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외 등급 해석사-43화 (43/176)

43화.  < 이건 계산에 없었는데 (3) >

결계를 해제하자마자 숨겨져있던 거대한 부지가 나타났다. 오성화는 퍼즐을 풀 듯이 결계의 보안을 척척 해제하는 지수를 보고 대단하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신기하네. 그래서, 너 이름은.”

“그냥 박사라고 불러주세요.”

대답한 지수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타난 건 연구소와 같은 깔끔한 설비들. 경비원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복도의 외벽에는 생체 샘플 같은 것들이 걸려있었다. 포르말린에 절여져있는 몬스터의 온갖 기관들이었다.

“지하에 이런 게 있었단 말이지.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있길래 이렇게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지는데.”

집행부 제복을 입고 있는 오성화가 비웃으며 복도를 걸었다. 지수와 오성화가 찾아낸 방은 자료실 비슷한 공간이었다. 오성화가 꽃혀 있는 파일을 빼들어 훑어보았다. 서류들에는 온갖 그래프와 약물의 수치, 전문용어가 빽빽이 들어차있어 슬쩍 보는 것만으론 무슨 의미 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 첨부된 사진들만으로도, 이곳에서 미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할 만큼 납득할 수 있었다.

재생되는 동시에 해부되고 있는 몬스터의 모습. 인간의 어깨나 옆구리, 사지에서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괴물의 신체. 한 남자의 몸에 링거로 이어져있는 턱없이 많은 수의 약물들. 커다란 기계에 연결된 채 침과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린아이들.

"......."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간 오성화가 다음 파일을 꺼내들었다. 그곳에 꽃혀있던 사진들도 전부 빼들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아간다. 그리고 다음 파일. 또 다음. 그렇게 쌓인 사진들은, 이미 열 개나 스무 개 정도의 단위를 훌쩍 넘어가있었다.

지수와 오성화 두 사람 사이에 길게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래서 여기, 다 부숴버리면 되는 건가?”

“…안에 끌려온 애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이빨을 빠득 간 오성화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지수 또한 동요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분명 현실이 아니다. 던전이 재현하고 있는 환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환상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건 엄연한 과거의 현실이었다.

“…이것 참 부끄럽군.”

그 말에 지수와 오성화가 뒤를 휙 돌아봤다. 너무 커다란 경악에 빠져있던 탓에, 누군가 다가오고 있던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서있는 것은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오성화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래. 당신이 흑막이었다 이 말이지. 놀랍지도 않아.”

“나는 의외로군, 폭탄마. 집행부 안에서도 몇 명 경계하고 있던 인간이 있었다만. 설마 반쯤 외부인인 자네가 제일 먼저 여기까지 다 다를 줄이야. 늑대 아니면 병정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지간히도 훌륭한 마법사를 데리고 온 모양이지.”

칭찬해주겠다는 듯 짝짝짝 박수를 치고 있는 남자는,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오성화가 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가 죽여버리고 싶은데, 가까스로 참고 있다는 눈치였다. 어깨를 으쓱인 협회장이 양손을 벌렸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들을 모아둔 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들 하지 않나. 그래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얼굴이 붉어지는군. 걱정 마, 이번에는 꽤 제대로 된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훌륭한 소체를 하나 손에 넣었거든.”

그리고 문 뒤편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박쥐 날개와 송곳니를 빛내고 있는 분홍빛의 악마. 오성화는 가소롭다는 듯 어깨에 대검을 툭툭 두드렸다.

“소환수나 뭐 그런 건가? 근데 어쩌라고.”

오성화가 하찮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반면 지수는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지수의 생각이 맞다면 나타난 협회장이 옆에 데리고 있는 저것은 소환수 같은 게 아니었다. 지수는 저것과 똑같이 생긴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흡혈귀….’

협회장의 옆에 내려앉은 괴물은, 몬스터 백과에 있던 흡혈귀의 그림과 완전히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리고 저 기형적으로 커다란 손톱. 그것은 서민하가 폭주할 때 변이하던 오른팔의 그것이었다. 문제는 지금 그 뱀파이어가 무릎꿇은 채 협회장의 손에 머리를 가져다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몬스터는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었나?’

