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외 등급 해석사-10화 (10/176)

10화.  아니 다 보인다니까 (3)

"실기 커리큘럼은 안 받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저희 학원 커리 진짜 좋은데....1주 완성 끝내기 과정도 있는데…. 사각의 뿔테안경을 낀 중년 남자가 자료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강남의 대형 헌터 양성학원에서 근무하는 강사로, 헌터 협회의 필기시험 출제방향이나 동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지수는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필기 쪽만 도와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도 그럴 게 지수의 능력은 대단히 특이했다. 학원의 커리큘럼을 따른다고 해서 스스로 훈련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단련시켜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실기는 말 그대로 헌터로서

의 전투능력을 평가하는 것. 그러니까 꼼수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부딪혀보고 싶었다.

좋습니다. 괜한 참견은 않겠다는 듯이 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불식 길드의 오성화가 직접 지도를 부탁한 학생이다. 아마 불식이 꽁꽁 숨겨놓고 키우고 있는 비밀병기쯤 되는 거겠지. 그런 거라면 실기 시험을 대비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코웃음이 쳐질 만도 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얼굴인데….'

지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강사를 바라보았다. 강사는 이거 대단한 거물을 만나게 됐다는 듯 식은 땀을 흘리며 씨익 은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강사가 사정 다 알아요 하고 엄지를 척 치켜세우는 걸 보며 지수의 표정은 더욱 미묘해졌다.

큼큼 헛기침을 한 강사가 헌터 시험의 설명을 시작했다.

"필기라고는 하지만 사실 시험지를 나눠주고 문제를 풀게 하는 건 아닙니다. 1차 시험에서는 전투 능력이 아니라 지식을 평가하기에 필기라 부르는 것일 뿐이죠. 그렇게 1차 시험에서 걸러지고 남은 헌터들만이 2차인 실기를 보게 되고요."

거기까지 말한 강사가 리모콘을 눌러 빔 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자료 화면은 던전 안처럼 보이는 영상이었다. 정확히는 던전의 환경을 재현한 것 같은 3D 그래픽이었다. 영상이 시작되자 자막으로 안내문 비슷한 것이 표시됐다.

- 당신은 체력 포션 한 병, 해독제 한 병을 가진 검사 클래스의 F랭크 헌터이다. 당신은 낭떠러지 트랩이 발동되어 궁수인 파티원과 일시적으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 문제 :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수행하시오. 각 선택의 제한시간은 3분이다.

<1. 소리를 내어 동료를 부른다>

<2. 주변을 경계하며 캠프를 구축한다>

<3.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끊임없이 선택지를 고르게 하면서, 주어진 단서를 놓치지 않고 최선의 판단을 했는지로 점수를 매기는 겁니다."

던전 안의 모든 요소들은 무언가의 정보를 내포하고 있는 단서였다. 몬스터의 특정 행동이나 지나 간 자리에 남은 흔적들. 주의 깊게 관찰하면 사람도 그들의 신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끈질긴 탐구와 지식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리고 그러한 단서들을 읽어내는 능력은 파티의 생존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예 레인저라고 해서 던전 안에서 주변 지형 정찰을 특기로 하는 직업군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영상을 본 지수가 한줄평을 말했다.

"무슨 방탈출 게임 같네요."

"네. 이 방식이 제일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와서요. 운전 면허 딸 때 시험관 동석으로 도로 주행 시험을 보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겁니다. 시험관들이 응시자 한 명 한 명을 데리고 직접 던전에 들어가보는 건 역시 무리가 있으니."

확실히 그렇기야 했다. 인력 문제부터 해서 안전 문제까지, 응시자들이 직접 던전에 들어가 시험을 치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던전들은 하나같이 구조가 다 달랐다. 다시 말해 일관된 기준으로 응시자들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

강사가 자신 있게 뿔테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감 잡으실 수 있도록 일단 제가 한 번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유형을 푸시다 보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패턴이 워낙 많아서 만점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클리어가 아니라 생환만 노려도 필기 합격 커트라인은 걸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강사는 하나씩 선택지를 고르며 시뮬레이션을 진행해나가기 시작했다. 지수는 강사의 옆에 앉아서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강사가 한 번씩 선택지를 고를 때마다, 지수에게 판단의 이유를 설명해주며 강의를 해주었다.

