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득템하다 (1)
강화를 통해 바람의 화살이 3단계가 되자 재윤은 마음이 매우 여유로워졌다.
그동안에는 2미터 이내에 접근해야 공격이 가능했지만, 이제 3미터의 거리에서도 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미터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전투에서의 체감은 엄청나다.
검도 유단자인 재윤이기에 더더욱 공격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서 코인을 모아 단계를 올리자.’
지금까지로 볼 때 4단계 바람의 화살은 공격 거리가 4미터로 늘어나게 될 테니까.
* 바람의 화살
-현재 단계 : Lv3
-Lv4로 강화 시 : 전투 능력 강화석 1개, 300코인 소모
그런데 4단계부터는 강화 시 코인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전투 능력 강화석이라는 것도 하나 필요했다.
‘저 강화석은 어디서 구하는 거지?’
괴물들에게서 드롭되는 아이템인 것일까?
어쨌든 그것은 나중에 300코인을 모은 이후에나 고민할 문제.
지금은 이곳에 있는 좀비들을 모조리 처치하며 코인을 모으는 게 급선무였다.
“바람의 화살!”
재윤은 그 사이 배관을 타고 발코니 위로 올라온 좀비의 목을 노려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푸확!
화살이 좀비의 목을 관통한 순간 머리가 잘리듯 몸체에서 떨어져나갔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대박이야. 확실히 데미지가 늘었어.’
방금 전에는 약점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3단계로 강화된 바람의 화살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는지 시험도 해볼겸 일부러 약점이 아닌 부위를 노려보았다.
그런데도 한 방에 좀비가 죽었다.
이제 좀비들 따위는 약점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고 적당히 머리나 목 부위를 노려 바람의 화살을 날리면 해치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재윤은 그것을 알고 난 후에도 여전히 약점 부위를 정확히 노려 좀비들을 공격했다.
방금 전에는 그냥 좀비들의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일종의 실험 정신으로 약점이 아닌 곳을 공격했을 뿐, 계속 그런 식으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
대충 공격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할 수 있어서였다.
‘귀찮고 피곤하지만 반복 수련을 통해 익숙하게 만들자.’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피곤할 것도 없었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좀비의 약점 포인트를 정확히 노려 공격을 날릴 수 있게 될 테니까.
검도의 각 동작들을 수련하며 그같은 경험을 해봤던 재윤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런 식으로 정신없이 좀비들을 상대하다 보니 어느덧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해 Lv9가 되었다.
【레벨】 9
【생명력】 70/70(↑10)
【파투스】 26/26(↑1)
【스탯】
근력 5
체력 7(↑1)
민첩 10
지능 4
곧바로 보너스 스탯을 체력에 분배한 후 아래쪽을 살피니 그 사이 드롭된 아이템이 두 개 보였다.
토벌 임무서 두루마리와 반지 하나!
‘반지가 또 나왔네.’
아무래도 피묻은 어둠의 반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5개 세트 아이템 중 2개를 확보한 것이리라.
‘반지는 천천히 주워도 되지만 토벌 임무서가 나왔다면 얘기가 다르지.’
이제 남아 있는 좀비들은 10여 마리 정도.
D급 토벌 임무서라도 얻게 되면 레벨을 한 단계 더 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귀찮긴 하지만 또 다시 좀비들을 한 바퀴 돌리기로 했다.
재윤은 현관문으로 내려가 좀비들의 주의를 끌었고, 그렇게 옥상까지 놈들을 유인했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좀비들은 처음인 것처럼 따라왔다.
덕분에 재윤은 손쉽게 아래로 내려와 아이템을 루팅할 수 있었다.
[좀비 토벌 임무서(E)를 얻었습니다.]
[피묻은 어둠의 반지를 얻었습니다.]
예상대로 피묻은 어둠의 장신구 세트 아이템 중 하나였다.
