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토벌과 보상 (1)
[크로거 토벌 임무서(D)를 얻었습니다.]
종이 두루마리를 주워드는 순간 들려오는 음성.
[임무를 받기 위해서는 코인을 지불해야 합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실패 시 당신은 코인만 잃게 될 것입니다.]
‘임무라고?’
그게 뭘까?
‘퀘스트 같은 건가?’
그보다 도대체 게임의 시스템 알림처럼 주어지는 이 음성은 누구의 것일까?
어쨌든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안에 웬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치 한글을 읽는 것처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크로거 토벌】
-임무 등급 : D
-자격 조건 : 크로거 지식 등급 D 이상.
-내용 : 크로거 12마리 처치, 제한 시간 없음.
-완수 보상 : 100코인, 소정의 경험치
-가격 : 10코인
‘오!’
경험치도 얻고 코인도 벌고!
이런 건 무조건 해야 한다.
‘경험치도 경험치지만 10코인을 주고 100코인을 벌 수 있다니 대박이잖아.’
코인이 많아지면 공격 능력인 바람의 화살을 다음 단계로 강화할 수 있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달랑 1코인씩만 얻고 있는데, 100코인의 보상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어차피 크로거들은 이런 임무가 없어도 잡아야 한다.
재윤으로서는 덤으로 경험치와 코인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수락!’
두루마리 아래 【수락】이라는 버튼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재윤은 그곳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당신은 크로거에 대한 C등급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 이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현재 당신의 코인 잔액은 12입니다.]
[10코인을 지불해 임무 【크로거 토벌(D)】을 수락하겠습니까?]
“예. 수락합니다.”
[임무 【크로거 토벌(D)】이 수락되었습니다.]
그 순간 종이 두루마리가 사라지며 임무 창이 환상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게임의 퀘스트 창과 비슷하지만, 모니터가 아닌 현실 공간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10코인이 지불되었습니다.]
[당신의 코인 잔액은 2입니다.]
‘이런 임무가 많이 생겨나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이 숲에는 더 이상 크로거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뒤져도 크로거는 한 마리도 없었다.
‘오늘은 좀 더 멀리 가볼까?’
숲을 돌아다니다 보니 딸기 형상의 붉은 열매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맛은 별로지만 허기와 갈증을 면하게 해주는 필수 식량.
‘일단 하나만 챙겨두자.’
하룻밤 만에 생수와 통조림이 모두 상해버리는 판이니 열매를 미리 잔뜩 따는 건 무의미한 짓이리라.
‘열매들의 위치를 기억해두고 그때그때 따서 먹는 게 좋겠지.’
따지 않은 열매가 상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재윤은 열매 하나를 주머니에 넣은 후 조심스레 숲을 헤치고 나갔다.
집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정도를 뒤덮은 숲.
그런데 그동안 안개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뿐 숲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시야 거리가 제한되어 있어 다 볼 수 없지만 어디를 봐도 밀림처럼 숲이 우거져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냐?’
그래도 무작정 숲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건물들이 듬성듬성 숲 가운데 보였기 때문이다.
각 건물들의 거리는 대략 100여 미터.
설마 이런 식으로 끝없이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보다 나 말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제발 누구라도 살아 있기를.’
재윤은 가장 가까운 건물쪽으로 이동했다.
물론 섣불리 건물로 접근하기보다 근처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크로거가 3마리나 있었다.
2마리 정도면 먼저 한 놈을 해치우고 도주하며 재사용 시간을 기다려볼 수도 있겠지만, 3마리는 무리였다.
‘흩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재윤은 멀리서 몸을 숨긴 채 놈들을 주시했다.
크로거들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방을 어슬렁거리는 터라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그 중 한 놈이 재윤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온 것이다.
“크르르!”
재윤은 당황하지 않고 놈의 약점을 찾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어째서 안 보여?’
약점은 어린아이 주먹만한 크기의 파란색 점으로 표시되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크로거의 몸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재윤은 크로거의 공격을 피하며 잽싸게 놈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역시나 뒤통수에 파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쩐지.’
곧바로 그곳에 바람의 화살을 박아넣자 놈은 꽥 소리를 내며 맥없이 쓰러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최하급 생명력 회복 물약을 얻었습니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 1/12
‘뭐? 물약?’
그러고 보니 재윤은 쓰러진 크로거의 몸 근처에서 붉은 색의 작은 약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홍삼 드링크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평범한 물약이 아니었다.
* 최하급 생명력 회복 물약
-복용 즉시 하락한 생명력이 40만큼 회복된다.
-신비한 파투스의 기운이 깃들어 오래 보관해도 약효가 변하지 않는다.
-재사용 대기 시간 10초
‘오!’
말로만 듣던 포션이었다.
부상을 당했을 때 이 물약이 있으면 빠르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재윤의 생명력은 40.
그런데 이 회복 물약의 회복력도 40이다.
이 말은 재윤이 죽기 직전의 처참한 부상을 입어도 이 물약 하나면 말끔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뜻.
어떻게 보면 여분의 생명을 하나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유통기한이었다.
설명대로라면 약효가 변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크로거가 이런 것도 드롭하는구나.’
지식 효과로 아이템 획득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약을 얻었다고 좋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사이 근처에 있던 다른 두 마리의 크로거가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일단 뛰자.’
재윤은 약병을 주머니에 넣은 후 뒤로 미친 듯 뛰었다.
물론 무작정 뛰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놈들을 유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숲에는 장애물들이 많아 두 마리를 따돌리며 시간을 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9초에 하나씩!
1분 만에 두 놈을 가볍게 해치웠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 3/12
‘좋아! 잘하고 있어.’
재윤은 이제 크로거 두 마리쯤은 동시에 상대할 자신이 생겼다.
