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 (4) >
루드비히의 가면 옆을 지수의 마력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또 재미있군.’
이상한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 루드비히는 전에 없던 유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영역에 이른 해석 능력은 모든 상대에 있어서 상성상의 우위를 가진다. 현재를 해석해 미래의 궤도를 읽어낸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완전히 답이 없는 수준만 아니라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도 제압할 수 있다.
전투에 대한 충분한 통찰이 있다면, 승산이라는 가능성 그 자체까지 눈으로 포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읽어냈다면 자신이 본 그대로 움직여 승산을 현실로 끌고 오면 된다. 1퍼센트라도 승산이 있다면 그걸 실현시켜 상대를 박살 낼 수 있다. 말 그대로 사기를 치는 것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석 능력을 지닌 존재가 상대라면 그것은 반대가 된다. 완전히 정직한 싸움. 서로가 서로의 공격 궤도를, 곧바로 이어질 다음 수를 알고 있다. 기습 따위는 통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의 수를 둘 수밖에 없다. 운도 요행도 개입하지 않는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역량의 차이 하나뿐.
그리고 루드비히는 명백하게 지수보다 강했다. 지수는 몇 번이고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공격도 방어도 전부, 교본으로 삼고 있는 건가.’
루드비히가 달려오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겨우겨우 받아내고 있었던 공격을, 지금은 요령을 잡았다는 듯 흘려버리고 반격까지 꾀하고 있다. 루드비히가 자신에 맞게 개량한 마력의 제어법이나, 상대방의 궤도를 읽어내는 걸 전제로 한 투술 따위를, 전부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믿기 힘든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이미 사상 최강의 용왕이라는 놈이 여기까지 와서도 급성장을 그만두지 않고 있다. 정말 질리지도 않는 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작에 힘을 빼거나 일부러 봐주면서 싸웠다간, 해석 능력끼리의 싸움에서 불리한 국면에 처하게 된다.
싸우면 싸울수록 저쪽 좋은 일만 해주고 있었다. 어떤 기술이든 해석해 먹어치우는 저 폭식가 용왕에게, 비슷한 능력을 지닌 루드비히의 기술들은 최고의 식사였다. 지수는 이미 거의 무아지경이 되어 루드비히의 움직임만을 쫓고 있었다.
사실은 움직임만이 아니다. 지수가 진정으로 간파하려고 하는 것은 루드비히의 내면이었다. 그가 살아온 생애, 거기서 형성된 가치관, 버릇을 만들어낸 경험. 어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지.
‘심상해석.’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루드비히의 근본을 간파한다면 그것을 뛰어넘어 쓰러뜨릴 수 있다. 지수의 푸른 안광이 더욱 불타올랐다. 전에 없던 수준으로 능력이 발현하고 있었다.
아니, 명백히 폭주하고 있다. 현실이 감속하며 사고가 가속한다. 동경하던 사람을 해석한다는 기쁨 때문인가. 같은 능력끼리 공명하는 것인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해석 능력의 고삐를 놓쳐 버린다. 일단 한 번 진정시키지 않으면 지수의 손으로는 멈출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그만둘 수 없는 것처럼, 좀 더 계속해서 해석하고 싶다. 자기 자신마저 잊을 만큼 몰입해서, 더욱 깊은 곳까지 빨려 들어가 보고 싶다. 불꽃이 더욱 커져 간다.
손과 손이 부딪친다. 공격하면서 항시 세 수 앞까지를 읽는다. 빈틈을 보이지 않고,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나아가는 건 아주 조금씩.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피하지 못하는 공격은 최소한의 충격으로 맞을 수 있도록 몸을 비튼다.
바라보는 것은, 지수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는 마왕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루드비히의 뒷모습. 지수가 지금까지 동경하며 쫓아온 남자의 등이었다. 그 뒷모습을 더욱 쫓아간다.
그리고, 루드비히의 심상이 뒤를 돌아보았다.
“……허억!”
눈을 번뜩인 지수가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루드비히의 공격을 회피했다기보단, 깜짝 놀란 탓에 뒤로 발라당 넘어진 것이었다. 자신조차 잊고서 집중하고 있던 해석이 풀렸다. 방금 자신이 엿본 게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러지, 스나크. 날 쓰러뜨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드디어 그 잘난 마음도 꺾여버린 거냐?”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루드비히가 지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지수에겐 그 말에 대답해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지수는 방금 자신이 해석해낸 감정이 무엇인지 곱씹어보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자신이 맞다면 그것은 분명.
