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자생존-10화 (10/200)

10화.  안전 지대 (1)

이민철이 재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재윤아! 어떻게 된 거야? 너도 혹시 각성했냐?”

질문은 하지만 거의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렇게 됐어.”

“하긴 각성 안했으면 여기까지 살아오지도 못했겠지.”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형?”

“나도 몰라. 세상이 완전히 미친 것 같다. 여기는 우리가 알던 그 세상이 아니야.”

이민철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다 돌연 물었다.

“근데 방금 전 그건 무슨 능력이냐?”

“바람의 화살! 형은?”

“난 강철의 가호! 잠시 동안 전신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준대. 이거 무슨 게임도 아니고!”

전신이 강철처럼 단단해진다니!

크로거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하다 했더니 그런 놀라운 능력을 얻은 것이다.

“와! 대박인데?”

“대박은 무슨! 방어력은 엄청 높아지는데 공격력은 전혀 없다.”

재윤처럼 이민철도 각성자의 시험을 통과한 후 100코인의 보상을 받았다.

그것으로 능력을 강화해 강철의 가호(Lv2)가 되었다.

그러면서 부가적으로 생겨난 능력은 몬스터 도발이었다.

강철의 가호를 펼치는 순간 일정 반경 이내에 있는 몬스터들은 이민철만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강철 방어력에 도발까지! 완전 탱커잖아.”

“게임으로 치자면 그런 셈이지만 정말 죽을 맛이야.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 너 같으면 맞으면서 버티는 능력이 좋을 것 같냐?”

이민철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는 간략하게 자신이 각성을 하게 된 과정을 얘기했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헬스장에 있던 그는 담배도 사올겸 잠시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괴물이 튀어나오며 난리가 벌어졌다.

그때 갑자기 괴상한 음성이 들려오며 시간의 틈새라는 곳으로 이동해 각성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크로거의 공격을 버텨가며 죽어라 도망다니다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때 각성자들도 꽤 있었어. 손에서 불을 쏘고 너처럼 화살을 날리는 사람들 말이야. 근데 그 사람들 다 죽었다. 난 내가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도 안 나.”

손에서 불을 쏘건 화살을 쏘건 크로거에게 한 대라도 맞으면 버티기 힘들다.

재윤도 크로거의 괴력이 깃든 주먹에 맞아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이민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강철의 가호라는 사기적인 능력 덕분일 것이다.

“근데 여기로는 크로거들이 안 쫒아왔어?”

“쫓아왔지. 하지만 여기는······.”

이민철은 거기까지 말하다 문득 말을 흐렸다. 옆의 두 남자의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어 보였다.

그때 남자들이 걸어왔다.

“둘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군.”

“예, 사장님. 재윤이라고 저랑 친동생처럼 친한 녀석이에요.”

이명철은 그들을 재윤에게 소개했다.

50대 남자는 한태진, 20대 청년은 한지성, 둘은 부자지간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재윤입니다.”

“그래. 자네도 각성을 했다고?”

“예.”

그러자 한태진은 잠시 재윤을 훑어보듯 살폈다.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랜 세월 베인 그의 습관인 것 같았다.

금테 안경을 낀 눈빛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는데,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던 한태진은 금세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혼자서 저 숲을 통과해 이곳에 오다니 놀랍군. 어쨌든 고맙네. 자네 덕분에 저 놈을 드디어 한 마리 해치웠어.”

한태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크로거의 사체를 가리켰다.

그때 그의 아들인 한지성은 페트병에 죽은 크로거의 피를 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재윤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 피를 뭐하러 담고 있는 거야?’

설마 먹으려는 건가?

하긴 재윤 역시 딸기 열매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크로거의 고기를 먹을까 고민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럴 거면 살코기를 잘라야지 왜 피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한태진은 뭔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그럴 일이 있지. 만나서 반가웠네.”

그는 더 이상 재윤에게 볼일이 없다는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의 아들 한지성도 재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한태진을 따라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재윤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딱 봐도 그만 여기를 떠나라는 것 같은 눈치였다.

‘뭐지?’

처음 만난 사이니 그런 거야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거야 본래의 세상이었을 때 얘기고,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 아닌가.

