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그놈의 척멘은 진짜 (6) >
방구석에 박힌 지수는 의자에 앉아, 가슴 앞에 가져다댄 양손에서 연신 자그마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파사의 마력."
파직! 다시 한 번 스파크가 튀었다. 지수가 하고 있는 일은 간단했다. 체내에서 파사의 마력을 정제하고, 다시 평범한 마력으로 되돌리고, 또다시 파사의 마력을 정제하는 일련의 과정. 지수는 몇 시간 전부터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프린세스의 계약자'의 효과로 인해 마력에 대한 민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감각에 추가 보정을 얻습니다. >
< '흑마녀의 포옹'의 효과로 인해 스킬 숙련 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 사용 시 추가 경험치를 얻습니다. >
지수의 눈앞에 그런 알림창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수는 스킬 숙련도 같은 것을 높이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반복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잠깐 작업을 멈추고 책상의 펜을 든 지수가 종이에 써놓은 내용을 조금씩 고쳐 나갔다.
'좋아… 뭔가 잡히기 시작하는데. '
마른 입술을 핥은 지수가 여백에 방금 깨달은 메모를 사각사각 적어놓았다. 종이 위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윤곽을 잡아낸 복잡한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백지였지만 조금씩 조금씩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문제가 풀릴까 말까 하고 있다고.'
몇 시간을 집중한 채 책상에만 앉아있었지만, 지수는 지겨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신바람이 나있었다. 총기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에 몰입했다. 요즈음 바깥에서 뛰어 다니느라 인상이 옅어진 감이 있지만, 지수는 어디까지나 방에 틀어박혀서 공부하길 좋아하는 연구자 타입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지수가 양손을 마주대고 스킬을 발동했다.
"파사의 마력."
체내의 마력에 집중하고 또 집중하며, 스킬을 발동할 때 자신의 몸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관찰했다.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었다. 원리를 숙지하고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에서 거꾸로 내려가 원리를 해명하는 것.
'원리랑 작동 방식만 알면,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나 혼자 스스로 마력을 짜낼 수 있어.'
파사의 마력을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지수의 몸 안에 갖추어져있었다. 그리고 스킬이라는 것은 필시,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하고 배열하도록 명령하는 일종의 리모컨이었다. 지수가 원하는 건 바로 그 '파사의 마력'이라는 리모컨의 버튼에 입력된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딱히 시스템의 보정을 받는 게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동어 한 마디 내뱉는 걸로 발동되는 스킬은 오히려 대단히 편리했다.
하지만 이건 지수가 가진 하나의 고집이었다. 자신의 기술쯤은 제대로 원리를 파악한 뒤 온전히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계산이 있었다.
'뭐든지 제대로 알아야 잘쓰는 법이니.'
파사의 마력은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활용할 여지가 끝없이 펼쳐져있는 기술이었다. 단순히 위력이 강하니 약하니 하는 잣대론 평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력 자체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활용할 방법도 떠올리지 못한다.
그리고 펜으로 적어낸 공정들을 다시금 몇 번이고 확인해본 지수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라면 이 공정으로 파사의 마력을 정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수의 손에서 천천히 새하얀 스파크가 튀었다.
"……좋았어."
지수가 희열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지수 혼자 야매로 더듬어서 쌓아낸 공정인 탓에 과정 자체가 최적화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은 스킬로 발동하는 것만큼 정제가 빠르고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원리 자체는 파악했다. 이제부터 지수가 스스로 사용하며 다듬어가면 될 뿐이었다.
문제 하나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지수가 고개를 돌려 살펴본 건 어제 받은 선물이었다. 책상 위에 마녀의 고깔모자 모양을 하고 있는 새까만 호롱이 놓여 있었다.
"이것도 분석하려면 한참 걸리겠네. "
지수가 기지개를 펴며 책상에 앉았다. 저번에 이 호롱을 마력으로 탐지하며 이리저리 살펴본 결과, 예상한 것과 같이 극도로 섬세한 기술로 세공되어 있는 마도구였다.