* 피묻은 어둠의 반지
-등급 : 희귀(★★)
-분류 : 파투스 장신구
-내구도 28/28
-장착 효과 : 어둠 저항 4
-장착 제한 : Lv7
-착용 부위 : 손가락
-세트 효과 : 있음[설명]
그런데 똑 같은 피묻은 어둠의 반지라 해도 이번 것이 성능이 더욱 좋았다.
‘별의 숫자가 많을수록 더 좋은 건가?’
그렇게 따지면, 왼손에 착용 중인 반지는 희귀 1성이고, 이번에 얻은 것은 희귀 2성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둠 저항이 2가 더 높았다.
‘좀비들은 반지만 드롭하는가 보네.’
그렇다면 귀고리와 목걸이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 걸까?
일단 오른 쪽 중지에 반지를 끼었다.
[어둠 저항이 4 상승합니다.]
그 순간 어둠 속의 시야 거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재윤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좀비 토벌 임무서 두루마리를 펼쳤고, 곧바로 수락했다.
[임무 【좀비 토벌(E)】이 수락되었습니다.]
[4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당신의 코인 잔액은 45입니다.]
‘됐어. 이제 남아 있는 좀비들을 모두 처치하러 가자.’
재윤은 다시 현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분하게 좀비들을 발코니쪽으로 유인해 하나씩 해치웠다.
【좀비 토벌】
-임무 수행 중 : 5/5(완료)
어둠 저항이 늘어난 덕분에 바람의 화살이 없이도 근거리는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고, 바람의 화살은 3단계가 되며 매우 강력해졌다.
그런데다 좀비들을 상대하는 요령까지 터득하다보니 재윤은 어렵지 않게 그것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당신은 임무 【좀비 토벌(E)】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40코인을 얻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임무 완료!
그러나 E급 토벌 임무서다 보니 보상 경험치가 그리 높지 않아 레벨은 오르지 못했다.
‘그나저나 어디서 좀비들이 또 나타났지?’
거의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새로운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땅바닥에서 시커먼 연기 같은 것이 피어나며 그것이 좀비의 형체로 변했다.
‘미친다 진짜.’
이러다 정말 날이 셀 때까지 좀비들만 죽여야 하는 건 아닌지.
물론 좀비들을 많이 죽이면 레벨을 올릴 수 있으니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파투스】 3/26
‘파투스가 얼마 안 남았어.’
그 후로 계속 좀비들을 처치했는 데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
레벨 9에서 레벨 10으로 올라가는 요구 경험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남아있는 파투스는 고작 3 포인트.
이걸로 좀비 3마리를 죽일 수 있지만, 만약 그러고도 레벨이 오르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좀비들이 지금 재윤에게 장난처럼 죽고 있지만, 그거야 바람의 화살을 날릴 파투스가 있을 때의 얘기다.
파투스가 모두 소진되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좀비들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어디라도 피해야하나.’
바람의 화살 3방에 목숨이 달렸다.
좀비 3마리를 처치한다고 레벨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으니 모험을 할 수는 없는 일.
그것들은 아주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아껴둬야할 최후의 방어수단이었다.
‘파투스를 회복할 방법을 모르니 골치 아프네.’
그렇다고 재윤이 파투스를 남발한 것도 아니었다.
한 방 한 방 집중해서 약점을 향해서만 날렸으니까.
즉, 사실 이것은 언제고 한 번 닥칠 문제였다.
이번에 운 좋게 레벨 10까지 올렸다고 해도 그 다음에 레벨 11을 달성하는 사이에 닥쳤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이후에라도 말이다.
“쿠어어어!”
“키키키!”
그 사이 좀비들은 더 많이 몰려들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숫자만 수십 마리.
‘서둘러야겠군.’
여기서 숫자가 더 늘어나면 아까처럼 놈들을 옥상으로 유인해 도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
이대로 집안에 갇혀 있다가 좀비들에게 포위당해 죽느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곧바로 그는 현관문 쪽으로 이동해 좀비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후 옥상까지 유인했다.