사방이 괴물이 득실거리는 이상한 세계로 변해버렸다.

이런 때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일 텐데, 한태진과 한지성에게는 재윤을 오히려 경계하는 듯한 냉정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재윤아, 어쨌든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다 죽은 줄 알았어.”

그때 이민철이 다가와 재윤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형. 근데 크로거의 피는 왜 담아갔어?”

“크로거?”

그러고 보니 지식 획득을 통해 악어 머리 괴물이 크로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재윤과는 달리 이민철은 크로거가 뭔지 알지 못했다.

“저놈이 바로 크로거야.”

“어떻게 그런 걸 알았냐?”

“지식 특성을 얻었거든.”

“그런 특성도 있어?”

“형 특성은 뭔데?”

“내성 B등급. 설명에는 레벨이 오를수록 여러 저항력이 빠르게 오른다고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내성(B) 특성에 강철의 가호(Lv2)까지!

그는 그야말로 훌륭한 탱커의 자질을 가진 각성자였다.

앞으로 레벨이 오를수록 탱커로서의 능력은 더욱 빛날 것이다.

‘민철이 형이랑 같이 있으면 레벨 업이 쉽겠는 걸.’

무엇보다 민철은 도발 능력이 있다.

크로거가 여러 마리 나타나도 민철이 도발로 끌어들이면 재윤은 매우 안전하게 능력을 펼쳐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니 그것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재윤이 묻기 전에 이민철이 먼저 그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재윤이 너니까 솔직히 말할게. 여긴 지금 안전 지대가 인원 제한이 걸려 있어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수 없는 상태야.”

“안전 지대?”

재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민철이 끄덕였다.

“안전 지대로는 괴물들이 못들어 와. 아니었으면 나뿐 아니라 모두가 죽었겠지.”

재윤은 깜짝 놀랐다.

괴물이 들어오지 못하는 안전 지대가 존재할 줄이야.

“들어보니 안전 지대는 처음 발견한 사람이 관리자로 등록된다고 하더라.”

“관리자?”

“말이 관리자지 그냥 주인이야. 안전 지대에 원하는 사람만 출입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어.”

한태진의 딸인 한혜미가 안전 지대 관리자가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그녀는 각성자는 아니지만 준각성자나 다름없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인원 제한이 몇 명인데?”

“딱 다섯 명뿐이야. 그 이상은 안전 지대로 들어올 수 없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려면 기존에 있던 사람을 내보내야만 하는 식이지.”

한태진과 부인 이정숙, 그리고 아들 한지성과 딸 한혜미.

그렇게 한태진의 가족 네 명을 제외하면 한 자리가 비는데 거기에 이민철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를 보는 표정이 그런 거였나.’

사정이 그렇다면 재윤은 굳이 안전 지대에 합류하게 해달라고 조를 생각은 없었다.

누구나 가족이 가장 우선이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가족을 내보내고 처음 보는 사람을 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민철이 쫓겨날 수밖에 없는데, 친한 형을 내쫓고 그 자리에 들어가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다른 안전 지대가 또 있겠지.’

차라리 다른 안전 지대를 발견해 그곳의 주인이 되겠다!

그렇게 안전 지대를 확보한 후 부모님을 찾아 그곳으로 모시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재윤이 가진 소박한 희망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크로거 피는 어디다 쓰려는 거지?”

“여사님이 그게 있어야 파투스 무기라는 걸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말이야.”

“파투스 무기?”

“파투스의 힘이 깃들어 있는 무기라는데 나도 뭔지는 잘 몰라. 여사님 말로는 그게 있으면 괴물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거야.”

한태진의 부인인 이정숙은 각성자였다.

다만 전투 능력은 없고 파투스 무기를 제작하는 능력을 각성했다고 했다.

이민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사장님네 정말 운빨 죽이는 집안 아니냐? 이 와중에 가족들이 다 살아남은 것도 대박인데, 딸은 안전 지대 관리자가 되고 부인은 제작 능력 각성자라니!”

재윤은 끄덕였다.

들어보니 정말 부러운 집안이었다.

