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좀비 잡고 레벨 업! (1)
세상이 이상하게 변한지 3일 째 밤.
재윤은 밤을 안전하게 보내기 위해 낯선 건물에 들어왔지만 이곳은 오히려 더 위험한 장소였다.
악어의 머리에 인간의 몸체를 가진 괴수 크로거들이 날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죽은 시체인 좀비까지 득실거렸다.
“키아아아!”
“키키키······!”
썩어문드러진 얼굴에 번쩍이는 시뻘건 눈알들.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입.
그 주위로 묻어 있는 저 살점들은 누구의 것일까?
차라리 인간이 아닌 맹수나 괴물의 얼굴이라면 좋을 텐데.
외모로 주는 공포심은 크로거들보다 좀비들이 훨씬 강력하게 느껴졌다.
괴물이 같은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뭔가 더 섬뜩했으니까.
‘나도 죽으면 저꼴이 되는 건 아니겠지?’
혹시 최근에 크로거에 의해 죽은 시체들이 좀비가 되어 다시 나타난 것이라면?
제발 그런 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겠구나.’
좀비들이 집 안에만 10여 마리가 있었는데, 현관문 밖에서 3마리가 더 들어왔다.
그 뒤로 또 몇 마리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일단 위로.’
재윤은 계단을 타고 저택의 2층으로 뛰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현관을 통해 나가는 길이 막혔으니 어쩔 수 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을 뿐.
그러나 좀비들은 2층에도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좀비들의 움직임은 꽤 느리던데 이놈들은 뭐가 이렇게 빨라.’
비틀거린 채 다가오고는 있지만 속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크로거들처럼 바람의 화살 이외에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둔기로 좀비의 머리를 후려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믿을 건 역시 바람의 화살 뿐인가?’
다행히도 좀비들은 크로거에 비하면 움직임이 상당히 느린 편일 뿐만 아니라, 지능이나 동체 시력은 비할 수 없이 떨어졌다.
만약 좀비들이 그것들의 숫적 우위를 전술적으로 이용해 재윤을 효과적으로 포위했다면 벌써 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좀비들은 그저 재윤을 향해 조급히 다가오려고만 할 뿐이었다.
먹잇감을 향해 본능적으로 덤벼드는 물고기떼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와중에 서로 몸을 부딪히거나 심지어 뒤엉켜 넘어지는 것도 예사였다.
‘숫자는 많아도 크로거들에 비하면 상대하기 쉬운 녀석들이야.’
물론 그렇다 해도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좀비들이 멍청해 보여도 그것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끝장이니까.
그 동안 레벨을 6까지 올리며 민첩에만 올인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미 좀비들의 먹잇감이 되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바람의 화살!”
푸확!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바람의 화살을 즉각 소환했지만, 무턱대고 날리지는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바람의 화살은 공격 수단이라기 보다는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좀처럼 피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을 경우 가장 근접한 좀비의 머리를 날려버리면 잠시나마 피할 만한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꾸으으으!”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
화살에 맞아 머리 한쪽이 함몰된 좀비가 뒤로 넘어지며 마치 도미노처럼 뒤따라 오던 좀비들을 연달아 넘어뜨렸다.
우르르르!
우다탕! 쿠쾅!
좀비들이 그렇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틈을 타 재윤은 3층, 다시 옥상까지 올라가며 좀비들을 따돌렸다.
그러나 좀비들은 금세 옥상으로 쫓아올라왔다.
비좁은 옥상문을 통해 좀비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 29초가 지나 바람의 화살을 소환할 수 있었지만 재윤은 섣불리 그것을 발사하지 않고 옥상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3층 발코니 쪽으로 뛰어내려도 되는 구조야.’
화살이 미세하지만 빛을 발산하고 있다보니 지금처럼 캄캄한 공간에서는 랜턴과 같은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키이이!”
“키아아아!”
좀비들이 계속 몰려왔다.
재윤은 최대한 놈들이 옥상으로 많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일순간 난간에서 3층 발코니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곳에서 3층 계단을 따라 2층, 그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좀비들이 모조리 옥상에 몰려간 상황이다보니 아래층들은 텅 비어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구나.’
재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로거들이라면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놈들은 민첩성이 높아 재윤을 따라 옥상에서 3층으로 뛰어내리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좀비들은 갑자기 재윤이 옥상에서 사라져버리자 허둥대고만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재윤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제 밖으로 도주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밤에 과연 집 밖이 더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을까?
사방은 암흑으로 뒤덮여 있고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
물론 바람의 화살이 일종의 조명 역할을 해주어 근거리의 시야는 확보할 수 있지만, 그래봤자 그것을 발사한 이후 29초 동안은 다시 암흑 속에 있어야 한다.
‘어차피 밖으로 나간다고 더 안전한 장소를 발견한다는 보장도 없어.’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재윤은 좀비 사냥을 하기로 했다.
특히 방금처럼 집 구조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좀비들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저기 벌써 한 놈이 내려오네.’
좀비 하나가 특유의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머리의 반쪽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까 재윤에게 한 방 맞은 녀석이 분명했다.
“딱 걸렸어.”
재윤은 즉시 바람의 화살을 날렸다.
퍼억!
남아 있던 머리마저 사라진 좀비는 뒤로 날려가듯 처박히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좀비에 대한 E급 지식을 얻었습니다.]
해치웠다.
크로거가 아닌 괴물을 죽인 것은 지금이 처음.
【보유 지식】
-크로거(C)
-좀비(E)
덕분에 보유 지식이 하나 늘었다.