마도구라고 하면 재현해서 지수의 손으로 다시 만드는 것도 가능할 법 하지만… 이것은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단순히 재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용된 기술이 너무나 까마득하다. 아예 제작 방법과 설계도를 통째로 건네받는다 해도 지금 지수의 손으로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귀한 걸 바로 사용해버리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다. 흑마녀가 선물한 마도구는 연금술사로서의 지수에게 있어 최고의 교재였다. 이제부터 지수는 이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지 끊임없이 추론해보고, 부품 수준까지 전부 분해한 뒤 지수의 손으로 다시 재조립해볼 생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지수가 가진 연금술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다. 지수가 조용히 집중하며 호롱을 이리저리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
지수는 안경을 쓴 채 한낮의 골목길을 걸어갔다.
라이브 하우스의 부지에서는 1층의 건물을 헐어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밤에 펼쳐지는 밴드들의 무대와 별개로, 낮 시간 또한 제대로 된 카페 라운지를 운영하기로 결경한 듯 싶었다. 무언가 출자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는데,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었다. 지수가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어, 지수! 그거 쓰고 오는 거 오랜만이네~"
들어온 지수를 본 여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지금 지수는 이 가게에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코주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수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이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오늘 가게에 온 건 공연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오늘 3시라고 했는데…. '
지수가 이리저리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을 살펴보았다. 만나려고 한 사람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게의 구석에 테이블 몇개를 이어붙여놓은 자리가 있었다. 앉은 면면들을 살펴보자 대부분이 가면이나 땡글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고깔의 스터디 모임이었다. 카페의 설명에 따르면, 스스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신세대의 마법사들끼리 모여 각종 정보의 공유, 가벼운 스파링, 주문의 활용 방안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일정 주기로 열리며 고깔 카페의 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참석 하는 건 회원들의 자유였다.
지수는 마음의 준비를 위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테이블에 다가간 지수가 고깔 카페에서 공지한 암호를 말했다.
"처, 척이루."
"아하! 척이루~"
그 한 마디에 동료를 만났다는 듯, 앉아있던 남자가 반가운 얼굴을 하고 재빨리 의자 하나를 땡겨왔다. 지수는 고맙다 꾸벅 인사한 뒤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슬슬 스터디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테이블 가운데 앉아있던 남자가 큼큼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아마 남자가 진행자 비슷한 것인 듯 싶었다.
"그러면 일단 서로 닉네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아, 저는 네집에메데오입니다."
"저는 최강썬콜…"
"아 썬콜님이시구나~!"
카페에서 많이 봤다는 듯 앉아있는 사람들끼리 악수를 나누었다. 지수가 식은땀을 흘렸다. 카페 닉네임이 뭐냐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척척박사라고 사실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아직 닉네임을 말하지 않은 건 지수 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순간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건, 서민하가 지수를 부르던 별명이었다.
"미, 미역입니다."
"미역? 뭔가 들어본 적 없는 아이딘데…"
"그냥 눈팅만 해서 그렇습니다."
지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테이블에서 장난기 섞인 야유가 들려왔다. 에이. 활동을 열심히 해야죠, 그러면 안 되지! 맞아요. 척척박사 님 보세요. 봉사활동으로 그 귀한 말씀들을 그냥 해주시잖아요. 마법사 계의 성인이지, 성인. 그리고 시선을 교환한 회원들이 입을 한데 모아 외쳤다.
""척-멘!""
'돌겠네 진짜. '
고개를 떨군 지수가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 꼬집었다. 이 꼬라지를 모니터 안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상당한 고행이었다. 속이 울렁거릴 수준이었다. 그러자 테이블 한쪽에 앉아있던 남자가 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미역 님도 같이 하셔야죠! 한 번 더!"
상당히 살가운 말투였다. 물론 정말로 척척박사를 지수와 함께 찬양하고 싶어한다기 보다는, 같이 테이블에 앉게 된 사인데 이렇게라도 해서 친해져야한다는 뜻일 터였다. 아닌가? 어쩌면 진짜 그냥 척척박사 광신도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원 모어 타임!"
남자가 다시 한 번 해보자며 사람들에게 하나 둘 신호를 보내자, 지수가 눈을 딱 감고 억지로 말을 쥐어짜냈다.
"척-멘!"
"척 멘…."
"아니 중얼거리지 마시고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
""처억-멘!""