지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던전 밖에서 몬스터를 보는 일 자체가 극히 드문 일이지만, 팔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채라면 그래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자유롭게 풀어둔 상태의 몬스터가 왜 사람의 말을 듣고 있지. 마치 인간에게 복종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협회장이 여유롭게 말했다.

“폭탄마. 자네가 집행부에 지원한 이유는 알고 있네.”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시려고.”

“시치미 떼기는. 인형사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지?”

그 말에 가면을 쓴 오성화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옆에서 봐도 확연할 수준의 동요였다.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것 같았다. 그걸 본 협회장의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나? 나는 인형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무슨 목적인지도 전부 조사가 끝난 상태지. 나한테도 도움이 될 테니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폭탄마, 자네가 하는 행동 여하에 따라선 가르쳐줄 수도 있지.”

어깨를 으쓱인 협회장이 오성화에게 웃음을 보냈다.

“네 손으로 동료를 죽이라는 말까진 하지 않아. 폭탄마, 자네는 그냥 가만히 거기 서있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자네는 계속 염원하던 복수의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어.”

협회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성화가 꽉 쥐고 있는 대검이 부르르 떨렸다. 그 떨림을 보고 거래가 성립했다고 생각했는지, 휙 고개를 돌린 협회장이 이번엔 지수를 바라보았다.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거슬린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결계를 해제한 건 자네겠지, 정체 모를 마법사. 해제됐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하게 치워버리다니. 위험해도 너무 위험해. 유감이지만, 반드시 여기서 자네를 제거해야만 하겠군.”

협회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뱀파이어가 날개를 펴고 지수를 응시했다. 먹잇감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저 괴물의 강력함은 지수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서민하가 휘두르는 손톱의 위력을 눈앞에서 몇 번이나 보아왔으니까. 과연 반응할 수 있을까? 이내 흡혈귀가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튀어나갔을 때,

"어디서 수작질이야."

가만히 서있던 오성화의 팔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내리쳐진 대검은 날아오던 흡혈귀의 등을 그대로 강타했다.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땅을 구른 흡혈귀가 고통에 신음하며 피를 케핵 토했다. 그걸 본 협회장이 크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리석군. 상황 판단이 그렇게 안 되나?”

“내가 할 말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니 뭐가 어째? 말 잘 들으면 가르쳐줄 수도 있어?”

가면을 쓴 오성화가 손가락으로 협회장의 얼굴을 삿대질했다. 변화는 한 순간이었다. 협회장의 얼굴 바로 옆에서 새빨간 마력이 점화하며 폭탄이 터졌다. 돌연 협회장의 그림자 속에서 나온 튀어나온 해골이 폭발에서 협회장을 지켜냈다.

“폭탄마…!”

“뒤질 듯이 쳐맞은 다음에도 그런 말 나오나 한 번 보지. 내 앞에서 그 새끼 이름 꺼내놓고 살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오성화가 분노에 차 숨을 흘렸다. 사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확실히 이길 자신은 없었다. 놈의 능력은 미지수지만, 괴물 같이 강하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라는 직책은 폼으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성화가 뒤에 서있는 지수에게 휙 스마트폰을 던졌다.

“박사, 맡긴다. 네가 안에 있는 애들 다 찾아서 데리고 나가. 그리고 전화부 뒤져서 김혜성이라는 애한테 연락해. 텔레포트 쓸 수 있는 놈이니까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휙 검을 휘두른 오성화가 옆쪽의 벽을 터뜨려 허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지수가 출구로 달려나갔다. 협회장은 절대 내보낼 수 없다는 듯 지수를 쫓았으나, 오성화는 대검 한 자루만으로 협회장이 날린 모든 공격을 막아내 반격했다.

복도로 나온 지수가 달렸다. 연구소는 넓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건 간단했다. 어느 한 곳의 방만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게 결계가 쳐져있었다.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는 방 앞에 선 지수가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지수의 눈에 결계의 해법이 비쳤다. 뚫고 들어가는 건 힘들어도 정확한 방법으로 결계의 매듭을 푼다면 해제하는 건 간단했다. 결계를 푼 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마법사가 누워있는 여자의 이마를 짚고 연신 주문을 걸고 있었다.

