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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16화 (16/176)

16화.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3)

사무실의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을 때, 백묵은 오성화가 온 거라고 단숨에 알아챘다. 백묵의 방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올 만한 배짱과 담력이 있는 놈은 불식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뿔난 표정의 오성화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 아저씨야!"

성큼성큼 걸어온 오성화는 양손으로 백묵의 책상을 쾅 짚으며 소리쳤다. 얼굴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눈가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지수가 길드장을 만나고 왔다길래 어떤 얘기 들었냐고 연락해봤더니 하는 말이 무슨.

"좋은 말만 좀 해주겠다매! 뭐? 만나자마자 마법으로 위협을 해? 정신이 있으신 겁니까? 걔 저희 동맹이라고요!"

"시끄러워."

백묵은 손가락으로 양쪽 귀를 막았다. 이 놈은 다 좋은데 자기 마음에 든 인간만 관련되면 한도 끝도 없이 감정적으로 달려드는 게 문제였다. 곧 죽어도 자기 사람은 못 쳐낼 놈이다. 이런 기질을 좀 고쳐야 길드를 이끌든 말든 할 텐데.

"마법은 무당이 썼다. 나는 신호만 줬지."

백묵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변명으로 오성화의 흥분이 가라앉는 일은 없었다.

"지금 그런 게 문젭니까? 보스, 걔한테 집행부 라인까지 소개해줬다면서요? 이제 막 헌터가 된 애한테 그런 걸 왜 줘요! 위험하잖아요! 범죄자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귀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뺀 백묵이 인상을 쓰며 성화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만나자마자 시험 삼아 위협한 것은 확실히 난폭한 방식이었다. 오성화가 부길드장으로서 비판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집행부의 명함을 건네준 건 서로에게 분명히 필요한 행동이었다. 백묵이 입가를 이죽거리며 말했다.

"무슨 엄마도 아니고, 아주 과보호 나셨군."

"뭐라고요?"

"난 그저 선택지를 준 것 뿐이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올라갈지,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빠르게 치고 나갈지."

"그러니까 그게 위험하다고......!"

"그만. 자기 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건 오히려 너 아닌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 놈은 우리 길드원이 아니야. 단순한 동맹이지. 너한테든 나한테든 참견받을 이유가 없다고."

백묵이 추궁하는 듯한 눈빛으로 오성화를 째려 보았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단순한 민폐다."

백묵의 목소리에는 적잖은 경멸이 담겨있었다. 순간 욱해서 당장에라도 소리칠 것 같던 오성화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백묵이 하는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건 자신 쪽이었다.

"......아 진짜!"

결국 짜증을 낸 오성화가 등을 돌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구둣발에 신경질이 섞여있었다.

'알고 있어. 나도 안다고.’

오성화의 걱정은 거의 강박증 수준이었다.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을 보면, 안전하게 성장하게끔 옆에 붙어서 지켜보고 싶다. 적어도 제 몸 하나쯤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한 사람 몫이 될 때까지는 눈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 놈은 요 일 년간 자취를 감췄다…. 그래도 걱정이 돼.'

오성화가 그런 강박을 가지게 된 건 한 명의 각성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각성자로 등록되어있지도 않은 살인범.

아직 오성화가 불식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 자식은 오성화의 동료를 죽이고, 오성화 또한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미숙했던 오성화가 놈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동료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이었다. 오성화의 명부에 반드시 복수해야 할 대상으로 새겨진 이름.

인형사(人形使).

놈은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사냥한다. 자질이 있는 헌터를 죽여버린 뒤, 자신의 인형으로 개조해버리는 최악의 능력.

오성화의 옛 동료는 놈의 콜렉션 중 하나가 되어있을 것이다. 불식에 들어와 백묵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동료를 만든 것도, 누가 상대라도 지지 않도록 힘을 기른 것도 전부. 놈을 죽이기 위해 멀리 돌아온 길일 뿐이었다.

"그래, 까짓거."

내가 먼저 그 놈을 찾아내서 박살내버리면 그만이다. 이를 빠득 간 오성화는 살기등등한 얼굴로 건물을 빠져 나갔다.

지수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가마솥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한동안 이렇게 독서에 푹 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헌터시험도 일단락됐고, 이제는 조용히 혼자 책을 읽을 짬이 났다. 조용한 광경이었지만 결코 느긋하지는 않았다. 책의 문면을 바라보고 있는 지수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여기를 이렇게 해서.'

