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외 등급 해석사-126화 (126/176)

126화.  < 진격하고 또 진격하라 (5) >

지수는 마력을 갈무리한 채 눈앞의 보스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곧바로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다. 이 자가 정말로 마왕이라면 쓰러뜨리기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질문할 것은 당연히 지수가 알고 있는 그 마왕, 루드비히와의 접점에 대해서였다. 설마 마왕이라는 칭호는 용왕처럼 계승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수 이전의 용왕이 아그리올라였던 것과 같이, 눈앞의 뱀파이어가 루드비히 이전 대의 마왕일지도 몰랐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악마가 말했다.

“정말로 길고 긴 잠이었다….”

힐끗 지수와 서민하를 본 뱀파이어는 마음대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와인병이 날아와 알아서 잔에 술을 따랐다. 혼자서 연주되고 있는 피아노도 그렇고, 상당히 편리해 보이면서도 쓰잘머리 없어 보이는 마법이었다. 핏빛 와인을 홀짝인 중년의 마왕이 이야기했다.

“마계의 대공들은 나의 너무도 강대한 마력을 두려워해, 성째로 이 마계의 끝자락에 가라앉게 했지. 끔찍한 배신이었어. 하지만 나는 썩 흐뭇했다. 그건 내가 진정한 공포로써 군림했다는 증거니까. 이해할 수 있겠나? 그들은 나를 너무 두려워했기 때문에, 봉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이내 양팔을 벌린 뱀파이어가 도취된 채 소리쳤다.

“그런데 어찌 그들을 나무랄 수 있겠나? 죄라면 내게 있겠지! 내가 너무나 완벽하고 강대하며 잔혹한 마왕인 게 문제인 것을!”

서민하가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눈앞의 콧수염 달린 괴물이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수의 경우엔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반응도 무덤덤했다. 그럼에도 중년의 마왕은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이 성에 영원히 잠듬으로서 나는 공포의 상징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러니 난 참된 왕의 마음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흐뭇한 단잠에 빠져있었지. 하지만 너희들은 용서할 수가 없구나.”

“당신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야?”

서민하가 눈을 팍 찡그리며 말했다. 하는 말들이 이치에 맞지가 않는다. 적당히 이야기를 들어주려 해도 도저히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랬다. 뱀파이어가 한 말을 요약하면, 자신이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한참 동안 이곳에 유폐되어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배신한 부하들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며, 봉인을 풀어준 지수와 서민하에게 은인 대접을 해주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 지적에 뱀파이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다르다. 대공들은 이 마르카브를 두려워해 뒤통수를 쳤지. 정정당당히 도전하지조차 못하고 비굴하게! 너무 두려워 작당하고서 나를 잠들게 했다. 마왕의 치세는 공포의 치세! 그들은 마족의 방식으로 왕에게 경의를 표한 거다. 하지만.”

와인 잔이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핏빛의 액체가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일어나 고개를 돌린 중년의 마왕 마르카브는 흉흉한 안광을 빛내며 지수와 서민하를 삿대질했다.

“너희들은 스스로 나를 깨우러 왔다. 그것은 즉 너희들이 나를, 이 공포의 군주 마르카브를 충분히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는 뜻. 용서할 수 없는 대죄다. 무례에 대한 벌로서, 참을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 죽어가도록 하라.”

그리고 마르카브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흉흉하게 흘러나왔다. 살기를 통한 위압이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지수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 중년 뱀파이어는 상당한 강적이었다. 저 끝도 모를 자만심이 어느 정도 납득될 만큼은 강했다.

비유하자면, 심장이 뽑혀있는 아그리올라와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김유성을 제외한 대전쟁의 육영웅 전부가 덤벼도 감당할 수 없는 적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상정 범위 내였다. 지수는 태연한 표정으로 질문을 내뱉었다.

“루드비히 베리야에프에 대해서 알고 있나?”

묻는 것과 동시에, 지수의 눈동자에서 푸른빛 안광이 흘러나왔다.

심상해석. 연기한다 해도 본질을 간파하는 시선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루드비히의 이름을 들은 마르카브는 정말로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는 듯했다. 마르카브가 그게 누구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한숨을 쉰 지수는 다음 질문을 말했다.

“마왕이라는 칭호는 대대로 계승받는 건가?”

그것 참 유쾌한 질문이라는 듯 마르카브가 코웃음을 쳤다.

“마왕이란, 마계를 제패하고 모든 마족을 손아래에 두었을 때, 만마의 군주로서 나 스스로 칭한 이름. 마왕된 자는 하늘 아래 이 마르카브 하나뿐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넘겨줄 생각은 없다. 감히 사칭한다면, 내 손으로 짓밟아줄 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것으로 이곳의 보스 몬스터인 마왕과 지수가 알고 있는 그 마왕 루드비히는 어떤 연관도 없는, 전혀 별개의 존재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우선은 안도감이 들었지만, 루드비히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알아낼 찬스가 날아갔다는 실망감 또한 있었다. 질문은 끝났냐는 듯 마르카브가 웃었다.

