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여기가 핫플레이스구만 (7) >
집행부 레지스탕스들의 작전은 간단했다.
늑대와 병정이 미끼가 되어 협회 측의 최대 전력인 사천왕의 추적을 뿌리치는 동안, 나머지 레지스탕스 전부가 특정해둔 포인트에 진입해 제압한다. 상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간 문제와 인원 문제를 감안하면 이것이 최선책이었다.
문제는 그 수가 완전히 읽혔다는 것이었다. 병정이 유추해낸 연구동의 포인트 주변엔, 최소한의 경비병력만이 있기는커녕 오히려 협회 측의 집행부 전원이 덫을 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한 돌입 타이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늑대를 따르는 레지스탕스 측과, 협회의 집행부는 전력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났다. 이미 도망 이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이상하게 돌아갔다. 갑자기 나타난 두 개의 변수 때문이었다.
먼저 나타난 것은,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이들.
협회의 관리부였다. 온갖 치료와 사후처리의 대가들. 수많은 회복과 지형 변조 스킬로 무장한 그들이 집행부 간의 전쟁에 합류했다. 레지스탕스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관리부까지 나타나서 진압한다고?’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건은 자세한 내막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협회장의 목을 조르는 일이었다. 은밀하게 동원할 수 있는 집행부와
달리, 동원된 사유와 기록이 분명히 남는 관리부를 사용하는 건 협회장에게 있어서도 양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협회의 관리부는 협회장 측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입은 레지스탕스 측의 집행부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얼떨떨한 일이었다. 어째서 이쪽을? 관리부원들이 대답했다.
“관리부장 님 명령입니다.”
“……뭐?”
“지금이, 협회의 분기점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상시 유사 동원 권한. 그 사안이 시간 상 긴급을 요하는 일일 때, 관리부장은 재량으로 관리부원을 차출시켜 출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규모 동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반란이나 마찬가지인 커다란 도박이었다.
하지만 관리부원들이 가담한 뒤에도 불구하고, 전력은 길항상태였다. 애초에 전력의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기습을 당하고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쪽은 처음부터 이러한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가능한 것은 간신히 버티며 시간을 끄는 것 정도였다. 레지스탕스 측 지휘를 맡은 집행부원이 이를 악물었다.
‘시간을 끈다고 해서 상황이 진전될까?’
그의 생각에는 아니었다. 속전속결하지 않으면 저쪽의 대응이 완성돼버린다. 남자는 후퇴 명령을 내릴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적어도 병정이나 늑대 중 한 명만 이곳에 있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두 번째 이변이 일어났다.
"뭣!"
"응?"
적군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움찔 고개를 돌렸다.
주변 어딘가에서, 피부에 달라붙을 것처럼 진득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각성자라면 놓칠 수가 없는 수준의 농밀한 기운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하나나 둘도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 마리 몬스터의 마력이 어디선가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기척, 몬스터들 맞지.”
“진짜로, 협회장이 몬스터들을….”
가장 경악에 빠진 것은 관리부원들이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부디 경청해다오.'
관리부장이 말해준 것은 단순한 심증이었다. 집행부와 관리부가 현장에서 구해낸 각성자 아이들의 행방. 협회에서 일하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어느 시설에 맡겨졌는지에 대한 사실은 보호조치로 인해 협회장을 제외한 누구도 열람할 수 없게 되어있다. 만일 그것을 악용하려 마음먹는다면?
‘이러한 정황상, 수많은 각성자 아이들을 협회장 마음대로 빼돌리고 있다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만일 집행부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소문, 협회장이 미쳐서 몬스터의 생체를 가지고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리부는 집행부와 같은 필요악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처입은 아이들을 찾아내 구해낼 때마다, 가슴 속에 긍지를 품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 협회장의 미친 실험에 재료를 공급할 뿐인 행위였다면. 구해냈다 생각한 아이들의 태반이, 온몸에 괴물을 이식당해 고통받다 죽어버리는 결말을 맞이했다면.
차라리 범죄에 이용당하게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다는 것이라면.
“신이시여……"
지금까지 관리부가 품고 있었던 긍지라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가 경악에 잠깐 주춤하고 있었을 때, 무덤덤한 얼굴로 한 중년인이 전장 가운데를 뚜벅뚜벅 걸어왔다.
“흥. 무당 자식, 시간에 맞출 수 있다고 그리 큰소리를 치더니. 결국 저쪽이 먼저 결계 뚜껑을 뜯고 들어갔군.”
