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여기 알바생인데요 (2)
집행부에 대한 도시전설은 사람들이 곧잘 떠드는 얘깃거리였다. 집행부의 본부는 협회 건물의 지하에 있다느니,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건물 구석에 숨겨져있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검은 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만 한다느니.
반쯤 농담으로 떠드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집행부와 접선하게 된 지수가 떠올린 건 현실은 상상 보다 더하다는 말이었다. 집행부의 작전실이 협회 지하에 있는 것은 맞았지만, 출입구는 애초에 협회 건물을 통해 들어가는 것조차 아니었다. 지수는 협회 주변에 있는 한적한 카페에 앉아있었다.
지수가 종이에 메모해둔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이렇게 하라고…?'
메모에 적혀있는 건 집행부의 명함에 연락했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안내해준 '접선 방법'이었다. 진짜로 이걸 하라는 건가? 무슨 몰래카메라 같은 거 아니야? 주문하려고 카운터에 선 지수가 반신반의한 채로 큼큼 헛기침을 내뱉었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해이즐넛인가요?"
"죄송합니다 손님. 헤이즐넛은 재료가 다 떨어져서요."
점원이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여기까지는 안내받았던 것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뭔가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침을 꿀꺽 삼키고 웃은 지수가 안주머니에서 불식의 휘장과 집행부의 명함을 꺼내들었다. 지수가 명함을 두드리며 말했다.
"원두는 늑대에게 맡겨놓았습니다."
미리 귀띔받은 '암호'였다. 그러자 점원의 눈동자에 잠시 이채가 감돌았다. 하지만 한 순간일 뿐, 점원은 즉시 자연스러운 태도로 돌아왔다. 점원이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네, 늑대 씨 예약이군요. 확인했습니다. 지금 연락해드릴 테니 잠시만 자리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자리에 돌아온 지수는 영문 모를 짜릿함을 느꼈다. 뭔가 소설에 나오는 비밀결사의 접선 같아서 남자의 가슴을 불태우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내 카운터 안에 들여보내진 지수가 발견한 것은 지하로 이어지는 창고의 계단이었다.
'암호에다 비밀 통로까지? 장난 아닌데?'
지수가 눈썹을 모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공간이었다. 지수의 입에서 와우,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복도는 사방이 철제의 벽으로 막혀있었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마치 지수의 머릿 속에 어렴풋이 존재하고 있던 '본부‘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화시켜놓은 것 같았다. 이윽고 저편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백묵 씨가 보낸 아르바이트인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지수를 마중나온 건 새까만 제복을 입고 있는 가느다란 실루엣의 남자였다. 남자는 얼굴을 통째로 가리는 늑대 모양 가면을 쓰고 있었다. 뚜벅뚜벅 다가온 늑대 가면의 남자가 지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영광이야. 그 '이지수' 맞지? 유명인을 다 보게 되는군. 집행부의 정유현이다. 일할 때는 늑대라고 불러."
"네, 늑대 씨? 근데 저 아세요?"
정유현은 뭘 그런 걸 묻냐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적어도 협회 쪽 사람들 중에 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협회가 한바탕 뒤집혀서 난리가 났 었으니까."
"제가 무슨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라이센스 시험. 역대 죄초 필기 만점자잖나. 설계한 양반들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기계 고장이나 해킹인 줄 알고 몇 번을 점검했었지. 결국 아무 증거도 못 찾아냈지만. 각성한 능력이 헤킹인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었다고."
전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추측이었다. 지수가 각성한 해석 능력은 해킹과도 조금 통하는 면이 있었으니까. 지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리자 정유현은 실없는 녀석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가 안내한 건 본부 안쪽의 응접실이었다.
늑대탈을 쓴 정유현이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면접이라고 해도 백묵 씨의 소개니 실력은 증명된 거나 다름 없겠지. 마법사라고 했던가? 귀한 인재네.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공격이나 회복,보조 같은 항목들 중에…."
"전부 다할 수 있습니다."
"…전부 다?"
그건 또 신기하다는 듯, 늑대탈의 눈동자가 이채를 띠었다.
"네. 공격, 보조, 회복. 전부 가능합니다."
지수가 한 차례 손가락을 휘젓자, 빛나는 룬이 늑대탈을 쓴 남자의 몸을 감쌌다. 주문은 순서대로 계속 이어졌다. 이게 가속, 이게 집중, 이게 방호. 버프는 중첩 안되게 하려면 이렇게 네 개 정도고요. 공격 주문은 시험에서 보셨을 테고. 이번 게 회복 주문이에요. 지수가 다시 손가락을 그었다.
몇 차례 빛이 남자를 휩쓸고 지나간 뒤. 지수가 말했다.
