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무슨 뜻인지 쯤이야 (4)
해가 슬슬 저물 무렵이었다.
각자 조사를 끝내고 합류하기로 약속한 장소. 그 곳에는 김도형과 장난감 병정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건 이제 이른 바 반 협회파, 똑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공범자 사이라는 것이다. 씩 웃은 김도형이 한 꺼풀 벗은 듯한 친근함으로 악수를 내밀었다.
"이걸로 너도 배신자 동맹이네."
"전 그냥 아르바이트인데. 배신이고 뭐고 없죠."
"그런 말 하면 섭하지, 집행부 한 식구끼리. 사실 배신자 동맹이라고 하면 늑대는 화내거든. 이건 배신이 아니라 집행부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벤치에 앉은 김도형이 깍지를 꼈다. 그리고 밖에 꺼내놓았던 장난감 병정들이 흐릿해지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서있는 지수에게 무언가를 획 던졌다. 어깨를 모으며 받아내자 그건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였다. 김도형이 말했다.
"뭐. 너도 이번 일로 한 발 걸친 거나 마찬가지니, 대충이라도 알려줘야 하겠는데. 박사도 궁금하긴 할 거 아니야."
"뭐가 말입니까?"
"협회가 몰래 하고 있는 짓거리라는 게 대체 뭔지."
캔커피를 들고 서있던 지수가 김도형의 옆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그건 전부터 신경이 쓰이던 이야기였다. 정유현이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협회가 뒤에서 하고 있는 일을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표현했었다. 정유현이 그렇게까지 말하게 하는 일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증거 같은 건 솔직히 여기서는 말해줄 수가 없고. 반쯤은 추측으로 끼워맞춘 거나 마찬가지니까 알아서 걸러 들어. 몬스터의 이상발생에 대해선 아까 말해줬지. 던전이 없는 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들. 우리는 그게 어떤 단체가 포획한 몬스터를 이용해 실험하고 있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
"그리고 이상발생한 몬스터라는 건 뭔가 문제가 터져서 실험실에서 탈주하거나, 일부러 방생한 몬스터고요?"
"그렇지."
지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주 희귀한 사례긴 하지만, 포획한 몬스터를 산 채로 연구하는 건 딱히 반인륜적인 일이 아니었다. 엄정한 심사와 허가만 있다면 어느 연구기관에서나 가능했다. 애초에 그런 걸 관리하는 것이 헌터 협회였으니, 협회가 그런 일을 하고 싶으면 그냥 당당히 하면 된다.
"그게 왜……반인륜적인 일이죠?"
"몬스터'만' 가지고 한다면 당연히 문제될 게 없지."
김도형이 가방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었다. 사진에 비치고 있는 건 집행부 제복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대원들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각각 까마귀, 호박, 산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김도형이 말했다.
"이 셋이 지금 집행부의 톱쓰리야. 여기에 늑대까지 포함해서 집행부 사천왕이니 뭐니 꼴값을 떨고 있지."
"사천왕이요?"
조금 멋있는데…. 지수가 침음을 흘리며 사진을 보았다.
"멋있기는. 이 세 명의 공통점은 예전에 집행부 일을 하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실패를 겪었다는 거랑, 그 직후 어딘가로 사라졌었다는 것. 그리고 무슨 수를 쓴 건지 몰라도 돌아왔을 때는 괴물 같은 힘을 손에 넣었다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김도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지수를 쳐다보았다. 지수가 턱을 매만졌다. 이 집행부 톱쓰리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랑 지금까지 하던 얘기가 상관이 있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졌다.
"잠깐만요. 설마."
"그래, 아마도……협회는 몬스터랑, 인간을 재료로 실험을 하고 있어. 강화인간쯤 되는 거라도 만들 생각인가 보지."
웃기고 있어 정말. 가볍게 피식 웃고 있는 김도형은 꽉 주먹을 쥐고 사진들을 구겨버렸다. 이야기는 일단 이걸로 끝.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김도형이 지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갑자기 받아들이라고 해봐야 힘든 이야기지."
이내 김도형은 살갑게 밥이라도 한 끼 먹으러 가자 권유했지만, 지수는 조심스럽게 사양했다. 원래 그런 식으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이후에는 이미 잡혀있는 일정이 있었다. 김도형은 알았다며 깔끔하게 떠나갔다.
이제 대강의 요약만 본부에 전하면 오늘의 업무는 끝난다. 하지만 지수는 아직 조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김도형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지수는 주머니에서 반쯤 강매당한 라이브 하우스의 티켓을 꺼냈다.
***
저녁의 라이브 하우스는 낮에 찾아왔을 때의 한적함과 달리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활기를 띠고있었다. 가게에 들어가자 지수를 알아본 여주인이 웃으며 티켓을 받았다.