기다리느라 지루했다는 목소리였다. 전장에 끼어든 남자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남자는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대전쟁의 영웅임과 동시에, 이 나라 최강의 길드를 이끌고 있는 남자였다. 백묵이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게이트 바깥에 출현한 몬스터를 확인. ‘우연히’ 이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불식 길드의 구성원들은 헌터 라이센스의 규정에 따라, 이 시간부로 이상출현 몬스터의 구제 및 구제를 방해하는 이들의 제압을 이행할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해석의 문제였다. 집행부 간의 내전을 불식 길드가 힘으로 제압한다는 건, 불식의 정적들에게 물어뜯을 약점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몬스터의 존재가 확인된 것으로, 헌터 길드가 개입할 명분이 완전하게 갖추어졌다.
하지만 불식은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백묵 뒤에서 나타난 것은 단 네 명의 헌터였다. 오성화와 김혜성을 제외한 불식 1팀의 멤버들이었다. 백묵이 콧숨을 내쉬었다.
“가는 길에 방해된다. 전부 치우도록.”
“분부대로.”
수적 열세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불식 1팀은 싸우고 있던 집행부원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수많은 집행부원들과 관리부원들이 뒤섞여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단 네 명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상황이 거의 종료되고 있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 팀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식 1팀을 뒤로 한 채, 백묵은 수많은 기척들이 뒤섞여있는 결계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연구동의 관제실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이야…?"
오성화가 김혜성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물론 김혜성이라고 해서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동에 전송되자마자 그들이 본 것은 마주 서있는 두 남녀였다. 놀랍게도, 그 둘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한쪽은 말할 것도 없이 협회장이었다. 이쪽은 사실 놀랄 것도 없었다. 협회장이 실험으로 만들어낸 괴물들이니, 귀환한 곳에 협회장이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의 등 뒤에서 헐떡이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은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괴물이 서로 엉켜서 하나가 된 것 같은 끔찍한 몰골이었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다 사냥해봤지만 저런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느껴지는 마력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싸운다면 거의 확실하게 진다. 언제나 자신 넘치는 오성화조차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
그 맞은편에 서있는 여자야말로, 오성화와 김혜성이 혼란스러워하는 원인이었다. 분홍빛이 감도는 머리를 늘어뜨리고, 새까만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 등에는 커다란 박쥐 날개가 돋아나있었다. 그녀 또한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성화도 김혜성도, 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서민하를 알고 있었다. 오성화는 서민하가 지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김혜성은 애초에 라이브 하우스의 단골이었다. 적어도 가벼운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의문에 잠겨있을 틈은 없었다. 두 사람 옆에 쓰러져있던 괴물 호랑이가 앞발을 커다랗게 휘저으며 일어났다. 오성화와 김혜성이 재빨리 구석으로 피했다. 포효한 호랑이가 눈을 번득이며 협회장에게 소리쳤다.
<어째서! 어째서 ‘저 괴물’이 이곳에 있습니까!>
짐승의 포효에 커다란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미 완전히 몬스터화해서 의식이 날아가있던 사천왕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한 순간이나마 그들의 이성을 돌아오게 할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호랑이가 거대한 엄니를 내보였다.
<저 괴물이야말로 우리들이 쓰러뜨려야 할 적일 텐데!>
처음 협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때의 일이었다.
집행부의 임무를 수행하던 호랑이는 갑자기 나타난 끔찍한 괴물에 의해 중상을 입었었다. 호랑이는 공포에 떨었고, 그런 것과 마주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 뒤 찾아온 건 끔찍한 죄책감과 무력감이었다. 집행부로서 구하려고 하던 아이들도, 구속시키려 했던 범죄자도, 말려들었던 민간인들까지. 호랑이를 제외한 전부가 죽었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몬스터 하나 때문에.
- 세상에는 저런 괴물 또한 존재하는 것이네. 대비할 수 있는 건 우리들 뿐이야. 내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나?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절히 실감해서. 같은 괴물의 힘을 손에 넣어서라도 쓰러뜨리고 싶다 생각했다. 그것이 그 괴물의 습격으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의 의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실험을 거듭할 때마다 인간으로부터 멀어졌다. 실패해 죽어가는 실험체들을 볼 때마다 미칠 듯한 자책과 공포가 밀려들어왔다.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괴물이 된다고 해도 좋았다. 추악하다고 손가락질받아도 좋았다. 이 모든 것들은 전부, 오직 그 괴물을 이 손으로 쓰러뜨리기 위해서.
