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210화 (210/222)

210화

“이, 이게 무슨……!”

내 상태를 살피던 아에곤은 반토막난 우로하콘을 보곤 경악했다.

말 그대로 정확하게 양분된 우로스의 보물.

아에곤은 황급히 박살난 봉인석을 향해 달려갔다.

“아아……!”

그는 부서진 봉인석을 매만지며 탄식을 터뜨렸다.

지금껏 온화한 그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얼굴이 사정 없이 구겨졌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진정하시죠.”

“진…정……?”

하지만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내 모습에 아에곤이 고갤 갸웃했다.

그는 다시금 부서진 우로하콘을 살펴봤다.

우로하콘에 연결된 수많은 어인들의 알.

이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는 채였다.

그 말은 즉 여전히 알에는 마나가 주입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읏챠.”

꼴사납게 나자빠져 있던 난 엉덩일 훌훌 털고 일어섰다.

그리곤 부서진 우로하콘을 향해 다가갔다.

깔끔한 단면을 간직한채 박살 난 우로하콘.

이를 살짝 건드렸다.

파아앗.

그러자 먼지가 되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 자리엔 거대한 우로하콘은 온데간데없고 주먹만 한 돌멩이 두 조각만 남아 있었다.

하나는 여전히 땅에 박힌 채 알에 마나를 공급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덩그러니 놓인 채 굴러다녔다.

“…이거군.”

난 덩그러니 놓인 우로하콘 조각을 집어 들었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힘의 기운이 손을 타고 전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최후의 봉인석에 내재되어 있던 힘.

‘히테라 녀석. 딱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줬구만.’

난 방금 이 세상의 주인. 히테라를 만났다.

고대인을 절멸 시키고 랭크 시스템을 만든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신.

녀석은 신답게 내가 말하지도 않았음에도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았다.

내가 녀석에게 하려 했던 말은 바로 이거.

최후의 봉인석을 둘로 나눠 줘라.

하나는 우로스에서 계속 어인들을 위해 유지되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게.

이로써 우로스는 주인공 녀석의 칼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대신…….

이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이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될 거다.

“…후.”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별거 아닙니다. 우로스를 최후의 싸움에서 빗겨 나가게 했을 뿐이죠.”

“허어…….”

“앞으로 우로하콘은 계속해서 우로스를 위해 힘 써 줄 겁니다. 대신, 이 남은 돌멩이 하난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우로스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야… 이 남은 돌멩이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달려 있겠죠.”

우로하콘이 둘로 나뉘긴 했지만.

내가 가진 최후의 봉인석이 박살 나면 우로스도 안전치는 못할 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로스의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바로 우로하콘을 지키는 것.

그런데 만약 우로하콘이 박살 난다면?

애초에 지도에 표시되는 왕국은 아니지만, 우로하콘이 박살 나는 즉시 우로스는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이곳은 대륙의 동쪽 끝자락의 해구에 위치한 왕국이다.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땅 너머엔.

‘뭔가’가 있다.

그게 나타나는 즉시, 제일 먼저 소멸하는 건 다름 아닌 우로스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계속해서 나아가 대륙 전역을 집어삼킬 거다.

랭크 8의 괴물 몇을 제외하곤 대처조차 할 수 없는 대재앙.

그게 나타난다면, 이 세상은 끝이다.

주신조차 그게 싫어서 나와 협력하기로 한 거고.

마치 대전쟁 시절 오베론 마냥.

‘기분이 묘하군.’

다른 녀석도 아니고 먼치킨 대마법사 오베론과 비슷한 짓을 하게 될 줄이야.

“아마 남은 닷새가 지난다 해도, 주… 라크레시아는 우로스로 오지 않을 겁니다. 지금 우로스에 남은 우로하콘은 어디까지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한 존재. 최후의 봉인석의 역할을 하진 않으니까요.”

“아아……! 그렇다면……!”

아에곤은 기쁨에 가득 찬 눈물을 흘렸다.