지수의 손이 책상을 더듬으며 종이를 찾았다.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종이를 끌고 온 지수는 펜을 쥔 채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도해를 적어나갔다. 마력이 이렇게 들어와서 이렇게 나가니까. 여기서부터 생각해 보자. 똑같은 효과를 룬 마술로 재현하려면 어떤 식으로 구성을 해야 되지.

지수의 책상에 쌓여있는 장서들은 마법사 카페 , 고깔‘에서 한 이벤트로 받아온 책들이었다. 물론 전부 일반에서 고급 등급 뿐. 기념품 가게 한쪽을 꽉 채우고 있었던 장서들 중에서도 희귀 등급 이상의 책은 두 권밖에 없었다. 대단한 마법서가 그리 쉽게 나타나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욕심일 것이다.

<회복 마법 기초 (일반)>

<내성 부여 주문의 이해 (고급)>

<청탑식 마나 조작 훈련법 (고급)>

<약화와 저주에 관한 저술 (고급)>

지수는 책에 적힌 주문의 지식들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있었다. 시스템과 스킬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주문의 원리를 완전히 해석해 이해하고 있는 지수이기에 가능한 짓거리였다.

'실전에서의 운용을 고려하면, 효과를 다소 떨어 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룬 캐스팅 방식으로 만드는 편이 나아.’

단지 지수에게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인스턴트. 마법진을 전개해 준비할 필요가 없는 룬 마술의 특성 자체가 여러모로 제약이 없고 편리했다. 별 다른 리스크를 지지 않고서 수많은 상황에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최대한 딜레이를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해.'

그게 지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예를 들어 라이센스 시험에서 만났던 그 마법사. 녀석은 확실하게 지수보다 강한 위력의 주문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지수가 룬 마술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해석 스킬을 통해 무슨 속성의 마법으로 공격해올지 알고서도 제때 맞춰 카운터를 넣지 못했을 것이다.

"......돌겠네 진짜."

펜을 휘갈기던 지수가 꽉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도 틀렸다. 처음엔 가능할 것 같던 발상도, 막상 적용해 보면 커다란 결함이 발견되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지수는 머리를 쥐어짜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그것이 묘하게 즐거웠다.

프로그래머가 어떤 언어로 쓰여있는 프로그램을 다른 언어로 컴파일하는 것처럼. 한 가지 주문을 룬 마술 체계로 번역해서 이식한다. 그러한 작업 자체가 단순한 학습 이상의 효과로 지수가 가진 마법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었다.

['마법의 이해'가 7레벨이 되었습니다. ‘마법의 이해‘가 최대 레벨에 이르러, '마도의 이해‘ 1레벨로 변화합니다.]

[이제 마나를 더 빠르고 부드럽게 다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종류의 주문에 대한 통찰력이 증가합니다.]

"이러다가 머리 터지겠다."

펜을 내려놓은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쉬어주며 생각을 정리할 땐 거울 보고 양치질이 최고라는 게 지수의 지론이었다. 지수는 치카치카 짓솔질을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고깔 카페에 접속하자 쪽지가 와있었다.

- 쪽지함 (1/78)

[제목 : 안녕하십니까, 가람 아카데미 기획팀입니다.]

안녕하세요, 척척박사 님. 가람학원 강남점 기획 팀장 이정우입니다. 요즈음 다시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척적박사 님이 올리신 글들을 읽을 수록 마법에 대한 깊은 식견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고, 마법사 클래스로 각성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척척박사 님, 아시다시피 저희 아카데미는 업계 최고의 환경과 대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아카데미의 강사직을 맡으셔서, 더 체계적이고 완성된 커리큘럼으로 자라나는 마법사 학생들을 가르쳐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본 학원에서는 척척박사 님이 필요로 하시는 모든 종류의 지원과 자료수집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계약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우선 식사라도 하면서 천천히 얘기를......

"이건 또 왔네. 끝도 없이 와 무슨."

컵을 들고 입을 행군 지수가 붸에에 양칫물을 뱉으며 말했다. 당장 저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고깔 카페를 켜본 것도 그저 좋은 책이 있나 인증샷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쪽지함을 닫은 지수가 카페의 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뭐야."

그 책들 중에. 지수의 눈길을 획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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