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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64화 (64/176)

64화.  < 여기가 핫플레이스구만 (1) >

몸을 일으키자마자 지수는 커다란 변화를 느꼈다.

가슴팍에서 뚜두둑,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거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괴한 소리였다. 온 뼈와 내장과 근육들이 삐걱이고 있었다. 마치 잘못된 자세로 십수 시간을 자고 일어난 뒤 처음 기지개를 폈을 때처럼.

“끄으.......윽!”

지수가 가까스로 숨을 내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거 따위 없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온몸이 미치도록 쑤시는 정도일 뿐이지만, 조금 있으면 정말로 끔찍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이거 죽는 거 아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아파 죽겠는데 본방송이 시작되면 정말 쇼크로 죽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수가 그렇게 신음을 흘리고 있는데도 눈앞에 앉아있는 허다인은 담담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뭡, 니까, 이건…!"

지수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추궁했다. 이쪽은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르면서 길길이 날뛰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데 저쪽은 무슨 일이냐고 달려와 살펴보긴커녕 평상심 그 자체인 태도로 바라보고 있으니 대단히 얄미웠다.

“뭐기는. 반동이지.”

“반동이라고요…?”

“방금 가속된 환상 속에서 의식만이 훌쩍 성장해버렸으니까. 육체가 정신과의 괴리를 메우려 들고 있는 거지.”

확실히 이치에는 들어맞았다. 원래라면 상응하는 시간에 걸쳐서 쌓아가야 할 기량을 한 순간에 이루어버린 반동. 로그아웃 상태에서 우편함에 쌓여있던 경험치들을 한 번에 받아버려서, 끊임없이 레벨업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중요한 걸 왜 안 말해준 겁니까…!”

“단련하고 있는 애한테 성취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나와서 고통스러울 거라 할 수는 없잖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허다인이 미안함과 곤란함이 섞여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수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고 이해도 됐지만 납득은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지수의 온몸은 걸레가 되어 쥐어짜이는 듯한 묵직한 격통에 휩싸여있었다.

'이거 진짜 위험한데.’

가장 비참한 것은 이 모든 고통이 단순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반동이 오기 전에 몸을 풀어두는 일종의 준비운동, 전조 현상일 뿐이었다. 지수의 눈가가 시큰해졌다. 여기서 더 아파진다는 게 진정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보통이라면 반나절 정도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 정도로 끝나지만, 너는 너무 많이 얻어와 버렸으니까. 간단하진 않을 거야.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어쩌면 죽을지도.”

"이보세요!”

지수가 어이가 없어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격한 움직임에 몸이 흔들리자, 또 몸 안쪽이 삐걱대며 아파왔다. 지수는 이러니 저러니도 못하고 돌처럼 굳은 채 부들부들 떨며 허다인을 노려보았다. 지수를 마주본 그녀가 느긋하게 말했다.

“미안, 그냥 가벼운 농담이었어. 이매?”

허다인의 말과 함께 뒤쪽에서 한 명의 여자가 나타났다.

앞으로 나온 여자는 차분한 인상에 흑의를 걸치고 있었다. 기척도 없이 다가온 그녀는 한 번 위아래로 지수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순식간에 검지 하나로 지수의 온몸을 점혈했다.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처럼 신들린 솜씨였다.

“어어….”

지수가 기묘한 느낌에 눈을 크게 떴다. 단지 손가락으로 찔린 것 뿐인데, 마비된 것처럼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찔렸던 곳에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수의 몸을 옭아매던 아픔 또한 거의 사라져있었다.

"망량.”

허다인이 한 번 더 이름을 호명하자, 이번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의 거한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둘둘 말려있는 붕대 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건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붕대는 아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거한이 차가운 눈으로 지수를 내려다보았다. 들고 있는 붕대를 보건대 그가 하려는 일은 명확했다. 지수가 고개를 휘휘 저으려 했지만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아, 안돼!"

