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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24화 (24/176)

24화.  여기 알바생인데요 (4)

여기저기서 뿌드득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 렸다.

중력인가…? 아니면 염동력?'

어느 쪽이든 상상을 뛰어넘는 출력이었다. 달려 오던 남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납작하게 짓밟혔다. 마치 압착 프레스기에 짓이겨 진 듯한 모양새다. 전신골절 정도로 끝나면 다행일 것이다. 이것이 집행부의 방식인가.

집행부는 가면을 쓰고 일한다. 집행부는 신상을 노출시켜선 안 된다. 집행부의 지인은 보복살해의 대상이 된다. 그 모든 말들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현실로써 이해되었다. 주변을 들러본 정유현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지수에게 말했다.

"박사 너는 거기 서서 애들 지키고 있어."

늑대탈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다. 사내들 중 몇몇은 그만한 위력의 일격을 받았음에도 고통스런 신음을 흘릴 뿐, 아직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기는 각성자 아이들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놈들이다. 단순한 일반인일 리가 없었다.

".......큭! 당장 쏴죽여버려!"

한 사내가 공중에 대고 소리쳤다. 그 쪽에선 한 사냥꾼이 하늘에 둥둥 떠있는 채 활시위를 정유현에게 겨누고 있었다. 노리는 것은 뒤통수, 완전한 사각이다. 가득이나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이런 밤엔 투사체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지수가 황급히 소리쳤다.

"늑대 씨! 뒤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정유현은 이미 알고 있으니 괜찮다는 듯 가볍게 한 손을 들어보였다.

거대한 힘을 담은 활시위가 튕겨나갔다. 하늘 위의 사수가 쏜 화살이 늑대탈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화살은 도중에 기이한 방향으로 급히 틀어져, 표적에 도달하는 일 없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뭐야 저게…!"

"어디다 쏘는 거냐 병신아!"

주변 사람들이 경악했다. 사내들은 그들의 암살자에게 어디다 쏘는 거냐고 욕했지만, 사실은 그들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저 각도에서 쏜 화살이 저렇게 땅에 박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 정유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행 능력에 원거리 공격. 말 그대로 아주 날아 다니겠군."

정유현이 순수한 감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대로 저 두 가지 특성의 조합은 거의 모든 종류의 적에 대해 상성상 우위에 있었다.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건 이쪽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 화살의 위력을 볼 때 적어도 B급, 아니면 그에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였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공중을 향해 치켜든 정유현의 손에서, 연보라색 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비행 능력은 누구에게나 상성의 우위를 지니고 들어가는 훌륭한 특성 이지만. 언제나 예외라는 건 있는 법이었다. 특히 정유현의 힘은 비행 능력의 극상성이었다.

"내 앞에서 하늘에 떠오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데."

나는 내려다보이는 걸 싫어하거든. 정유현이 웃었다.

그 순간. 공중에 떠있던 사냥꾼이 지면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쾅!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추락이나 낙하라는 표현보다도 더욱 거칠고 난폭한… 마치 악마의 손이 하늘 위의 인간을 낚아채 지면에 내동댕이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같은 B급 수준이라면 일방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조직의 히든카드조차, 저항다운 저항 하나 못하고 몇 초만에 당해버렸다. 그게 의미하는 사실은 한 가지. 지금 그들의 눈앞에 서있는 집행부의 늑대탈은 적어도 A급 수준의 강자라는 것.

"괴물......."

멀리서 정유현을 지켜보던 사내들이, 지수와 완전히 똑같은 감상을 흘렸다. 완전히 격이 다르다. 생각해보면 지수가 제대로 된 강자의 싸움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던전에서 복면인들을 제압한 일로 조금쯤 우쭐대고 있었지만, 자신은 아직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라고 확실하게 알았다.

"저것들 다 폐기해…! 넘어가면 귀찮아진다!"

비틀대던 텁석부리 사내가 뒤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언가의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컨테이너 안에서 불길한 색의 가스가 뿜어져나왔다. 저게 뭐지? 컨테이너의 입구에 서있던 지수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아가던 지수의 눈동자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반지가 독을 무효화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컨테이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저 가스는.

등골에 섬뜩함이 올라온 지수가 황급히 고함을 쳤다.

"너희들 지금 당장 나와!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큰 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맞지 않으려는 듯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은 채 덜덜 떨기만 했다. 나오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하는데도 그들에게 움직일 기미는 없었다. 절대 여기서 나오면 안 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겠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이미 반쯤 망가진 상태였다.

그것은 지수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커다란 악의 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을 납치해서,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 학대해놓고. 이제는 들킬 것 같으니까 증거인멸로 다 죽어버리라는 건가? 지수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라 터져나왔다.

폭주한 마력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아이들만을 피해 컨테이너를 무너뜨리고, 거센 바람이 되어 안에 차있던 가스를 하늘 위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그건 응급처치일 뿐이었다. 잠깐이지만 가스를 들이마신 아이들은 충혈된 눈을 한 채 괴로운 듯 과호흡을 계속하며 피가래를 토하고 있었다.

"콜록! 아,파. 콜록!" "케흑! 컥! 엄마…."

