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 축제는 시끌벅 적해 야지 (4) >
지수는 전화를 끊고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
정유현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싶었다. 그게 아니면 의외로 굳어있는 건 겉모습 뿐이고, 지금 지수가 한 말이 단순한 블러핑은 아닐지, 이제부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냉정하게 따져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지수는 조용히 일어나 카운터로 갔다.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어 계산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에 정유현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 지수를 쳐다보았다. 한 번 숨을 내쉰 지수가 밴더스내치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심장의 힘을 쓸 때 내가 억눌러줄 수 있는 건 앞으로 잘 해야 세 번이 한계야. 그 안에 용왕의 이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격을 얻어 내지 못하면, 힘에 잡아먹혀 자멸하겠지.>
지수가 눈을 감았다. 생각해둔 모든 계획을 끝내고 강림한 대마수를 토벌할 때까지, 용왕의 힘을 전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건 세 번이 끝. 그 중 한 번을 지금 여기서 정유현에게 사용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두 번이야.>
밴더스내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펼쳐지고,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용왕의 둥지였다.
지수의 머리에서 숨기고 있던 뿔이 돋아났다. 하늘에는 셀 수 없는 숫자의 룬 문자들이 빼곡하게 펼쳐져있었다. 지수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늪처럼 끓어올랐다. 그림자의 장막에 휩싸이며,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댄 지수가 말했다.
“허주화.”
재버워키와 융합한 지수가 모자장수의 망토를 휘날렸다. 그림자 속에서 보팔의 검 네 자루가 튀어나왔다. 피는 흡혈귀와 계약한 데다 몸은 반쯤 용으로 변해, 혼에 유령을 붙인 채 정령과 융합하고 있다. 잡탕도 이런 잡탕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번이 처음이네.’
지수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협회장을 쓰러뜨린 건 용왕이 되기 전이었고, 마녀들과는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시켰다. 그 이후로 제대로 싸워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말해 이것이 용왕으로서 지수의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둔 상대는 적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지수에게 있어서 정유현은 너무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영역을 펼친 뒤 상대가 행동하는 전조를 읽어 모든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지수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정유현의 중력 속에선 그런 근접전이 근본적으로 봉인되었다.
하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수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성격… 쉽게 말하면 겁쟁이기에,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이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지 않았다. 정유현과 만나기로 한 것은 철저한 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이쪽은 정유현의 능력과 버릇, 경향, 숨기고 있는 비장의 한 수까지도 바로 옆에서 관찰했다. 그 반면 지금 정유현에게는 이쪽의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해봐야 마법사라는 것 정도겠지. 이런 조건으로 싸워서 지면 망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군. 말하자면 그건가.”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별세계로 바뀌었음에도, 정유현은 그리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전투 태세를 취한 지수를 바라본 그는 이야기가 간단해서 좋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정유현의 몸에서 연보라색 소용돌이가 흐르기 시작했다.
“막으러 가고 싶으면, 너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거군.”
[‘현상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지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황금색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져 흘러가고 있는 현실. 무의미하게 흩어져있는 정보의 파편들이 모여들어 해석되었다. 그 해석이 도출해낸 것은 바로 조금 뒤에 일어날 미래의 예측이었다.
- 반응할 새도 없이, 중력에 내리찍혀 땅바닥에 처박힌다.
“읏!”
망토를 휘날리는 지수가 옆으로 날아갔다. 서있던 정유현이 살짝 손바닥을 올린 것과 동시. 거대한 철퇴를 휘두른 듯 지수가 서있던 땅바닥이 움푹 파였다. 아무리 몸이 강화되어있다고 해도 저런 걸 직격당했다간 최소 골절이었다.
“재밌군. 마치 미리 읽은 듯이 피해?”
정유현은 웃었지만 지수는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협회장과 싸울 때의 정유현은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훨씬 더 강해져있었다. 그것은 함께 싸운 지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력과 속도는 그것마저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지수는 억울해서 이를 악물었다.
‘이 양반은 왜 또 더 세진 건데?’
반쯤은 지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협회장을 죽이기 위해 한 번 더 한계를 뛰어넘어 중력의 특이점을 만들어낸 결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해도와 제어가 한층 더 올라간 것이다. 정유현의 중력 공격이 쉴새없이 몰아쳤다.
‘장난이 아니야…!’
현상해석으로 내리꽃히는 중력을 피해내는 지수는, 자신의 계산착오를 인정했다. 지금 정유현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섣불리 다른 마녀를 정유현과 붙여버렸다면 귀중한 전력을 잃어버릴 뻔했다.
위기감을 느낀 지수가 한쪽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하늘에 새겨져있던 수십 수백 문자의 룬들이 빛나며 발현됐다. 모든 룬들은 서로 상호작용하여 증폭되도록 배치되어있었다. 주문의 융단폭격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입원 정도는 각오하시라고요.”
