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이런 건 처음 보는데(3) >
술과 음식이 나오고 테이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정유현이 홀짝인 블랙러시안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요 반 년간의 개요를 설명해줄 역할은 그밖에 없었기에, 과묵한 그답지 않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집행부는 전례 없을 정도로 시끌벅적한 상태야.”
집행부는 기존의 음침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떨쳐내고, 온갖 위험에 맞서는 대(對) 각성자 진압 조직으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가장 큰 공로자는 역시 정유현이었다. ‘일곱 번째 영웅’. 지금 대중에게 정유현의 이미지는 정의였다. 그를 동경하는 각성자들이 끊임없이 집행부에 지원하고 있었다.
“완전히 달라졌구만. 내가 집행부 할 때는 무슨 저승사자 취급에, 말이라도 걸려하면 흠씬 달아났는데. 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 지수 덕분이지. 자, 지수를 위하여!”
오성화가 잔을 들었다. 그는 사실 분위기를 타 되는 대로 말을 꺼내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정유현은 순순히 건배사에 맞춰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본 지수가 팍팍 마셔대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는 늦게까지 마셔도 상관 없긴 한데. 두 분은 괜찮으세요? 내일 아침에 바로 출근하셔야 되는 거 아니예요?”
상당히 걱정됐다. 특히 오성화는 복귀 문제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 말에 두 사람 모두 의뭉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철저한 준비를 다 끝내고 왔다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병정은 잘 해줄 거다. 협회장이니까.”
“혜성이한테 맡기면 되지. 팀장이잖아.”
이럴 때는 또 죽이 잘 맞았다. 지수가 이마를 짚었다.
이른바 땜빵을 시켰다고 하는 말이었다. 부하한테 자기 일을 떠넘겨버리다니, 바람직하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심지어 공식적인 직무상으로는 부하가 아니라 상사였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인데 뭐라 할 수도 없었다. 하기야 상호 동의만 있다면야 뭐가 문제겠는가.
그리고 지수의 옆에서 잔을 홀짝이는 서민하가 말했다.
“나는 조금만 마실 거야. 내일 아침에 연습할 거라서.”
“잘 생각했어 진짜.”
지수가 정말 기특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가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얻은 교훈 하나가 있다면, 사람이 과음해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민하가 버텨준다면 만일 자신이 취해버리게 된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큰 의지가 되었다. 아그리올라랑 싸울 때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지수는 헛웃음을 흘리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
시간이 지나 밤이 깊었다.
‘…믿고 맡길 수 있기는 개뿔이!’
테이블 이쪽부터 저쪽을 한 번 슥 돌아본 지수는, 미간을 꼬집으며 생각했다. 이건 정말 끔찍했다. 완전히 개판이었다.
“미역 씨!”
“네, 네!”
갑자기 옆에서 서민하가 지수의 멱살을 콱 잡았다. 박력에 왠지 존댓말을 써야할 것 같았다. 지수는 양손을 펼친 채 천천히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서민하가 말했다.
“미역 씨, 아직 마실 수 있지?”
“저기 당신, 내일 아침에 연습이라 조금만 마신다고…..”
“마실 수 있지?”
이쪽을 바라보는 서민하의 눈이 반쯤 풀려있었다. 아주 다행히도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노려보는 시선이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 마시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초리였다. 이제 보니 서민하 씨 주정 수준이 장난이 아닌데. 지수가 포기하고 소주잔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따라라….”
서민하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서민하는 아주 조금 흘리는 걸 넘어서 줄줄 넘치게 소주를 따라붓고 있었다.
“폭포가 참 절경이구만.”
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서민하 씨는 이미 완전히 가버리셨다. 벌써부터 얘를 집까지 어떻게 데려가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브레이크를 좀 걸어주고 싶어도 이 계집애는 자기 잔이 비니까 혼자 자작을 해댔다. 말리려고 하면 노려보면서 화를 냈다. 해석 스킬로도 답을 도출 해낼 수 없는 난제였다.
지수는 고개를 돌려 오성화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성화 씨.”
“오성화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불러….”
“정신 좀 차려보세요.”
