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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4화 (4/176)

4화.  이게 왜 읽히냐 (3)

창문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에 눈을 떴다.

몇 시간을 잔 건지 모르겠다. 상반신을 일으키니 허리와 목이 죽을 만큼 뻐근했다. 잠들었을 때가 아침이었는데 눈을 뜬 뒤에도 아침이라는 건 스물 네 시간을 내리 잤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그만큼 머리를 혹사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수는 열병에 빠져 책을 탐독한 지난밤을 떠올렸다. 다시 떠올려봐도 아찔하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방바닥에 쌓여있던 고서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져있었지만 지난밤이 꿈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책들은 지금도 지수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옆에 띄워져있는 상태창이 보였다. 주르륵 이어져있는 온갖 알림들. 귀찮은 알림들을 다 치우고 보니, 하룻밤만에 상태창의 내용이 확 달라져 있었다.

[ 이름] 이지수

[ 클래스] 해석사

[ 스 탯]

근력 : 10

손재주 : 12 (+3%)

인내 : 14 (+3%)

지력 : 53 (+11%)

[ 추가 적용 효과]

마법 계열 스킬 효율 + 17.9%

주문 캐스팅 속도 + 12%

[ 보유 스킬]

<해석>, <마법의 이해>, <연금술의 소양>, <마력 구조물 생성>, <마도 명상>, <로즈레이드 룬마술>, <해주의 비술>

"......뭐야 이거. 53?"

상태창이 끝장나게 화려해졌다. 예전에는 해석스킬 하나 달랑 쓰여있는 초라한 구성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미칠 듯이 올라가있는 지력 수치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53이라는 숫자가 나오지? 추가 보정까지 포함하면 거의 60이었다.

‘이거 그냥 마법사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마법사는 전투직 중에서 최고라고 평가받는 클래스였다. 그야 주문을 발동할 때까지 지켜주기만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화력을 빵빵 날려주니까. 하지만 각성하는 이들이 워낙 적은 탓에 어디서나 품귀현상이 발생하는 직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법사로 각성한 이들 중에서도 처음부터 지력 스탯이 20을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 지수의 지력 스탯은 60을 찍기 직전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수에게는 마법사 클래스의 고유 스킬인 '마나 교감'이 없어서 마법을 쓸 마력 자체를 얻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그 또한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다.

"예바우드 식 마도 명상."

가부좌를 튼 지수의 주변에서 푸른 색의 기운이 일렁였다. 사실 지수는 다른 마법사들처럼 스킬에 의지해 마나를 쌓을 필요가 없었다. 굳이 스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어떨게 해야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지 이론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지수는 평범한 마법사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지금 지수가 하고 있는 건 단순한 마나 교감이 아니라, 비전서를 통해 익힌 '예바우드 식 마도 명상'이었다.

대마법사 예바우드가 마법의 극의에 달한 황혼기에 고안한, 가장 효율적으로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명상 방식. 당연히 막 마법사가 된 각성자들이 지닌 초보적인 교감 스킬과는 마나를 쌓고 회복시키는 효율 자체가 판이하게 달랐다.

마법서를 읽고 해석했던 내용을 되짚는다. 기초 이론과 핵심 원리. 명상법이 정립되기까지 거쳐온 수많은 시행착오들. 번득이는 발상들이 지수의 머릿속에서 재현됐다. 분명히 여기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지수가 천천히 마나와 교감했다. 공중을 떠돌던 마나는 지수의 체내로 들어와 쌓이기 시작했다.

사실 마법서를 읽는 것으로 '마도 명상'은 지수의 스킬이 되었기 때문에 직접 명상을 할 필요는 없었다. 스킬을 사용하기만 해도 자동으로 편리하게 명상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지수는 굳이 스스로의 힘으로 명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딱히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배운 것은 직접 써먹어보고 싶다. 그게 지수의 본심이었다.

이론으로서 이해한 것을 실제로 실천해보는 것. 그러다 실수가 생기고, 생각대로 안 돼 답답해하고, 뭐가 잘못된 건지 곰곰이 이론을 되짚어보고, 틀린 점을 찾아내 고친다. 그렇게 배운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지수는 그 모든 일을 어쩔 줄 모르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격투 게임의 콤보를 연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엄청난 연타를 넣을 수가 있겠다 하고 기술의 연계를 궁리하는 것도 재미지만, 그렇게 연구한 콤보 커맨드를 언제든지 직접 쓸 수 있도록 손에 익게 반복해 연습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마법의 이해'가 5레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견실함은 더 깊은 이해와 능숙함으로 돌아왔다. 지수가 스스로 애써가며 마나와 교감하고 제어한 경험은, 단순히 스킬 레벨을 높일뿐만 아니라 지수 체내에 쌓인 마나를 좀 더 자유자재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다 해도 문외한이었던 지수가 이렇게 빨리 마나와의 교감에 숙달한 것은 이상했다. 그것을 가능케해준 건 지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마법서들이었다. 그 책들 각각에 쓰여져있는 수많은 마법사들의 요령들. 그 모든 팁들을 이해하고 숙지한 지수는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길을 택하고 있었다.