다치지 않게 제압할 거란 생각은 버린지 오래였다. 아무튼 이쪽은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다. 힘을 빼고서 살살 해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정유현은 역전의 용사니, 이런 폭격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또한 있었다.
그리고 주문의 비를 올려다보는 정유현이 피식 웃었다.
주머니에 손을 꽃은 그는 그 자리에서 피하려 움직이려고조차 들지 않았다. 정유현이 연보라색 장막을 만들어내자, 쏟아지던 수십 개의 주문들은 그대로 휘어 다른 곳의 땅바닥에 내리꽃혔다. 애초에 정유현의 능력에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뭘 각오하라고?”
그가 시시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유현은 목숨만 겨우 부지하긴커녕 옷에 먼지 하나 묻지 않았다.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저 능력은 완전히 사기였다. 입술을 이죽인 지수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모자장수의 망토가 체셔 고양이의 스카프로 변하고, 지수의 등 뒤에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밴더스내치가 나타났다.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처럼, 십수 개의 룬 문자들이 방진을 이루어 밴더스내치의 손 위에 날아들었다.
<여기 나의 왕에게, ‘파열’의 용언을 바친다.>
하나로 결합된 룬 문자들이 반디의 손에서 용언으로 격상되었다. 지수의 손에 휘감긴 정령무장은 그것을 삼켜 탄환을 장전했다. 지수가 정령무장을 정유현을 향해서 겨누었다. 이것이야말로 룬의 마탄을 넘어선 지수의 일격필살이었다.
“용언마탄.”
지수는 처음으로 정유현과 싸웠을 때를 생각했다.
그가 집행부로서 폭주할 위험이 있는 서민하를 데려가려고 하고, 지수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앞을 막아섰을 때. 지금도 그 때와 똑같았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고 충돌은 필연이었다. 그 때와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이쪽이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신념의 관철.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지수에게는 없는 것이라 동경하고 있었다. 저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감탄하고 있었다. 미련하다 미련하다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쭉, 정유현은 그런 고고한 모습으로 있어줬으면 했다. 꺾이지 않은 채로 나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쪽의 방해가 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굽혀질 위인이 아니라면.
“…힘으로라도 굴복시켜드리죠.”
지수는 살짝 빗맞춘 곳을 겨냥했다. 이걸 직격으로 맞았다간 아무리 정유현이라도 치명상이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정령무장에서 격렬한 마력이 담긴 용언마탄이 터져나갔다. 그것은 이미 탄환이라기보단 파괴광선이란 표현이 어울렸다.
폭음과 함께, 마탄이 작렬한 곳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폭격 탓에 지수의 둥지는 엉망으로 초토화되어있었다. 하지만 마력과 심상만 있다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나타난 건 상처투성이가 된 정유현이었다.
지수는 꽉 주먹을 쥐었다. 생각한 대로 잘 됐다. 용언마탄은 중력의 방벽이고 뭐고 뚫어버릴 수 있는 위력이었다. 정유현에게 전투에 지장이 갈 만큼 타격을 주면서도, 치명적인 상처는 입히지 않았다. 하지만 정유현의 표정이 이상했다.
지수를 올려다보는 정유현의 얼굴에 그려져있는 건 낭패에 빠졌다는 위기감 같은 게 아니라, 단순한 불만이었다. 그리고 한숨을 쉰 정유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확실히 알겠다, 척척박사.”
“지금 저는 용왕입니다. 당신의 적이요.”
“...그래. 용왕. 너는 싸움과는 안 어울려.”
뜬금없는 말에 지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정유현이 당황하는 지수를 노려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건 정유현일 텐데, 오히려 정유현 쪽에서 지수를 위협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의 목소리는 딱히 위협하는 기색 없이 침착하고 담담했지만, 어딘가 소름끼치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떼라. 도망친다고 뭐라 할 인간은 없어. 애당초 너한테는 무리한 일이다. 너는 피 튀기는 전장에 있어도 될 인간이 아니야. 거창한 음모는 집어치우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내일 아침식사는 뭘 먹을까 고민해라. 그게 네가 가장 행복해지는 길이다.”
지수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 우뚝 멈추었다.
"...무슨."
그리고 멍하니 정유현을 바라본 지수는, 문득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그건 정말 이쪽이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제발 당신이나 위험한 곳에 머리 내밀지 말고 은퇴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라고. 지금 이쪽이 무슨 심정으로 이 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지수가 조용히 앞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쪽은 목숨이 걸려있다고….”
혼잣말을 속삭인 지수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용왕인지 뭔지 하는 괴물이 되고, 반쯤 시한부 인생이란 선고를 받고서도. 필사적으로 여유로운 척을 해왔다. 몇 없던 인연들이 전부 없던 것이 되어버려도, 예전 동료에게 칼을 겨눠야 해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 자신을 속여왔다.