‘이 근처에는 크로거들이 없는 것 같으니 저 건물에 들어가보자.’
곧바로 건물 입구 앞에 선 재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여긴 우리 집 옆건물이잖아.’
재윤이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 건물 옆에 위치한 또 다른 다세대 주택 건물.
바로 옆 건물이니 그 형태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옆 건물이 무려 100미터도 넘게 이동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로 정체불명의 숲이 생겨나고 말이다.
‘어쨌든 들어가보자.’
재윤은 더 이상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온종일 그런 의문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이유는 언젠가 알 수 있겠지. 내가 살아남는다면.’
그렇다.
지금은 이 괴상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소환한 채로 조심스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1층을 살피고 지하, 그리고 2층과 3층 4층을 모두 살폈다.
심지어 옥상까지 올라가 둘러봤지만.
‘텅 비었어.’
재윤은 탄식했다.
‘생존자가 한 명도 없어. 다 죽은 거야.’
각 층마다 두 세대씩 도합 10세대가 살고 있는 건물.
각 집의 내부는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모두 시체 상태에서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재윤은 맥빠진 표정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멀리 보이는 다른 건물 쪽으로 향했다.
‘좌측에 크로거 둘, 오른쪽에 하나.’
도중에 또 다른 크로거 무리를 발견했다.
재윤은 오른쪽의 크로거를 먼저 해치웠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달랑 1코인만 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쓰러져 있는 크로거의 사체 옆에 한 장의 두루마리가 반짝였다.
‘또 퀘스트인가?’
재윤은 반색하며 그것을 주워 펼쳤다.
[크로거 토벌 임무서(E)를 얻었습니다.]
【크로거 토벌】
-임무 등급 : E
-자격 조건 : 크로거 지식 등급 E 이상.
-내용 : 크로거 5마리 처치, 제한 시간 없음.
-완수 보상 : 40코인, 소정의 경험치
-가격 : 4코인
역시나 퀘스트였다.
[현재 당신은 【크로거 토벌(D)】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같은 종류의 토벌 임무는 동시에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임무를 먼저 완수해주세요.]
‘어쩔 수 없지.’
동시에 두 개를 진행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라 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또 하나의 임무서를 얻었으니 그게 어디인가?
이런 임무서들을 많이 얻게 되면 코인을 대량으로 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머지 두 마리를 유인해 하나씩 쓰러뜨렸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 6/12
이제 6마리만 더 해치우면 토벌 임무를 완료할 수 있다.
그렇게 도착한 5층 건물.
‘여긴 우리 앞 건물인데?’
1층에 편의점이 있고, 지하엔 PC방, 2층부터는 주택이었다.
코앞에 붙어있던 편의점 건물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니!
특히 편의점과 PC방은 재윤이 자주 애용하던 장소였다.
그런데 지하 PC방부터 5층까지 다 뒤져봐도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텅 비었네.’
하긴 생각해보니 각성자가 있었다면 건물 안에 웅크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재윤처럼 밖으로 나와 크로거들을 해치우고 있을 테니까.
즉, 근처에 다른 각성자가 있었다면 이미 재윤과 마주쳤어야 정상이었다.
‘무슨 죽음의 도시도 아니고.’
괴물들만 우글거리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재윤은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자신 말고도 각성자가 꽤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야 부모님이 살아계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테니까.
‘저쪽 건물도 가보자.’
재윤은 또 다른 건물로 향했다.
그러나 다시 두 채의 건물을 더 뒤져봤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그 와중에 크로거들만 발견해 해치웠을 뿐.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 10/12
그렇게 10마리의 크로거를 해치우는 순간.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업!’
재윤은 환호했다.
이로서 레벨5.
이 기괴하게 변해버린 죽음의 도시에서 레벨 올리는 재미라도 없다면 정말로 미쳐버렸을 것이다.
보너스 스탯 포인트는 계속 민첩에 분배!
덕분에 민첩 스탯이 9로 올랐다.
‘몸이 더 가벼워졌어.’
지금 상태라면 검도 실력도 크게 늘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몸이 빨라졌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범과 대련해도 이길 지 몰라.’
심지어 점프력도 대폭 상승했다.
한 번에 2미터 정도를 가뿐하게 뛰어오를 수 있었으니까.
‘계속 레벨을 올리자.’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이 유일한 희망.
올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레벨을 올리면 괴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시를 누빌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모님을 찾아나서는 것도 가능해질 테고 말이다.
“쿠우우우!”
“크르르!”
그때 두 마리의 크로거가 재윤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재윤은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소환했다.
‘좋아! 저 놈들만 해치우면 임무 완수다.’
그렇지 않아도 딱 두 마리가 남았는데 때마침 두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침착하게! 실수하면 끝이야.’
앞서 달려온 크로거의 약점 부위는 목.
재윤은 왼손으로 붉은 색 타겟 포인트를 움직여 그곳에 위치시켰다.
곧바로 발사!
푸확!
“꾸어어억!”
그렇게 한 명이 고꾸라졌고, 뒤쪽에 있던 크로거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재윤은 이미 빠르게 뛰며 거리를 벌린 후였다.
이제 크로거 하나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29초를 버티는 건 장난과도 같은 일.
“그만 죽어라!”
재윤은 무사히 재사용 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바람의 화살을 날려 크로거의 약점에 적중시켰다.
“꾸아아악!”
크로거가 처참한 비명과 함께 널브러졌다.
【크로거 토벌(D)】
-임무 수행 중 : 12/12
[당신은 임무 【크로거 토벌(D)】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100코인을 얻었습니다.]
[임무 보상으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임무 보상 경험치가 괜찮았다.
재윤은 단번에 다시 레벨이 올라 Lv6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