"자, 오늘 팜플렛. 그 웃기는 파티 안경은 왜 벗고 왔어?"
"업무용 물품인데 일하는 시간이 끝나서요."
"...자기 코미디언 같은 거 해?"
"대외비입니다."
여주인이 웃기는 사람이라는 듯 파하하 웃었다.
카운터와 로비를 거쳐 문을 열고 무대로 들어가자, 하나 같이 개성적인 복장을 입고 있는 손님들이 드링크바에 서서 공연이 기대된다는 듯 떠들고 있었다. 그래봐야 마흔 명이 될까 말까 하는 숫자 였지만, 그리 넓지 않은 입지와 스탠딩이 아닌 좌석 방식의 무대인 탓에 상당히 북적였다.
'이름이 분명 민하라고 했었나......'
지수의 눈이 팜플렛에 써있는 글자들을 훑었다. 디자인도 뭣도 없이 그냥 글자만 쳐서 바로 인쇄한 듯한 종이엔 무대의 순서와 레퍼토리, 밴드들의 설명과 각 파트들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서민하란 이름은 맨 마지막 순서였다.
'마지막이면 꽤 대단한 거 아닌가?'
록 페스티벌 같은 데에선 사람들을 최대한 오래 붙들어놓기 위해, 제일 인기있는 팀을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각 밴드들의 이름 밑에는 뭐라뭐라 전문용어로 한줄 소개들이 써있었지만, 지수는 해봐야 엑스재팬 정도밖에 들어본 적 없는 록음악의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민하의 밴드는 눈에 띄었다. 실제로 밴드 멤버인 건 보컬 및 기타인 서민하 하나고, 나머지는 드럼(객원), 기타2(객원), 키보드 (객원)…전부 다른 밴드에서 용병으로 갖다 쓰며 구색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건 밴드도 뭣도 아니고 그냥 혼자 하는 거네.'
그리고 그러한 서민하의 밴드 소개에는 악마적. 이라는 세 글자만이 쓰여있었다. 악마적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마성의 매력이 있다는 것일까.
대체 무슨 뜻일까. 마성의 매력이 있다는 뜻일까. 그게 아니면 데스메탈처럼 기타를 쥐어 뜯으며 악마를 찬양하기라도 한다는 뜻일까.
아무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수는 앞 쪽의 좌석에 앉지 않고 뒤에 서있는 채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밴드들이 하나둘씩 공연을 시작했다. 드럼의 쿵쿵대는 진동은 건물 자체가 생물이 되어 심장을 박동시키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곳 라이브 하우스는 무대를 즐기며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료를 마시며 무대를 즐기는 쪽의 가게였다. 손님들도 무대에 굉장히 몰입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고, 이윽고 마지막 무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수는 의아함에 눈썹을 찌푸렸다. 왜 이 타이밍에 손님들이 빠지는 거지. 지금이 이른바 피날레인데.
설마 서민하의 밴드가 마지막 순서인 이유는 제일 인기있는 무대여서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던 건가.
조금 뒤 분홍색 머리를 휘날리며 서민하가 나타났다. 이내 지수는 공연장 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다. 방금까지만 해도 신난다는 듯이 춤까지 추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던 손님들이, 지금은 기묘한 정숙을 고수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식었다든가, 야유를 보내려 한다든가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뒤에서 바라보는 지수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리스펙트가 무대 위의 여자에게 향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민하의 연주가 시작됐다.
"뭐야, 이게…."
지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연주 실력이 좋지 않다거나 음색이 끔찍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락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지수였지만, 그녀의 연주 기교가 훌륭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보컬 또한 하드 락 특유의 목을 긁는 그로울링이 아니라, 감미롭고 깨끗한 미색이었다.
그런데도 불안하게 심장이 쿵쾅댄다.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마치 어린아이의 절규를 듣고 있는 것처럼,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뱃속에서 치고 올라왔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세상을 저주하고 있는 것 같은 소리였다.
문제는 그렇게 듣고 있기가 괴로운데, 한치도 무대에서 눈을, 음색에서 귀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온갖 혐오와 공포를 느끼면서도 사드 후작의 문체에 빨려들어가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처럼, 지수가 사랑해 마지않는 루드비히의 소설처럼. 자리에서 못박혀 음직일 수 없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팜플렛에 쓰여있던 소개가 정확했다. 그녀의 무대는 말 그대로 악마적이었다. 아름다운데도 끔찍하고 기괴했다.
"……아무래도 처음 듣는 건가 보네. 듣고 있으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지? 로렐라이의 노래가 저럴까."