"아, 꼬리전갈의 흙그림 신호입니다. 저기 바닥에 보면 오감문자 비슷한 모양으로 파여있는 부분이 있죠? 이거 꼭 기억해야 하는 포인트입니다. 매 시험마다 무조건 나와요. 그만큼 꼬리전갈은 던전에서의 출현률이 높거든요. 이건 꼬리전갈이 동료들에게 수원(水原)의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네요."

강사는 단숨에 자료를 휘리릭 넘겨 정확한 페이지를 펼쳐주었다. 그곳에는 연구자들이 알아낸 꼬리전갈의 흙그림의 신호 패턴들이 전부 쓰여있었다. 확실히 화면에는 '물가가 있는 곳’ 패턴과 비슷 한 모양으로 바닥의 흙이 파내져 있었다.

시뮬레이션을 끝내고 강사가 얻은 점수는 91점 이었다.

보통 1차 시험 커트라인이 60점 대 초반이고, 각 기수의 최고 득점자가 평균 80점 정도를 기록하고 있으니 역시 거대 헌터학원의 필기시험 전문강사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은 되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엔 한 번 지수 씨가 해보시죠."

물론 지수에게는 아직 몬스터들의 신호나 던전 안의 생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처음부터 커트라인 이상의 점수가 나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한 번 시켜보는 것만으로 사고력이나 추리력, 신중함 등의 능력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강사는 그걸 토대로 해서 강의 전략을 짤 생각이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학생이랑, 열을 가르쳐야 하나를 아는 학생은 당연히 교수법이 달라 질 수밖에 없으니까.'

다시 말해 일종의 학생의 소질 테스트였다 지수가 보여주는 학습능력에 따라 헌터 라이센스 시험까지 일주일 간의 벼락치기가 지옥의 일정이 될 수도 있고, 김이 샐 정도로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팔짱을 낀 강사는 뒤에 서서 지수가 시뮬레이션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수가 시작한 지 얼마 안 있어.

"......무슨?"

지켜보는 강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오성화는 알고 지내던 김 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강사도 한 분야의 베테랑이니 알아서 잘 가르칠 텐데 괜한 참견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이 책임지고 소개해준 인물이다. 현재 경과가 대충 어떤가 들어보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통화는 얼마 안 있어 연결되었다.

<네. 김승범입니다. 전화 받았습니다.>

"아, 김 선생님. 오성화인데요. 별 건 아니고 지수 씨가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나 해서 전화 드려 봤어요."

오성화는 하하하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김승범 강사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원래라면 아유 그거야 당연히… 하면서 신명나게 맞장구를 쳐줄 양반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성화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기요, 김 선생님? 여보세요?"

<지수 군 말씀하시는 거라면..…관뒀습니다.>

"네? 방금 뭐라고."

<더 이상 그 청년 안 가르치기로 했단 말입니다. >

몇 번 눈을 끔뻑이며 강사의 말을 곱씹던 오성화는, 표정을 싹 바꾼 채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걸 왜 당신 마음대로."

이건 정말로 무례한 일이었다. 자기 이름을 대고 소개해준 강사가 마음대로 학생을 내팽개쳤다? 그건 돌고 돌아 오성화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 정색한 오성화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화나면 화날수록 조용하고 차분해지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강사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닌 듯 싶었다.

<이봐요, 오성화 씨. 혹시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

"……뭐라고요?"

<그런 거라면 정말 짓궂으십니다. 그 청년은 제가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 되죠.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저한테 가르칠 자격이 없는 거지요.>

잠깐 말을 쉬고 크게 한숨을 쉰 김 강사가 말을 이었다.

<……열 일곱 번 했습니다.>

"네? 뭘 열 일곱 번……"

<모의시험을 그 자리에서 열 일곱 번 연속으로 치르게 했어요. 저라도 90점 이상을 확실히 따지는 못하는 그 시험이요. 그리고 그 청년이 몇 점을 딴지 아십니까?>

김 강사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사로서 자괴감이 느껴지더군요. 젊을 때부터 모든 커리어를 다 바쳐서 공부한 분야를 저토록 가볍게 짓밟히니 말입니다. 오히려 후련해질 정도였습니다. 이제 알려주시죠. 대체 그 청년은 정체가 뭡니까. 불식 길드가 만든 인조인간이라도 되는 겁니까?

강사가 말했다.

<평균 99.52점, 합계 1692점. 그게 지수 군이 열 일곱 번의 모의시험에서 따낸 총점수입니다.>

오성화가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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