제지에도 불구하고, 다가온 남자는 망설임 없이 지수의 상의를 걷어올렸다. 그리고 묵묵히 붕대로 지수의 몸을 꼼꼼히 테이핑하기 시작했다. 붕대 안쪽에는 빻은 약초 같은 것이 부드러운 연고가 되어 붙어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이매라고 불린 여자와 허다인이 그 광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에 지수는 강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완전한 인권 침해였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는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남자가 붕대에 둘둘 말린 지수를 침대에 안치했다.

“누각주 님. 반동의 지속은 얼마 정도라 보십니까.”

누워있는 지수를 바라보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 허다인이 확실하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내 생각대로라면 한 사흘쯤?”

“상당히. 아니, 대단히 재능 있는 청년 분이신 모양이군요. 역대 최장 기록이지 않습니까. 적응기간을 최대한 줄이려면 미리 단약을 준비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순수하게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지금 나타난 남녀는 지수가 환상을 체험하고 온 뒤를 대비해 대기 시켜놓았던 안전요원 비슷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마도 같은 누각 길드 소속의 인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허다인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붕대를 갈아주거나 하는 건 말 안해도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안정될 때까지 이야기 상대라도 해주면서 지켜봐줘.”

“그럼 누각주 님께서는.”

“용이 뭐하고 있나 점 치러 가야지. 이제부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까. 지수 너도 빨리 털고 일어나.”

지수는 뭐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걸어간 허다인이 방의 문을 닫고 나갔다. 누워있는 지수가 눈썹을 찌푸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몸 안에서 끼이이익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있는데 아무런 고통도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대로 섬뜩한 느낌이었다.

이내 조용히 방 안에 향을 지핀 망량이 말했다.

“몇 분 있으면 약효가 돌아 잠드실 겁니다. 일어난 직후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실 테니 놀라지 마시고요.”

정중한 목소리는 꼭 환자를 안내하는 의사 같았다. 그의 말대로 지수의 의식이 몽롱해졌다. 얼마 안 있어 침대에 누운 지수는 완전히 잠들어 새근새근댔다. 그 동안에도 지수의 몸은 계속해서 의식을 따라잡으며 변화하는 중이었다.

뿌득, 꾸드득. 지수의 몸에서 연신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지수의 의식에 맞춰 급격히 변화하는 몸은 지수 자신이 가장 사용하기 편리한 밸런스로 재구축되고 있었다.

“……대단한 분이군요."

바로 옆에 앉아 지수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망량이 놀라서 눈동자를 빛냈다. 무언가 이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대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것은 몸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변의 마력이 지수의 몸과 동조해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일종의 마력을 이용한 호흡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망량이 간파한 대로, 지수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예바우드 식 마도 명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몸 안의 마력을 불려가기 위해. 그것은 급성장의 물길을 탄 신체와 맞물려, 더욱 커다란 시너지 효과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냥 놔두기는… 너무나 아깝다.’

팔짱을 낀 망량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그 성질상 반동이라는 말로 표현하긴 하지만, 사실 이 과정은 오히려 커다란 축복이자 성장의 기회였다. 환골탈태라 할 만큼 극단적인 변화는 아니어도, 몸이 최적화되는 과정에서 모든 신체능력이 급속도로 크게 뛰어오르곤 했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반동이 찾아오고 있는 상태에서 성장을 촉진시키는 비약이나 환단을 사용하면 평소보다 훨씬 나은 효과를 기대 할 수 있었다. 허나 어차피 반동이 지속되는 건 반나절 정도일 뿐. 몸에 약효가 녹아드는 시간을 감안하면 그리 큰 효용을 기대하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누워있는 이 청년은 달랐다. 누각주인 허다인이 말한 것이다. 아마 반동이 사흘 정도는 지속될 거라고. 그것은 망량이 알고 있는 한에서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허다인은 자신의 추측을 말할 때 최대한 조심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는 성격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최소한 사흘. 어쩌면 나흘이 되어서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는 망량이 초조함에 다리를 떨었다.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기회를 그냥 생으로 날려버리는 건 너무나 아까웠다. 누각주 님의 귀한 손님이자 제자라면 더더욱. 아니. 사실은 전부 변명이었다. 지금 망량의 머릿속에 있는 건 하나의 호기심 뿐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꼭 보고 싶다.'

