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당신이 선물해준 거니까 (2) >
연결된 영상은 해외전화이기에 화질이 좋지 않았다.
지직거리는 노이즈. 화면 너머의 흑마녀가 테이블 위에 새까만 왕관을 올려놓았다. 지수가 적마녀에게 전달해달라 맡긴 S급 던전의 전리품이었다. 하긴 안에서 전투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전리품이라고 할 수야 있겠냐마는. 큼큼 헛기침한 흑마녀가 말했다.
<이 새까만 왕관은 언데드 로드의 다이어뎀이에요.>
지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좀비 기사단? 좀비 군단? 어쨌든 그런 것들의 시체가 시야를 가득 메울 만큼 들어차있던 곳이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리치였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고, 언데드 로드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에 위화감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템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효과는 두 가지네요. 하나는 자기보다 약한 언데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직접 죽인 몬스터를 언데드로 사역해 소환 할 수 있는 능력.>
“제어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나 조건 같은 건요.”
<없어요.>
“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요.>
지수가 눈을 끔뻑였다. 뭔가 잘못 분석한 거 아닙니까? 그런 의미의 시선을 보냈지만, 흑마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든 이야기였다. 그건 아이템 하나의 효과라기엔 너무 말도 안 됐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왕관 하나가 S급 헌터 몸뚱아리보다 더 강할 지경이었다.
테이블의 검은 왕관을 손에 든 흑마녀가 말했다.
<확실히 파격적이긴 하네요. 신화 수준의 성물이예요. 다른 S급 던전에서 나오는 물건들도 다 이 정도인 줄은 모르겠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파격적이다 수준이 아닌데.’
지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면 흑마녀는 S급 던전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모르는 것이다. 흑마녀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저 새까만 왕관은 대단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지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장의 드넓은 평야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수천 수만의 언데드 병대.
예를 들어서 가정해보자. 만일 모종의 방법으로 몬스터를 거의 죽이지 않고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에 성공했다면, 그 병대의 전력은 고스란히 왕관을 손에 넣은 자의 소유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그렇게 강력하진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S급 던전에서 등장할 만한 몬스터다. 그 정도면 진짜로 세계정복에 나서도 될 만한 숫자였다.
‘혹시 마왕은 처음부터 그걸 알고서 던전 안의 몬스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렸던 건가? 누가 왕관을 가지고 악용하지 못하게?‘
지수가 생각했다. 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물론 의문으로 남는 부분 또한 있었다. 예를 들어 그렇다면 어째서 마왕이 직접 왕관을 들고 가지 않았던 것인가. 하지만 그런 의문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귀찮은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왕이 굳이 모든 언데드들을 깔끔히 청소한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러면 왕관의 능력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아직 조사하고 있다는 걸로 해둬주세요. 잘못하면 여러 모로 큰일이 날 것 같으니까.”
흑마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통화가 끊겼다. 지수는 미간을 꾹 눌렀다. S급 던전 안에서 얻은 아이템의 능력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선뜻 맡겨두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다른 유물들도 다 저 정도 수준인 건가? 나온 아이템의 성능이 너무 좋아서 골치를 썩이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한가하게 해외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란 거지.”
지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수 주변에 펼쳐져 있는 이국적인 풍경은 러시아의 거리였다. 바로 그 마왕, 루드비히 베리야에프의 망토에 슬쩍 걸어둔 추적의 룬을 따라온 결과가 이곳이었다. 추적의 룬은 이미 사그라들었지만, 그 잔향이 지금도 용왕의 감각에 똑똑하게 느껴졌다.
지수는 미리 준비해둔 변장도구를 꺼냈다. 코주부의 땡글이 안경이었다. 지수 손으로 직접 부러뜨린 이 안경을 다시 쓸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얼굴에 안경을 걸치니 상당한 안정감이 들었다. 지수가 거리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위치를 탐지하는 덕에,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지수가 멈춰선 앞에 서 있는 건 정원이 딸린 서양식 단독주택이었다.
‘이 안에, 루드비히 베리야에프가 있다.’
잠깐 심호흡한 지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 집 안에 반드시 마왕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지수가 추적의 룬을 붙인 것은 마왕이 아니라 마왕의 망토 끝자락이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게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마왕은 옛 저녁에 다른 곳으로 떠나 집안에는 망토만이 내팽개쳐져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오히려 더 훌륭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마왕이 들렀다 간 곳이라면 어쨌든 무언가 단서가 있을 것이다.
지금 지수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마왕의 정보였다. 대등한 조건에서 수싸움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마왕의 경향이니 특기니 하는 것들에 대해 판단 재료를 얻어낼 필요가 있었다. 방해받을 일 없이 마음껏 조사를 할수 있다면 바랄 게 없었다. 이 눈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수에게는 해석 스킬이 있었다.
‘이건 결코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건 결코 사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수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혈액형이라든가, 듣는 음악이라든가,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라든가 하는 시시콜콜한 정보를 순수한 덤으로 얻어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건 단지 우연히 지수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것일 뿐 굳이 지수 쪽에서 찾아내려는 마음은 없었다….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적진의 정찰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지수가 문을 두드리려고 하자, 지수의 손이 문손잡이를 쥐기도 전에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설마 마왕과 마주치는 것인가? 역시 마력을 감지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영역을 펼친 채로 들어왔어야 했나? 순간적으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며 심장이 철렁했지만, 나타난 것은 마왕이 아니라 은발의 여자였다.