"잡다한 거 몇 개 더 있긴 한데. 일단 이 정도네요."
"........"
지수가 말하자, 정유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늑대 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정유현이 지수에게 서류더미를 안겨주었다.
"더 볼 거 없겠군. 바로 인적성 테스트로 넘어가지."
지수가 넘겨받은 건 근로계약서니 비밀 유지 서약서니 하는 것들이었다. 아마 일이 일이다 보니 외부에 누설하면 안 되는 사항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뚜벅뚜벅 지수를 앞서 걷고 있던 늑대탈의 남자가 말했다.
"일단은 가면부터 하나 준비하는 게 좋겠어."
"가면이요? 원래 가면을 쓰고 일하는 건가요."
"적을 엄청나게 만드는 일이니까. 업무 중엔 서로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아. 늑대니 토끼니 하는 코드명으로 부르지. 집행부원의 지인들은 보복살해의 대상이 되기 딱 좋거든. 신상보호에 신경쓰지 않으면 끔찍한 꼴을 당하게 된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섬득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 범죄자 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충분히 있음직한 가능성 이었다. 너무 겁줘버린 건가 생각했는지, 늑대탈의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어차피 아르바이트인 너는 잡무에나 투입될 테니 그리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그런 쪽은 조심 해둘 수록 좋겠지."
"인적성 테스트라는 건 뭡니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집행부 일이 제대로 된 일은 아니야. 하다 보면 볼 꼴 못볼 꼴 다 보게 되지. 길게 버티고 있는 놈들은 다 나사 하나씩 빠진 사회부적응자들이고."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늑대탈의 남자가 조금쯤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지수가 침을 꿀껵 삼켰다. 그쯤은 알고 있었다. 최소한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을 작정이었다. 말 그대로 현장의 실전을 뛰는 일. 하지만 그런 곳이기에 오히려 파죽지세로 성장할 기회가 있다. 정유현이 말을 이었다.
"인적성 테스트라는 게 별 게 아니고. 그냥 내 옆에서 우리 업무 한 번 구경하는 거야. 이런 쪽 일이 끔찍하게 안 맞는 사람도 있으니까. 가벼운 견학이나 체험학습 정도라고 생각해둬. 할지 말지는 그 다음 생각해도 안 늦으니까."
아무리 불식의 소개장이 있다고 해도, 가벼운 생각으로 일하겠다고 했다가 얼마 안 있어 그만둘 사람은 사양인 모양이었다. 일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신중한 선택을 하도록 배려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지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탈의 남자가 내민 것은 내일 만날 접선 장소의 주소였다. 인적성 테스트의 내용은 말 그대로 업무의 견학일 뿐이었다. 아무런 보조도 뭣도 할 필요 없이, 옆에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으면 된다. 그쯤이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출구까지 마중을 나온 정유현이 말했다.
"집행부의 제복은 테스트가 끝나면 지급해주지. 내일은 가면을 쓰고 오도록 해. 임시 코드명도 하나 생각해두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지수는 백화점에 들러, 내일 쓰고 갈 가면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비치되어있는 가면들을 둘러보아도 확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깃털이 꽂혀있는 무도회용 가면처럼 휘황찬란한 것을 쓰고서 업무를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수는 좀 더 담백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원했다.
'역시 심플하게 동물 가면이 좋을까.’
동물이 아니면 하회탈 같은 전통 탈이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지수의 마음에 꽂히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야 생활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처럼, 업무에 쓸 가면도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아야 모티베이션을 얻을 수 있다. 지수는 이런 면에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어차피 임시니까 일단 아무 거나 하나 집어들어 갈까. 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윽고 백화점 복도를 걷던 지수는, 자신의 심장에 확 꽂히는 가면 하나를 찾아냈다.
'이거다.'
침을 꿀꺽 삼킨 지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가면을 집어 들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인적 없는 폐공장 터. 지수는 준비해둔 가면을 쓴 채 늑대탈을 쓴 정유현과 만났다. 그는 언제나 냉철한 태도를 고수하는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지만, 지수의 모습을 보고서는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왜요, 멋있지 않나요?"
늑대탈로 가려진 얼굴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지수가 뭐가 이상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지수가 얼굴에 쓰고 있는 건 파티용 코주부 땡글이 안경이었다. 커다란 매부리코에 콧수염이 달려있는 짙은 눈썹의 동그란 뿔테 안경.
"......노 코멘트라는 걸로 하지."
뭐라고 말하려던 정유현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개인의 취향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앞서 걸어나간 정유현이 지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서, 코드명은 하나 생각해왔나?"
"네. 원래 쓰던 게 있어서."
지수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박사'. 그게 집행부 아르바이트생으로서 지수의 닉네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