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 축제는 시끌벅적해야지 (5) >
정유현이 협회로 걸어가고 있을 때, 건물들의 지붕과 지붕 사이를 닌자처럼 뛰어오며 나타난 것은 김도형이었다. 그는 땀에 절어있는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정유현에게 소리쳤다.
“어디 갔다 온 거예요! 갑자기 위치에서도 사라지고, 무전으로 연락하려고 해도 신호도 안 닿고! 큰일 났다고요 지금!”
그리고 달려온 김도형은 정유현의 옆에 서있는 지수를 보고 우뚝 굳었다.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것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협회를 제압하러 간 마녀들에게도, 건물 주변을 봉쇄한 있는 티파티의 부하들에게도 단 한 명도 빠져나오게 하지 말라고 말해뒀을 텐데.
‘하긴 나도 뒤를 잡혔었는데, 질책하기는 좀 그런가.’
그리고 김도형을 본 정유현이 마침 잘 만났다는 듯 물었다.
“파악하고 있다. 다친 사람은?”
“다들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것 뿐이에요. 하지만….”
“그런가.”
콧숨을 내쉰 정유현이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하얀 색 제복의 외투를 망토처럼 김도형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김도형은 멍하니 눈을 끔뻑거리며 정유현을 쳐다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 듯한 김도형에게 정유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간단히 습격을 허용하다니. 협회장 실격이다.”
“선배님!”
“…정도로 핑계를 대면 무난하게 넘어가겠지. 역시 이렇게 사람을 휘두르는 자리는 나랑은 안 맞는 것 같군. 복잡하게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은 나보다는 네가 적임이야. 이미 이사회를 장악해놨으니 취임은 어렵지 않을 거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간단한 일이다, 차기 협회장. 너는 박살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곳을 집행부장인 나한테 말해주면 돼.”
할 말은 전부 전했다는 듯 후련해진 표정의 정유현이, 힘내라는 듯 김도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김도형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외투를 벗은 정유현은 서있는 지수에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잠깐 빌려주지 않겠나. 그거.”
더없이 진지한 정유현의 목소리에 지수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이미 지수의 얼굴에서 초조함은 사라져있었다.
발푸르기스의 밤도, 매드 티 파티도. 지수의 감각으로는 어떻게든 이용하고 있는 외부인일 뿐이었다. 그에 반해 정유현은 신뢰할 수 있는 동료였다. 그런 사람이 옆에 아군으로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수에게 적잖은 의지가 되었다.
위장용으로 입고 있던 집행부의 제복을 벗은 지수가, 정유현에게 코트를 내밀었다. 검은 색 외투를 받아서 걸친 정유현은 지수에게 익숙한 그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역시 늑대 씨는 그 옷이 어울려요.”
“...결국, 멀어져봤자 다시 돌아온다는 거겠지.”
하지만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내 재버워키를 소환한 지수가 모자장수의 망토를 걸친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유현은 정유현대로 능력을 이용해 공중을 계단처럼 걸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전쟁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
협회 건물 안에선 또각또각 조용한 구둣소리가 울려퍼졌다.
흑마녀가 들고 있는 접시 위에서 검은 촛불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가 복도에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수많은 악령들이 날아다니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몰아치는 악령들이 사람들의 몸을 통과하자마자 그들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정말로 이래도 되는 거야? 부수라며~? 부숴야지!”
“무력화시키는 걸로 충분해요.”
따라온 황마녀가 툴툴댔다. 다른 마녀들은 지수의 불살 방침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것을 용왕 특유의 오만함이라 해석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전부 자신의 물건이나 마찬가지니 마음대로 손대지 말라는.
반면 매드 티 파티의 사람들은 지수의 방식에 대해 쉬이 납득했다. 그들은 그것을 명분을 얻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행동이라 해석했다. 이 국면을 장악한 뒤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기에 흔쾌히 지수의 판단에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흑마녀에 이르러선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지수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흑마녀는, 이런 방식이 단순히 지수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고집을 본인이 버텨낼 수 있을까 없을까였다.
‘차라리 일이 꼬여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멀쩡한 척을 하고 있지만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척 봐도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척척박사에 대한 모욕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자기 자신을 갉아먹다가 무너질 바에야 빨리 체념하고 포기하는 편이 그에게 좋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역시 꿈이랑 현실은 다른 게 아닌가 하고.”
대기하는 게 심심한 건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황마녀에게 흑마녀가 대답했다. 아무튼 이걸로 협회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그것은 각 길드나 각성자들에게 관제탑 역할을 해줄 중심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흑마녀가 바깥을 보았다.