“대단하네. 난 부모님 생사도 모르는데.”

“그건 나도 그래. 제발 어떻게든 살아계셨으면 좋겠다.”

이민철도 부모님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괴물 피를 구해야 했는데, 괴물이 안 죽어서 문제였지. 너도 아까 봤지만 그놈들은 골프 스틱에 머리를 아무리 맞아도 꿈쩍도 안 해.”

“그럴 거야. 나도 바람의 화살로만 피해를 줄 수 있었어.”

“정말 재윤이 네 덕분에 살았다. 네가 아니었으면 우린 또 포기하고 안전 지대로 도망쳤을 거야.”

들어보니 이민철과 한태진, 한지성은 괴물의 피를 구하기 위해 꽤나 애를 썼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재윤 덕분에 이번엔 성공한 것이다.

“그럼 형 지금 레벨이 몇인데?”

“아직 레벨 1이야. 공격이 안 통하니 방법이 없잖아.”

혹시나 싶어 강철의 가호를 펼친 채로 괴물들을 향해 쇠파이프로 휘둘러 보고, 주먹도 휘둘러봤지만 다 소용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나와 파티로 그놈들과 싸우는 게 어때? 레벨을 올려야 스탯이 늘어나 더 강해질 수 있어.”

“나야 물론 환영이지. 그보다 넌 레벨이 몇인데?”

“지금 6.”

그러자 이민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벌써 6이라고?”

“말도 마.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어.”

“어쩐지 크로거라는 괴물을 한 방에 보낸다 했더니! 정말 대단하다!”

“참 레벨 1업 당 보너스 스탯은 1 포인트씩 올라.”

“겨우 1?”

“그래도 1포인트만 올려도 정말 다르다는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야.”

“넌 무슨 스탯을 올렸는데?”

“난 형처럼 방어력이 좋지 않으니 회피를 위해 민첩에 투자했지만 형은 아마도 근력을 올리는 게 좋겠지.”

이민철이 미소 지었다.

“맞아. 그 시간의 틈새인가 하는데서 알려줬다. 난 근력을 올리면 강철의 가호가 가진 방어력이 늘어난다고.”

역시 예상대로였다.

“앞으로 형이 탱커로 잘 버텨만 주면 괴물들을 죽이는 건 내가 알아서 할게.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쉬고 내일부터 하자.”

“그래야지. 그보다 넌 어디서 밤을 보낼 거냐? 여기 밤이 되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무슨 괴물이 나타날지 모르니 밖에 있으면 위험해.”

“난 안전 지대 아니어도 상관없어. 건물 안 아무데나 들어가서 쉬면 될 거야.”

재윤은 한태진과 한지성이 들어간 집을 가리켰다.

그곳은 독채형 고급 빌라 건물로 3층짜리 건물이었다.

설마 저 큰 건물 전체가 안전 지대는 아닐 테고 말이다.

“못 들어가. 저 집 전체가 안전 지대로 인원수 다섯 명 제한이야.”

이민철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씩 웃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말해볼 테니 오늘은 네가 들어가서 쉬어라. 내가 밖에서 어떻게든 버텨볼게.”

“형이 밖에 있겠다고?”

“걱정 마. 난 여간해서는 죽지 않을 자신이 있어.”

이민철이 아무리 탱커로서 각성했다지만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어둠의 숲에서 밤을 보내는 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윤을 위해 그것을 감수하겠다니.

재윤은 왠지 마음이 뭉클했지만 그런 식으로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이민철이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밤새도록 괴물들에게서 버티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가장 가까운 다른 건물은 어느 쪽이야?”

“그거야 저쪽이긴 한데, 잠깐! 위험해! 지금은 너무 늦었어!”

“내일 봐, 형. 날이 밝으면 여기로 찾아올게.”

재윤은 그 말을 끝으로 이민철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

그 사이 날이 더욱 어두워져 시야가 많이 제한되었지만, 완전히 캄캄한 상태는 아니다 보니 그나마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저 건물인가 보네.’

다행히 한참을 달리자 건물 하나가 보였다.

한태진의 저택과 비슷한 형태의 독채형 고급 빌라.

재윤은 주저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