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 우린 그대로 휩쓸려 내려갔다.
마치 변기물에 빠진 생쥐마냥 빙글빙글 돌던 끝에, 우로스의 끝자락에 내동댕이치듯 던져졌다.
“…푸학!”
배 속 가득했던 바닷물을 게워 냈다.
솔직히 다신 겪어 보고 싶지 않은 느낌이다.
폐 속에 끈적한 뭔가가 가득 찬 기분이라니.
호흡은 가능했지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으음.”
크로드는 애써 괜찮은 척 무심한 표정을 유지했다.
“…쿨럭.”
그런 그였지만 배 속에 가득찬 물을 게워 내는 건 피차일반이었다.
“…흙이군.”
바닷물을 다 게워 낸 크로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면서 바닥에 가득한 흙을 매만졌다.
작게 바스러지는 구리 빛깔의 흙.
뿐만 아니라 주변엔 보송보송한 흙 내음 가득한 대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읍…….”
숨 한 번 쉬는 게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일단은 누가 오든 말든 숨 쉬는 데 집중했다.
“…이봐.”
한창 숨 쉬고 있는데 크로드가 날 불러 세웠다.
“후욱… 뭔데 그래?”
“누군가 오고 있다만.”
“…응?”
고갤 돌려보자 녀석의 말대로 한 무리의 인파가 몰려오고 있었다.
비늘 마냥 찰싹 달라붙는 제복을 입은 이들.
사람과 생김새는 비슷했다.
피부 군데군데에 비늘이 있는 것만 빼면 영락없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가끔 붉은 머릿결을 한 어인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밝은 금발을 하고 있었다.
전설처럼 머리가 비늘로 덮힌 건 아닌…….
“…….”
녀석들이 가까워지자 방금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람처럼 사지 멀쩡히 달려 있긴 했지만…….
눈만큼은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가 멀었다.
검은자위에 세로로 쭉 째진 누런 눈동자.
사람보단 아까 본 킹 서펜트의 눈과 닮아 있었다.
녀석들의 외형을 본 크로드는 긴장한 듯 등 뒤의 파산검에 손을 얹었다.
아직은 괜찮을 거다.
소설에서 본 바론 어인들은 외지인들에게 우호적이었으니까.
“환영합니다. 지상에서 온 손님들이시여.”
다행히 무슨 마법을 쓴 건지 대화가 통했다.
입 모양과 소리가 따로 들리는 걸 보면 가벼운 통역 마법을 쓰는 듯했다.
“…환영?”
대뜸 환영한다는 말에 크로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히려 그 말에 더 경계한 듯 금방이라도 파산검을 뽑을 기세였다.
난 녀석이 괜한 짓을 하기 전에 나섰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해신의 핏줄이시여.”
“호오.”
소설에서 본 대로 예법을 따르자 어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
‘…해신의 핏줄? 그게 뭔 개소리지?’
낮은 목소리로 이죽대는 크로드를 애써 진정시켰다.
‘지금은 그냥 그런갑다 해.’
‘…….’
“저희들을 제대로 불러 주시는 지상인 분들은 처음 보는군요.”
“하하. 그런가요?”
어인들의 환대에 화답하듯 밝게 미소 짓자 녀석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
크로드는 여전히 그런 어인들의 태도가 미심쩍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인들은 그런 녀석의 태도에도 마냥 좋은 듯 헤실거리며 크로드를 바라봤다.
‘어인들은 죄다 이렇게 나사가 빠져 있는 건가?’
‘흐흐. 나사가 빠져 있다니. 넌 어쩜 호의를 베풀어도 그렇게 받아들이냐.’
‘호의? 지금 네 눈엔 이게 호의로…….’
계속 구시렁거리는 크로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크로드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당장 나도 소설에서 어인들을 본 적 없었다면 경계했을 거다.
하지만 어인들이 우리들한테 호의적인 건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저기 저 검은 지상인 좀 봐. 틱틱대는 게 너무 귀엽지 않니?”
“그러게! 저기 노란 지상인은 어떻고! 우리 예법 따라한 거 봤어? 깨물어 주고 싶었다니깐!”
어인들 중 뒤쪽에 있는 녀석들이 서로 작게 속삭였다.
“…….”
아마 안 들리겠거니 하고 하는 소리겠지만.
미안하지만 다 들린다.