“맞아, 정신 좀 차렸어야 됐는데….”
이쪽도 상당히 답이 없었다. 술 취하기 전에도 상당히 상태가 안 좋았는데 술이 들어가자 완전히 자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계셨다. 거의 대화가 통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오성화에게 어떤 말을 입력해도 저는 얼간이입니다 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사람이 너무 섬세한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흠. 박사 네가 고생이 많군.”
지수의 맞은편에서 정유현이 말했다. 목소리는 요만큼의 흔들림도 없이 냉정했다. 완전하게 이성적이었다. 평소의 정유현 그대로, 정말 든든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모습이었다.
그 목소리를 낸 당사자가 테이블에 팔을 뻗은 채 엎드려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지수가 두통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누가 보면 무슨 시체인 줄 알 것이다. 지수가 어떻게든 일으켜보려고 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정유현은 손바닥을 앞으로 척 내밀어 제지했다. 그리고 아주 멀쩡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이 자세가 편해서. 잠깐 이러고 있을 뿐이다.”
“그 잠깐이 지금 10분 째인데요.”
“흠. 금방 일어나지. 잠시만 기다려라.”
잠깐동안 뒤척이던 정유현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돌겠네 진짜.”
지수는 현기증을 느꼈다. 두 사람이 저런 상태라면 집까지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김혜성을 불러서 방 안에 쑤셔넣어 달라 부탁해야 하나? 하지만 가뜩이나 일 때문에 바쁠 사람을 이 시간에 불러내는 건 꺼려졌다. 심지어 학원 일은 반쯤 지수 때문에 떠 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수가 앞머리를 꼬았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내가 해야 되나….”
마침내 지수가 집에 돌아와 씻은 것은, 용왕의 마법까지 쓰면서 별의 별 짓거리를 다 한 끝에 세 사람을 각자의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온 다음이었다. 슬슬 잠에 들려던 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백묵에게서의 연락이었다.
<일정 조율이 끝났다. 소집은 내일 저녁.>
***
어두운 방 안에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면면이 보였다. 모인 이들은 누구 한 명이 돌아온 것을 맞이하러 모였다기엔 지나치게 영향력이 컸다. 아니, 각각의 영향력이 큰 것만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칼부림이 일어나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만큼 상극이며 적대하고 있는 세력들의 수장들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길드인 불식의 길드장이자, 대전쟁을 끝낸 육영웅 중의 한 명, 백묵.
일곱 번째 영웅이라고까지 불리며, 현재의 협회장을 도와 헌터 협회의 신체제를 단기간에 안정시킨 집행부장 정유현.
단 네 명의 구성원으로 모든 길드를 공포에 떨게 만든 최악의 각성자 집단, ‘발푸르기스의 밤’을 이끌고 있는 흑마녀.
정계. 재계. 예술계. 각계의 권력자들이 모여 이계의 지식을 추구하는 수수게끼의 집회 ‘매드 티 파티’의 예술가.
네 사람 모두가 진심으로 나선다면 이 나라 안 각성자 사회의 세력도를 어느 정도 바꿔버릴 수 있는 영향력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걸어와 그들의 가운데에 앉은 것은, 비교적 온화한 분위기를 하고 있는 녹색 곱슬머리의 청년이었다.
“어. 오랜만입니다, 라고 해야 할까요.”
지수 입장에서는 별로 되지도 않은 일이지만 그들의 관점에서는 반 년 동안이나 지수가 실종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앉은 지수의 얼굴을 보자, 흑마녀와 예술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흑마녀가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돌아오셨군요, 척척박사 님! 대체 어디 계셨던 건가요?”
목소리엔 걱정 또한 섞여있었다. 지수가 그 마왕의 새까만 막 안에 들어가 사라진 뒤, 여섯 달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지수에 대한 흔적은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다. 죽어버린 게 아닌가 너무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지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답해주었다.
“봉인의 기둥 안에 갇혔었는데. 아그리올라를 죽여서 빠져나왔어요. 덕분에 이젠 용왕의 격도 손에 넣었죠.”
