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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59화 (59/176)

59화.  < 대충 감이 잡혀가는데 (4) >

허다인이 지수에게 안내한 것은 마치 체육관처럼 텅 비어있는 커다란 방이었다. 방이라기보다는 시설이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주변을 둘러본 지수가 느낀 것은 적어도 두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과하게 넓은 공간이라는 감상이었다.

“해주의 비술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니. 무슨 소립니까?”

지수가 뿔 달린 하회탈을 쓰고 있는 허다인에게 물었다. 허다인이 지수를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지수 안에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무슨 다른 사용법이라도 있다는 것처럼.’

분명히 해주의 비술은 이제 막 익히게 된 기술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사용하려면 오랫동안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허다인은 그런 문제를 지적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보물을 손에 쥐고서 엉뚱한 짓거리나 하고 있다는 듯한.

하지만 지수의 생각에 해주의 비술이란 건 딱히 응용법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었다. 주문을 해제하기에 해주. 말하자면 일종의 디스펠, 발동된 주문에 역으로 파사의 마력을 끼워맞춰 무력화시킬 뿐인 능력이다.

그 말에 무언가가 지수의 몸을 휙 스쳐가는 게 느껴졌다. 허다인의 ‘영역’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방출한 마력을 고정시켜 주변의 모든 상황을 감지하는 기술. 지수가 느끼기에 허다인의 영역은 이미 이 공간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완전히 괴물인데.’

지수가 혀를 내둘렀다. 지수는 마도 명상을 활용한다는 편법으로 전개할 수 있는 영역의 크기를 몇 배쯤 늘리고 있었지만, 허다인의 영역은 그것보다도 더욱 넓었다. 그리고 앞의 허다인이 조용히 지수에게 자그마한 주먹을 내밀었다.

뭐지? 인사하자는 건가? 지수가 똑같이 주먹을 쥐어 허다인의 주먹에 툭 부딪혔다. 하지만 허다인은 그게 아니라는 듯 휘휘 고개를 저었다. 이내 허다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가위 바위보를 하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시래. 하지만 일단은 스승이었기에, 지수는 고분고분 말을 따랐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가위바위보를 내는 사람과 상대하는 건 재미가 없었지만, 서로 고민하며 눈치를 보고 심리전을 거는 건 지수도 좋아하는 놀이였다. 아마 허다인 또한 같은 타입일 게 틀림없었다.

“가위, 바위, 보."

그렇게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수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고민한 뒤에 낼 것을 결정하던 지수는 아무 생각 없이 휙획 내기 시작했다. 가위만 연속으로 다섯 번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고개를 번쩍 든 지수가 허다인에게 항의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십수 번이 넘는 가위바위보에서 허다인은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있었다. 이건 애초에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됐다. 3분의 1을 딱 열 번만 곱해봐도 대단히 근사한 숫자가 나온다는 걸 알 것이다. 허다인은 확실하게 무언가 사기를 치고 있었다.

“말 돼.”

“어떻게 한 겁니까?”

“내림을 받았지.”

허다인이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수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기습으로 주먹을 냈지만, 허다인은 유유히 보자기를 낸 채였다. 완전히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나도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긴 한데.’

전승민이 헌터 시험에서 이런 기분을 맛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나쁜 짓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트릭이 뭔지 간파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이 도출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서라고는 애초에 하나 뿐이었다. 지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역...."

“그래. 영역은 싸우고 있을 땐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기술이지만, 극한까지 파고들면 이런 묘기도 부릴 수 있지.”

결국 인간에게 가능한 모든 움직임은 하나로 설명된다. ‘근육의 수축’. 즉 어떤 근육이 어떤 식으로 수축하고 있는지만 파악할 수 있다면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 건지 한 박자 빨리 간파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일종의 유사 미래시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림’이라 부르고 있어. 멋지지 않아?”

지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솔직히 네이밍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기술 자체에는 경악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껏 육영웅이니 뭐니 대단하다는 건 알아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지수는 눈앞에 서있는 허다인이 완전히 괴물이라는 걸 확실하게 실감했다. 간단하다는 듯 말했지만 지금 허다인이 하는 짓은

반쯤 미친 짓거리였다.

