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아니 다 보인다니까 (6)
관전실 안은 너무 경악한 탓에 오히려 고요했다.
라이센스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수준이래 봐야 뻔할 뻔자였다.
아직 'F급 헌터'라는 스타트 지점에도 서지 못한 병아리들. 변변찮은 스킬 하나 가지고 있지 않고,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신체능력 하나만 믿고서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의 기본적인 센스와 주의력을 평가하자는 게 라이센스 시험의 취지였다.
원래대로라면 서로가 기습의 위험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소극적이고 안전하게 하나씩 골렘을 잡아가는 양상이 되어야 했다. 어차피 초심자가 기습을 해봤자 곧바로 한 명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리 없고, 그것보다 기습당한 응시자가 도망치는 게 훨씬 빨랐다. 사실상 무력화 룰은 당장에라도 0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과 견제로서 기능한다.
조금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서 안일하게 싸우면 간단히 큰코를 다쳐, 사냥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응시자들의 머리에 강제로 박아넣는 구조였다.
'그런데, 저 2번 녀석은 뭐야?‘
분명 그랬을 터인데. 지금 단 한 명의 응시자가 그런 구조를 송두리째 뒤집어 엎고 있었다.
마법사 클래스. 그것도 타고난 마나통이 괴물 같은지 주문을 거리낌 없이 펑펑 써대고 있다. 이건 이미 양민 학살이라고 표현하기도 뭐한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생태계 파괴. 저런 괴물에게 목검 하나 달랑 들고 있는 다른 응시자들이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차라리 맨몸으로 권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랑 싸우는 게 사정이 나을 것이다.
현장에서 은신한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감독관들도 그 전투력엔 혀를 내둘렀다.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쯤, 드물게 나오기는 한다. 이미 라이센스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하지만 저건 그런 놈들 중에서도 특출났다. 지금 당장 실기를 중지한 뒤 저 2번을 빼고서 재시험을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25번은 운이 나쁘게 됐군.'
감독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기습으로 전승민의 포인트를 빼앗아간 25번 응시자. 어쩌다 운 좋게 럭키 펀치를 먹이는 데에는 성공 했지만, 그 결과 2번의 눈에 찍혀버렸다. 실기시험장 전체를 휩쓸고 있던 폭풍우가, 오직 한 대상을 향해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어디까지라도 쫓아가서 철저하게 박살내겠지.
물론 전승민이 한 순간 움직임을 멈췄던 것이 단순히 놀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지수가 먹인 일격이 럭키 펀치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급습이었다는 것도,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던 감독관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직접 당한 전승민은 커다란 충격에 빠져 있었다.
잠깐 몸이 경직됐다한들 원래대로라면 반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면 움직이기 직전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일순 이쪽을 멈추게 한 함정도, 기척을 지우고 있던 은밀함도. 이중 삼중의 요소가 겹쳐 그 일격을 만들어냈다. 그건 이쪽이 방심하거나 실수한 게 아니라, 순수하게 상대방의 역량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전승민은 10분 간 아까 전 당한 기습을 몇 번이고 되감아가며 생각했고, 이내 납득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엇인가를 당했다. 그리고 내린 평가는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 전승민에게 있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사실이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대전자를 만났다. 전승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마지 못해서 친 시험인데. 재밌는 게 튀어나오고 있어."
삐익- 소리와 함께 흉갑 색깔이 변했다. 무력화 상태 해제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자마자 바로 옆의 수풀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목검을 들고 달려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숨어서 전승민의 무력화가 풀리는 순간만을 노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설마 못 알아채고 있을 거라 생각했나? 비웃음을 띤 전승민이 달려드는 남자를 그대로 바닥에 처박았다.
"그래. 이런 놈들밖에 없으니까 지루했던 거지."
단숨에 남자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15포인트가 들어왔다. 하지만 전승민에게 이미 점수 따위는 안 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전진. 수험번호 25번, 그 빌어먹을 자식을 다시 찾아낼 때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방해되는 놈들은 전부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한 번 더, 나랑 놀아달라고."
전승민이 살기등등한 얼굴을 하고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드디어 시작됐네요. 이제부터 역전이라고요."
