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생존하라 (2)
놈은 빨랐다.
크로거 한 마리를 가볍게 해치우고 잠시 안도하던 재윤은 놈이 지척으로 접근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놈이 입을 쩍 벌린 채 재윤을 물어뜯으려는 순간이었다.
“크르르르!”
쩍 벌어진 입안의 위아래로 뾰족한 이빨들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리 비켜!”
재윤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며 망치로 놈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퍽퍽퍽!
같은 지점만 삼연속 강타!
눈 깜짝할 사이에 망치의 공세가 세 번이나 작렬했다.
그러나 크로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쇳덩이를 후려치는 것 같은 반탄력에 재윤은 뒤로 밀려났고,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콰당!
“으윽!”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팔과 다리도 어딘가 뼈가 부러진 듯 숨막힐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재윤은 그런 걸 무시한 채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302호 안으로 뛰어들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 조금만 버티자.’
지금 생각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계단에 굴러 부상을 입었지만 지금 상황에는 오히려 기적같은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굴렀다면 재윤의 몸은 크로거의 입안에서 으깨져버렸을 것이다.
“쿠워!”
크로거가 포효를 지르며 뒤쫓아왔다.
처참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낯선 집안.
아무리 주인이 죽었다 해도 남의 집에 이런 식으로 뛰어드는 건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재윤은 소파와 탁자 등을 이용해 크로거를 따돌렸다.
깨진 머리에서 새어나온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있었지만 재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크로거를 피해 움직이고 있을 뿐.
[바람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왔다.
“바람의 화살!”
험악하게 달려드는 크로거의 공격을 피하며 재윤은 화살을 소환했고, 그 즉시 놈의 쩍 벌어진 입안으로 화살을 꽂아 넣었다.
퍼억!
“꾸아아악!”
크로거가 뒤로 넘어갔다.
재윤은 기다렸다는 듯 302호를 바람처럼 빠져나가 계단 아래로 뛰었다.
곧바로 넘어졌던 크로거가 일어나 쫒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재윤은 그 사이 자신의 집인 201호에 들어가 숨을 죽인채 몸을 숨겼다.
머리의 부상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져왔지만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
물론 이렇게 몸을 숨긴다 해도 크로거는 금세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놈이 집들을 수색하는 그 사이 재윤은 시간을 벌 수 있다.
바람의 화살의 재사용 시간만 돌아오면 놈을 끝장내는 건 쉬운 일이니까.
“크르르르!”
그때 크로거가 201호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재윤은 안방으로 들어와 몸을 숨긴 상태.
‘젠장! 역시 금방 찾아냈어. 후각이 보통이 아니야.’
재윤은 자신의 냄새를 크로거가 후각을 통해 감지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놈은 곧바로 안방을 향해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호 거실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던 놈은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를 보니 202호 쪽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냥 나간다?’
이는 놈의 후각이 생각처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윤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그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재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크르르!”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202호로 이동했던 크로거가 돌연 빠르게 뛰어 다시 201호로 들어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내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해.’
재윤은 긴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크로거는 뭔가 분한 듯 소리를 질러대며 밖으로 나가더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재윤이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엉뚱한 곳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휴!’
재윤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그의 표정은 매우 여유롭게 변해 있었다.
그 사이 능력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람의 화살!”
곧바로 화살을 소환한 채로 느긋하게 안방을 나오며 외쳤다.
“어이! 괴물!”
그러자 아래 층에 있던 크로거가 그 소리를 듣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 순간 재윤이 날린 화살이 놈의 머리에 작렬했다.
파악!
“꾸어어억!”
머리가 터진 놈의 몸체는 뒤로 튕겨나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1코인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로거에 대한 지식이 E급에서 D급으로 상승합니다.]
동시에 신비한 빛이 재윤의 몸을 휘감았다.
화아악!
그 빛이 휘도는 순간 재윤은 부상의 고통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다.’
적시에 레벨이 올라준 덕분이었다.
그로써 신체의 모든 상태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보너스 스탯은 계속 민첩에 분배하자.’
【파투스】 20/20(↑1)
【스탯】
근력 5
체력 4
민첩 7(↑1)
지능 4
지능을 올려봤자 공격력은 쥐꼬리 만큼 오를 뿐이다.
민첩이 아니었다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어? 지식 등급도 올랐네?’
【보유 지식】
-크로거(D)
* 크로거
-획득 지식 등급 : D
-크로거에게 주는 피해 10% 증가
재윤의 크로거에 대한 지식 등급이 D급으로 상승한 것이다.
‘피해량이 약간 더 늘었어.’
E급에서는 5% 증가였는데, D급이 되자 10% 증가!
올랐으니 나쁠 건 없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크로거를 한 방에 보내기엔 부족했다.
그보다 이제 아래층들을 살펴볼 때였다.
건물 2, 3, 4층에는 크로거가 더 이상 없다.
