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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219화 (219/222)

219화

…서걱!

오러 소드가 녀석의 몸뚱이를 양단했다.

콰르르……!

두 동강 난 녀석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은 녀석의 몸뚱이마냥 그림자처럼 새카맸다.

순간 몸이 잘려도 멀쩡히 살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파스스…….

놈의 잘린 몸뚱이가 먼지가 되어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끝난 건가.”

[키힛…….]

죽어 가는 와중에도 놈은 광인마냥 킬킬댔다.

강림한 악마는 단순히 분신 같은 게 아니다.

강림한 상태에서 죽으면 아무리 악마라 해도 진짜 죽는다.

그런 상황에서 웃는다는 건, 어쩌면 놈도 죽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초월했음에도 수만 년간 고립된 차원에서 썩어 가던 악마.

그 마음 나도 겪어 봐서 안다.

나야 수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녀석은 악마가 된 이래로 줄곧 그래 왔을 테니까.

파아앗…….

엘 아지프를 처치하자 주변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마나의 벽이 흩날리며 주변 대기로 스며들었다.

“크으윽……!”

싸움에 한창인 프리아나가 침음을 흘렸다.

그간 많은 성장이 있긴 했지만, 외뿔에 최후의 봉인석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악마는 악마다.

아직 프리아나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듯했다.

“누나!”

붉은 용혈을 온몸에 두른 채 악마와 교전 중인 투린.

거기에 유르도 드래곤의 형태로 고전 중이었다.

[키히힛!]

악마 놈들은 동료 하나가 당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날뛰기 바빴다.

“후읍.”

호흡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흩어진 마나의 벽에서 새어 나온 마나가 다시금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바로 지면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콰직!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몸이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동시에 내지른 곧은 검선.

이는 교전 중이던 악마의 등짝에 적중했다.

[키히잇……!]

등짝을 꿰뚫린 녀석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파각!

연이은 검격이 나머지 한 악마의 목덜미를 훑었다.

“허억……! 허억……!”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유르와 투린.

“조금 버거워 보이길래 도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유르는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곤 굵은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남은 건 프레이야와 그녀의 등에 올라탄 악마뿐.

“그럼…….”

…쿠우웅!

말하기 무섭게, 눈보라 가득한 하늘에서 무언가 추락했다.

육중한 덩치의 블루 드래곤은, 방금 유르와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엔 얼굴이 반쯤 짓뭉개진 악마 녀석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놈……!”

과연 무투왕답달까.

공중을 마음껏 활보하는 녀석을 상대로 탈리스는 승리를 거뒀다.

콰직!

바들거리는 녀석의 머리통에 탈리스의 권격이 작렬했다.

머리통이 박살이 난 녀석은 얼마 못가 동료들을 따라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캬르르…….]

악마들이 모두 처치당했음에도 프레이야의 미간엔 여전히 권속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몸뚱이로 프레이야는 우리들을 향해 흉흉한 눈빛을 뿜어 댔다.

“프레이야…….”

탈리스는 그런 그녈 향해 눈물을 글썽였다.

녀석을 권속화한 건 악마들이 아니었다.

이 모든 개판의 시작인 주인공 녀석이었다.

놈을 쓰러뜨리지 않는 한, 프레이야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

탈리스는 조용히 고갤 숙였다.

소설에서도 본 장면이다.

비록 그가 늙고 추레해지긴 했어도 무투 랭크 8.

대륙에 몇 없는 손에 꼽는 강자다.

때문에 라크레시아의 권속이 된 프레이야도 함부로 탈리스를 죽일 순 없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탈리스는 주먹을 들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권속이 된 프레이야의 발톱에 가슴을 꿰뚫리며 죽었다.

“…미안하오. 프레이야.”

“…흠.”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소설과 달리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는지.

탈리스는 가쁘게 숨을 몰아 내쉬는 프레이야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에고 웨폰, 어스 브레이커에 오러 피스트가 맴돌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유르와 투린은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이를 지켜봤다.

차마 두 눈 뜨곤 못 보겠는지, 둘은 서로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잠깐만요.”

“…임페라 공작.”

그런 그를 제지하자 탈리스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부디 힘들게 내린 내 결심을 시험하지 말게.”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럼……?”

그가 힘든 결정을 내려 준 건 고맙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일단 주먹부터 내려놓으시죠.”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직 나단 공작의 무리들이 프란츠를 침공하려 들고 있다네! 여기서 프레이야마저 놈들에게 가세했다간……!”

“괜찮습니다.”

“뭣……?”

난 말 대신 차가운 눈밭에 손을 얹었다.

찹.

그러자 프레이야의 주위로 거대한 상자가 생겨났다.

복잡한 술식이 들어간 봉인은 아니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프레이야를 가두기엔 충분했다.

“이, 이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만… 아마 그 안에 끝날 겁니다.”

“끝나다니……?”

“…모든 게요.”

난 탈리스를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리곤 품 안에 쟁여 둔 웨이 포인트 파편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다.

디아 제니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모든 원흉.

그런 그가 지금 이 순간 어디 있을진 대충 예상이 갔다.

지금은 소설로 따지면 최후의 최종장이다.

그에 걸맞는 장소는 딱 하나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곳.

‘최후의 유물.’

카잔 황제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최후의 유물.

거기 말곤 없다.

난 생각을 마치곤 웨이 포인트 파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파아앗……!

이내 사위가 밝아져 오더니 몸이 붕 떠오르는 걸 느꼈다.

* * *

디아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 디아였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은 그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과연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뭘까.