마력의 폭발로 탈진해 무릎꿇은 지수가 공포에 손가락을 씹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하지. 회복의 룬? 그것은 다친 상처를 아물게 할 뿐이고 독이나 저주 같은 것에는 효과가 없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그러자 뒤따라 들어온 늑대탈의 정유현이 지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만 됐다."

지수가 뒤를 돌아보자, 흰색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정유현의 등 뒤로부터 우르르 몰려왔다. 지수를 지나쳐간 그들은 쓰러져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흰색 제복 중 한 명이 정유현의 앞에 다가왔다.

"관리부서입니다. 현장의 설명을."

"저쪽 배기구에서 가스가 나왔다. 어떤 종류인진 모르겠지만 독성이 있는 건 확실하고. 노출은 5초 정도."

고개를 끄덕인 흰색 제복이 정유현에게서 들은 내용을 종이에 메모했다. 그들은 이러한 상황의 프로페셔널이었다. '제대로 돼먹지 못한 일'을 담당 하는 집행부와 달리, 사람을 지키고 살리는 '제대로 된 일'을 업무로 삼는 이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지수는, 황급히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흰색 제복의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뭡니까?"

"끼고 있는 동안은 독을 무효화해주는 반지니까....필요한 애들한테 사용하고서 돌려주세요."

놀라운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보던 관리부의 팀장이, 맡겨달라는 듯이 주먹을 꽉 퀴었다. 비틀거리는 지수가 한 손으로 벽을 짚었다. 방금의 마력 폭발 때문에 탈진이 일어난 탓에, 마도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늑대 씨. 그 놈들……:."

"그래. 몇 명 놓쳤긴 했지만 대수는 아니야. 단서를 잡은 이상 조사부가 조만간 본거지를 알아내줄 테니, 그 때 싹 쓸어버리는 게 낫지. 네가 직접 못 보는 건 아쉽겠다만."

"그게 아니라……추적의 룬을 붙여놨어요. 20분 정도밖에 지속 안 되지만. 어디 있는지 방향은 알 수 있어요."

아무리 견학이라고 해도, 절대 컨테이너 앞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집행부의 방식은…철저하게,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 숨을 헐떡이며 그렇게 말하는 지수의 눈동자에선 증오가 이글 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집행부 다 됐군. 빤히 지수를 바라보던 정유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러면 마지막까지 똑바로 견학하도록."

늑대탈을 쓴 정유현이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의 지수를 양손으로 들쳐안았다. 그리고 그가 구둣발로 한 걸음 땅을 박차자, 연보라색 빛과 함께 몸이 하늘로 두둥실 날아올랐다. 비행이라기보다는, 무중력의 부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박사, 어느 쪽이지?"

"저쪽이에요."

정유현에게 부축받고 있는 지수가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몸 안에 남은 마력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붙여놓은 추적의 룬의 기척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진짜 척척박사군. 고개를 끄덕인 늑대탈이 밤하늘을 우아하게 달렸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마도 명상을 시도하며 몸을 갈무리하는 지수가 말했다. 업무 중에 말하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눈가에 아른거렸다. 건물의 옥상과 옥상 사이를 발 판 삼아 뛰어다니는 정유현이 대답했다.

"돌아갈 집이 있으면, 집에 돌려보내는 거지."

"그러면. 돌아갈 집이 없는 경우는."

"신원확인이 되지 않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는, 협회에서 일하게 되겠지. 그 애들은 다 각성자일 테니까 관리 차원에서도 말이야. 운이 좋으면 잡무 담당이고."

"...운이 나쁘면?"

쓴웃음을 지은 늑대탈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보였다. 정유현 또한, 각성자로 말미암아 생겨 난 범죄나 전쟁의 피해자인 걸까. 어쩌면 집행부라는 곳의 구성원들 전원이 그러한 이들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지수가 눈을 감았다.

아까부터 옆에서는 알림창이 띠링띠링 울리고 있었다.

해주의 비술을 얻을 시련에 진입할 수 있는 조건. '마력에 감정을 담아 제어하는 것'.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방금 컨테이너를 부수고 가스를 날려보냈을 때 그 느낌을 깨달았다. 지수가 눈을 떠 알림창을 읽었다.

[해주의 비술: 첫 번째 시련]

해주의 비술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파사 의 마력'을 체내에서 정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반(反) 마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특수한 마력은 같은 마력을 튕겨내고 상쇄하는 성질을 지니며, 활용하는 것으로 온갖 주문의 증폭에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조건 1. 마력에 감정을 흘려보내는 데에 성공. (달성)>

<조건 2. ???를 1체 제압할 것. (미달성)>

<보상 스킬 : 파사(破邪)의 마력>

"도착한 모양이군."

"……네."

하늘을 둥둥 떠 나니던 정유현이 땅으로 내려왔다.

날아오는 동안 마도 명상으로 마력을 갈무리한 지수도 이제 적당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공사하다 만 아파트 터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바로 그 개새끼들의 아지트였다. 늑대탈을 쓴 정유현은 정말 기대된다는 듯이 상쾌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면, 집행을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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