으로 귀환한다고 해도 출혈이 너무 심해 곧 죽고 말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민철이 형을 어떻게든 만나야 하는데······.’
안전 지대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려면 각성자인 이민철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부상을 입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 기를 쓰고 뛰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좀비 하나가 달려들었다.
“으아아!”
자신을 넘어뜨린채 곧바로 입을 쩍 벌려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는 좀비를 보며 한지성은 기겁했다.
정말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퍼억!
그 순간 뭔가가 날아와 좀비의 머리를 박살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
그런데 놀랄 틈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휭휭 바람을 가르는가 싶더니 근처에 있던 좀비 두 마리의 머리도 퍽퍽 터져나갔다.
“꾸아아악!”
“끄악!”
좀비들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렇게 쓰러진 자리에 한 명의 남자가 골프 스틱을 들고 서 있었다.
물론 재윤이었다.
그는 한지성을 막 물어뜯으려던 좀비를 향해 바람의 화살을 날려 해치운 후, 연이어 근처에 있던 두 마리의 좀비들까지 가볍게 정리한 것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덕분에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해 Lv10.
신체의 모든 상태가 최상으로 돌아오며 파투스 또한 모두 회복되었다.
【레벨】 10
【생명력】 80/80(↑10)
【파투스】 27/27(↑1)
【스탯】
근력 5
체력 8(↑1)
민첩 10
지능 4
곧바로 보너스 스탯을 체력에 분배한 재윤은 한지성을 쳐다봤다.
“괜찮아요?”
“으, 고맙습니다. 근데 당신은 혹시?”
“아까 잠깐 인사한 것 같은데 강재윤입니다. 민철이 형도 저기 오고 있어요.”
“지성아! 괜찮냐?”
그때 어둠 속에서 이민철이 나타났다.
그는 재윤보다 앞서 달려갔지만 재윤보다 늦게 도착했다.
재윤의 속도가 본래부터 빠른데다 민첩 스탯까지 높여놓은 상황이니 스피드로는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재윤이 앞서 와 좀비들을 해치우지 않았다면 이미 한지성은 죽었을 테니까.
“뭐야? 이 녀석 완전 엉망이잖아.”
랜턴으로 아래를 비춰 본 이민철은 한숨을 토했다.
한지성의 몸은 말이 아니었다.
도처에 부상을 입어 전신이 피로 범벅이 된 상태라 방금 전 좀비에게 죽지 않았어도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이 멍청한 놈! 각성자도 아닌 놈이 안전 지대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밖에 나와서 이꼴이 된 거냐?”
한지성은 애써 웃었다.
“나, 난 신경쓰지 말고 어서 집으로 가주세요. 잠시 후 안전 지대 방어 전투가······.”
그는 빠르게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잠시 후 자정부터 안전 지대가 사라지고 그곳에 괴물들이 습격을 해온다는 내용.
“뭐? 그게 정말이냐?”
이민철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그제야 한지성이 왜 무모하게도 밖으로 뛰쳐나왔는지 이해가 갔다.
“엎혀라. 일단 집에 가서 어떻게든 치료해보자.”
한지성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세요, 형. 저는 이미 틀렸······ 으윽!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께 전해주세요. 다, 당신들의 아들이 마지막까지 용감했다고. 제가 죽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요. 꼭 살아남으셔야 한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한지성은 정말로 금세라도 숨이 넘어갈 듯 보였다.
그런데 그때 재윤이 바닥에서 뭔가를 줍더니 한지성에게 다가와 내밀었다.
붉은 액체가 들어있는 자그만 약병.
한지성이 그것을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엉망인 상태이다 보니 재윤은 약병의 뚜껑을 열고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
“마셔요.”
“이, 이게 뭔?”
알 수 없는 액체는 입안으로 들어오자 한지성이 삼키지 않았는데도 목구멍으로 스며들 듯 넘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신의 상처들이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게 대체?”
한지성은 꿈인가 싶었다.
찢겨진 피부가 멀쩡해졌고, 뼈가 부러져 움직이지도 못했던 오른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넘쳤다.
“와! 그거 무슨 포션 같은 거냐?”
이민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 역시도 기막힌 장면에 놀란 것이다.
재윤은 끄덕였다.
“생명력 물약이야. 처음으로 써본 건데 역시 효과가 있네.”
생명력 40포인트를 회복시켜주는 최하급 생명력 물약.
재윤에게는 그것이 3병이 있는데, 방금 전 쓰러진 좀비가 또 한 병을 드롭했다.
그것을 지체없이 한지성에게 먹인 것이다.
“뭐해요? 일어나 집으로 가야죠.”
“아, 예.”
재윤의 말에 벌떡 일어난 한지성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또한 몸이 멀쩡해진 것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의 안전 지대가 위협을 받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야 한다.
그는 다급히 재윤과 이민철을 따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