그리고 하려는 건 뭘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낯익은 장소에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엔 이미 죽은 동료들의 시체가 서 있었다.

강령술로 미숙하게나마 되살린 존재들은 더 이상 그의 옛 동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눈을 마주치자, 디아는 배 속 깊은 곳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웁……!”

‘참아라.’

'네가 선택한 길이다.‘

내가 선택했다고? 그럼 왜 이런 선택을 한 거지?

‘그야 모든 걸 되돌리기 위해서다.’

모든 거라.

어디부터 어디까지 되돌려야 할까.

애초에 난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카잔 황제의 야욕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저 마법왕 오베론에게 인질로 잡히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그게 바로 디아 제니스다.

그런 주제에 뭣도 모르고 카잔 황제의 유산을 파괴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동고동락한 동료들마저 모두 잃고, 카잔 황제의 사념과 뒤엉켜 제대로 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

어쩌면 이게 그의 운명을 거스른 탓에 생긴 일 아니었을까.

차라리 애초부터 황제의 아들이란 운명에 몸을 맡긴 채 살았더라면, 지금처럼 혹독한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디아는 복잡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눈을 떴다.

그런 그의 앞엔 과거 한번 마주했던 해골 하나가 놓여 있었다.

텅 비어 있는 눈두덩일 가진 해골.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디아가 녀석을 마주하자,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네놈은…….]

카잔 황제의 사념이 깃들어 있는 최후의 유산.

대전쟁에 승산이 없다 판단한 그는 스스로 모든 걸 꾸몄다.

연합에 패배를 선언하는 한편, 뒤로는 연합의 개망나니 페이라를 충동질했다.

전범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을 세우는 것뿐이라고.

그리곤 그를 구금하던 감옥을 박살 냈다.

페이라는 모든 게 카잔 황제의 계략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제국의 황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를 기다리며 카잔 황제는 최후의 유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홀로 자신의 정신을 최후의 유물에 봉인시켰다.

훗날 그를 찾아올 여분의 육체를 기다리며.

[흐음.]

디아를 마주한 황제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건 그의 계산에 없었던 일이다.

모든 인과를 계산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짜던 게 그다.

지금껏 그의 계산을 빗나간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오베론 스테이라.

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계산대로 대륙은 통일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눈앞에 서 있는 남자는, 묘하게 자신과 비슷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를 눈치챈 황제는 눈앞의 사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전생의 술법인가.]

“…….”

[재밌군. 나 말고도 그런 짓을 할 놈이 있을 줄이야.]

해골만 남은 그였기에 할 순 없었지만, 아마 그의 낯가죽이 남아 있었더라면 웃고 있었을 거다.

[그렇다는 건……. 네가 바로 그 아이로군.]

그 아이.

자신의 아들임에도 마치 남처럼 내뱉은 말에 디아는 눈을 꼭 감았다.

결국 디아는 황제의 바둑돌 중 하나에 불과했다.

피를 이은 혈육이 아닌, 훗날 자신의 영혼을 담을 그릇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몰골을 하고 있지?]

“…….”

디아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황제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주변에 선 시체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개중엔 이미 죽었음에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눈에 생기가 가득한 녀석도 있었다.

디아처럼 하얀 은발의 여인.

황제는 이내 모든 걸 눈치채곤 안광이 부르르 떨렸다.

[푸흐흐… 그런 거로군.]

“…뭐가 그렇단 거지?”

마침내 입을 연 디아.

그의 목소리엔 분노와 슬픔. 거기에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나?]

“뭐……?”

[주신이란 그런 존재다. 더 큰 규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내린 제약까지 깨부수곤 개입하는 존재.]

“…….”

[그런 놈이 과연 네 부탁을 들어줄까?]

콰드득.

디아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붉은 핏방울이 파고든 손톱을 따라 흘러나왔다.

지금껏 디아가 대륙을 혼돈에 빠뜨렸던 이유.

그건 카잔 황제처럼 인간들의 금제를 풀겠단 거창한 이유가 있던 게 아니다.

그저 히테라 주신을 만나 부탁하고 싶었다.

부탁이 안 된다면 협박을 하려 했다.

타르옌을 되살려 달라고.

그러지 않는다면 주신이 그토록 아끼는 이 세상을 산산조각 내 버리겠다고.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죽은 자를 온전히 되살린다는 건, 금제를 푸는 것마냥 이 세상의 규율을 파괴하는 거니까.

이를 히테라 주신들이 들어줄 리가 없었다.

“…닥쳐라.”

[푸흐흐… 내 아들이라지만 눈곱만큼도 나와 닮은 점은 없군.]

“닥쳐!”

디아는 최후의 유물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이젠 줄곧 함께해 오던 에고 소드, 황혼마저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모든 걸 초월한 그는 황혼이 없어도 충분히 강력했다.

파캉!

최후의 유물 부위로 붉은 파장이 일었다.

혹시 모를 공격을 막기 위한 보호 장치였지만, 디아의 권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콰드득……!

매서운 기세로 붉은 파장을 짓뭉개 버린 디아.

이내 붉은 파장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디아의 주먹이 그대로 최후의 유물에 적중했다.

콰직!

과거 그의 동료들을 일순간에 처치해 버린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디아에겐 그저 한주먹거리일 뿐이었다.

[크흐…흐…….]

박살 난 최후의 유물.

카잔 황제는 마지막까지 아들을 비웃으며 서서히 안광이 사그라들었다.

파앗.

그런 그의 등 뒤로.

금발의 한 남자가 허공을 뚫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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