그곳에선 티파티의 예술가가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피해를 끼칠 의도는 없습니다! 단지 퍼포먼스이고 경고일 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게 대체 무슨 참상입니까!>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터져나왔다. 용왕에게 심취한 그는 스스로 흑막을 그만두고 티파티의 얼굴마담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것은 사회에 대혼란, 또는 변혁을 일으킬 첫 번째 파문이었다. 예술가가 협회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이십니까! 두 명, 단 두 명의 테러에 헌터 협회가 마비되었습니다! 최대 규모의 기관이 두 명의 각성자에게! 이걸로 확연하게 드러 난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우릴 해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열심히 하시네요, 정말….’
연설문이 잘 만들어진 점은 그것이 같잖은 선동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실제로 흑마녀 수준의 각성자가 날뛰는 걸 근본적으로 막을 제동장치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강함의 격차가 너무나도 차이 났다. 지금까지의 평안함 또한 마왕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기에 지켜졌던 것이었다.
<이게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각성자들의 전체적인 역량 향상입니다! 지금같은 강력한 각성자들의 독주 체제가 아니라, 힘을 뭉치면 우리들 스스로 그 어떤 강자에게도 대응할 수 있도록!>
황마녀는 저게 뭐하는 짓이냐고 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흑마녀는 상당히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의 싸움은 발푸르기스의 밤에도 매드 티파티에도 없었던 발상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꾸민 것은 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척척박사’의 뜻입니다!>
예술가가 양손을 들고 소리쳤다. 망토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당사자가 복도에 나타난 건 그와 동시였다.
“용왕?” “척척박사 님!”
“한 명 빠져나갔더군. 그것 빼곤 잘했어.”
일을 끝낸 지수가 돌아왔을 때, 흑마녀는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표정에 놀랐다. 지수의 얼굴은 완전히 평안했다. 일부러 강한 척 분위기를 잡지도 않고, 과장되게 별 일 없는 척 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흑마녀의 옆에 있던 황마녀가 전투 태세를 취했다. 지수의 뒤에서 나타난 정유현을 보고서였다.
흑마녀 또한 눈을 크게 떴다. 협회장이 된 정유현은 협회 안에서 유일하게 경계해야 할 수준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지수가 직접 담판을 지으러 간 것이었는데, 친해지기라도 한 것처럼 같이 걸어오다니. 하지만 황마녀가 가시를 세운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닌 듯 했다. 그녀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너! 집행부!”
“응? 황마녀인가. 오랜만이군.”
“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적자를…!”
정유현과 황마녀는 이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황마녀는 돈 벌자고 자기 포탑을 범죄자들에게도 마음껏 설치해주는 악질이었으니, 두 사람 사이에 안면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수가 한 손으로 황마녀를 제지했다.
“그만해 둬. 우리 편이니까.”
그리고 지수가 안주머니에서 스크롤을 꺼냈다. 백묵을 급습하기 위한 텔레포트 스크롤이었다.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정유현마저 이쪽에 붙어주었다. 패는 충분할 만큼 갖춰졌다. 다시는 오지 않을 만한 호기였다.
“지금부터 이 넷이서 백묵을 제압한다.”
더 이상 조심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계획은 세웠고 전력도 모였으니 이제 쭉 밀고 나갈 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목숨이 인질로 잡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했다. 기세를 몰아서 해야할 일을 전부 끝내버릴 셈이었다.
대기하던 마녀들과 합류해 스크롤을 찢자, 주변의 풍경이 일순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가만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 백묵이었다. 가장 먼저 행동한 건 정유현이었다. 정유현의 손바닥에서 능력이 쏟아져내렸다.
“정유현? 그리고….”
백묵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순간 책상이 무너지고 땅바닥이 움푹 파였다. 연보라색 기운이 백묵 주변에 내리꽃히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백묵은 팔짱을 낀 채 무릎 하나 꿇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예의범절이 좋지 않군. 노크도 없이 마음대로 남의 터에 비집고 들어와서는, 인사도 없이 공격부터 하는 건가?”
하기야 이런 걸 공격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백묵의 태도에 정유현이 침을 삼켰다. 바닥이 무너지지 않게 적당히 힘을 조절하고 있긴 하지만,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있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치고, 이건 또 신기한 조합이야.”
백묵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슥 고개를 돌려보았다.
“마녀가 둘.”
흑마녀와 황마녀가 백묵의 시선을 받았다. 둘의 시선은 적의에 가득차있었다. 백묵이야말로 마녀들의 활동을 견제하는 데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간이었다. 발푸르기스의 밤과 불식은 서로 원수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협회장에.”
그 말에 정유현이 꽉 주먹을 쥐었다. 정유현은 몇 년 전부터 백묵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그 모든 관계를 완전히 박살내기 충분할 만큼 무례했다. 하지만 마음을 굳힌 이상 그런 것에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이내 돌아간 백묵의 시선이 지수를 향해 멈추었다.
“그리고 너에게선… 아그리올라의 마력이 느껴지는군.”
“이번 대 용왕입니다. 아그리올라는 완전히 소멸했고요. 일단 말씀은 드려보겠는데, 여왕의 봉인 어디 있습니까?”
