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여기가 핫플레이스구만 (8) >
하늘에 떠있는 기묘한 한옥. 지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동안, 망량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망량 그는 실로 박식한 인간이었다. 지수가 꺼내는 화제 대부분에 능통함은 물론,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지수가 몇 가지 기초적인 설명을 부연하는 것으로 곧장 이해했다. 이런 양반이 대체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난 것인지 궁금했다.
특히 지수가 혀를 내두른 것은 망량이 가지고 있는 연금술 분야의 지식이었다. 망량이라는 사내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연금술 백과사전 같은 존재였다. 비단 그의 특기분야인 약재의 배합 뿐만이 아니라, 금속과 불을 다루고 도구의 청사진을 만드는 데에도 일류의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에 시계를 들고 있는 망량은 초 단위로 정확하게 지수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맹세해도 좋았다. 언제나 배고프지 않냐고 계속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시던 할머니도 이렇게까지 뭘 계속 먹이시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수는 자신의 배가 부른지 어떤지도 알 수가 없었다. 감각 대부분이 마비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신경이 뚜둑 끊어지고 다시 엉겨붙는 소름끼치는 소리만이 자신의 팔다리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망량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력 호흡은 계속 하십시오. 끊기면 안 됩니다.”
“저기, 망량 씨.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도련님께서는 누각주 님의 제자시니, 도련님의 요구라면 무엇이든 응할 것입니다.”
망량의 말투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명백한 상급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망량의 말에 지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 사내는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자신은 허다인의 제자라기보단… 그냥 살짝, 잠깐 과외를 받은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지수의 변론에 망량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각주 님께서는 스스로 도련님을 제자라고 칭하셨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이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으시다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 말에 지수가 고개를 숙이고 눈썹을 찌푸렸다. 망량에게 돌아가고 있는 사정은 대강 들었다. 허다인이 백묵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서민하의 몸을 빼앗은 것이 대전쟁을 휘젓던 그 용왕이라는 것도 일단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수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과정은 너무나 번거롭게 느껴졌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위화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왜 저를 굳이 빼내서 훈련시킨 겁니까?”
목숨을 구한 입장에서야 감사해야 할 일이었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별개였다. 우연히 지나가다 보이길래 구해준 것은 아닐 것 아닌 가. 허다인은 확실히 지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기로는 대(對) 용왕 전의 히든카드로 쓰기 위해.
하지만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육영웅이었다. 그렇게 뒤에서 계획을 꾸미는 방식으로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직접 나서서 싸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이 예전부터 직접 개입했다면, 상황을 더 좋은 흐름으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용왕처럼 뒤가 꿀려서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적들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지수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표면에 나서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의문이라는 듯 망량이 말했다.
“누각주 님께서는 한 봉인의 기둥을 맡고 계시기에, 누각 바깥에서는 그리 큰 힘을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힘을 쓰려면 봉인에 묶어두고 있는 힘을 회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극도로 위험한 일이기에 정말 웬만한 사안이 아니면 힘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그런 이야기였다.
“그 봉인인지 뭔지가 좀 헐거워지는 게,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라는 소립니까?”
“그렇습니다.”
지수는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았지만, 망량은 고민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즉답했다. 망량이 말을 이어갔다.
“비단 누각주 님 뿐만이 아니라, 백묵 님 또한 그러하실 겁니다. 육영웅의 봉인이니까요. 그때 도련님을 탈출시킨 것도 아마 적잖이 무리하신 것일 테죠. 그런 누각주 님을 보조하기 위해서 이매, 그리고 저 망량이 있는 것이고요.”
즉, 백묵과 허다인은 이미 다른 위험한 일을 전력으로 틀어막고 있었던 터라, 용왕 같은 ‘비교적 사소한 놈’ 따위를 막는 데에 쓸 남는 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재앙을 대신 가서 막아줄 손발을 육성하는 데에 힘쓰는 것이고….