“…질투?”
루드비히는 지수를 질투하고 있었다.
그것은 용왕의 힘이라거나, 대단한 능력이라거나 하는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며 보냈던 텅 빈 지수의 삶에 대한 질투였다. 지수가 내뱉은 혼잣말에 루드비히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것은, 이를테면 정곡에 찔려버린 사람의 눈빛이었다. 이내 평정을 되찾은 루드비히는 차갑게 지수를 노려보았다.
“뭘 하나 했더니, 사람 마음속을 엿보고 있었나.”
심상해석은 지수가 김유성의 기록을 건네 받았기에 발현한 힘. 용사의 심안과 해석이 결합해 만들어진 능력이다. 그렇기에 루드비히는 가지지 못한 지수만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반응으로, 지수는 자신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도저히 납득이란 게 되지를 않았다.
애초에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수가 루드비히를 질투하면 질투했지, 루드비히가 자신을 부러워할 이유 따위 백 년을 생각에 잠긴다 해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 지수의 표정에 루드비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지수에게 루드비히를 도발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순수하게 의구심이 들었을 뿐이다. 루드비히가 자신을 질투한다는 건, 지수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 반응에 루드비히는 화가 난 것 같았다.
“하나 묻지, 스나크. 왜 싸움에 뛰어들었나.”
계단 위의 루드비히가 지수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목소리였다. 따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갖고 싶어 하던 보석을 진흙탕에 떨구어 구둣발로 짓밟고 있는 아이를 보았을 때 같은, 모욕을 당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너는 용사의 운명을 지닌 김유성과는 달라. 육영웅이나 마녀들과도. 아그리올라에게 이용당한 인형사와도, 집행부에서 자란 고아인 그 남자와도, 흡혈귀와 섞여버린 그 소녀와도 다르다. 하지만 스나크 너의 삶은 근본적으로 싸움에 얽혀있지 않아. 너는 평화롭게 살아 갈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다.”
그야 그랬다. 지금까지 지수와 깊게 얽혔던 이들은 모두가 투쟁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여유롭게 한량처럼 책이나 읽고 지내다 어느 날 각성해서 설렁설렁 발을 들이민 인간 따위는 한 명도 없었다. 지수만이 별종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삶을 허락받지 못한 자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는 있는 거냐? 스나크 너는 왜 지금 내 앞에 서서, 자기 목숨을 가벼운 것처럼 내던지고 있는 거냐.”
평화롭고 한가로이 지낼 수 있었던 녀석이, 반쯤 호기심으로 싸움에 발을 들여놓아, 결국 자신의 삶을 내던져 버렸다. 루드비히를 비롯해, 가지지 못한 자들이 절실하게 바라고 있던 것을 코웃음 치며 쓰레기통에 박아버리는 듯한 행적.
그것이 미웠고, 그것에 질투했다. 필요 없다면 나에게 줘. 가능하다면 그런 말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동자였다.
“그런가.”
그리고 지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루드비히의 심정에 공감한다거나,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는 감상적인 연유에서 나온 끄덕임이 아니었다. 단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해석 결과의 이유가 해명된 데 있어서 명쾌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지수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닮은꼴이라기엔 정반대고, 비슷한 구석이 없다기엔 모양이 똑같다. 말하자면 좌우가 대칭인, 거울에 비친 상 같았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어떤 강렬한 경험도 없이, 내면에서 끌어낼 반짝이는 감정 하나 없이. 자신이 텅 비어있다 느끼던 지수는, 매혹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루드비히 베리야에프의 소설을 읽으며 루드비히를 누구보다 강하게 동경했다.
그리고 루드비히는 반대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안온한 일상 속에서 책이나 읽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지수를 질투했다. 이쪽만 루드비히의 등을 쫓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저쪽 또한 지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조금쯤 기뻤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루드비히의 추궁에 지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팬의 눈에는 콩깍지가 씌는 법이거든. 당신은 무슨 일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무적 멘탈의 소유자인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데 질투도 하고 부러워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돼서. 의무감이 아니라, 의욕이 생겼어.”
그리고 짝 짝 짝. 천천히 루드비히에게 손뼉을 쳤다.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내가 박수를 쳐주겠어.”
쇼 스타퍼…루드비히가 세계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일은 있어도, 누군가가 루드비히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손뼉을 치길 그만둔 지수는 꽉 하고 주먹을 쥐었다. 지수의 두 눈에서 다시금 황색과 청색의 안광이 불타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비켜.”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은, 루드비히를 알아가는 행적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뭉쳐있는 암호 덩어리 같은 남자였다. 완전히 정체불명이었고, 그가 앞에 나타나면 겁에 질려있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석할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커다란 책임에 짓눌려, 얼마나 무거운 고뇌를 가지고, 얼마나 절망한 끝에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 알고 있다.