“알려주면 어쩔 셈이지?”
“부술 겁니다. 일신상의 사정이 있어서.”
지수의 대답에 백묵은 납득이 간다는 듯 콧숨을 흘렸다.
“흥.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건가.”
팔짱을 낀 백묵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이죽였다. 김혜성도 오성화도 당장 이쪽으로 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조작해두었다. 그런데 백묵의 얼굴에선 요만큼의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묵이 입을 열었다.
“무당은 용왕이 여왕의 봉인을 깨뜨리려 할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아그리올라의 견제에만 주력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결과가 되어버릴 줄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야.”
“여유 부리지 마세요.”
조용히 백묵을 위협한 것은 흑마녀였다. 백묵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자각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이 진심으로 싸운다 해도 마녀 둘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고, 셋이면 압도할 수 있어요. 저희 넷에게 둘러싸인 순간 싸움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건 이야기가 조금 다르군.”
대답한 백묵이 천장 쪽을 향해서 손을 쳐들었다. 하지만 한손을 위로 뻗었을 뿐 공격하려는 그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경계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영역을 펼치고 있던 지수였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아본 지수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전부 방어해!”
“철식.”
다음 순간. 천장의 훨씬 위에서부터, 거대한 질량의 철검이 내려떨어졌다. 주문이라면 해주의 비술로 상쇄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주문 같은 게 아니라 단순한 철이었다. 묵직한 무게를 가진 거대하고 뾰족한 강철덩이. 당연하게도 백묵의 사무실은 그대로 붕괴했다.
허물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있던 것인지, 백묵의 사무실 아래쪽은 거대한 빈 공간으로 이어져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속에서, 지수는 재빨리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자잘한 상처쯤이야 있었지만 큰 손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각기 제 몸을 지킬 수단 쯤이야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검은 철비늘로 분해되며 흩어져, 백묵의 몸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불가살이의 갑옷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마녀들은 재빨리 백묵을 공격하려했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시도해봐도 주문이 발동되지 않았다.
“이럴지도 모른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영역을 펼치고 있는 지수는 익숙한 느낌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 지하의 공간은 하나의 거미집이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팔다리가 싹둑 잘려나가 버리도록, 주변의 온갖 마력의 실들로 칭칭 둘러싸여있었다. 그 호텔의 지하 주차장이 생각났다. 지수의 기억에서 이런 묘기를 부리는 건 한 명 뿐이었다.
“싸움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저편에서 백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기가 걷힌 곳에는 흑기사를 대동하고 있는 인형사가 백묵 옆에 서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강철의 비늘갑옷을 걸치고 있는 불가살이 백묵과, 광택 하나 없는 새까만 갑옷으로 몸을 가린 흑기사 우진.
“이쪽은 육영웅이 둘이다.”
"......."
“육영웅 하나에 둘이 붙으면 버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셋이 붙으면 쓰러뜨릴 수 있다. 그렇게 말했었나, 흑마녀? 하지만 너희 넷으로는 둘씩 붙어도 버티는 게 고작일 텐데.”
흑마녀는 침을 꿀꺽 삼켰지만, 지수는 가볍게 콧숨을 흘렸다. 이쪽이 무언가를 준비한다면, 저쪽 또한 비장의 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마녀와 흑기사는 상성마저 최악이었다. 확실히 한 방 먹었다. 하지만 지수는 오히려 안심이 들었다.
“뭐야. 이 정도인가.”
백묵의 대응은 전부 지수가 생각하고 있던 범위 안에 있었다. 그렇다면 대응할 수 있다. 해석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이길 수 있을지 궁리할 수 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지수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났다.
[‘현상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당신. 계산이 틀렸어.”
흑마녀와 황마녀는 자신이 직접 주문을 발동하는 게 아니라 도구나 무기에 의지하는 타입. 주문을 틀어막는 흑기사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해 데리고 온 인선이었다. 지수가 백묵의 앞쪽에서 멈추었다.
“둘씩 나눠질 필요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림자에서 재버워키가 튀어나오고, 파사의 마력이 영역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인형사가 설치해두었던 모든 실들이 일거에 끊겨나 갔다. 미친 모자장수의 망토가 흔들렸다.
“당신은 나 혼자서 쓰러뜨릴 건데.”
일순. 흑기사가 내려친 대검과 백묵이 휘두른 팔은, 전부 지수를 맞추지 못하고 허공만을 휘저었다. 두 공격 모두 지수보다 강했고 지수보다 빨랐다. 능숙하게 기세를 숨겨낸 노련함도 있었다. 하지만 지수에게는 닿지 못했다. 애초에 공격이 시작되기 전부터 읽히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있는 시야가 다르다.
백묵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림…? 너, 무당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지수의 손이 백묵의 얼굴을 쥐고,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