“…누구세요?”
해석 스킬 덕분인지, 상위언어에 연결된 용왕의 지혜 덕분인지. 여자와의 의사소통에 언어 문제로 불편을 겪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여자의 목소리엔 가시를 쫙 뻗치고 있는 고슴도치처럼 경계심이 뚝뚝 묻어나왔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의 눈에 지수는 현관문 앞에서 뭐라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고 있던 코주부 안경을 쓴 괴한이었다. 수상함이라는 단어가 옷을 입고 걸어 다니고 있는 듯한 꼴이다. 하지만 지수는 그런 시선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요즘은 사회가 흉흉하니 경계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수가 얼른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잘 웃는 편이 아니라서 매끄러운 표정을 지어내진 못했지만, 이미 이런 상황도 대비하고 머릿속에서 완벽한 대응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였다. 지수가 예의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베리야에프 작가님이 여기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취재차 왔습니다만, 혹시 잠깐이라도 시간이 되신다면 작가님과 만나뵐 수 있을까요?”
“아. 루드를 만나러 온 거구나.”
“루드?”
지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인 여자는 어느 정도는 의심이 풀린 듯했지만, 지수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그만큼 지수의 얼굴에 쓰고 있는 코쟁이 안경은 저는 수상한 사람입니다 아우라를 풀풀 내뿜고 있었다. 빤히 지수의 행색을 위 아래로 훑어본 여자가 말했다.
“흐음. 정말로 루드 팬 맞아?”
“확실합니다. 맹세해도 좋아요, 세상 누구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지수의 말에 여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넘치는데? 그러면 간단한 퀴즈 정도야 맞출 수 있겠지?”
“퀴즈라면?”
“그러니까… 어디 보자. 악마의 눈동자에 비친 세계, 4장에서 이반이 숲속에서 만난 묘한 분위기의 여자의 이름은 뭘까요?”
“뷔이. 진짜 이름은 타티아나죠.”
지수가 즉답했다. 여자가 말한 것은 루드비히 베리야에프가 쓴 소설에 대한 질문이었다. 루드비히의 모든 소설을 열 번은 넘게 정독한 지수였다. 완전히 뜬구름잡는 괴랄한 소리만 아니라면 어떤 질문이든 맞출 자신이 있었다.
“금화 열세 장을 얻은 스메르쟈코프가 산 물건은?”
“어린애가 팔던 빵 한 조각.”
“숲에 불을 질렀을 때 비이가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한쪽 발이 늪에 빠져서.”
“이발소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이 일단락되고, 라키친이 마지막으로 결혼식장에 데려온 구두장이의 이름은?”
“알렉세이. 인 줄 알았는데 가명이었죠. 진짜 이름은 나오지 않아요.”
지수는 거의 시간 차가 없는 속도로 정답을 맞혔다. 지수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퀴즈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 더하기 일은 이다, 하고 대답한 걸 수학 문제를 풀었다고 하긴 좀 뭐한 것처럼. 그래서 정말 팬이 맞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 오히려 멋쩍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양손을 모아 들뜬 채로 말했다.
“당신 진짜 루드 소설 독자구나! 나도 팬이지만, 다른 팬이 우리 집에 방문해온 건 처음이야!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루드는 부끄럼을 많이 타서 자기 앞에선 소설의 소 자 얘기도 못 꺼내게 하거든.”
“그런 낌새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죠.”
“우리 루드 사인이라도 받아줄까? 내가 하라고 윽박지르면 마지못해 해줄 텐데.”
그녀의 말에 지수의 눈동자가 당황에 떨렸다. 루드의 사인이라면, 설마 루드비히 베리야에프의 친필사인을 말하는 건가? 그런 대단한 것을 이렇게 쉽게 얻어내도 되는 건가? S급 던전에서 검은 왕관을 들고 올 때도 이렇게까지 날로 먹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수는 날로 먹는 걸 결코 싫어하지 않았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지수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이미 주목적과 부목적이 본말전도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도 들지만, 어차피 크게 보면 둘 다 똑같은 내용이었다. 마왕 루드비히에 대한 단서 및 자료 수집. 이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마루를 성큼성큼 지나갔다. 그리고 모퉁이에서 고개를 쏙 내밀고 윽박질렀다.
“루드! 손님이야! 일어나! 일어나라구!”
“일어나고 뭐고, 안 자고 있다.”
지수가 움찔했다. 저편에서 들려온 것은 루드비히 베리야에프의 목소리였다. 조심스레 여자의 뒤에 서서 고개를 내밀자, 그곳엔 소파에 누워있는 루드비히 베리야에프가 있었다. 루드비히는 펼친 책을 그대로 얼굴에 덮어놓은 채 누워있었다. 여자가 소리쳤다.