저만한 시간이 있다면 할 수 있는 게 무진장 많았다. 누각 안에 있는 온갖 귀한 재료들과 내단, 환약들. 약초꾼인 망량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여러 가지 조합이 스쳐지나갔다. 결국 망량 또한 한 명의 연구자로서 호기심의 노예였다.

사실 누각의 창고에 대한 재량권은 망량에게 있었다. 유사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모든 약재들을 망량이 꺼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펑펑 쓰는 게 허용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각의 일원도 아닌 단순한 손님에게 그런 걸 마음대로 썼다간 크게 혼이 날 것이다.

하기야 망량이 입만 다물고 있는다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가능성이 높았다. 허다인은 창고의 재고를 일일이 확인해보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망량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직접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어도, 누각주 님을 속이는 것은 최악의 배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망량이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망량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처방이 완성되어 있었다. 연쇄적으로 각기 다른 약재와 환단들을 투여해 성장에 폭발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가능한 건 지금 뿐이다. 이런 상대를 접할 경험은 평생 동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후회할 텐데? 이런 멋진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는데 잡지 못하면 너는 약초꾼 실격이야. 너도 사실 모든 걸 다 쏟아부어보고 싶어서 미치겠잖아?

"......."

약 5분 간, 폭풍 같은 고뇌에 휩싸여있던 망량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무언가를 결심한 것 같았다. 복도로 나서는 그의 얼굴은 해탈한 듯이 어딘가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걸어가는 그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누각주 님. 죄송합니다, 누각주 님….”

자신에게 최면이라도 걸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냥 질러버린 뒤 무릎 꿇고 죽어라 빌자는 게 망량의 결론이었다.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간 망량이 결계를 풀고 양손으로 미닫이문을 열어제끼자, 커다란 방 안의 양측 벽에는 온갖 희귀한 약재들과 환단이 담긴 작은 서랍 수백 개가 늘어서있었다. 사랑스러운 약재들의 냄새가 방 안에 가득 차있었다.

망량이 후후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서랍에서 약재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베일에 감싸여있는 길드 누각의 창고답게, 꺼낸 것들은 하나같이 거대 길드들에서도 목을 매며 구하고 싶어할 진귀한 약재들이었다. 아니. 애초에 웬만한 길드에서는 이 약재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일단 즉효성으론 이거랑, 인면초… 마력으로 호흡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해련과를 배합해서 마시게 하면. 후, 후후.”

망량이 조용히 약재를 갈아내기 시작했다. 이미 저질러버리기로 한 것 재료를 아낄 생각은 없었다. 망량이 생각하고 있는 최고의 배합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마치 백화점에 한도 없는 카드를 쥐여주고 들여보낸 것처럼, 언제나 무뚝뚝하던 망량은 혼자 극도의 흥분상태에 들어가있었다.

우선은 최선의 처방을 구상해두었지만, 정말로 극적인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선 경과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온갖 약들의 투여량과 방식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약초꾼의 기량에 따라서는 최고의 약재들을 사용한다 한들 저 훌륭한 기회를 반도 못 살린 채 어물쩍 흘려보내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망량에게 있어서도 이런 경험은 처음 하는 것이었기에, 이렇게 하면 될거니 하고 어렴풋이 생각할 뿐 반드시 망량이 생각하는 대로 약효가 작용할 거라 단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이야말로 창고에 박혀있던 영약들의 포텐셜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게 얼마만인지.”

간만에 제대로 덤빌 맘 나게 해주는 인연이 찾아왔다는 듯 망량이 웃었다. 이것은 약초꾼으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반동의 성장이 유지되는 동안, 자신은 대체 어디까지 영약의 연쇄를 펑펑 터뜨려 저 손님의 능력을 불려줄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사흘이 정말로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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