“그렇다면 이제 절망할 시간이다. 너희들의 앞에 있는 건 걸어 다니는 파멸, 모든 악마족을 무릎 꿇린 왕! 어떤 잔재주도 부리지 않은, 순수한 마력만으로 압사시켜주지. 자신이 어떤 존재를 깨워버린 것인가 후회하면서 죽어가도록 해라!”

그리고 지수가 심장의 힘을 이끌어냈다.

주변이 온통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과 동시. 마르카브가 눈을 뜨자 그곳은 둥지 안이었다. 지수가 용왕으로서 가지고 있는 스나크의 둥지. 눈을 끔뻑이고 있던 마르카브가 위쪽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수백 개의 룬이 하나의 서사시를 읊듯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건….”

“좋네. 나도 화력 승부엔 꽤 자신이 있거든.”

하늘을 페이지 삼아 쓰인 셀 수 없는 숫자의 룬들은, 하나하나가 밴더스내치의 힘으로 증폭되어 유사 용언으로 화한 채였다. 화염으로서, 번개로서, 얼음으로서 그것이 뜻하는 성질이 크게 강화되어있다. 지수가 주머니 속의 만년필을 꺼내 들어 지휘봉과 같이 휘저었다. 용왕 스나크의 명령에 따라, 허공에 박혀있던 룬 주문들이 활성화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웃기지 마라! 이 정도로!”

지수의 눈동자가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확실히 마왕 마르카브는 강력한 적이었다. 어쩌면 봉인의 기둥 속에서 싸웠던 그 용왕 아그리올라에 버금갈 정도로.

하지만 애초에 지수는 반쯤 탈진한 상태에서도 이미 한 번 아그리올라를 사냥한 적이 있었다. 그건 물론 서민하와 오성화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완전한 용왕으로 각성한 데다가 만전의 상태였다. 고전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앞으로 나올 놈들도, 다 너처럼 약하면 일이 편할 텐데.”

지수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

전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마왕을 경외해 따르면서도, 너무나 두려워해 성 안에 가두어버린 수많은 악마족들. 그들은 하나하나가 마왕 마르카브의 권속들이었다. 마르카브의 막대한 힘의 파편을 나누어 받고 있다. 그 결과 가장 조무래기 수준인 몬스터들조차 A급 던전의 네임드 몬스터 정도의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끝이 없잖아, 정말로!”

방패를 든 성기사가 소리쳤다. 또다시 수십 마리의 마족들이 포효하며 쏟아져 들어왔다. 그럼에도 S급 헌터들은 급조된 원정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제대로 진열을 유지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진열의 중심축이 되어있는 건 정유현이었다.

그는 분명 협회의 집행부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던전행의 경험이 거의 없을 텐데, 베테랑 헌터 수준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며, 가장 치명적이고 효과적인 지점에 능력을 꽂아 넣고 있다. 호흡을 맞춘 적도 없는데 마치 동료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S급 헌터들이 생각하지 못한 맹점이었다. 정유현은 몬스터와 싸워본 적은 별로 없어도, 사람과 싸워본 적은 훨씬 더 많기에. 각성자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싸우는지, 능력을 발동하기 전에 어떤 버릇이나 동작을 내비치는지 관찰하는 것에 도가 터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유현과는 정반대로.

“비켜, 휘말려도 책임 못 진다고!”

스스로 진형을 통제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이, 자유자재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는 검사가 있었다. 온몸에 폭발을 두른 채 마족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건 오성화였다. 오성화야말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도가 튼 프로. 수많은 악마족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참격을 먹이고 빠져나왔다.

다른 S급 헌터들은 그 두 사람을 보며 간질간질한 고양감을 느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당장에라도 숨이 벅차서 죽을 것만 같은데, 자신이 할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 진형이 그대로 무너져버리니 마음 놓고 쉴 수조차 없다. 여유라는 단어와는 요만큼도 관련이 없는 진짜 전장이다. 최고급의 대우를 받으며 설렁설렁 산책하듯 보스 몬스터를 썰어버리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로 이상적인 장소도 없을 것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도중에도 자신의 능력을 점점 더 능숙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되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용왕 소재의 장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조건을 떼놓더라도, 이곳은 S급 헌터들에게 있어 최고의 단련장이었다.

그리고 싸움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마족들의 힘이 급격하게 약해진 것을 느꼈다. 그들의 몸에 새겨져 있던 문양들이 전부 사라졌다. S급 헌터들은 기세를 타고 치고 들어가, 주변의 마족을 전부 다 정리했다. 그리고 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특공대인 지수와 서민하였다.

돌아온 두 사람. 갑자기 힘을 잃은 몬스터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명백했다. 특공대로 먼저 진입한 이들이 보스 몬스터를 박살낸 것이다.

"설마 정말로… 둘이서 여기 보스를?"

