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여기가 핫플레이스구만 (3) >
안색이 백지장이 된 김도형이 경악에 차서 말했다.
“말도 안 돼….”
작전의 개요는 간단했다. 사천왕은 각개격파하는 게 최선. 김도형이 미끼가 된 뒤, 나타난 까마귀를 적당히 유도해 정유현과 싸움을 붙인다. 도중에 작전을 들킨다 해도 사천왕이 일 대 일 상황을 기피할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새로운 힘을 얻은 놈들은 절대적인 자신감에 차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계산은 완전히 틀려버렸다. 저쪽은 이미 자존심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있었다. 정유현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나머지 둘이 합류해 간단히 사천왕 전원이 집결해버렸다.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다 역으로 함정에 걸린 꼴이었다.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처형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 것이다. 아무리 정유현이라고 해도 저 셋을 동시에 상대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김도형은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전장의 여파 탓에 병정을 사용해도 멀리서 상황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김도형이 경악한 것은, 지금 눈앞에서 관측되고 있는 어이없는 결과 때문이었다.
“…괴물이 됐다는 놈들이. 일어서지도 못하나?”
늑대탈을 쓴 정유현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했다. 정유현의 주변에서 퍼붓고 있는 건 연보라색의 비였다. 쿠구궁! 거대한 압력과 함께 땅이 짓눌려 크레이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쓰러진 사천왕들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웃기지 마! 삼 대 일일 텐데!”
“삼 대 일이 어쨌다는 거냐. 아직도 모르겠나? 내 능력은 일 대 다수가 특기라는 걸. 어차피 나보다 약한 놈이라면, 한 명 있든 백 명 있든 아무런 차이도 없어.”
정유현이 경멸이 가득 담겨있는 어조로 내뱉었다. 이만한 출력을 계속 내보내고 있는데도 그는 숨이 차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김도형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쪽이 더 괴물이잖아…?’
어렴풋이 집행부의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늑대야말로 집행부 최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사천왕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는데도 제압되긴커녕 압도하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강할 리가 없다.
“애초에 협회에 대고 선전포고를 했을 때부터, 나 혼자서 협회 전부를 상대할 각오쯤이야 끝내둔 지 오래다.”
쓰러진 치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간 정유현이 구두로 까마귀의 팔을 짓밟았다. 짓밟은 발엔 정유현의 능력이 작용해, 뼈를 우두둑 부숴버리며 땅에 파고들었다. 까마귀의 새된 비명이 울려퍼졌다. 김도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의 의미로,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 처형이었다.
“왜 모르는 거지…. 이건 세상을 지키기 위한 실험이다!”
호랑이 가면을 쓴 남자가 필사적으로 얼굴을 쳐들었다. 정유현은 기가 찬다는 듯 남자를 내려다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상황을 모면할 궤변 같은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호랑이가 말을 이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봤다. 봐버리고 만 거다, 절망이란 게 뭔지! 심연 속엔 네가 상상도 못할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인류 자체가 더 큰 힘을 소유하게 되지 않으면 다가오는 위협에 대비할 수 없단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무더기로 죽였나?”
정유현이 살의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체적인 연구기록은 전부 파기되었기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확인한 시설들의 규모만으로도 진행된 연구의 스케일을 짐작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모든 추론 끝에 정유현이 도달한 결론은, 협회장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호랑이 가면이 말했다.
“과정과 절차를 지켜서. 올바른 방식으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그렇게 해서 뭐든 잘 풀린다는 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허튼소리일 뿐이야.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늑대 너일 텐데? 누군가는 무고한 인간의 등을 밟고서 방아쇠를 당겨야 해. 그리고 행동한 것은 협회장 님 뿐이다!”
“실험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부정하지 마라, 늑대! 더 큰 것을 확실히 지키기 위해 작은 것들을 희생시킨다. 그게 우리들 집행부의 방식이지! 네가 지금까지 해온 일과 이게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냐!"
반박하려면 반박해보라는 듯, 호랑이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정유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집행부의 방식.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은 무시한다. 후폭풍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방해물은 전부 치워버리고, 현행범은 그 자리에서 처부순다. 분명 그 과정에서 생각지 못하게 피해를 입는 인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놈들은 뭔가를 착각해도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안 작다.”
“……뭐?”
“너희가 희생시킨 거. 안 작다고.”
정유현이 섬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호랑이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납득이 된 모양이었다. 같은 집행부로서 비슷해보인다 해도, 서로 간에 백 년에 걸쳐 대화한들 좁혀지지 않을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그래. 그게 너의 대답인가. 보기와 달리 멍청하다는 건 잘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최후의 방법을 쓰도록 하지.”
고개를 푹 숙인 호랑이 가면의 몸이 꿈틀댔다. 그의 안에서 결정적인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흠칫한 정유현이 더욱 강한 힘으로 호랑이를 압박했지만, 그의 몸은 오히려 거세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서 털이 숫아났다.
“미친. 저게 뭐야…!”
떨어져 보고 있던 병정이 말했다. 협회장의 실험으로 몸 안에 몬스터가 이식된 이들. 반쯤 뱀파이어나 마찬가지인 서민하와 같이, 그들은 웬만한 각성자들을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마인(魔人)이라고 부를 만 했다.
<...이제 인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지금 사천왕들이 변이한 모습은 마인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물 그 자체였다. 이를 테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거대한 몸체를 가지고 있는 무지막지한 몬스터 세 마리가 나타났다. 집채만한 괴물 호랑이가 포효와 함께 정유현의 능력을 떨쳐내버렸다.
하지만 거대한 세 괴물을 눈앞에 두고서도, 정유현은 위축되긴커녕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마침내는 전 인류를 너희 같은 괴물로 만들어버리자는 게 잘나신 협회장 님의 계획인가?”