그간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홀로 끙끙 앓고 있었을 테니까.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지?”

크로드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제 대륙의 운명을 지킬 수 있는 건 이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에 달렸다.

“…이걸 지켜야지.”

“…….”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최후의 봉인석에 내재되어 있는 마나 탓인가.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마치 자이겔론드에서 고대인을 마주했을 때마냥, 농후한 대기의 마나를 빨아들이기라도 한 기분이다.

‘주변 대기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혹시 히테라 녀석이 내게 준 선물 같은 건가.

그 정도 힘으론 주인공 녀석을 막을 수 없을 테니.

최후의 봉인석에 담긴 마나로 어떻게든 더 강해지라고.

난 왼손을 펼쳐 안에 새겨진 룬 문양을 들여다봤다.

[이름 : 이안 임페라.]

랭크 : ???

여전히 물음표만 그려 대는 룬 문양.

하지만 분명 알 수 있었다.

최후의 봉인석을 타고 내 몸에 들어온 마나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스며 들어왔다.

이대로 봉인석을 계속 품고만 있다면, 아마 과거 지구에서의 전성기 시절 내 경지까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

콰악.

앞으로 닷새 후면 주인공 녀석이 말한 시간이 된다.

최후의 봉인석이 우로스가 아닌 내 손에 있는 이상, 녀석은 날 노리러 올 거다.

그럼 차라리 우로스 같은 깊은 바다보단 뭍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편이 여러모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아에곤 님. 미안하지만 이만 작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이것 참. 이런 은혜를 얻고도 감사하단 말밖에 할 수 없다니……. 참으로 죄송할 따름입니다.”

“괜찮습니다. 어디까지나 서로 돕고 사는 거니까요.”

“흑흑… 고맙습니다!”

아에곤은 내 양손을 부여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난 그를 바라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아에곤의 등 뒤로 밝게 빛나고 있는 알들이 보였다.

개중에 가장 알이 굵은 녀석.

‘알리샤라고 했었나.’

소설에서도 살짝 궁금하긴 했던 녀석이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아에곤의 피를 이어받은 녀석이니 당연히 셀 테고.

저 알 때문에 아에곤이 내적 갈등을 엄청 하긴 했으니까.

‘뭐 결국 소설에서도 부화하 는건 안 보여 줬지만.’

아마 원래 시간대에선 잘 부화해서 살고 있을 거다.

“…….”

주인공 녀석이 있어야 할 원래의 시간대.

평화를 되찾긴 했지만, 타르옌을 포함해 모든 이들이 죽어 버린 세상.

그럼에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을 거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잘한 위기와 역경을 헤쳐 나가며 계속 살아갈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주인공 녀석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상상조차 안 됐다.

“…쯧.”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녀석이 느낀 절망감과는 별개로 녀석의 폭주는 막아야 했으니까.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곤 아에곤을 향해 고갤 꾸벅 숙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만 지상으로 되돌아가보려는데 아에곤이 날 붙잡았다.

그리곤 품속에서 뭔갈 열심히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가 꺼내 든 건, 우윳빛깔의 주먹만 한 진주였다.

이만한 크기의 진주라니.

따지고 보면 우로하콘보다 더 보물 같았다.

“이건……?”

“저와 연결된 보옥입니다. 지상인들의 말로는… 통신용 마법구라 불리겠군요.”

“아.”

“바쁘실 테니 더 이상 붙잡진 않겠습니다만.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불러 주십시오.”

“으음. 그래요.”

일단은 아에곤도 엄청난 강자인 건 사실이니까.

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긴 할 거다.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럼. 이번엔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크로드는 적당히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주섬주섬 아에곤이 건낸 보옥을 집어넣곤 웨이 포인트 파편을 꺼내 들었다.

“네! 정말이지 오늘 있었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후후.”

난 아에곤을 향해 한 번 싱긋 웃곤 웨이 포인트 파편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 * *

“후…….”

공간 도약을 사용하자 임페라 공작령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이제 난 익숙해졌다.