‘뭐 딱히 나쁜 말은 아니니 괜찮다만.’
어인들은 오랜 세월 깊은 심해 속에 틀어박힌 채 살았다.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긴 했지만, 완벽히 단절된 건 아니었다.
이따금 어인들 사이에서 일탈마냥 지상으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가서 씨 서펜트한테 사냥 당하는 사람들도 구해 주고, 몰래 얕은 바다에서 지상인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는가 싶기도 했지만.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귀여워서지.’
맨날 심해의 끔찍한 마물과 물고기들만 봐서 그러는 걸까.
어인들은 지상의 생명체, 특히나 인간을 가장 귀여워했다.
굳이 따지자면 길거리 고양이나 강아지 보는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심해에 사는 녀석들이다 보니 신체 능력도 인간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저 오래 살 뿐인 엘프들과는 달리 확연하게 강인한 육체와 랭크.
게다가 녀석들은 성체까지 자라나는 데 고작 1년밖에 안 걸린다.
그러면서도 수명은 엘프급으로 긴,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들보다 상위종인 건 맞았다.
그런 어인들 입장에선 우리 둘은 자그마한 애완동물 보는 거나 다름없었다.
애완동물이 그르렁대거나 자기네들 예법을 따라하면 귀여운 게 당연했다.
강아지가 앞발 한 번 내밀었다고 난리 치는 게 애견인들이니까.
일단은 이들의 호의를 이용하는 편이 나았다.
라크레시아가 어디까지 깽판을 쳐 놨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듣자하니 손님들께선 우리들을 도우러 오셨다던데…….”
“그렇습니다.”
“호호… 그것 참 감사할 따름이군요.”
살짝 불쾌할 수 있는 말투였지만,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자기네들보다 월등히 약한 지상인들이 돕겠다는데 저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슬슬 불쾌해진다만.’
‘나도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잠자코 장단에 맞춰 줘야겠지.
“그럼. 우선 손님들을 위해 자그마한 연회를 베풀어 드리고 싶습니다만.”
“연회요?”
“후후! 그렇습니다.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 정도 예의는 보여 드려야겠지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 그런 같…….”
같잖은 짓거리라 말하려는 크로드.
그랬다간 지금껏 참아 온 게 물거품이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들보다 하등하다 본 종족들에게 무시당하는 것만큼 치욕이 없으니까.
난 서둘러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븝!”
“연회라니! 해신의 후예 분들께선 무슨 연회를 즐기실지 기대되는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럼 어서…….”
어인들은 우릴 향해 손짓하며 길을 앞장섰다.
“…놔라!”
난 그제야 크로드의 주둥일 틀어막고 있던 손을 치웠다.
“이 자식이……!”
금세라도 파산검으로 날 찢어 죽이려는 듯 매서운 눈빛을 내뿜었다.
“자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덕분에 대접도 받고, 호의도 얻었는데.”
“…퉤!”
녀석은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었다.
“만약 한번이라도 더 이따위 짓을 한다면… 그땐 그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라.”
“그래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 미안하다.”
“…….”
녀석은 한 번 더 날 쏘아보곤 어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여전히 눈빛만큼은 매서운 놈이다.
예전 같았다면 뭔가가 찔끔 새어 나왔겠지만.
나도 꽤나 강해진 덕에 그 정돈 아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지금은 녀석과 싸워도 비벼 볼 만할지도…….
‘…그렇겠지?’
“어머머! 저 둘 좀 봐! 어쩜 싸우는 것도 저렇게 귀엽지?”
“그러게 말이야!”
“…….”
난 크로드의 신경질마저 귀엽게 쳐다보는 반응을 애써 무시한 채 뒤를 따랐다.
* * *
“하하! 어떻습니까! 우리 우로스의 음식은!”
“음! 하나같이 맛있네요!”
연회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화려한 산호로 치장된 우로스의 연회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얇은 제복을 입은 어인들이 음식을 내어왔다.
뭇 남성이라면 얼굴을 붉힐 복장이었지만, 검은 눈이 신경 쓰여서 그런지 난 별 감흥이 없었다.
크로드 녀석도 검술 말곤 관심 없는 녀석이라 표정 한 점 변화 없었고.
그렇게 내어온 음식은 꽤나 괜찮았다.
거대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은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이지만 입에 맞았다.