"상당히 자신 있어 보이네. 아까는 입 쩍벌리고 놀라놓고선."
"그때는 예상 외의 상황이라 잠깐 당황한 거고. 뭘 더 꽁꽁 감춰두고 있든 어차피 이쪽이 더 센 건 확실하니까요."
김혜성이 고깔을 눌러쓰며 여유 있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오성화는 대답하지 않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확실히 전승민이 보여주는 주문의 화력은 이미 풋내기의 수준을 넘어있었다. 마법사 클래스 자체가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지만, 저 전승민이라는 청년은 그중에서도 이상한 수준이었다. 힘 조절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미 안전 문제로 감독관에게 중재당했을 터였다. 지수가 어떤 능력을 더 숨기고 있다고 해도 아마 정면승부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오성화의 생각에 지수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그냥 끝까지 상대하지 않고 전승민에게서 도망쳐다니는 것과, 두 번째. 전승민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하지만 도망만 다녀봤자 압도적인 힘을 과시한 전승민을 찍어누르고 실기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전승민의 손 발을 묶을 수 있을 리도 없다.
'하기야 지수 쪽에선 수석 같은 데에 관심도 없겠지만.’
오성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둘 중 누가 수석을 차지하냐 같은 건 자신과 김혜성 사이에 성립된 내기일 뿐,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평소 지수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합격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아. 이렇게 영웅 급 무기 하나가 날아가버리는 건가. 그렇게 오성화가 쓴맛 섞인 한숨을 쉬었을 때.
"저, 저거 무슨 생각이야…?”
귓가에 들린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김혜성의 목소리. 오성화가 고개를 돌아보자, 시험장에서는 커다란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 청년은 역시 언제나 내 상상을 뛰어넘어준다. 오성화는 입가를 떨며 짜릿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할 셈인가? 정면 승부를."
그곳에는 전승민의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지수가 있었다.
***
전승민의 행진은 멀리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저렇게 폭죽 터지는 소리를 펑펑 내면서 다가올 만한 인간은 이 시험장 안에 수험번호 2번인 그 녀석밖에 없었다. 무력화가 풀렸나 보지. 벌써 10분이 넘게 지났나? 목검으로 진흙 인형을 착실하게 하나씩 부수고 있던 지수가 쭉 기지개를 폈다. 큰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자 얼마 안 있어 전승민이 도착했다.
"……그쪽에서 나온 건가? 배짱도 좋지."
"아니, 포인트 또 잔뜩 모아오신 것 같길래. 뺏고 싶어서요."
지수가 손가락으로 전승민이 걸친 흉갑의 숫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대로 전승민은 지나오는 길에 만난 다른 응시자들을 남김없이 박살내며 또 다시 상당한 포인트를 쌓고 있었다. 진짜 편리하시네요. 포인트 배달 상잡니까? 지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도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순수한 감상이었다.
물론 들은 쪽의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빡 솟아올랐다.
"쥐새끼처럼 도망치던 주제에 입만 살았군."
"그건 오해신데."
애초에 지수는 전승민을 피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상대가 이미 무력화됐으니 자리를 떠난 것일 뿐, 오히려 전승민과는 제대로 싸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똑같이 마법을 사용하는 상대니까, 한 번쯤은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 생각해 보면 지수는 지금까지 다른 마법사와 대전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흥. 오해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전승민이 팔을 뻗으며 마법진을 형성시켰다. 지금까지처럼 힘에 가감을 걸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이 상대에게는 전력을 써도 된다고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화(火) 속성의 원소 마법. 마법진에서 터져 나온 불길이 지수를 덮쳤다. 확실히 지수의 마법보다 좀 더 강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지수는 그 화염을 앞에 두고도 압도되는 일 없이,
"보이네."
자신조차 조금 놀랐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지수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린 세 겹의 문자는 '물의 룬'. 위력 면에서는 다소 밀렸지만 물은 불에게 극상성의 속성이었다. 전승민이 발동시킨 화염 마법을 집어삼켜 상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이거 재미 있게 됐다는 듯 전승민이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공방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위쪽의 관전실,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오성화가 선글라스를 벗고서 말했다.
"와, 지수가 마법도 쓸 줄 알았다고?"