단순히 마력의 영역이 엄청나게 세밀하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마법사로서의 소양뿐만 아니라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조를 전부 파악하고, 그걸 한 순간에 해석해낼 수 있는 해부학적 지식과 셀 수도 없는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단순히 정찰이나 경계에나 사용할 만한 기술을 끝없이 파고든 결과, 이런 반칙적인 전투 기술로까지 승화시켰다.

“이런 게 가능하면 완전히 무적 아니에요?”

지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상대방의 모든 움직임을 한 박자 미리 읽어낼 수가 있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적어도 순수하게 체술로만 승부한다면, 누구도 절대 허다인의 빈틈을 찌르지 못할 것이다. 찌르려 하기 전에 알아챌 테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듯 허다인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주먹에 로켓 펀치 같은 기믹이라도 달지 않는 이상, 내림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의 뇌라는 건 아무리 애써봤자 근육의 수축 이외의 방법으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까. 무슨 수를 써도 포착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있던 지수는 한 사실을 깨달았다.

“마력….”

그랬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몰라도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각성자들은, 근육 말고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의 근원이 존재했다. 지수가 아는 오성화만 해도, 폭발을 온몸에 두른 채 제트 분사와 같이 팔다리를 휘두르며 싸웠었다.

“그래. 각성자나 몬스터와의 싸움이란 건 단순히 근육의 움직임만 읽는다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만

•••빈틈이 없다는 거랑은 한참 떨어져있어.”

허다인의 손 위에서 황금색 나비들이 나타나 흩날렸다,

“결국 마법사고 전사고 똑같아. 마나니 오러니 다른 식으로 부르곤 하지만, 몸 안에서 정련해둔 정수를 폭발시키느냐, 바깥의 기운을 순환시키며 사용하느냐의 차이지. 그 기운이 움직이는 전조를 읽는 건 노력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이제야 허다인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허다인이 몸이 움직이기 직전의 전조를 파악했듯이, 마력이 움직이기 직전의 전조를 파악하는 것. 지수는 무당이 추구했지만 닿지 못했던 영역에 닿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한 이야기였다. 주문을 상쇄시켜 무효화하는 건 어디까지나 부가기능 중의 하나일 뿐. 해주의 비술의 ‘해(解)’라는 글자는, ‘해제한다’는 뜻이 아니라 ‘풀이한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가능해.’

지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해주의 비술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요소. 명경지수와 영역. 만약 이 두 가지를 양립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바깥의 마력 또한 손에 잡힐듯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명경지수라는 기술은 자신 안의 마력의 흐름을 멈춘 채로 잠궈, 감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원리였다. 그와 반대로 영역은 바깥에 마력을 흩뿌린 채 고정시키는 기술. 이 두 가지 기술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건, 비유하자면 발로는 DDR을 추면서 손가락으로는 은은한 클래식을 연주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정말로 가능해진다면. 마력을 이용한 모든 공격을 한 박자 일찍 파악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공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이쪽은 그걸 미리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허다인이 지수에게 안대를 건넸다. 지수가 얼떨떨하게 안대를 받아 눈을 가렸다. 이내 미닫이문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와 함께 등불이 꺼지고, 넓은 공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멀찍이 저편에서 허다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이 방 안에 내 나비들을 가득 채울 거야.”

어둠 안에서 황금색 나비들이 반딧불처럼 빛났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나비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척도 느낄 수 없지. 거기서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면 그걸로 종료. 날고 있는 나비에 살짝이라도 몸이 닿는 순간 네 몸은 시작점으로 돌아갈 거야.”

수련이라는 느낌이 확 드는 과제였다. 그러니까 눈을 감은 채로, 방해물에 부딪히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가면 그걸로 오케이. 상당히 심플했다. 어떤 의도로 설계된 수련인지도 대충 감이 잡혔다. 지수가 앞쪽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안대는 왜 씌우신 겁니까?”