지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누각주가 자신의 일을 맡기기 위해 선택한 이매와 망량 또한 오성화쯤 되는 강자일 것이다. 대규모 집단인 불식과 달리 구성원이 둘뿐인 것을 보아하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지수가 말했다.
“망량 씨의 진짜 이름은 뭡니까?”
“진짜 이름 말씀이십니까?”
“네. 망량이라는 게 본명은 아닐 것 같아서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수는 그의 지식과 실력에 경탄을 품고 있었다. 이만한 사내라면 누각에 들어오기 전에도 유명한 각성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망량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누각주 님에게 거둬지기 전 이름이야 물론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저 망량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인간에서 반 걸음쯤 빗나가 있는 터라. 이게 본명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지수가 눈을 번뜩였다. 인간에서 반 걸음쯤 빗나가 있다고? 이내 지수는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던 위화감에 확신이 들었다. 이상했던 것은 바로 망량으로부터 느껴지고 있는 기척이었다. 그의 기척은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희미했고, 마치 환상과 현실이 반쯤 섞여있는 것 같았다.
‘역시 보통 인간이 아니었구만.’
솔직히 말해서 처음 만났을 땐 허다인이 부리는 소환수나 정령, 식신…뭐 그러한 종류의 존재라고 착각할 수준이었다. 그만큼 이매와 망량은 이질적인 기척을 띠고 있었다. 그것이 누각의 길드원이 될 수 있는 자질이라는 것일까.
지수의 시선을 받은 망량이 큼큼 헛기침을 했다.
“직접 협회에 몸을 담고 계셨던 도련님께 말해보아야,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격이겠으나….”
“그냥 아르바이트 했던 거예요.”
“누각주 님께 들은 바에 따르면, 협회는 비밀리에 인간과 몬스터를 합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더군요. 과연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왔을지에 대해선 퍽 흥미롭습니다만, 저 또한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지수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니, 뭐 이 양반이 자기 몸에 몬스터를 쑤셔넣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수의 반응에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듯이 망량이 웃었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컫기를 허주(虛主)의 술이라 합니다.”
망량의 몸에서 붉은 색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가 기운을 끌어냈을 때 느껴진 것은, 체내에서 정제된 마력만이 아니었다. 좀 더 이질적인 힘. 예를 들면 지수가 재버워키를 사용할 때 발현되는 특이한 파형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망량의 얼굴엔 이빨이 돋아난 말뚝이탈이 씌워져있었다. 지수는 망량의 비밀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협회는 인간과 몬스터를 합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 지수의 눈앞에 선 이 망량이란 사내는.
“정령이랑 융합하고 있는 겁니까…?”
믿을 수 없다는 지수의 말에, 망량은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순간 뒤 망량을 감싸고 있던 괴이한 기운과 말뚝이탈은 그대로 불꽃이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극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망량이 말했다.
“보통은 정령을 일시적으로 몸에 둘러 큰 힘을 이끌어내는 기술이지만, 저와 이매는 사정이 있어 완전히 영구적으로 융합한 상태입니다. 정령인간이라 표현하면 될까요?”
망량이 한쪽 손의 검지를 척 들자 손가락 끝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며 어린아이가 춤을 추는 듯한 형상으로 움직였다. 망량이 살짝 손가락을 휘젓자 휙 하고 불이 꺼졌다. 쓴웃음을 지은 망량이 말했다.
“그 덕에 이렇게, 평소에도 정령의 힘을 제 것처럼 자유롭게 끌어낼 수 있게 됐지만…잔소리 많은 친구와 몸과 마음을 공유하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
망량이 쩝 입맛을 다셨다. 지수는 멍하니 망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모든 것이 신비에 싸여있는 길드, 누각. 그 길드원들에게 그러한 비밀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또한, 그런 비밀을 외부인인 지수에게 거부감 없이 말해주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덮을 정도로 커다란 의문은.