누워있는 게 누구인지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있는 건 서민하였다. 하지만 지수가 알고 있는 서민하보다 좀 더 어렸고, 머리색 또한 분홍색이 아닌 검정색이었다. 누워있는 서민하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져있었다. 마법사는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지, 지수가 들어온 것 또한 눈치채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계속 주문을 걸고 있었다.

<‘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마력 배열을 살펴보니 까마귀 가면을 쓴 마법사가 걸고 있는 주문의 정체 또한 금세 해석되었다. 그건 일종의 정신 마법이었다. 당하는 자가 고통스러워하도록, 체념하고 절망하도록, 도와줄 사람 따위 없다고 자신에겐 불행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도록 암시하는 종류의 최면. 지수는 문득 납득했다.

지금 이게 몬스터를 이용한 실험이란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는 몰라도, 서민하의 성격이 배배 꼬여 그 거지같은 노래를 부르게 만든 원흉이 바로 이놈이었다. 지수가 남자 옆에 서서 천천히 수십 글자의 룬을 허공에 그렸다.

“죽든지 말든지.”

연쇄해서 폭발한 룬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까마귀 가면을 날려보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맞은 탓에 까마귀 가면은 피투성이가 되어 움찔대고 있었다. 지수는 검은 머리의 서민하를 들쳐안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명경지수를 통해 실험실 안의 마력을 감지해보았다.

‘커다랗게 부딪히고 있는 게 오성화 씨랑 협회장…. 남아있는 다른 사람은 없다.’

1층으로 올라간 이지수가 오성화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넣었다. 이쪽의 상황을 알린 건 김혜성에게 뿐만이 아니었다. 정유현의 번호에도 이곳의 주소와 연구소의 사진들을 찍어서 보냈다. 고통스러워하던 서민하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몸 안에 괴물 같은 게 이식되는 일 없이 제때 구해냈다.

……그리고,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갔다.

“어?”

지수가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곳은 방금까지 있던 공장터가 아닌, 어느 집의 푹신한 소파였다. 지수는 기묘한 감각에 눈을 끔뻑였다. 갑자기 모든 배경이 바뀌었음에도 상황이 전부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수는 자신의 인식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그 날. 오성화는 협회장을 상대하는 데에 고전하고 있었지만, 김혜성이 재빨리 나타나 도와주는 것으로 협회장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정유현 또한 몇 차례나 더 일찍 진상에 도달하는 것으로, 협회장이 해온 끔찍한 실험들을 전부 밝혀내 세간에 공개했고, 숙청을 거친 협회는 새로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조금만 더 늦게 알아차렸다면 끔찍한 일이 될 뻔 했습니다. 그 실험이 성공해버린다면. 전(前) 협회장이 터무니없는 힘을 손에 넣어, 알고 있어도 막지 못했겠죠.”

그리고 협회장과의 싸움에서 인형사의 단서를 잡은 오성화 또한 복수에 성공했다. 지금은 새로운 길드를 만들어 신진 육성에 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연구소에서의 경험으로 무언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범죄에 이용당하거나 소외된 각성자 소년소녀들을 길드원으로 받아 직접 챙겨주고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의 중심이자 시작에는 오성화 앞에 집행부를 사칭하며 나타났다는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는 결국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마법사는 자신이 구한 실험체 소녀를 돌봐주며 느긋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지수는 문득 그 모든 것을 이해했다.

“지수 오빠, 진짜 사랑해~!”

소파에서 막 일어난 지수에게, 교복을 입은 검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안겨왔다. 지수가 선물해준 통기타를 보고 기뻐하는 반응이었다. 검은 머리의 서민하는 지수가 알고 있는 원래의 서민하와 달리, 언제나 활짝 웃는 밝은 성격이 되어있었다. 학교에도 다니고, 친구도 많고 언제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서민하라는 인간은 이렇게도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듯이.

‘이게 뭐지.’

지수가 멍하니 눈썹을 찌푸렸다. 이내 책상에 걸터앉은 검은 머리의 서민하가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아름다운 노래였다. 그리고 노랫소리가 점점 흐릿해지며,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계약하고자 하는 자여.〉

<나, 이야기의 정령 재버워키가 묻는다.〉

<...그대는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결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지수의 눈앞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 [예] / [아니오]

지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것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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