<멋대로 떠들어라.〉
정유현이 비웃음을 띠며 비아냥댔지만, 세 마리의 괴물은 개의치 않았다. 폭력성과 야성으로 점철되어있는 눈동자들이 당장에라도 정유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듯 이글댔다. 거대한 호랑이의 앞발이 정유현의 몸을 후려쳤다.
정유현의 몸이 저편으로 날아갔다. 재빨리 먼지를 털고 일어난 정유현은 지금 상황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느꼈다.
정유현이 몸에 두르고 있던 중력의 갑옷은, 공격이 정유현에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강력한 중력장으로 위력을 격감시킨다. 그것을 두른 채 완벽히 가드했는데도 상당한 데미지를 받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었다.
‘이런 걸 계속 맞았다간 몸이 안 남아나겠군.'
정유현이 퉤 피가래를 뱉었다. 눈앞의 상황은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 세 마리가 동시에 나타난 격이었다. 적어도 자신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동료가 옆에 하나 붙어있었다면, 어떻게든 싸워볼 수도 있었을 텐데. 정유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아이가 떠오르다니.’
정유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 명의 마법사. 땡글이 안경을 쓰고 있는 집행부의 신입이었다. 분명히 아직 미숙한 데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코드네임인 박사라는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만 같은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실제로, 정유현이 체념하고 있던 것을 박사는 실제로 해내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만큼이나 구원처럼 느껴졌는지.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곁에 있어줬다면 적잖이 의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사를 전장으로 데려오지 않은 것에 후회는 없었다. 사람에게는 각자 어울리는 무대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쓰레기들의 청소는 박사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정유현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세 마리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정유현은 피식 웃었다. 이 기술 만큼은 정유현이라 해도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 잘못하면 동료들까지 휘말리니 사용을 자제해왔지만, 병정은 지금 멀리 떨어져있었다. 이 허허벌판에는 정유현이 걱정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괴물이 셋…. 적어도 둘은 데리고 가야겠지.”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 말에 거대한 흑익조가 날개를 펼쳤다. 까마귀 가면이 변해버린 괴물이었다. 거대한 새의 날개는 온갖 저주와 역병이 시린 바람을 모으고 있었다.
거대한 새가 공격을 준비하자마자 나머지 두 괴물이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제 보니 그들이 함께 공격하지 않는 건 정유현을 갖고 놀려는 의도가 아니라, 스스로도 폭주하는 힘의 상한치를 알지 못해 다른 사천왕의 공격에 휘말리는 걸 걱정하는 듯 싶었다. 정유현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나야 고맙지.”
준비 시간이 긴 공격을 해주는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이쪽도 온몸의 힘을 다 끌어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거대한 새를 향해 뻗은 정유현의 손바닥에서 연보라색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리고 정유현이 꽉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공중에 떠있던 거대한 새가 바닥에 추락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나머지 두 괴물이 번뜩이는 눈동자로 경악했다.
<무슨!〉
새의 거대한 몸체가 땅바닥에 낙하하자, 굉음과 함께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정유현이 중력으로 압박해 떨어뜨린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새는 그저 더 이상 날갯짓하지 못해 저절로 추락했을 뿐이었다. 가슴팍 위가 완전히 날아가버렸기 때문이다. 목 없는 괴조의 시체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렀다.
<대체 뭘 한 거냐… !>
괴물이 된 호랑이가 정유현에게 물었다.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조차 안 갔다. 아주 잠깐. 정유현의 능력이라 생각되는 연보랏빛 기운이 휘몰아치고, 까마귀의 가슴팍 위부터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 쑥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까마귀는 그렇게 죽어버렸다.
‘잠깐. 빨려 들어갔다고…?’
죽어버린 까마귀의 시체를 바라보며 호랑이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블랙홀. 설마하니 늑대의 능력은 단순히 중력을 다룰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일점에 집중시켜 극소의 블랙홀을 생성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그런 게 정말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방어할 수가 없다. 호랑이는 처음으로 눈앞의 적에게 순수한 공포를 느꼈다.
“두 마리는, 무리였나….”
모래먼지가 걷힌 저편에서 정유현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팔다리는 피로 젖어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정유현이 사용한 기술은, 사용하면 빈사상태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죽어버릴 수도 있는 건곤일척의 기술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 위험하다. 지금 죽여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눈앞의 저 늑대야말로 협회장의 이상을 정말로 꺾어버릴지도 모르는 최대의 적이었다. 그리고 호랑이가 정유현에게 달려들기 위해 자세를 잡은 순간, 폭음이 터졌다.
모습을 숨기고 있던 장난감 병정이 쏜 신호탄이었다. 영역 안 모든 몬스터를 도발하는 효과를 가진 스킬. 지금 사천왕이 각성자가 아닌 ‘몬스터’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라면 통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한 도박이었지만 멋지게 성공했다.
자그마한 장난감 병정이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난감 병정에게 이끌린 두 마리 괴물은 가볍게 장난감 병정을 추월해 짓밟았다. 이 따위 같잖은 시간 끌기를 해봤자 정유현이 도망칠 수는 없다. 결국 발악일 뿐이었다. 그리고 괴물들이 다시 정유현에게 돌아섰을 때, 거기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쥐포장수 씨.”
아무 것도 없던 공간에서 나타난 두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정유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유현 또한 눈앞의 남자를 이런 상황에서 볼 줄은 몰랐다는 듯이 눈동자를 빛냈다.
"너’ 뻥튀기장수….”
“폭탄마라고 부르랬지. 아니, 그건 집행부에서 일할 때고…. 이제는 폭검이지.”
김혜성과 함께 텔레포트해온 것은 오성화였다. 어깨에 대검을 걸친 오성화가 전 직장동료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