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냥 하는 말인데요 (2)
역 앞의 카페에서 오성화가 내민 건 한 장의 계약서 였다.
"이게 뭡니까?"
지수가 눈을 끔뻑이며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티비에도 나오는 유명인사가 차 한 잔 마실 수 있겠냐고 하길래 사인이나 받아볼까 싶어 따라왔는데, 오히려 이쪽이 사인을 하게 될 판이었다. 지수의 물음에 오성화는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였다.
"본사에서는 귀하의 능력에 큰 매력을 느껴 긍정적인 연을 맺을 수 있도록 이렇게 제안을 드리게 된...…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귀찮은 서론은 서로 피곤하기만 하니 생략하고. 지수 씨. 연금술사 맞죠?"
"아직 조금밖에 할 줄 모르는데."
"빙고. 이게 몇 달 만에 발견한 연금술사인지! 지금 지수 씨 붕대로 둘둘 말아서 납치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길드에 전속 연금술사 한 명만 있어도 필요한 포션이 제때 없어서 손가락 쪽쪽 빨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다시 말해 길드에 영입하고 싶다. 확실히 인사팀의 전문 스카우터가 아니고 현장에서 직접 뛰는 헌터라 그런가 어렵게 돌려말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수는 고평가를 받은 게 기쁘기보다는 그저 당황스러웠다.
"어. 잘 모르겠네요. 그냥 용돈 벌이나 할 재주 같은데."
"하하, 원래 그렇게 겸손하세요? 아니면 본심을 숨기고 이쪽을 떠보는 건가? 그런 거면 정말 방심을 못하겠는데요."
숨기고 있는 꿍꿍이를 간파해보겠다는 듯, 오성화의 눈동자가 지수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물론
그렇게 백날 쳐다보고 있어봤자 지수의 속내를 알아 차릴 수는 없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본심을 내뱉은 것 뿐이었으니까. 지수가 서류를 살펴보았다.
계약서에는 불식 길드에 입사할 시 지수가 받게 될 대우들이 적혀있었다. 길드 차원에서의 전폭적인 성장 지원. 웬만한 중견 헌터 수준에 해당하는 기본급. 스탯 향상 악세서리 무료 대여. 직속 스태프진 구성 및 길드 연구팀과의 협업. 개인 공방 임대. 희귀 등급까지의 길드 창고 재고품 자유 사용.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가 없는 수준이지.‘
오성화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맞은편에 앉은 지수를 바라보았다. 어느 길드에서도 이만한 대우를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잘난 척 같은 게 아니라 명확한 사실이었다. 사실 불식이라고 해도 이만한 조건까지는 내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오성화가 반쯤 억지를 부려 통과시킨 것이다.
그 뒷면에는 불식 길드 안에서도 오성화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있었다. 조사부서에 부탁해 명부를 조회해보자, 지수가 각성자로 등록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고작 일주일만에, 하급 비약을 하루 다섯 병씩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그것도 독학으로 레시피를 배합해서.
'......의심할 여지 없는 괴물이다.’
애초에 각성자로서의 재능 자체가 규격외 수준 이거나, 아니면 스킬의 최대한도를 끌어낼 만큼의 이해도와 응용력을 지녔거나. 어느 쪽이든 괴물이었다. 오성화는 확신했다. 눈앞의 청년은 언젠가 ‘흑마녀' 이상의 연금술사로 성장할 소질이 있다고.
이 자리에 오성화가 직접 온 것 또한 그런 확신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 앉아있어야 할 건 불식 길드의 인사팀장이었다. 하지만 오성화는 굳이 지수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택했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 친구가 다른 팀에 넘어가는 꼴은 죽어도 못 봐.'
물론 오성화가 지수의 연금술 능력이 그저 곁다리일 뿐이고, 사실은 이미 마법의 소양까지 갖추고 있단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도 지수가 탐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돈을 트럭 단위로 벌어들이는 부자답지 않게, 오성화는 필요 이상으로 사치를 부리지 않고 소탈한 편이었다. 하지만 재능 있는 인재에 관해서 만큼은 달랐다. 자신과 함께할 동료를 선택할 때, 오성화는 언제나 누구보다 까다로운 욕심쟁이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인정한 재능에게는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돈을 트럭으로 얹어주거나, 대우를 최고급으로 해주거나. 그런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극정성을 다해 신경써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료로서 리스펙트했다.
