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외 등급 해석사-1화 (프롤로그) (1/176)

규격외 등급 해석사  @메론

프롤로그

"이건 말도 안 돼."

모니터 앞에 앉은 이지수는 세상의 부조리라는 것에 대해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결코 일어나게는 내버려둘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끔찍한 무력감과 설움이 지수의 어깨를 떨리게 했다.

- 답변 : 고객님께서 문의하신 소설 작품 <악마  눈동자에 비친 세계>는 이후 본사에서 번역할 예정이 없습니다.

루드비히 베리야에프는 혜성처럼 나타난 신예 작가였다.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그의 기괴한 필치(筆致)는 지수를 한낱 소설의 노예로 전락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악마적인 감성 탓에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판매량이 지옥으로 수직하강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이야기였다. 좋아서 미칠 것 같은 작가 신간이 나왔는데, 출판사가 발매를 안해 줘서 읽을 수가 없다.

"너무하잖아……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지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희망고문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다 쓰여진 신작 소설이 저기 떡하니 있는데 번역을 안 해줘서 읽을 수가 없다니! 일이 이렇게 되면 그냥 지갑을 털어서라도 개인한테 번역을 부탁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명 러시아 작가의 장편소설 한 권을 통째로 번역해주겠다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또 어떻게 사람을 찾는다 해도 그 사람이 소설을 제대로 번역해줄 거라 믿을 수나 있을까.

웬만한 실력이 아니면 저 오묘한 비유들과 기괴한 위트를 소화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 소중한 작품을 오역과 의역이 판치는 쓰레기같은 문장으로 읽게 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작가에 대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지수가 번역된 결과물을 원문과 대조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부탁이니까 제발 누가 좀!”

태어나 한 순간도 신을 믿어본 적 없는 지수였지만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순수한 염원이었다. 다른 잡생각은 요만큼도 섞이지 않은, 말 그대로 죽을 만큼 절실한 일심ㅡ ㅡ.

제 발 누 가 좀 번 역 해 줘

그리고 그 마음에 하늘이 보답했다.

[ 강력한 염원으로 능력을 각성합니다.]

[ 클래스: 해석사]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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