‘됐다!’
그런 식으로 다시 난간에서 뛰어내려오니 무사히 집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이로써 좀비들의 소굴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
나오기 전에 바닥에 드롭되어 있는 최하급 생명력 물약 하나를 주워 바지 뒷주머니에 넣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서 웬 빛이 번쩍였다.
‘저 빛은 뭐지?’
재윤은 흠칫 놀랐다.
괴수의 안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환한 빛이지만, 만약 이것이 안광이라면?
대체 얼마나 엄청난 괴수가 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빛 너머에서 뭔가가 막 달려오는 소리도 들렸다.
‘침착하자!’
부디 바람의 화살 3방에 해치울 수 있는 괴수이기를.
재윤은 숨을 죽인 채 전방을 노려봤다.
“으으! 거, 거기? 재윤이냐? 재윤이 맞지?”
그런데 그때 들려온 뜻밖의 음성.
다름아닌 이민철이었다.
다 죽어가는 듯한 음성이었지만 틀림없었다.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된 이민철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 손에는 랜턴을 다른 한 손에는 골프 스틱을 쥔 채였다.
“하하하! 너 용케 살아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민철이 형! 어떻게 된 거야? 형이 왜 여기에?”
게다가 저 랜턴은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재윤의 집에 있던 랜턴은 배터리가 나가 작동하지 않았다.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런 걸 물어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민철의 뒤쪽으로 좀비들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일단 튀어! 지금 뒤쪽에 좀비들이 쫓아오고 있다.”
“잠깐! 저 집은 안 돼! 좀비 소굴이야.”
그 사이 재윤의 뒤쪽으로도 좀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랜턴을 그쪽으로 비춰본 이민철은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우글거리자 기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쪽으로!”
이민철은 랜턴을 비춰 좀비가 안보이는 쪽을 가리키며 뛰었다.
재윤은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 보니 이민철은 상당히 지쳐 있는 기색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형? 왜 안전 지대에 안 있고 여기로 나왔어?”
재윤이 뛰며 묻자 이민철이 한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젠장! 밖에 좀비들이 우글거린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잠이 안 오더라. 우리가 하루 이틀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나만 살겠다고 안전 지대 안에 웅크리고 있을 수도 없고.”
안전 지대 관리자인 한혜미는 밤에도 집 주변 일정 거리에 뭐가 나타났는지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밖에 좀비가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은 이민철은 재윤이 걱정되어 달려온 것이다.
“미쳤어! 형 제 정신이야?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안 그래도 도망다니느라 죽을 뻔했다. 하지만 입장 바꿔서 너라면 안 오겠냐?”
하긴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재윤 역시 그 입장이 되었으면 이민철처럼 행동했을 테니까.
친형제는 아니지만 십수 년을 같이 친구처럼 지낸 형이기 때문이다.
그런 형이 좀비들에게 죽을 지경에 처했다면 당연히 구하러 왔을 것이다.
“참, 너 지금 민첩이 몇이냐?”
“민첩? 10인데?”
그러자 앞서 뛰던 이민철이 고개를 홱 돌려 재윤을 쳐다봤다.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 커져 있었다.
“정말? 진짜 민첩이 10이냐?”
“어. 그런데 왜 묻는 거야?”
“근력은?”
“근력은 5.”
“그래?”
이민철이 만면에 미소를 짓더니 곧바로 재윤에게 골프 스틱을 내밀었다.
“하하하! 너 이 형 덕분에 득템한 줄 알아라.”
“웬 골프채?”
“그냥 골프채가 아니고 파투스 무기다.”
“파투스 무기라면? 설마?”
“맞아. 이정숙 여사님이 만든 거야. 근력 3에 민첩 8 제한이 붙어 있어서 아무도 쓸 수가 없는데, 너라면 가능하겠지.”
“······!”
[희귀한 크로거 골프 스틱을 얻었습니다.]
곧바로 들리는 알림!
그야말로 예상 밖의 득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