문득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라이브 하우스의 여주인이 무대 뒷편의 벽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로렐라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뱃사공들을 바다 깊숙이 침몰시키는 괴물의 이름이었다.
"그냥 천성인 건지, 꽉꽉 눌러두던 감정을 풀어 헤치고 있는 건지. 사람들한테 인기를 얻기는 글러 먹은 음악이야.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괴로워 지는데 누가 좋다고 듣겠어."
여주인이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 의견엔 지수 또한 전면적으로 동의했다. 보통 음악은 편안해 지기 위해서. 아니면 신나게 고양되기 위해서 듣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서민하의 무대는 정확히 그것과 정반대의 위치에 존재했다.
"하지만 아주 극소수, 감성이 맞는 사람들한테는 최고라는 모양이야. 민하의 노래를 듣고 구원받았다는 사람까지 있어. 인생이 낭떠러지에 몰려있는 놈들이 말이야…. 민하 말로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냄새도 극에 달하면 좋다고 맡으려 달려드는 변태들이 있는데. 자기 팬들이 다 그짝이라고 하더라."
재밌어 죽겠다는 듯 여주인이 큭큭대며 웃었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해주는 팬들에 대해 전혀 리스펙트가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건 분명 핵심을 꿰뚫는 비유였다.
라이브 하우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조용 하면서도 열광적이었다. 청중들 사이에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신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세상을 저주하고 있는 듯한 끔찍한 노래이기에 오히려 매료되어버린 사람들.
지금 지하의 라이브 하우스는 이계(異界) 같았다.
이윽고 레퍼토리가 모두 끝났다. 청객들 사이에선 연신 앵콜이 옹호됐지만 서민하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시하고 무대에서 뛰쳐나갔다. 팬서비스 같은 건 개 먹이로 준 태도였다. 마치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무대에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지수는 곧바로 가게에서 뛰쳐나가 서민하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그녀에게는 추궁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길거리에서 서민하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스태프 전용 출구로 한 발 먼저 빠져나온 것일 터였다.
아마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이 주변을 찾아보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수가 밤거리를 달려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사이를 아무리 찾아봐도 서민하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분홍색 머리는 잠깐만 봐도 눈에 띌 텐데.
그리고 지수가 등을 돌리고 한 장소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미 길거리에서 찾아내는 건 글러먹었다. 짚이는 곳이라면 한 곳밖에 없었다. 서민하를 만났던 그 뒷골목.
그리고 뒷골목에 다다르기도 전에, 지수는 이 앞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수도 일단은 마법사니까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앞에서는 끔찍하게 흉흉한 마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달려가자 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드디어 찾았다. 이봐요, 아까는 왜 도망…"
말을 걸면서 지수가 생각했다. 지금까지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서민하의 머리카락은 연하게 물든 피의 색깔 같았다.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서민하의 손에서 이미 죽어버린 고양이의 시체가 툭, 바닥에 떨어졌다.
"어……? 사람, 사람이 왜."
고개를 돌린 서민하의 흰자위는 검게 물들어있었다. 입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건 새빨간 액체 였다. 달빛에 반짝이는 송곳니. 땅에 질질 끌리는 오른팔은 기괴한 형태로 비틀려서, 마치 커다란 악마의 손아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저 손톱의 형태와 똑같은 자국을, 지수는 본 적이 있었다.
ㅡ몬스터와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는 모양이야.
ㅡ그 발톱자국은 결정적인 단서가 될 거다.
김도형과 정유현이 했던 말들이 뇌리에 스쳐갔다. 그와 동시에 떠오른 건, 살아있는 생물의 피를 빨며 살아가는 괴물의 이름이었다. 악마종, 뱀파이어……다른 말로는 흡혈귀.
커다란 악마의 오른팔이 조금씩 꿈틀댔다. 왜. 사람? 왜. 왜. 연신 중얼거리는 서민하의 눈동자가 반쯤 착란한 듯이 흔들렸다. 못 참아. 더 이상은 못참아. 순식간에 획 휘둘러진 발톱은 콘크리트를 두부처럼 갈라 커다란 자상을 만들어 냈다.
지수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발톱자국과, 완전히 똑같은 흔적이었다.
"역시, 그거. 그쪽이셨구나."
지수가 멍하니 납득하며 중얼거렸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콘크리트 담장을 가볍게 헤집는 파괴력. 기적적으로 범인을 찾아내긴 했는데, 과연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반쯤 착란한 채 새빨간 마력을 뚝뚝 흘리며, 연분홍색의 흡혈귀가 달려 들었다.
<조건 2 : 악마종 1체를 제압하라 (진행중)>
허공에 휘두른 지수의 손가락이 대여섯 개의 룬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