이른바 지식의 상호작용이다. 해석과 연구는 쌓이면 쌓일수록 서로를 보완하며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준다. 마나와의 교감에 성공해 슬슬 체내에 마력이 쌓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지수의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으며 글자를 써내려갔다.

"휴식의 룬. 집중의 룬."

공중에 각인된 두 문자가 은은히 빛나며 앉아있는 지수의 몸을 감쌌다. 로즈레이드 룬마술은 그 자체로 강력한 위력을 내지는 못하지만, 사용자에게 각종 보조적인 효과를 제공해주는 것과 발동에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집중의 룬은 지수의 의식을 한층 명료하게, 휴식의 룬은 지수의 몸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소소하다면 소소한 효과지만 두 글자의 룬은 확실하게 명상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룬마술은 마력이 거의 들지 않았다. 마법사 전용의 공짜 버프와 보조기술이라고 해도 좋았다.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는 것은 지수의 특기였다. 두 가지 룬 문자에 감싸인 지수는 몇 시간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도 명상을 계속했다. 마나의 감각에 집중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 보니 정신 자체가 맑아지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 명상법의 가장 대단한 점은 자유분방함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집중해야 하지만, 숙달되면 숙달될수록 점점 편하게 앉아서, 천천히 걸으면서, 빠르게 뛰면서, 싸우면서 마나를 회복할 수 있게 되어갈 것이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몸 안에 마력이 넘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으로 지수도 명실상부 마법사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남은 한 가지는 연금술이 었다.

[연금술의 소양 (레벨 2)]

독성을 가진 재료를 해독해 약재로 사용하거나, 레시피를 배합해 포션 등의 소비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시약의 조합 난이도에 따라 실패/성공/대성공 판정이 존재한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로 인해 마법 재료를 다룰 수 있다.

말 그대로 생산계 스킬. 연금술이라고 해봤자 아직 레벨이 낮았기에 대단한 시약은 만들지 못했다. 다룰 수 있는 것도 하급 재료 뿐이고, 시간을 들여 완성해봐야 근력이나 지력을 잠시 동안 조금 올려 주는 포션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뭐 그런 건 찾는 사람도 없을 테고."

연금술이란 미술이나 요리와 같다. ’재료'를 소모해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연습하려면 돈이 든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연금술의 소양을 높이려면 재료비가 상당히 깨질 것이다. 별 쓸모 없는 포션도 비싸게 사줄 호구를 잡지 못하는 이상,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수준까지 연금술을 단련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출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지수는 인터넷 거래 사이트를 열어 하급 비약 하나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비를 조사해보았다. 슬라임 점액. 어둠박쥐의 비늘. 고블린의 머리 털...…. 목록을 써내려가며 현재 거래가를 확인해보니, 대충 한 병을 만드는 데에 오만 원쯤 들었다.

"미친. 왜 이렇게 비싸?"

오만 원이면 신간도서가 자그마치 다섯 권이었다. 그리고 이만한 돈을 들여서 만들어내는 '하급 각성의 비약‘의 효과는 15분 동안 힘이나 지력을 6% 올려주는 게 고작이다. 게다가 다른 비약이나 포션들과 효과가 중첩되지도 않았다.

"팔아봤자 한 만 원 하나."

스마트폰을 든 지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비슷한 효과를 지닌 소모 아이템을 찾아보았고, 결과를 확인한 뒤 어안이 벙벙해져서 눈을 끔뻑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 정보: 고블린 주술사의 비약 (드롭 아이템)]

마시면 10분 동안 근력을 5% 올려줍니다.

평균 거래가 : 180,000 KRW

- 이거 드롭율 말이 안 되는데 ㄷㄷ 걍 고블린 주술사 자체가 죽어라 안 나오는데 죽인다고 무조건 떨구는 것도 아니고 세 번은 잡아야 한 번 떨굽니다. 저도 비약 좀 마음껏 빨면서 싸우고 싶은데 매물도 없고 더럽게 비싸고 아나 진짜.

┗ 야이 ㅎㅎㅎ 그래서 비약 안쓸거야?

- 그거 길드가 다 사재껴서 그런 거 ㅋㅋ 걔네 던전 공략할 때 쓰려고 품귀현상 일어나서 우리 같은 서민 헌터만 죽어난다. 비약 하나 먹고 안 먹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 걔네 비약 파밍용 작업장도 따로 돌린다던데 ㅋㅋ

┗ ㄹㅇ 임. 제가 지금 노가다하고 있어서 암

- 010-xxxx-xxxx. 고블린 주술사 비약 한 병당 십이만원에 무한 매입합니다. 마력 올려주는 비약은 십오만원에 구매합니다. 연락주세요.

┗ 미친 날먹새끼 ㅋㅋㅋㅋㅋㅋ

┗ 사재기도 양심있게 해야지 12만원은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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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어안이 벙벙해져 굳어있는 표정과 달리, 지수의 머릿속에서는 돈을 잔뜩 벌 비즈니스 계획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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