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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외 등급 해석사-2화 (2/176)

2화.  이게 왜 읽히냐(1)

"이지수 님, 등록 처리 완료되셨습니다."

데스크의 접수원이 서류봉투를 건네주었다. 지수는 각성자 등록을 위해 센터에 와있었다. 헌터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일단 각성한 이상은 센터에 신고해야 했다. 절차는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비등록자로 찍혀 감옥에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수는 봉투 안에서 인증서를 꺼내 읽어보았다.

이름:이 지수

소재지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1동

신고 연월일 : 2018년 9월 3일

위 사람은「각성자산업 진흥 및 치안유지에 관한 법률」제 14조, 같은 법 시행령 제15조제2항 및 제21조제4항에 따라 각성자 자격이 인정되었기에 이 증서를 수여합니다.

"......진짜 됐네."

얼떨결에 각성자가 되었다. 하지만 실감은 전혀 없었다.

보통 갑자기 각성하게 되면 주변에 자랑하면서 우와 진짜 대단하다! 인생 길 폈네! 헌터 하면 되겠네! 등의 축하를 받는 게 정상이었지만 지수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없었다. 각성하게 된 스킬이 워낙 괴상망측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석 : 음성 및 문자를 비롯한 의사소통 체계를 언어의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대체 이걸로 뭘 어쩌라는 말인가. 전투에 참여하기는커녕 남을 보조해주지도 못하는 스킬이었다. 외국어를 해석할 수 있다고? 무슨 몬스터랑 싸우는 옆에서 저는 영어로 된 소설을 1초만에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대단하죠? 이러고 있으라는 건가.

한숨을 쉰 지수가 접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선생님. 뭔가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각성자가 가진 스킬이라는 게 그러니까, 몬스터랑 싸우라고 있는 거 아닙니까. 뭐 검을 쓴다든가 활을 쓴다든가. 근데 싸움이랑 하나도 상관없는 해괴한 게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물론 접수원은 지수가 가진 스킬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았다. 상태창의 스테이터스는 개인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남에게 공개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접수원은 많이 받아본 질문인 것처럼,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선생님! 오히려 비전투계 스킬 쪽이 더 좋은 대우를 받아요. 생산 계열은 말할 것도 없고, 해독이나 치유 같은 보조 계열도 어느 길드에서나 데려가려고 난리죠. 헌터계의 귀족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라니까요."

"아……그렇습니까."

지수는 볼을 긁적이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걸 말한 게 아니었는데. 지수의 스킬은 보조 계열이니 생산 계열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아예 쓸모가 없었다. 뭘 어떻게 생각해봐도 던전이니 몬스터니 하는 것과는 요만큼도 상관이 없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특이하다고 하면 이레귤러들도 빼놓을 수 없죠 "

이레귤러? 처음 듣는 단어였다. 지수가 그게 뭐예요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자, 큼큼 헛기침을 한 센터의 접수원의 설명을 이어갔다.

"간단히 설명하면 스킬에 랭크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랭크가 없어요? S랭크보다 더 위인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사실 이레귤러는 워낙 수가 적어서 아직 알려진 게 거의 없어요. 이게 각성을 하게 될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정해져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원래 소질이 없는데도 각성하길 죽도록 바래서 억지로 문을 비틀어 여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이레귤러라고 부르는 거고요."

"스킬에 랭크가 없는. 이레귤러……"

지수는 상태창을 열어 힐끗 자신의 스킬을 확인 해보았다.

[해석 : 음성 및 문자를 비롯한 의사소통 체계를 언어의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해석 스킬에는 랭크가 표시되어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것에 딱히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랭크를 매기지도 못할 만큼 쓸데없는 스킬이니까 안 쓰여있는 거겠지 뭐 하고 흘러넘겼을 뿐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쩌면 설마?

"혹시 저도 이레귤러인 게…"

"아니죠 그건."

아주 단칼에 부정당했다. 아닐 거라곤 알고 있었지만 너무 확답으로 돌려주니 조금 삐졌다. 지수가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맞을 수도 있는 거지."

"딱 보면 알죠. 이레귤러 분들은 다 몬스터한테 죽을 뻔하거나 가족을 잃었거나 그런 경우시거든요. 진짜 처절하게 바래서 각성한 거라. 그래서 그 사람들은 돈 같은 것도 별로 관심 없어요. 몬스터 죽이는 것 말고는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눈에 막 귀기가 감돌고. 엄청 무서워요 하여튼."