지수는 요령 좋게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쪽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한 저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그런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수가 한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못본 척하고 참아왔던 것들이 흘러넘쳐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그리고 흘러나온 것은 떨리는 목소리였다.
“내가 잊혀지고 싶어서 잊혀졌을 것 같아?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말로는 끝낼 수 없으니까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거잖아!”
소리치는 지수는 자기 자신도 놀랄 만큼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평소의 존댓말까지 잊어버렸다. 그만큼 정유현의 발언은 지수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하. 침대에 누워서 책이나 읽으라고? 그럴 수 있었으면 대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나도 내팽개칠 수 있으면 내팽개치고 싶어! 남한테 민폐 같은 거 끼치고 싶지 않다고! 각성자들이 늘어나면 원치 않은 피해자가 나올 거라고? 그래서 착실하게 기반을 다졌어!”
모든 각성자가 효과적으로 자기 힘을 다룰 수 있게, 위험한 물건 취급을 받지 않게. 능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을 만들기 위해 머리에 사고 가속을 발동시킨 채 밤을 새가며 마력개론과 학원의 커리큘럼, 조직도, 기획을 정리했다.
“처리할 수 없는 몬스터가 나타나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죽도록 강해지려 연구했어!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전부 내 책임이니까, 나 혼자서라도 모든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게! 최강의 용왕이니 뭐니, 그까짓 거 한 번 되어주겠다고!”
마왕과의 접촉을 원하는 것에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만약의 상황, 지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마물이 나타났을 때 힘을 빌려줄 수 있는지 의향을 알아보기 위해.
“계획도, 아무도 죽지 않게 하려고 별의 별 방법을 검토했어! 온갖 변수를 틀어막으려고 날 신뢰해서 준 스크롤까지 이용하려 들었지! 더 이상 나 보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데!”
정말로 필사적이었다. 비겁한 방법이 떠오른다 해도 결코 행하지 않던 지금까지의 삶의 방침 따위 전부 쓰레기통에 박아넣었다. 척척 박사의 이름을 이용해 김혜성을 빼돌렸다. 오성화가 선의로 건네준 스크롤을 악의로 재활용했다.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누각의 정보를 마녀들에게 팔아넘겼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이라도 망설임 없이 실행했다. 계속해서 최악을 생각하며 최선만을 행해왔다.
그래서 그 결과가, 자기가 구한 정유현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기인가? 걸작이군 그래. 지수 내면의 비평가가 비웃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는 지수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났다.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있는 정유현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무슨 말을 떠들고 있었는지 알았다. 진정해야 했다. 이건 정말로 자신답지 않았다. 입을 다문 지수가 자신의 미간을 꼬집었다.
‘멍청이! 스크롤 얘기까지 꺼내버리다니….’
계획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지도 모르는 정보였다. 지수는 자기혐오에 휩싸이며 자신을 질책했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냉정을 회복할 때까지는 수십 초의 시간이 걸렸다.
지수가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망할 밴더스내치는 훌륭한 연설이라도 들었다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지수가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광경이 이 인격파탄자에게는 더없이 감미롭게 느껴졌겠지. 이래서 약한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 덕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수를 바라보고 있던 정유현이 말했다.
“그렇군. 잘 알았다, 용왕.”
담담한 수긍이 흘러나왔다. 정유현은 ‘척척박사’라는 별명 빼고는 눈앞에 있는 잊혀진 동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한 가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신비주의자 같은 게 아니라 단순한 희생자일 뿐이었다.
“그러면 그런 괴롭다는 표정을 짓지 마라.”
정유현이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서 말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싸워라. 민폐라 불평하는 인간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어깨나 으쓱여줘라. 잊혀진 게 네 스스로 원했던 일이 아니라면, 뭘 멋대로 잊어버리고 있는 거냐고 화내면서 뺨이라도 한 대 쳐주면 되겠지.”
지수의 귀에 그 말은 충고 같은 게 아니라, ‘왜 진작 내 멱살을 잡고 화내주지 않은 거냐’라는 투정처럼 들렸다. 정유현이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항복 의사의 표명이었다. 눈을 끔뻑이는 지수에게 정유현이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답시고 사람을 죽여댄 나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사람을 죽이지 않은 너. 누구의 의견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명백하겠지. 그러니 여기서 나갔을 때, 정말 협회의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면. 용왕…. 아니, 척척박사. 친애를 담아 박사라고 부를까?”
정유현이 가볍게 콧숨을 내뱉으며 웃었다.
나는, 박사 네 옆에 서겠다.”
그리운 그 울림에, 지수는 멍하니 정유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