<그런데 왜!>
그런데 왜 그 끔찍한 괴물이 지금, 마치 협회장을 따르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등 뒤에서 헐떡이고 있는 것인가…! 호랑이가 광기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협회장을 위협했다.
‘뭐야, 내분인가…?’
김혜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거대한 호랑이는 눈을 부릅뜨고 협회장을 노려보았지만, 협회장은 전부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한 손을 가볍게 내밀더니,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협회장의 손등에 새겨진 각인이 빛나기 시작했다.
“앉아.”
협회장이 한 마디를 내뱉은 것만으로, 호랑이는 모든 신체의 제어권을 잃어버리고 바닥에 몸뚱이를 처박았다.
“…자네들의 협력은 감사하게 생각하지. 자네들이 그 늑대의 반 만큼이라도 신중했으면 계획을 시작하지조차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리 억울하다 생각하지는 말게. 내가 자네들에게 해주었던 말이 전부 다 거짓인 건 아니니까.”
양팔을 벌린 협회장이 상황을 음미하며 말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맞서기 벅찬 몬스터들이 있고, 우리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힘을 손에 넣어야 할 필요가 있지…물론 그 이유는, 내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지만.”
호랑이는 이를 악물며 거체를 움직이려 해봤지만 옴싹달싹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몸 자체가 자신의 뇌가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협회장의 명령을 우선해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머지 사천왕도 마찬가지였다. 전송되어온 세 마리의 괴물을 훑어본 협회장이 아쉽다는 듯 쩝 입맛을 다셨다.
“까마귀는 죽었나? 하긴 썩지만 않았으면 생체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 상관없겠지. 먹어치워라, 키메라.”
그 말에 협회장의 등 뒤에 있던 괴물이, 진흙의 탁류와도 같은 날개를 펼쳐 사천왕들을 덮쳤다. 키메라의 몸에 둘러싸인 괴물들은 비명 하나 지르지 못하고 안쪽으로 빠져들어갔다. 키메라의 온갖 신체부위에서 이빨과 혀가 자라났다.
으적으적, 연구동 안에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럴 때마다 키메라의 몸 이곳저곳에 사천왕의 생체조직이 추가되고 있었다. 먹어치우면 먹어치울수록 강해진다. 협회장이 만들어낸 저것은 어느 의미로 궁극의 생명체였다.
그리고 연구동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 진영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협회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김혜성과 오성화는 찡그린 채 경악에 잠겨 있었고, 서민하는 무표정이었다.
“그래서, 할 거 더 있어? 기다려줄게. 더 해봐.”
서민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서 협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차피 박살날 주제에 같잖은 짓거리를 하며 애쓴다는 듯이. 그 말에, 협회장은 그렇게 나와줘야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서민하를 바라보았다.
“키메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라.”
<나의 화신아. 네 힘의 사용법을 가르쳐주마.>
용왕과 협회장이 동시에 말했다. 서민하의 몸에서 새빨간 기운이 피어올랐고, 키메라가 꿈틀대며 새까만 드래곤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어느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하지? 김혜성과 오성화가 눈빛을 교환한 순간, 옆쪽의 벽이 허물어졌다.
“여기 아주 다 모여있군.”
구멍에서 걸어나온 것은… 백묵이었다.
오성화와 김혜성의 눈이 번뜩 뜨였다. 나중에 합류하겠다면서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궁금했는데, 설마 이런 타이밍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잠깐 상황을 스윽 둘러본 백묵은, 오성화와 김혜성을 바라보더니 엄지로 한쪽을 가리켰다. 백묵이 담담하게 말했다.
“인형사는 저쪽이다.”
그 말에 두 사람의 눈이 번뜩 뜨였다. 잠깐 동안 백묵의 손가락을 바라보던 오성화와 김혜성은, 말없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 방금까지만 해도 주변을 무시하고 싸우려 했던 협회장과 서민하가 백묵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도저히 무시하고 싸울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시선을 느낀 백묵이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싸우러 온 것 아니니 걱정 말도록.”
그리고 백묵은 바닥에 휙 종이 한 장을 던졌다. 하늘하늘 휘날리며 떨어진 것은 허다인에게서 받은 부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부적의 구조식이 작용하며, 하나의 사물을 이루었다.
연구동 바닥에 뚝 떨어진 듯이 나타난 것은, ‘어딘가’와 이어져있는 한옥 풍의 장지문이었다.
이내 드르륵- 하고. 곱게 한지가 발라진 미닫이문이 안쪽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