* 좀비
-획득 지식 등급 : E
-좀비에게 주는 피해 5% 증가
이제 좀비와 전투를 벌일 때 그만큼 유리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C등급까지는 올려야 해볼만 해.’
약점을 볼 수 있어야 그때부터 한 방에 한 놈씩 보낼 수 있을 테니까.
“크아아······!”
“쿠아아아!”
그 사이 좀비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따라 우르르 내려왔다.
‘좋아. 계속 내려와라.’
재윤은 피하기 좋게 현관문 앞쪽에 선 채로 좀비들이 최대한 1층으로 몰려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좀비들이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 놈들을 피해 현관문 밖으로 나간 후 가스 배관을 이용해 2층 발코니쪽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하면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좀비들은 동작이 둔해서 재윤처럼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로 올라오려고 난리가 벌어졌고, 그러다 용케 그 중 한 놈이 가스 배관을 통해 2층 발코니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
그 사이 이미 29초의 시간이 지난터라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소환해둔 상태.
“다시 내려가!”
푸확!
“꾸어어억!”
가슴에 화살을 맞은 좀비가 그대로 밀려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놈에게 깔려 뒤따라 오던 다른 좀비도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쿠아아아!”
“키이이이!”
좀비들이 아우성쳤다.
눈 앞에 먹잇감이 보이는데 잡을 수가 없으니 미쳐서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놈들은 현관문 안 쪽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배관을 타고 올라오려고 기를 쓰고 있을 뿐.
게다가 좀비들은 서로 올라오려고 험악하게 실랑이를 벌였다.
물론 그런 경쟁을 뚫고 올라오는 녀석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 사이 29초의 시간은 훌쩍 지난 터였다.
‘진짜 멍청한 놈들이네.’
덕분에 재윤은 2층 발코니에 선채로 느긋하게 기다리다 한 놈씩 올라오는 놈들만 공격하면 되었다.
개꿀이라는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표현이리라.
푸확!
“꾸아아악!”
2층으로 거의 다 올라온 좀비 하나가 머리가 박살나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좀비에 대한 지식이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합니다.]
덕분에 지식 등급 상승!
‘좋았어. 이제 한 등급만 더!’
재윤이 배관을 타고 2층으로 올라온 건 좀비들을 따돌리며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줄이야.
공격받지 않는 안전한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좀비들을 사냥할 수 있게 된 이상 레벨 업은 시간 문제였다.
‘침착하자. 실수하면 골치아파져.’
재윤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기다렸다가 올라오는 녀석만 타이밍을 잘잡아 해치우면 되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일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좀비가 발코니에 거의 올라왔을 때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놈이 떨어지며 그 아래 막 올라오기 시작한 다른 좀비들을 깔아뭉개게 된다.
그럼 그 사이 29초의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다.
‘1, 2, 3, ······, 16, 17, 18······’
바람의 화살은 소환한 시점이 아니라 발사한 시점부터 재사용 시간이 카운트된다.
다행히 이제 재윤은 시계를 보지 않고도 머릿속에서 재사용 시간의 초를 거의 정확히 잴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어디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저절로 터득한 본능적 감각이었다.
“키키킥!”
그 사이 좀비 한 녀석이 재윤이 있는 2층 발코니에 거의 다 올라왔다.
상체가 모두 드러난 상황.
이대로라면 곧 하체까지 올라오게 될 것이다.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있는 걸 보니 이미 재윤에게 한 방 맞았던 녀석이었다.
‘······26, 27, 29.’
바로 지금이다.
“바람의 화살!”
재윤은 즉각 화살을 소환한 후 발사했다.
퍼억!
머리가 터진 좀비는 뒤로 넘어가며 그 밑에서 올라오던 좀비들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재윤은 뿌듯했지만 다시 재사용 시간의 초를 재고 있었다.
‘1, 2, 3, ······’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안 되는 상황이니 속으로 피가 마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놈을 해치웠을까?
[좀비에 대한 지식이 D급에서 C급으로 상승합니다.]
지식 등급이 또 올랐다.
* 좀비
-획득 지식 등급 : C
-좀비에게 주는 피해 15% 증가
-좀비 처치 시 아이템 획득할 확률 증가
-좀비의 약점 파악 가능
[이후로 당신은 좀비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한 방에 한 놈씩 해치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재윤은 방심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현관문을 통해 다시 들어와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크로거라도 한 마리 나타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터라 사방을 경계해야 함은 당연했다.
하지만 천만다행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좀비들은 계속 모여들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재윤이 있는 곳으로 올라오려 기를 쓸 뿐이었다.
‘얼마든지 와라! 다 죽여줄 테니까.’
어차피 오늘 밤은 잠자긴 틀렸다.
재윤은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좀비들을 향해 공격을 날렸고, 그렇게 하나씩 좀비들은 쓰러져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디어 레벨 업!
재윤은 그 즉시 보너스 스탯을 체력에 분배했다.
단기전은 민첩이지만, 장기전은 체력의 승부다.
크로거들에게 쫓기며 재윤은 체력의 절실함을 깨달았다.
【이름】 강재윤
【레벨】 7
【생명력】 50/50(↑10)
【파투스】 24/24(↑1)
【스탯】
근력 5
체력 5(↑1)
민첩 10
지능 4
【잔여 스탯 포인트】 0
【코인】 125
덕분에 생명력도 10이 올랐다.
비록 10이지만 몸 전체에 활력이 넘치는 게 체감으로는 체력이 크게 좋아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