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니 다 보인다니까(1)
지수는 요즈음 인터넷에 맛들려 있었다. '고깔모자의 찻집'. 통칭 고깔.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인증 해야 가입할 수 있는 마법사들만의 익명제 카페였다.
지수는 그곳에서 '척척박사'라는 닉네임을 쓰며 마법에 대한 이런저런 강의글들을 올리고 있었다. 마법사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그 강의글들은 말 그대로 구원이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른 채 아는 체를 한다고 비방하던 이들도 지금은 지수의 글이 올라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지수의 머릿속엔 마법에 대한 수백 가지의 요령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주문에 마력을 흘려넣을 때, 몇 가지 패턴만 암기해두면 계산할 필요 없이 곧바로 완성시킬 수 있는 법이라든가. 큐브 숙련자 들이 외우는 공식과도 비슷했다.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커다란 차이를 낳고, 현재 대부분의 마법사 각성자들은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다.
카페 안에서는 허구한 날 척척박사의 정체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분명히 '흑마녀'일 것이다! 아니다, 말하는 스타일이 오히려 '마에스트로'와 비슷하다! 물론 그들이 몇날 며칠을 토론해 봐야 지수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지수의 이름은 수십 명쯤 되는 '척척박사의 정체로 의심되는 용의자 목록'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카페 안에 지수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지수는 아직 헌터 라이센스도 못 딴 무명이었으니까.
- 이 분 진짜 개쩔지 않냐? 어디 아카데미 강사로만 들어가도 몇 억은 그냥 땡길 텐데. 와, 저 귀한 팁들을 돈도 안 받고 그냥 인터넷에 쌩으로 풀어버리네.
- 유명세 타려고 하는 건가 싶었더니 신상도 불명임 ㅅㅂ ㅋㅋ
- 아아……척척박사 님이야말로 마법사 업계의 미래를 진심으로 근심하는 진정한 지식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체현자십니다…… 평생 따르겠습니다!
- 척-멘.
자신이 배우고 해석한 걸 대단하다며 칭찬해주니 기쁘기도 했지만, 과시욕 때문에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지식을 풀면 풀수록 지수에게는 손해였다. 아무리 최대한 사소하고 별 거 아닌 팁들 위주로 적고 있어도, 어찌 됐든 경쟁자들을 키우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제목: 고깔의 식구들을 위한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
제 강의를 듣고 싶은 분은 던전에서 발견한 책을 들고서 인증샷을 찍어주세요. 추첨을 통해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께는 직접 간단한 질의응답과 특별 강의를 해드립니다! 다른 책으로 인증샷을 많이 찍을수록 당첨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
바로 이것이었다. 던전의 고서를 사진으로 확인해도 해석 스킬이 발동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이 끝난 뒤였다. 엘리트 직종인 마법사라면 다들 던전은 죽어라 돌고 있을 테니 책도 많이 발견하겠지. 그들은 '척척박사’의 말이라면 당장 친구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라 해도 망설임 없이 때릴 놈들이었다. 인증샷은 수도 없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귀 이상 등급의 책들이 발견되는 순간 재빨리 낚아챈다.
"......역시 천재."
지수는 썩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자신의 악마적인 책략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런 책 모으기 운동에만 정신팔려서 수행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지수는 의자에 앉아 명상을 시작했다. 일주일 넘게 마도 명상을 반복하자 이제 굳이 가부좌를 틀지 않아도 편한 자세에서 마나 호흡이 가능했다. 명상에 더 익숙해질수록 점점 걸으면서도, 달리면서도 마나와 교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달리기나 수영을 하면 할 수록 심폐지구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마나 호흡은 마력을 회복시켜줌과 동시에 마력의 절대량을 조금씩 늘려주었다. 그걸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었다. 이론상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면 싸우는 와중에도 마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마도 명상을 만들어낸 예바우드는 말 그대로 천재였다.
룬마술 또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점은 지수에게 같은 룬 문자의 겹쳐쓰기, 오버라이트(overwrite)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발동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룬의 특성을 이용한 활용법. 이 방법을 사용하면 룬 문자 하나를 시간 안에 몇 번이고 중첩시켜 위력이 낮다는 단점을 커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마도 명상과 룬마술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해주의 비술 : (스탯 달성치 부족으로 현재 사용 불가능)]
전설 급의 마법서를 해석하고서 얻은 주문. 지수는 가장 알짜배기일 터일 이 주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스킬이 잠겨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지수는 모든 스킬들의 원리를 해석해서 이해하고 있기에, 스킬이 잠겨있다고 해도 그냥 직접 발동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해주의 비술의 구조는 너무나도 복잡했다. 자력으로 발동해보려고 해도, 대체 어딜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비술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이해는 지수의 머릿속에 확실히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 주문은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서 대충이나마 흉내낼 수 있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방법과 계산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 없이 암산으로 총탄의 궤도를 계산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두 손을 들 것이다.
거의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해주의 비술은 웬만해 선 손을 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복잡했다. 물론 쌩으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스킬로서
발동한다면, 지수도 손쉽게 해주의 비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스템의 보정을 받고 사용해가는 와중에서 감을 잡는다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테고.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실전을 쌓아 마법사로서의 역량을 더 높이든가, 경험치를 쌓아 스탯을 높이고 스킬을 혜금하든가.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게 아니라 일맥상통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즉, 시련을 딛고 성장하라. 집구석에 박혀서 백날 연습이나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헌터가 되어 몬스터와의 실전을 겪어보라고.
그러한 초조함은 원래부터 지수의 안쪽에 존재하고 있었다. 해주의 비술은 그저 계기일 뿐이었다. 마치 축구공을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마법을 배운 지수는 이걸 당장에라도 실전에서 직접 써보고 싶다고 근질근질해 하고 있었다.
‘던전에 들어가려면, 헌터 라이센스를 따야 했었지.'
라이센스 시험은 분기마다 한 번씩 치러졌고, 가장 가까운 시험은 운 좋게도 바로 다음 주에 있었다. 지수는 당장에라도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라이센스 시험에는 실기 외에 필기 또한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서점에 가서 문제집 같은 거라도 사야 하나? 지수는 쪽집게 과외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인터넷 찾아보면 과외 같은 거 없을까…. 그렇게 머리를 긁적이며 컴퓨터를 뒤져보고 있자, 등 뒤의 텔레비전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 불식 1팀이 바로 어제, A급 던전의 공략을 완료했는데요. 던전 공략 기록을 살펴본 관계자들은 정말이지 최악의 던전이라며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이런 던전을 첫 번째 시도로 격파 하다니 정말로 빈틈이 없는 팀이라며 불식 1팀에게 혀를 내둘렀습니다. 외국의 길드에서도 이 믿을 수 없는 활약에는 놀란 모양입니다.
"오. 성공했나 보네."
하기야 그렇게 귀띔까지 해줬는데 실패하거나 크게 다쳐서 돌아왔다면 지수 쪽이 답답해서 죽어 버렸을 것이다. 지수는 텔레비전을 보며 짝짝짝, 가볍게 박수를 쳐주었다. 딱히 불식 1팀의 활약에 보내는 것은 아니고 선행을 베푼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지수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충분히 이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지수의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웽웽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확인해 보니 화면에 표시된 건 오성화의 번호였다.
"이 인간 또 길드 들어와달라고 징징대는 거 아니야?"
이전까지는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있었지만, 한 번 목숨을 구해줬고 하니 이제 이쪽에서도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길드 같은 데 절대 안 들어갈 거니까 미련 좀 버리라고 이 참에 확실히 못을 박아둬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지수가 전화를 받았다.
"네. 이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