“저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말한 지수가 내려다본 것은 자신의 그림자였다. 그러자 붉은 눈을 빛낸 재버워키가, 고양이 형태가 되어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왔다. 지수의 어깨에 올라선 재버워키가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망량이 내뿜고 있는 마력의 파형을 살펴보았다.
<인상 깊군. 저런 건 이야기 속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지수가 망량을 바라보았다. 정령과 융합하는 허주의 술. 자신도 그것을 사용하는 게 가능하냐 묻는 시선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도련님께선 이미 오행의 이치를 터득하셨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제가 구결을 가르쳐드리는 것만으로, 손쉽게 허주의 술을 습득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의 일입니다.”
한 박자 뒤, 망량이 자신의 팔을 곧게 내뻗었다.
“두억시니. 날뛰어봐라.”
돌연 화염이 휘감긴 그 자리에서, 붉은 갑주가 나타나며 망량의 팔을 감쌌다. 그리고 귀신의 그것처럼 변한 망량의 손이 거대하게 변해 이리저리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망량은 그것을 억지로 힘으로 짓누르며 제어하고 있었다.
이내 다시 불타오르던 정령을 가라앉힌 망량이 말했다.
“억지로 정령을 몸에 두른다 한들, 제대로 일체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오히려 멋대로 정령이 폭주해버려 도련님의 몸이 다칠 위험이 있습니다. 정령은 정령인 채 별개로 운용하는 편이 낫다. 아마 그것을 염려하셔서 누각주님께서도 허주의 술을 가르쳐드리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 말에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재버워키가 말했다.
<...나는 주인의 몸에서 날뛸 생각이 전혀 없다만.>
물론 재버워키의 말은 망량의 귀에 전해지지 않았다. 정령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해석 능력을 가진 지수 뿐이었다. 하긴 반 인간 반 정령이 됐다는 망량이라면, 자신의 정령이 하는 말쯤은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다음 망량이 꺼낸 말은, 재버워키의 항의에 대한 대답이나 마찬가지인 내용이었다.
“이것은 정령에게 계약자를 해칠 마음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몸에 정령이 깃든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일심동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연결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령 딴에는 잠깐 몸을 뒤척인다 싶었던 움직임에도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망량의 말에 지수가 떠올린 이미지는 승마였다. 말에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면, 말이 딱히 기수를 떨어뜨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고삐를 놓치고 낙마해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말위에 올라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말을 타고 달리는 법까지 체득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필요한 건.”
“정령과의 교감 능력입니다. 허주의 술로 정령과 융합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거의 최대치에 가까워야 하겠죠.”
그리고 자리에 앉은 허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연습한다고 해서 올릴 수 있는 수치가 아니지요. 필요한 건 오직 하나, 타고난 정령사로서의 재능 뿐. 결코 도련님의 재능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없지만, 순수한 정령사가 아닌 도련님께선 아마도 힘들 겁니다.”
지수가 미간을 좁혔다. 정령 교감.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능력치였다. 분명히 재버워키와 계약하던 때, 이게 왜 이렇게 높냐고 이상해했던 스킬이 있었다. 분명 그것이 바로.
“도련님께서 그걸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누각주 님께서 이 나라를 다 뒤져봐도, 허주의 술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교감 레벨이 높은 재능은 이매와 저 둘 밖에 없었으니까요. 하긴 누각주 님께서는 그걸 뛰어넘어 아예 정령 교감이 최대 레벨이라 하시더군요. 경탄스러울 뿐입니다.”
망량이 말하고 있는 앞에서 지수는 조용히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찾고자 하는 스킬은 곧바로 눈에 띄었다.
[정령 교감 (Lv.MAX)]
정령의 의사를 눈치채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 높을 수록 정령의 능력을 더 잘 이끌어낼 수 있다. 노력해서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보통 재능에 크게 의존한다. 정령의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을 정령사로서 최고로 친다.
“음....”
지수는 자부심에 차서 말하고 있는 망량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죄송한데 저도 최대 레벨입니다.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까 조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