지수의 말을 들은 흑마녀가 입을 벌렸다. 그녀 또한 최강의 각성자 중 한 명. 용왕을 죽였다는 말의 의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예술가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지수를 쳐다보았다. 지수가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다른 용왕을 박살내서 제가 더 세졌다는 뜻입니다.”
예술가는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예술가가 흑마녀에게 궁금한 것 여러 가지를 더 물어보는 동안, 지수는 슬쩍 핸드폰을 조작해 정유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 몸상태는 괜찮으세요. 어제 엄청 마셨는데.
- 솔직히 조금 기억이 흐릿하다만, 알아서 잘 들어갔던 것 같더군. 집으로 가는 길은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야.
그 답장에 지수는 억울해서 책상을 쾅 내리칠 뻔했다.
몸이 기억하기는 개뿔이. 제가 늑대 씨 운전면허증 보고 데려다드렸지 , 무슨 몸이 기억합니까? 몇 번이고 물어봐서 겨우겨우 비밀번호 찍게 하고. 다섯 번 틀렸다고 10분 동안 문앞에 서서 기다리고. 물론 입 밖으로 꺼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아본 지수가 모여 있는 네 명에게 말했다.
“마왕에게 경고를 들었었죠.”
정유현과 백묵, 흑마녀는 즉시 긴장해서 몸을 굳혔다. 마왕을 직접 대면해본 적이 있는 그들에게 그 이름은 그만한 문게를 지니고 있었다. 예술가만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다음 봉인을 부수려 드는 건 위험해요. 그랬다간 진짜 몰살당할 걸요. 그쪽은 자극하지만 않으면 이쪽을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반을 굳건히 다질 필요가 있겠죠. 이후는 차차 생각하고.”
지수의 말에 백묵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봉인의 기둥이 하나 무너지고, 이계의 침식이 계속해서 흘러들고 있다. 각성자들의 평균적인 역량도 크게 상승했어. 마왕에게 시비를 거는 건, 침식의 진행이 다시 멈추고 최선의 대책이 만들어진 다음에도 늦지 않아.”
정론이었다. 정론이었지만, 사실 지수 생각에는 그 마왕을 상대로 과연 대책이라는 걸 세울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백묵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우선은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을 보여줘야 할 텐데.… 시간이 남는 건 마녀 계집이나, 다과회에서 나온 저 꼬맹이겠지.”
“저요! 제가, 제가 할게요! 제가 해도 되죠!”
손까지 들며 호들갑을 떤 것은 매드 티 파티에서 나온 예술가였다. 그는 용왕인 지수에게 크게 심취해있는 상태였다. 이른바 이계 애호가였으니까. 그 정점인 지수는 말하자면 걸어다니는 뮤즈나 마찬가지였다. 직접 안내역을 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었다. 백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단은 해산인가.”
그리고 일어서서 몇 걸음 걸은 백묵이 뒤돌아봤다.
“그래, 한 가지 더. 이렇게 모이고야 있지만, 우린 동료도 뭣도 아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 충돌하지 않게 행동을 서로 ‘조율’하고 있을 뿐이지. 언제든 적대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걸 숙지해두고 불편하지 않을 거리유지를 부탁하지.”
그리고 다시 백묵이 뚜벅뚜벅 집회 장소를 빠져나갔다. 지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협조성이라든가 친화력이라는 단어하고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있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내 지수는 주차되어있던 피아트 500에 탑승했다. 이 앙증맞은 자동차가 예술가의 자가용이었다. 목적지는 지수가 기획하고, 매드 티 파티의 구성원들이 출자해내 세운 ‘학원’이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예술가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저기요, 용왕님.”
“집회 별명대로, 척척박사 씨라 부르시면 됩니다.”
“용왕님. 그거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돼요?”
사람 말을 안 듣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지수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그. 용왕님 머리에서 뿔 솟아나고… 눈도 빛나고….”
“아아.”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왕의 힘을 개방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라면 눈에 띄겠지만, 이곳은 차 안이었고. 지수가 용왕의 힘을 끌어내 용왕의 뿔과 눈동자를 발현시켰다.
“와아!”