남은 건 1층과 지하.
재윤은 바람의 화살 하나를 소환한 채로 계단을 내려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크로거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생존자 역시 없었다.
특히 가장 먼저 크로거들의 공격에 노출된 101호와 102호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하체가 사라진 시체들.
조각난 내장이 거실 곳곳에 널려 있었다.
재윤은 치를 떨었다.
‘다 죽었어. 이 건물에서 나 혼자 살아남은 거야.’
모두가 다 죽고 혼자 생존해있다는 것.
물론 이 건물에서만 국한되는 얘기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매우 끔찍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 건물에만 국한되는 얘기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의 상황은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였으니까.
어디서 생겨났는지 자욱한 핏빛의 안개가 피어 있어 먼 곳을 볼 수는 없었다.
시야 거리는 고작 수십 미터 정도.
집 주변 거리 곳곳에 심장을 뜯겨먹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심장만으로는 양에 안차는지 죽은 시체의 다른 부위를 뜯어먹는 크로거들의 모습도 보였다.
재윤은 숨 죽인 채 밖을 살피고는 201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체가 사라졌어.’
거실에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어야 할 크로거의 사체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또 뭐가 있는 건가?’
재윤은 바람의 화살을 앞세운 채 집안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202호를 비롯한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사체가 사라진 거지?’
그런데 사람들의 시체들도 어느 순간이 되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핏자국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혹시나 싶어 바깥을 살핀 재윤은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했다.
‘시체가 녹고 있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가 흐물흐물 녹아 액체로 변하더니 이내 증발하듯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공포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피범벅이 되어 있던 도로 어디에도 어느 순간 핏자국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부서진 차량이나 물건들만 그대로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
한편 그렇게 시체들이 사라지자 그것을 먹고 있던 크로거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재윤은 그것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창문 아래로 몸을 숨긴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미치겠네.’
얼핏 눈에 띄는 크로거들의 숫자만 10마리가 넘는다.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 그놈들말고도 수두룩할 것이다.
‘목이 말라.’
갈증에 목이 타는 것 같았다.
허기도 졌지만 뭔가를 먹을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물은 마셔둬야 할 것이다.
‘이런!’
무심코 컵을 들어 정수기의 버튼을 눌렀던 재윤은 비로소 전기가 나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단순히 이 집의 전기만 끊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수도 또한 작동하지 않았다.
다행히 냉장고 안에 500ml 생수가 3병 보였다.
그 중 하나를 열어 벌컥벌컥 마셨다.
덕분에 갈증은 풀렸지만 이제 남은 물은 생수 2병 뿐.
‘이것들이 떨어지면 당장 마실 물도 없어.’
정수기를 쓰다보니 생수를 거의 사두지 않았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재앙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물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입맛은 없지만 살아남으려면 뭔가를 먹어야 한다.
냉장고 안에 있는 냉장이나 냉동식품은 조만간 상해서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통조림이나 실온에서 유통기한이 긴 제품들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해. 다른 집을 찾아보자.’
202호를 뒤져보니 2리터 생수 12병이 나왔다.
재윤은 그것을 201호로 옮겼다.
도둑질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의 주인들은 모두 죽었다.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당신들을 죽인 괴물은 제가 죽였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셨길 빕니다. 그리고 이 물은 제가 고맙게 마시겠습니다.”
그래도 그냥 가져오기는 좀 그래서 짧게나마 명복을 빌어주었다.
이제는 시체까지 사라져버린 202호의 신혼 부부에게 말이다.
계속해서 1층과 3층, 4층, 지하에 있는 집들을 모두 뒤져 생수병과 식량을 201호로 옮겼다.
2리터 생수 80병에 500미리 120병.
쌀을 비롯한 곡물은 물론이고 음료수와 과자, 통조림, 라면 등 혼자서 몇 달은 충분히 버틸만한 식량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날이 캄캄해져 왔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피어난 안개 때문에 실내가 어둑했는데, 날이 저물자 실내는 암흑으로 변했다.
랜턴이 있어도 소용없었다.
켜지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도 안 켜지더니 랜턴까지.’
전기가 안 들어와도 충전된 건전지로 작동하는 랜턴은 켜져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가 방전된 듯 랜턴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가스 라이터나 가스 버너도 고장난 듯 작동하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 안 되는 거야?’
음식을 조리해먹을 수도 없으니 황당했다.
이대로라면 밥을 해먹거나 라면을 끓여먹을 수 없으니 생쌀이나 생라면을 씹어먹어야 할 상황.
‘하긴 된다고 해도 지금은 할 수도 없겠지.’
건물 밖에 크로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조명을 켜거나 음식을 하며 주의를 끄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이럴 때 통조림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이거라도 먹고 기운을 차리자.’
재윤은 참치 통조림 하나를 따서 먹은 후 밖의 동정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