“제발 일어나서 뭘 좀 해! 빈둥대고 있지 말고!”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의 소비를 극도로 억누름으로써 우주의 예정된 열죽음적 멸망을 1초라도 더 늦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항하고 있는 거다. 이만큼 생산적인 일도 없겠지.”
“말이나 못하면 얼마나 좋아…. 루드랑 이야기하고 싶다는 손님이 찾아왔어. 방에 들여보내도 괜찮지?”
루드비히가 결코 끄덕인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게 고개를 떨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만으로도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지수를 위쪽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이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루드비히는 언제나 쓰고 있던 오페라 가면을 쓰고 있었다. 털썩 의자에 쓰러지듯 앉은 루드비히가 지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늦었군, 스나크. 곧바로 따라올 줄 알았는데.”
지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한 마디로 알았다.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루드비히는 추적의 룬을 붙인 것부터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간파하고 있었다. 일부러 제거하지 않은 것이다. 지수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마왕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었다. 지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루드비히를 쳐다보았다.
“…스나크?”
“뭘 남의 이름이라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짓지. 그게 네가 용왕의 자리를 계승하면서 받은 이름일 테지? 스나크. 스나크. 역시 이지수라는 이름보다는 이쪽의 어감이 자연스럽군. 혹시 내가 그렇게 부르는 건 불만인가?”
“됐어. 추적의 룬은 왜 바로 안 지웠지?”
지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수가 알고 있는 마왕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사생활, 또는 행적을 누가 알아차리거나 침해받는 걸 대단히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추적의 룬 같은 것이 자신의 옷에 붙었다는 걸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지워버리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마치 마왕이….
“그래. 스나크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내가 너를 의도적으로 꼬드긴 거다.”
“뭐라고?”
“지금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스나크 널 묶어둘 필요가 있다. 완전한 용왕이 된 지금의 너는 상당히 만만치 않은 상대라서, 일을 편하게 하려면 미리 덫을 파놓을 필요가 있었지. 네가 봉인의 기둥에서 나올 때 반년이라는 시간을 흐르게 한 것도, S급 던전에서 타이밍 좋게 마주친 것도, 지금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한 준비였어.”
루드비히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지수는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마왕의 책략에 완전히 읽혀서 꼭두각시처럼 놀아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마왕의 의도는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지수의 그런 시선을 받은 루드비히가 콧숨을 내쉬었다.
“네가 있으면 누각의 급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그 말에 지수가 눈을 번뜩였다.
“누각이라고?”
“그래. 아예 짐작도 못하고 있었나? 지금부터 밖에선 불식과 누각이 충돌할 거다. 육영웅끼리의 전쟁이야. 필연이라면 필연이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워낙에 다르니. 어떻게든 사이 좋은 척을 하고 있었다만, 봉인의 기둥이 하나 깨졌으니 소꿉놀이도 끝이지.”
“설마.”
“오래된 친구들끼리 투닥대는 거나 마찬가지다. 외부인인 내가 촌스럽게 끼어들지는 않아. 조금 도움은 줬다만 나는 철저히 관망할 생각이고, 스나크 네가 멋대로 끼어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거다. 그 사이에서 놀기엔 조금 커버렸으니.”
마왕의 말에 지수가 침을 삼켰다. 누각의 급습? 허다인이 백묵을 공격한다는 건가? 그녀의 온화한 성격에 그런 상황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백묵은 지금 발푸르기스의 밤을 비롯한 다른 세력들과 라인을 구축해놓은 상태다. 누각이 불식을 공격해봐야 박살나는 게 어느 쪽일지는 뻔할 뻔 자였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누각의 전력은 지수가 잘 알고 있다. 길드장인 허다인을 같은 육영웅인 백묵과 동격이라고 놓는다면, 남는 것은 이매와 망량. 그 둘이서 네 명의 마녀들을 비롯해 지수 쪽에 서 있는 여러 각성자들에게 전부 대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수의 말을 들은 마왕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군, 스나크. 왜 너의 정보로 적의 전력을 재단하는 거지? 용왕쯤 되는 존재 치고는 상황인식이 너무 무르군. 네가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지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백묵은 지금까지 허다인에게 숨긴 채 여러 가지 뒤가 구린 일들을 해왔다. 그 중 가장 커다란 것이 여왕의 봉인을 풀려는 스나크 너와 내통한 것이고.”
간단한 이치를 설명하는 듯이 루드비히가 말했다.
“그렇다면 똑같은 이야기다. 허다인도 지금까지 백묵에게 숨긴 채, 여러 가지 뒤가 구린 일들을 해오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커다란 것이, 여왕의 봉인을 틀어막으려는 나와 내통한 거지.”
지수는 피가 싸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루드비히가 말했다.
“누각의 길드 아지트는 알고 있겠지? 자그마치 하늘을 나는 성이야. 그런 게 이야기 속이 아니라 현실에 떡하니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대단한 마도구 제작자라고 해도 그런 걸 만들어낼 수 있을 리는 없지.”
그러면 대체 그 정체는 무엇일까. 루드비히가 말했다.
“그건 대전쟁 때 내가 반쯤 박살낸 걸 허다인에게 선물해준 거다. 너희 식으로 말하면…움직이는 S급 던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