“우욱…….”

크로드는 아니었지만.

“후후. 이런 것 가지고 엄살은.”

“…닥쳐라.”

집무실은 조용했다.

이제 막 자릴 비운 듯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했던 집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여기서 출발한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았다.

아침 즈음에 출발해 킹 서펜트를 만났고, 어인들의 환대를 받던 와중에 아에곤을 만난 거니까.

“쩝.”

막상 먹을 땐 몰랐는데, 어인들의 음식이 꽤나 입에 맞았나 보다.

해초에 싸 먹던 생선회의 맛이 벌써부터 입에 아른거렸다.

보옥도 있고 하니 나중에 한 번 더 맛 볼 수 있으려나.

“…….”

주인공 녀석만 막는다면 한 번 다시 들려 보리라 마음먹었다.

두두두…….

누군가 우악스런 발자국 소릴 내며 달려왔다.

그게 누굴진 대충 예상이 갔다.

“…공작님!”

문이 부서져라 거칠게 열고 들어온 녀석.

역시나 프리아나였다.

녀석은 뭐가 그리 반가운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고작해야 하루 영지 비운 걸 가지고 호들갑은…….

“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열흘째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다니!”

“…열흘?”

열흘이란 말에 고갤 갸웃했다.

역시나 크로드도 비슷한 눈빛으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열흘이라니. 고작 해 봐야 하루….”

“…아.”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소설에서 잠깐 언급이 나오긴 했는데, 바닷속 깊은 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했다.

그게 열 배나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다른 애들은 어디 있나?”

“흐흑. 지금 바로 불러 모으겠습니다!”

프리아나는 품속에서 통신용 마법구를 꺼내 뭐라뭐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령의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다들 반가우면서도 열흘간 연락도 없던 내게 조금은 화가 난 듯했다.

“미안하구만. 도착하자마자 연락했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공작님이라면 살아 계실 것 같았으니까요.”

이슬린이 위로인지 아닌지 애매한 말을 내뱉었다.

“크흐흐! 살아 있을 것 같았긴! 며칠째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 않았나!”

하룬이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슬린을 놀렸다.

“…시끄럽습니다.”

차갑게 쏘아붙이는 그녀였지만, 하룬이 말한 게 사실이었던 듯 하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하핫! 그래도. 잘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구만! 내 친우를 잃은 줄 알고 엄청 걱정했지 뭔가!”

“으음.”

“그래도 뭐.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가더군!”

하룬은 품 안에서 꼬질꼬질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뭐라 빼곡히 적혀 있는 종이엔,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티팩트를 만들었는지 적혀 있었다.

별게 다 있다.

마갑이니 마검이니 아티팩트니.

몇 개는 내가 쓰고 남은 건 팔면 돈 꽤나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우로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 주려는데 사람이 몇 없었다.

“영겁의 기사단은 어떻게 됐지?”

“방금 연락했다. 곧 오실 거다.”

“흐음. 그래.”

아니나 다를까, 집무실에 위치한 웨이 포인트 석판 위로 영겁의 기사단 녀석들이 도착했다.

이미 크로드가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는지 카이세리우스는 묘한 미소를 띠며 고갤 끄덕였다.

“후후. 내 아이는 몰라도, 자넨 진짜로 죽은 건가 싶더군.”

“…흥.”

그래도 열흘간 어느 정도 친해졌는지, 영겁의 기사단 녀석들과 임페라 공작령의 사람들 사이엔 예전처럼 묘한 기류는 흐르지 않았다.

남은 건 이글렌과 빈트하겐 칼로스.

아무래도 수도에 사는 이들이다 보니 갑작스레 자릴 비울 순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린이 가져온 마법구 두 개에 얼굴만 동동 띄워 놨다.

“흑흑… 이안… 정말이지…….”

날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터뜨리는 이글렌.

어찌어찌 그녈 달래고 난 후에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주인공 녀석을 막기 위한 모든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로스에서 가져온 보물.

최후의 봉인석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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