S급 헌터들이 아연해하며 말했다. 용궁의 길드장 척척박사와, 자신들을 손수 제압했던 괴물 소녀.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인정한 바였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단둘이서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토벌할 만큼 압도적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특공대라고는 해도 우선 먼저 가서 보스 몬스터의 정보를 파악한 뒤 전해주러 돌아오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서민하를 본 마족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어버렸다. 진짜 해내버렸어! 달려온 오성화가 지수에게 어깨동무를 걸고, 긴장이 풀린 정유현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지수는 지쳤다는 듯 터덜터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서민하는 빤히 자신의 손에 걸려있는 혈석의 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정말로 나 주는 거야?”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쓸 것 같다니까.”

지수가 대답했다. 순전히 효율상의 문제였다. 서민하에게 양도한 물건은 이번 던전에서 마왕 마르카브를 토벌하고 얻은 유물이었다. 마왕 마르카브의 정수인 혈석이 박혀있는 반지. 서민하는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는 듯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신 반지를 바라보았다.

이내 던전의 출구로 나가자, 정유현이 손을 올려 서민하와 지수를 제지했다. 이거 상당히 귀찮게 됐다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든 지수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정유현이 말했다.

“샛길로 나가는 게 좋겠군. 사람이 깔렸어.”

지수가 마력을 짜내 영역을 펼치자, 정말로 게이트 주변에 사람이 쫙 깔려있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버린 듯했다. 누각과 불식을 산하에 들인 용궁 길드와, 거의 모든 S급 헌터가 동원된 전대미문의 던전 원정. 당연히 그런 게 알려지면 온 세상이 주목하는 이슈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저기….”

“걱정 마라. 저번 협회장 건으로 사람들한테 들볶이는 건 익숙해졌으니까. 이쪽에서 적당히 대응하지.”

지수가 정유현에게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사람들 앞에서 온갖 질문공세를 받으며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런 식으로 주목을 받은 채로 움직일 여유도 없었다. 지수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저번부터 일은 지수가 다 저질러놓고 정유현에게 신세를 지는 느낌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지 마라.”

정유현의 말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재버워키의 망토를 펼친 지수는, 사람들 몰래 날아가 들러야 할 목적지를 향하기 시작했다.

***

지수가 찾은 것은 저번에 알아낸 루드비히의 자택이었다.

현재 마왕은 무슨 사정이 있어 겉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문 앞에서 지수와 마주친 건 그때 보았던 은발의 여자였다. 여자가 지수를 아는 척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어, 저번에 뛰쳐나갔던 사람.”

그녀의 시점에서 지수는 작가 루드비히의 팬이라고 찾아왔다가,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급한 일 있다고 뛰쳐나가 집으로 돌아간 무례한 사람이었다. 그녀 개인적으로도 조금 불만이 있었다. 비장의 과자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홀랑 집에서 나가 버렸다. 하지만 지수에 대해 조금 호기심을 가지게 된 부분도 있었다.

그 괴팍한 루드비히가 그런 짓을 당하고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상당히 마음이 맞는 것인가 보다 하고 추측했다. 어쩌면 친구일지도 몰랐다. 루드비히에게 친구가 있다니 그녀 입장에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어디 갔나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 루드 아저씨가 어딜 간다고 말하고서 나가는 기특한 성격은 아니라서. 꽤 오랫동안 집을 비울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는 들었지.”

“물어봐야 할 게 있어요. 연락할 방법은 없나요?”

그러자 여자는 눈을 끔뻑끔뻑 뜨면서 지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언가 이상한 이야기라도 한 건가? 지수가 눈썹을 찌푸리자, 은발의 여자가 놀랍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진짜 신기하네. 루드가 나한테 미리 말해놨거든. 누가 꼭 물어봐야 할 게 있다고 찾아오면 물건 하나를 전해주라고.”

그리고 여자가 루드비히의 방의 서랍을 열고 꺼내온 건 한 권의 노트였다. 받아든 지수가 노트를 펼치자, 그 안의 내용은 정체도 모를 문자로 휘갈겨 쓰여있었다. 아무도 못 알아보게 써놓은 암호였다. 암호를 풀 단서도 뭣도 없었다. 애초에 이것이 정말로 암호인지 아니면 그냥 낙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척 보기엔 그저 괴문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나도 몰래 들여다봤는데 뭐라고 써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여자가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댔다. 하지만 지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루드비히 베리야에프가 자신의 이레귤러에게 전해 주기 위해 써놓은 노트였다. 세상에서 오직 해석사만이 읽을 수 있도록 보안을 걸어놓은 것이다. 이 양반은 대체 얼마나 용의주도한 거야. 지수가 해석 능력을 발동해 노트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 세상의 안온과 평화를 바라는 자가 : 내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협조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대비하여 남긴다.>

“마왕 이 양반… 대체 정체가 뭐야.”

지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마왕이 남겨놓은 메시지다.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 적혀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것은 그 이상이었다. 지금 이 상황,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정보들. 빛나는 지수의 눈동자가 게걸스럽게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루드비히 베리야에프가 남긴 노트에는, 모든 S급 던전의 게이트가 출현할 위치의 예상과 그 보상, 구체적인 공략법에 대해서 빼곡히 적혀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