여기 이 자리에 앉아있기 위해 그가 캔슬한 스케줄들의 기회비용만 해도 몇천 만원이 훌쩍 넘어 갔다. 하지만 오성화는 그딴 것이 아깝다고는 눈꼽 만치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도로 이 재능 넘치는 친구에게 얼굴도장을 박고 우호를 다질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오성화는 그런 방식으로 지금의 불식 1팀을 만들었다. 오성화가 직접 뛰어다니며 인연을 맺고 영입한 소수정예의 헌터들. 1팀의 실력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유대감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진짜 동료였다
그리고 그 팀에 어떻게 해서든 눈앞의 연금술사를 영입하고 싶다. 그것이 오성화의 본심이었다. 하지만 계약서를 살펴본 지수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할 뿐이었다. 서류를 옆으로 밀어낸 지수가 포크로 티라미수 케이크를 끼적이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그냥 비약 팔러 온 거라서."
"갑작스러운 얘기인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조건은 흔치 않을 거예요. 대답은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아니요. 그냥 지금 대답 드릴게요. 제안은 감사한데 제가 집단생활이나 어디 묶이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서."
지수는 여지조차 주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다. 생각해보고 연락드린다느니 하며 괜히 기대하게 만들지 말고 예스인지 노인지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주는 게 지수가 생각하는 예의였다. 무명의 신인이 불식이 보낸 러브콜을 거절했다. 하지만 오성화는 그것에 불쾌한 내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잘 알겠습니다. 지수 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군요. 나는 아직 불식이 정말로 최고의 길드인지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고. 나를 갖고 싶으면 어디 한 번 증명해보라고."
"...…네?"
"이것 참. 아직 젊은데도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네요."
지수는 괴랄한 표정을 짓고 오성화를 쳐다보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짝이었다. 그냥 길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조건 싫다니까 이 인간은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오성화가 스푼으로 커피잔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뭐, 어차피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일 뿐 지수 씨는 불식에 오게 될 겁니다. 지수 씨 정도 되는 재능을 품을 수 있는 길드는 한국에 저희 불식 밖에 없을 테니까. 다른 곳에 가봐야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 때문에 답답함만 느끼게 되겠죠."
자신의 수준에 따라오지 못하는 주변에 대한 답답함.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성화 스스로가 뼈저리게 겪어봤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다. 이 청년은 언젠가 이쪽으로 오게 될 거라고. 자신은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는 것처럼, 인내를 가지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으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전 참을성이 없어서, 지금 당장 곁에 두지 않고는 못 참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증명해드리죠. 불식이야말로 지수 씨에게 가장 걸맞는 길드라는 걸."
자리에서 일어난 성화는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서 말했다.
"이번 주. 불식에서 A급 던전을 공략하러 갑니다. 커다란 사건이니 아마 방송도 크게 타겠죠. 그러니까 지수 씨 눈으로 지켜보세요. 저희가 최고라는 걸 납득시켜드릴 테니."
오성화는 그렇게 말하고 카페에서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군. 마치 지나가는 자리를 휩쓸어버리는 폭풍 같은 사람이었다. 마음에 드냐 안 드냐를 따지자면 호감이 가는 편이었지만, 저런 사람을 직장동료로 뒀다간 피곤해 죽을 것이다.
아마 이쪽에서 먼저 저 사람한테 연락할 일은 없겠지. 어차피 길드 같은 데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며 지수는 오성화의 명함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었다.
하지만, 지수 쪽에서 연락해야 할 상황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 S급의 한 발짝 앞에 서있다고 하는 '폭검' 오성화와 그가 이끄는 불식 길드의 주력, 헌터 1팀! 그들이 지금 A급으로 확인된 거대 던전의 게이트 앞에 집결해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불식 길드의 던전 공략 준비 현장을 중계했다. 화면에는 오성화와 그 동료들이 게이트 앞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들 뒤에 세워져있는 던전의 게이트 쪽이었다.
- 불식의 헌터 1팀은 개개인의 실력이 워낙 출중하고 팀워크 또한 뛰어나기에, 웬만큼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첫 시도로 던전 공략에 성공할 거라고 보고 있는데요. 이번 공략에 성공한다면 오성화 씨는 최연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합니다!
- 헌터 1팀의 힐러 백민규는 지속적으로 파티원들을 회복시켜주는 스킬과 위급시 빠르게 체력을 보충해주는 스킬을 둘 다 가지고 있어, 헌터 1팀은 회복 물약을 넣느라 포켓을 낭비할 필요 없이 최적화된 아이템 구성을... …
아나운서가 뭐라고 하는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텔레비전의 화면, 던전의 게이트 표면에 새겨져 있는 괴상한 상형문자들. 그것을 보자마자 지수의 눈앞에 멋대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던전명: 거미여왕의 늪지옥>
< 난이도 : A랭크>
<주요 출현 속성 : 어둠>
<주요 등장 패턴: 석화, 맹독, 암흑>
<특이사항: 던전 안에 깔린 피안개가 회복 스킬을 모두 무효화시키기에, 체력 관리는 순전히 아이템에 의존해야 함.>
"저건 또 왜 읽히냐......"
주걱으로 가마솥의 비약을 휘휘 저으며 텔레비전을 보던 지수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