오성화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마법사와 연금술사의 멀티 클래스? 그게 아니면 그 두 클래스의 특징을 겸비하고 있는 또다른 클래스인가. 어느 쪽이든 규격외의 재능이라는 건 확실했다. 동맹을 제시한 건 역시 옳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혜성은 오성화 이상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무슨. 와, 저건 마법도 쓸 줄 아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김혜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마법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 지수와 전승민이 계속 해서 동시에 마법을 발동하며 상쇄하는 길항상태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마법사인 김혜성에겐 소름이 돋다 못해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대체 저 놈 정체가 뭐야. 저건 이미 재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또라이 아니야…!?'
콰앙! 다시 한 번 두 개의 주문이 작렬해 서로 상쇄됐다.
'불이네.'
지수는 전승민이 어떤 주문의 마법진을 그리는 순간, 주문을 발동하기도 전에 뭘 쓰려는지 간파하고서 정확히 카운터 속성을 가진 주문을 넣고 있었다. 저쪽이 가위를 내면 이쪽은 바위, 바위를 내면 이쪽은 보. 그런 식의 묘기를 연이은 격돌에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성공시키고 있다. 결코 주문이 발동되는 걸 보고서 대응하는 게 아니었다.
발동되기 전에 이미 읽고 있다.
눈치싸움, 수읽기, 심리전. 그런 식으로 표현되곤 하는 물밑의 싸움을, 지수는 완전히 압도해내고 있었다. 마치 상대의 머릿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독심술이라도 가진 것처럼. 머리를 잘 굴리는 것뿐만 아니라, 싸움 자체에 웬만큼 도가 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관전석의 김혜성은 잘근잘근 손톱을 씹으며 생각했다.
'어디 카지노에서 도박사라도 하다가 온 건가? 전투에 대한 천부적인 직감? 아니면 저거 설마 회귀 같은 거라도 한 거 아니야? 그래, 회귀야. 회귀자야 저거. 마법사로 죽을 만큼 구르다가 회귀한 거야.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나름 냉정하다고 자부하는 김혜성이 그런 망상을 진지하게 떠올릴 정도로, 지수의 수읽기에서는 백전연마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건 전승민이었다. 분명 주문의 위력은 이쪽이 더 셀 텐데, 불에는 물. 물에는 흙. 흙에는 바람. 바람에는 불.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정확한 카운터를 맞아 상쇄당하는 감각. 그건 이미 공포였다. 놈이 원하는 대로 완전히 놀아나고 있다. 설마 정말 이쪽 생각이 들리는 초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결국 못 참은 전승민이 지수에게 일갈했다.
"이 자식…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거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데요."
"그냥 보여? 깔보는 거냐! 너 같은 건 어차피 내 손바닥 위라고?"
지수의 말이 도발처럼 들렸는지, 전승민은 고함을 내뱉으며 다음 마법을 발동했다. 화염 주문? 아니, 여기서는 직전에 생각을 바꿔 돌풍으로 간다! 전승민의 손바닥 앞에 펼쳐진 마법진이 빛을 내며 마력을 빨아들였고, 그걸 본 지수는 또다시 손가락으로 슥슥 허공에 룬을 그렸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발동된 두 주문이 공중에서 격돌했다.
전승민의 주문은 바람, 그걸 상대하는 지수의 룬은 불꽃. 내뻗어진 돌풍의 창은 화염의 룬의 위력을 역으로 키워내며 상쇄당했고, 이번 공격 또한 똑같이 무위로 돌아갔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는....."
또다시 읽혔다. 전승민은 패배감에 이를 악물었고, 지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그랬다.
애초에 수읽기니 심리전이니 할 필요도 없이, 지수의 눈에는 상대방이 내려놓은 패가 그냥 다 보이고 있었다. 주문이 발동되기 전 마법진에 그려져 있는 마도 문자. 그곳에는 지금 발동되고 있는 주문의 위계와 속성이 그대로 적혀있었고, 지수는 그냥 그것을 읽고서 카운터칠 수 있는 속성의 룬을 발동시켜 대응하면 될 뿐이었다.
"아니 다 보인다니까…."
전의를 잃어버린 전승민에게, 지수는 미안하다는 듯 그렇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