“당신의 책임도, 고뇌도, 절망도. 내가 대신 안고 가겠어. 여왕 때문에 집중이 안 돼서 글을 못 쓰겠으면, 내가 대신 쓰러뜨리지. 작가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이나 쓰라고.”
정신의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솟아오르고 있다. 지수는 지금까지 김유성의 유지를 이어, 세상을 지켜야 한다. 쓰러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한 사명감으로 계속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지 하고 싶으니까 한다.
오로지 지수 혼자만의 개인적인 사유였다. 루드비히라는 저 슬픈 남자를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고 싶으니까, 루드비히를 쓰러뜨린다. 전에 없이 불타는 의욕에 지수의 능력이 감응했다. 현상해석도 심상해석도, 엄청난 기세로 발동되고 있었다.
“핑계 같은 건 못 대게 할 거야. 우선은 세상을 연재중단 상태로 만들어놓은 이 괘씸한 상황부터 박살 내주지.”
달려나가는 지수의 움직임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루드비히의 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한 것으로 그의 움직임에 담긴 의도를 알 수 있게 된 덕분이기도 하고, 현상을 훨씬 더 너머까지 해석하는 것으로 더욱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덕분이기도 했다. 지수가 루드비히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더욱더 깊게. 해석 능력의 저 너머로 잠수하듯이 빠져든다. 표면의 모든 것을 해석해,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것까지 간파할 수 있도록. 액체였던 정신이 증발해서 기체가 되어버리는 감각. 극한의 집중과 더욱 먹어치우고 싶은 탐욕. 이미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멈춰있었다.
루드비히의 심상은 미궁과도 같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는 만능열쇠가 쥐여 있다. 문을 열어젖히고 또 열어젖힌다.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었을 때, 등 뒤에서 문이 쿵 하고 닫혔다.
“바보인가, 스나크.”
심상의 풍경. 미궁 끝의 의자에 루드비히가 앉아있었다.
지수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익사할지도 모를 만큼 깊이. 지수는 곧바로 심상해석의 발동을 종료했지만, 그렇게 해도 루드비히의 심상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문은 루드비히가 잠가 놓았다.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함정에 걸렸다고 깨달았다. 저쪽은 일부러 자신을 유도한 거다. 지수가 루드비히의 기술을 해석한 것처럼, 루드비히 또한 지수의 기술을 해석해서. 일부러 들어올 길을 보여주면서 도망치지 못할 안쪽까지 끌어들였다. 마치 식충식물이 자신의 입 안에 벌레를 끌어들이듯이.
이 안은 루드비히의 정신이고 루드비히의 심상이었다. 이를테면 꿈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루드비히가 원하고 떠올리는 대로. 루드비히 안에 침입한 지수의 정신은 그대로 소멸당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부활할 여지고 뭐고 요만큼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루드비히가 말했다.
“나를 대신해 여왕을 쓰러뜨려 주겠다고?”
심상 속의 루드비히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경멸이나 조롱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그저 어이없음과 조금의 애달픔. 그것은 뭐라고 할까. 아이에게 ‘내가 크면 과학자가 돼서 엄마 아빠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약을 만들어줄게!’ 따위의 허황된 소리를 들었을 때 부모님이 짓게 되는 표정과도 같았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난 루드비히가 지수에게 다가왔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있는 건, 네가 상황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수의 코앞까지 다가온 루드비히가 말했다.
“체험시켜주지. 여왕에 의한 종말이란 게 어떤 건지.”
단단한 발판이었던 어둠은 흐물흐물하며 녹아 내려갔다. 지수의 정신이 늪 속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반항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루드비히의 마음이기에 루드비히의 마음대로인 것이다. 이내 모든 것이 몽롱해지며 시야가 완전히 암전했다.
눈을 떴을 때 지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리자, 창밖은 황폐한 풍경이었다. 모래바람이 부는 황야에 무너진 건물들의 파편이 뒹굴고 있었다. 박살 난 시가지와 사막이 반반 비율로 섞여 있는 듯한 기괴한 광경이었다.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건물의 파편 중에선 익히 알고 있던 형태가 있었다. 저것은 63빌딩이었다.
“깨어났어?”
그때, 드르륵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방 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