예술가가 황홀해하며 손뼉을 쳤다. 문제는 그는 핸들을 잡고 있었고, 환희에 빠져서 이쪽을 쳐다보느라 앞은 보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수가 당황해서 예술가에게 소리쳤다.
"잠깐만요, 앞이요! 앞!”
지수는 당황해서 예술가에게 소리쳤지만 예술가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앞의 자동차와 부딪힌다! 그러면 자신은 몰라도 예술가와, 반대편 자동차의 승객들은 큰 상처를 입을 게 뻔했다. 지수가 재빨리 마법으로 자동차를 띄웠다.
하늘에 뜬 자동차는 허공에 도로가 깔린 듯 매끄럽게 나아가다 다시 바닥에 안착했다.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다.
“하....”
지수가 안도의 한숨을 쉬자, 예술가가 흥분해서 말했다.
“와, 자동차가 날았어요! 이런 마법도 있는 건가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와, 용왕님은 진짜 뭐든지 할 수 있구나!”
“제발 좀 닥쳐주세요….”
지수는 곧바로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후 예술가가 보여달라 아무리 졸라도 변해주지 않았다. 이 사람 앞에서 용왕의 모습이 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예술가의 자동차가 학원에 도착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지수가 탄성을 흘렸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요….”
학원의 시설은 아주 충실했다. 전문가들의 조언과 개량을 거쳤기 때문인지 지수가 혼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직관적인 구조를 하고 있었다. 척척박사의 이름 아래 모인 강사들의 평균적인 역량 또한 지수가 생각한 것 이상의 수준이었다. 어쩌면 이계의 침식 덕분일지도 몰랐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학원 내의 경기장이었다. 지수가 놀란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분명 기획안에 들어가있었지만, 이것을 정말로 실현시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은 이른바 각성자의 리그라고 할 수 있었다. 일종의 대련이나 스포츠 같은 개념으로서 도입한 시스템. 던전행을 할 파티에게 실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사전 연습을 시켜, 진형이나 연계를 고려한 싸움을 할 수 있게 도우려는 의도였다.
등급별로 나누어지는 리그에는 강사들 또한 참가할 수 있었다. 경기장 중앙에 있는 대형 모니터와 전광판. 지수는 가장 상위의 리그, 맨 위에 적혀있는 이름을 바라보았다. 현재 학원 리그의 정점에 서있는 건 단 두 명으로 이루어져있는 파티였다. 그리고 지수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그 파티의 구성원은 둘 모두 지수에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지수.”
그리고 누군가가 뒤에서 지수의 이름을 불렀다.
“너 설마 이지수냐?”
지수가 고개를 돌리자, 건방진 인상의 청년이 팔짱을 끼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학원 리그의 챔피언이었다.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승민. 헌터 라이센스 시험에서 지수와 마법 대결을 펼쳤던 차석 합격자. 그리고 그 뒤에 서있는 것은, 첫 던전행에서 지수와 함께 사냥을 했던 전사. 서중철이었다. 서중철이 놀라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어, 선생님 아니십니까!”
“뭐야. 중철이 형. 저 녀석을 알아?”
“알다마다! 내가 파티를 못 구하고 있을 때….”
서중철이 그 때의 지수를 표현하기엔 입이 열 개여도 모자라다는 듯 허겁지겁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라이센스를 처음 따고 첫 던전 행에 있었던 일이니 꽤 오래된 일인데, 서중철은 마치 어제 일이라는 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승민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이야기의 요약을 전해들은 전승민은 이거 재미있게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흥.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했는데 여기서 볼 줄이야. 너도 리그에 참가하러 온 거겠지. 잘 됐군. 드디어 결착을 지을 수 있어. 누가 진짜 우리 세대 최강의 마법사인지.”
전승민의 주변에서 강렬한 마력이 터져나왔다. 지수가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단한 성장이었다. 전승민은 이미 예전의 김혜성과 비슷한 수준의 마법사가 되어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너와 싸워주지. 그런 팽팽한 호승심으로 가득찬 전승민에게, 지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난 참가하러 온 게 아니라.”
“학원 이사장이라 시찰하러 온 건데….”
지수가 미안하다는 듯 멋쩍게 헛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