“사실 벗어도 상관은 없는데, 쓰고 있는 게 나을걸. 모든 걸 영역의 감지에 의지해야 숙달되는 게 빠를 테니까.”

지수가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눈을 가리는 안대는 지수를 방해하기 위한 패널티 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기 위한 도구인 듯 했다. 시작점에 선 지수는 우선 천천히 영역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기겁해서 혀를 내둘렀다.

‘내 영역 안에서 날아다니는 것만 적어도 수십 마리…’

공간 안을 날고 있는 나비들의 숫자는 말 그대로 탄막이었다. 움직임을 완전히 읽고 빈틈을 이용해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결코 닿지않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각각의 나비들이 움직이는 패턴은 지수가 보기에 완전히 불규칙했다.

사실 파사의 마력을 두르고 지나간다면 그냥 닿는 나비들을 다 튕겨내거나 지워버리면서 단숨에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잔꾀나 부린다고 꿀밤이나 맞겠지. 일단 감이나 잡아보자. 지수는 앞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몇 번이든 실패해도 괜찮으니 걸음은 느긋했다. 그리고 몇 걸음 못 가 날아든 나비가 지수의 손등에 부딪힌 순간, 지수의 온몸이 감전 된 듯한 충격에 빠졌다. 처음 느껴보는 아찔한 고통이었다. 지수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곧바로, 지수는 시작점 바로 위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지수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완전히 전기구이 통닭이 된 줄 알았는데, 몸도 옷도 그대로 멀쩡했다. 잔류하고 있는 고통도 없다. 아마도 환상 안이라 그런 것 같았다.

쓰러진 지수가 벌떡 일어나 앞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냥 시작점으로만 돌려보내주면 어디 덧납니까!?”

“뭐든지, 필사적으로 임해야 실력이 느는 법이야.”

당연한 조치라는 듯 허다인이 대답했다. 이쪽은 반쯤 죽는 줄 알았구만 녹차라도 마시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어조였다. 하는 말은 정론이었지만 학생을 위해서라며 체벌을 가하는 교사 만큼이나 얄미웠다. 지수가 마력의 영역을 전개했다.

영역 안에서 나풀거리고 있는 나비들이 느껴졌다. 나비의 움직임은 분명 불규칙했지만, 지수가 다가간다고 해서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하는 일은 웬만하면 없을 터였다. 느낀다. 예측한다. 끊임없이 그런 감각을 이미지하며 걸음을 내밀었다.

그 순간 나비가 방향을 꺾어 날아와 지수에게 부딪혔다.

“끄아아아악!”

빠지지직! 아찔한 감전의 충격과 함께 지수가 시작점으로 전송돼 바닥에 쿵 엉덩방아를 찧었다. 완전히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금 나비의 움직임은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얼굴을 확 찌푸린 지수가 허다인 쪽을 향해서 소리쳤다.

“지금 일부러 수동으로 움직였죠!”

“당연하지.”

지수의 항의에 허다인이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적은 온종일 너만 노리고 공격할 텐데, 그걸 못 피하면 의미가 없잖아. 움직여서 피할 수 있는 경로는 다 남겨두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네가 잘 예측하면 아무 문제 없어.”

맞는 말이라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몇 번 다시 걸어가다 나비에 부딪혀 처음 자리로 전송당한 지수는, 더 이상 걸어나오려 시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초조해하지 않고 침착한데.’

허다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지수가 자리에 앉은 건 더 이상 아픈 게 싫어서일 뿐이었다. 더 이상 짜릿한 맛을 보는 것은 사양이었다. 아무튼, 단순히 나비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었다. 그보다 한 박자 빨리 전조를 파악해야 했다.

마력의 크기와 방향, 움직임과 흐름. 그 안에 내포된 의도까지 모든 것을 읽어낸다. 읽어낸다, 읽어낸다, 읽어낸다…. 지수는 안대를 쓴 채 끊임없이 명경지수와 영역을 사용했다. 두 기술을 동시에 양립시키는 건 극도로 어려웠다. 그 탓에.

[‘해석’ 스킬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옆에 떠있는 알림창은 깨닫고 있지 못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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