사실 저도 한 번 밖에 본 적 없지만요. 하고 접수원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무서운 것 같았다.

확실히 그런 것이라면 납득이 갔다. 반쯤 미쳐야 각성할 수 있는 이레귤러. 그것도 그냥 뭘 죽도록 바란다고 이레귤러로 각성하는 게 아니라, 그게 몬스터나 던전에 관련된 사안이어야 하는 것이겠지. 지수는 몬스터를 죽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기는 커녕 몬스터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지수가 터벅터벅 건물을 빠져나왔다.

운 좋게 각성자가 되긴 했어도 헌터의 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스킬이 이상한 게 나와도 각성자는 클래스 보정이라는 걸 받아 신체능력이 올라간다던데, 지수가 각성한 '해석사'라는 클래스는 스탯도 하나 올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헌터가 아니라 번역가는 할 수 있겠군."

지수가 손에 들고 있는 이북 리더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화면에는 러시아어로 되어있는 문장들이 펼쳐져 있었다. 루드비히 베리야에프 작, <악마의 눈동자에 비친 세계>. 러시아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지수였지만, 해석 스킬의 효과로 소설의 문장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엇다.

지수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해석 스킬은 작품의 유려한 문체와 기괴한 감성, 섬세한 필치.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해주고 있었다. SSS급 스킬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이 소설을 이렇게 만끽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지수는 자신의 스킬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자신의 생각에도 너무 욕심이었다.

아무튼 할 일도 끝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지수는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산책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밖에서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 이왕 각성자 센터까지 온 거 뭐가 있나 구경이나 하다 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지수의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각성자 센터 건물 1층의 기념품 코너. 그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서점이었다. 지수는 대단한 애서가였다. 거기 책이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지수가 걸음을 돌릴 이유가 되었다. 지수는 망설임 없이 책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 이건......"

막상 들어가보니 그 안은 현대적인 서점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서점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있는 카페. 그게 아니면 골동품점이나 가구점 같은 분위기였다. 밝은 조명만 아니라면 타로카드 점집 같은 곳으로 착각할 만한 신비한 공기가 감돌았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에는 제목도 쓰여있지 않았다. 지수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고 있자 앞치마를 두른 점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손님. 책 보시러 오신 건가요?"

"네? 아, 뭐……"

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다. 서점에 책 보러 오지 뭐 먹을 거 먹으러 오겠습니까. 지수가 어깨를 으쓱이자, 점원은 꽂혀있던 책 한 권을 꺼내 지수에게 보여주었다.

"읽을 책을 찾으러 오신 거면 그냥 돌아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여긴 정말 말 그대로 기념품 가게 거든요. 읽히려고 꽂혀있는 책은 한 권도 없어요."

점원은 그대로 두껍고 커다란 가죽 하드커버를 한 팔로 안 듯이 떠받치더니, 남은 한쪽 손으로 촤르르르 페이지를 넘겼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페이지들 위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문자들이 쓰여져 있었다.

"던전에서 가끔씩 나오는 고서들이에요. 연구용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전혀 진척이 없어서 요즘은 인테리어용으로 많이 팔거든요. 골동품 취급이라 좀 비싸긴 해요. 크기나 디자인에 따라 다른데 하나에 10만원 씩은 하죠. 그래도 수요가 꽤 있기는 하더라고요. 카페 같은 곳에서도 사고, 중2병 걸린 애들도 소장하고 싶어하고."

호오, 지수가 감탄을 흘리며 쳐다보았다. 고풍스러운 장정으로 감싸여있는 두꺼운 장서들. 확실히 조잡하게 흉내낸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비밀의 마법서'라면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장할 것이다. 인테리어를 위한 골동품으로서의 가치 또한 있어보였다. 그런 용도로 책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

하지만 지수가 책을 좋아하는 건 어디까지나 독서가로서의 면모지 책 수집가로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읽히려고 만들어진 게 아닌 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지수가 아쉬움을 내보이며, 정말 읽을 수 없는 건지 가게의 장서 한 권을 꺼내 살펴 본 순간.

['해석' 스킬이 발동됩니다.]

<제목: 주문의 이해와 마나 감응의 요령>

<저자 : 마르스 골지 예바우드>

"이게 왜 읽히냐?"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장식용 책이 지수의 눈에 간단히 해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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