‘뭐 그래 봐야 대부분 생선 구이나 회지만.’
육해공 가득한 영지에서의 식사에 비하면 조금 애매했지만,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커다란 가재를 통으로 쪄 낸 것 하며, 이름 모를 물고기의 하얀 속살을 그대로 빼어 낸 회까지.
거기에 특이하게 생긴 해초와 소스를 곁들어 먹으니 꽤나 맛있었다.
‘특히 이거.’
솔잎처럼 생긴 해초에 회를 한 점 올려 먹었다.
“읏…….”
코끝이 알싸하게 땡겨 오는 게 회에 고추냉이를 올려 먹는 맛이랄까.
예전부터 난 이렇게 먹는 게 좋았다.
“호오! 그렇게 먹을 줄 알다니! 대단합니다!”
“허허. 그런가요?”
어인들은 해초에 회 한 점 싸 먹는 게 뭐가 그리 신기한지 호들갑이다.
“혹시 지상에도 이런 음식들이 있나요?”
“으음. 생으로 살점을 발라 먹는 음식도 있긴 합니다만…….”
난 그렇게 말하며 어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먹어 본 적 있단 말에 뭔가 실망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토록 탱탱하면서 고소한 건 처음 봅니다!”
“하하! 그렇죠?”
어인들은 저마다 맛있게 먹는 비법이라면서 이것저것 챙겨 줬다.
희한한 해초에 물고기 살점을 올려 내 입에 넣어 주는 녀석도 있었다.
이건 뭐 두유노클럽이라도 온 기분이다.
입에 넣어 줄 때마다 눈을 크게 뜨며 반응을 보이려니 눈알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반면에…….
“호호. 이것도 드셔 보세요.”
크로드한테 달라붙은 어인들도 많았다.
잘 구운 가재 살점을 떼어 내 크로드에게 건네는 어인.
킹 서펜트를 닮은 눈만 빼면 꽤나 이쁘장하게 생긴 어인이었다.
아마 조금 취향이 독특한 이라면 홀딱 반하지 않을까 싶었다.
“꺼…….”
하지만 아쉽게도 크로드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녀석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순간, 팔꿈치로 녀석의 팔뚝을 쳤다.
“이 X끼가…….”
“…맛있지? 응?”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이건 네 녀석이 따르는 기사왕도 동의한 거라고. 카이세리우스를 실망시킬 생각이야?’
‘…….’
카이세리우스 얘기가 나오자 크로드가 얌전해졌다.
하기야 녀석 하나 살리겠다고 대전쟁 이후로 수십 년간 방랑기사 생활을 한 녀석인데.
“…먹을 만하군.”
“호호! 그래요?”
어렵사리 대답한 크로드.
그런 녀석의 입술이 붉게 물들었다.
이를 꽉 깨무는 바람에 입안이 터진 모양이다.
저렇게나 싫을까.
“미안하지만 이 친구는 원체 밥을 적게 먹어서요.”
녀석이 피 토하며 쓰러지기 전에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
“…으음. 그런가요?”
“대신 절 주세요. 전 많이 먹거든요.”
“호호. 그런가요?”
크로드한테 몰려 있던 어인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내게 몰려왔다.
덕분에 턱 끝까지 음식으로 가득 차고 나서야 연회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후욱… 후욱…….”
단전에 마나를 끌어올리며 먹은 것들을 빠르게 소화시켰다.
아마 이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뱉지 않았을까 싶다.
“음…….”
이제 배도 어느 정도 찼겠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때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환영해 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저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으음… 우로하콘을 지키러 왔다던…….”
“네. 아까 킹 서펜트와 이야길 하긴 했습니다만… 그 사역술사 분과 얘길 나눠 보고 싶습니다.”
“흐음.”
킹 서펜트의 사역술사.
이는 다름 아닌 우로스의 왕을 뜻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우로스의 왕이 되기 위해선 킹 서펜트를 사역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 거대한 괴물을 사역한 만큼, 그가 얼마나 강한 경지의 사역술사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연회가 끝날 때 즈음 오시기로 했습니다만…….”
“…네?”
예상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우로스의 왕과 직접 만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려나 싶었는데.
철컥.
그러던 그때.
철컥. 철컥.
시끌벅적한 연회장 가운데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우로스의 왕.
사역 랭크 8의 괴물이 호위병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