건배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공명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두는 하나의 유대감으로 묶여, 조금쯤 쑥스럽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는 듯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고개를 떨군 지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괴감에 무언가가 흘러내릴 것 같았다. 지수는 자기 자신에게 자문해보았다. 그냥 일어나서 집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짓까지 해가며 이 자리에 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나온 답은 '있다'였다. 지수가 고개를 들었다.
[해주의 비술: 두 번째 시련]
파사의 마력을 정제할 수 있게 되었다면, 다음은 사용자의 역량과 지혜를 시험받을 차례입니다. 계승자를 위해 준비된 안배를 손에 넣기 위해서, 자신이 해주의 비술을 계승할 자격이 있는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조건 1. 보유한 마력량이 일정 수치 이상일 것. (달성)>
<조건 2. 서로 다른 주문의 기본 마력 구성을 총합 백 종류 이상 해명할 것, (미달성, 11/100)>
<보상 : 파사의 만년필 (영웅)>
지수가 곁눈질로 알림창을 힐끗거렸다. 서민하의 계약자가 되어 마력이 증폭된 뒤에 나타난 해주의 비술의 다음 퀘스트였다. 마법사로서의 역량과 지혜를 시험한다. 첫 번째 조건인 마력량은 이미 달성했지만,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이었다.
서로 다른 백 종류의 주문이 가진 기본 구조를 해명할 것. 이것은 지수가 방 안에서 혼자 머리를 싸맨다고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선 수많은 마법사들이 모여 서로 주문을 보여주며 의견을 교환하는 이 자리야말로 최적의 무대였다. 진행자가 자리를 능숙히 이어갔다.
"그러면 한 번 간단한 주문들 몇 가지씩 보여주실래요? 그 다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도 갖고."
진행자가 테이블 구석을 가리켰다. 맨 구석부터 간단히 시작하는 말이었다. 즉 주문을 시연하는 첫 타자는 제일 늦게 도착해 끄트머리에 앉아있는 지수였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지수가 손가락을 슥슥 그어 룬을 발동시켰다.
"와, 룬 마술! 이거 척척박사 님도 쓰는 거잖아요! "
"진짜 부럽다. 완전 대박…. "
사람들이 선망의 눈빛으로 지수를 쳐다보았다. 룬 마술이라는 체계 자체가 극히 희귀한 것도 있지만, 척척박사와 같은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 이 고깔 카페의 사람들에게 있어선 크나큰 부러움인 듯 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쓰는 건 척척박사 님도 쓰시겠지. 지수는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주문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말 비장의 수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당연히 숨기겠지만, 간단한 주문들은 거부감 없이 공개가 되었다. 이렇게 정보를 공유하는 분위기 또한 척척박사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게 뭐냐 하면 발광 주문인데, 일단 한 번 발동해놓으면 구슬이 자동으로 뒤를 따라다녀서 던전에서 편리한…"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가볍게 주문을 발동시킨 순간, 지수가 파사의 마력을 발현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각하며 만들어낸 파사의 마력은, 단순히 스킬을 발동해 만들어 냈을 때보다 더욱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지수는 그대로 톱니바퀴를 짜맞추듯이 몸 안에서 흐르고 있는 마력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
명경지수에 돌입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차단한 것처럼 지수 주변의 마력이 고요해겠다. 그 덕분에 외부의 마력을 훨씬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흡혈귀의 계약자가 됨으로서 증폭된 모든 감각은, 말 그대로 눈앞의 마법사가 주문을 형성하는 과정을 통째로 뜯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
'훔쳐본다.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지수가 마법을 사용하고 연구하며 느낀 것은, 구조화된 주문의 마력 배열은 하나의 언어와 같다는 것이었다. 주문을 발동 한다는 건 즉 그 명령을 통해 마력의 기능과 방향성을 제한해, 특정 주문이라는 한 가지 형태로 묶어내는 과정이다.
한 주문에 통달하지 않는 이상 그 배열의 의미를 파악하는 건 극히 어렵고,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명쾌하게 풀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주문은 완전한 법칙성과 체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언어다. 그러한 인식이 지수의 머릿속에 완전히 정립되었을 때, 지수의 시야는 한 단계 확장되었다.
<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눈앞에서 발동되고 있는 주문의 구조가, 지수의 눈에 풀이되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