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91화 (191/222)

191화

상위종 마물.

놈들이 발생하는 경우는 다양했다.

방랑 기사나 모험가들을 잡아 먹고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주인에게 마나를 주입 받아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상위종으로 거듭나는 루트는 많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반 마물과는 달리 더럽게 세다는 거.

…콰득!

데스 나이트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구울.

녀석은 대뜸 데스 나이트의 검을 맨손으로 붙잡았다.

[…크륵?]

이를 본 데스 나이트의 안광이 흔들렸다.

인질이 저항하면 그냥 죽여라.

그게 데스 나이트가 받았던 명령일 거다.

하지만 녀석의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카가각!

데스 나이트의 검이 조금씩 밀려 나갔다.

검날을 잡은 손가락이 우수수 떨어져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녀석은 검을 붙잡은 것도 모자라 밀어내기 시작했다.

[크르륵!]

[끄으응……!]

카드드득……!

데스 나이트의 검을 밀어내는 구울이라.

이를 본 흑마법사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쿠스켈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놀라셨나요?”

“…당연하지! 아무리 내 아들이라 해도 데스 나이트를…….”

데스 나이트는 흑마법 랭크 7부터 마음데로 부릴 수 있는 강력한 마물이다.

지금은 리베라 공작이란 놈이 없어 온전한 힘을 보일 순 없겠지만, 하급 마물인 구울한테 애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뭘 구경하고 있는 게냐! 어서 막아!”

“예,옛!”

잠시 넋 놓고 이를 구경하던 놈들은 서둘러 마나를 그러모았다.

“어딜!”

아들이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쿠스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녀석은 곧바로 흑색의 마창을 뽑아내 녀석들에게 날렸다.

쐐액!

“크악!”

어중띤 흑마법사들은 그 자리에서 목덜미가 꿰뚫려 즉사했다.

하지만 아직 리베라의 흑마법사들은 많았다.

“죽어라!”

팡! 파앙!

무수한 수의 마탄이 우리 둘을 향해 쏟아졌다.

“흥.”

난 한 손을 펼쳐 앞에 반투명한 쉴드를 전개했다.

검은 구체들은 쉴드에 그대로 막혀 허공에 흩어졌다.

[제법이군.]

‘이래 봬도 마법 랭크도 6이라구.’

허리춤에 차둔 황혼이 한마디 거들었다.

겉보기엔 기사긴 해도 마법 랭크 6이다.

마법사로 쳐도 상당한 경지니까.

대부분의 마탄은 내 털 끝 하나 건들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쿠스켈 쪽이었다.

“크윽……!”

이미 구울들을 상대하느라 상당량의 마나를 써 버린 뒤였다.

미약하게나마 쉴드를 전개해 봤지만, 위력이 강한 마탄은 그대로 통과해 쿠스켈의 온몸에 생채기를 남겼다.

녀석한테까지 쉴드를 전개하려면 마나 소모가 꽤나 심할 텐데.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지.’

난 녀석에게까지 쉴드를 전개해 주려다 멈칫했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두두두……!

건물 바닥을 뚫고 무언가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이를 들은 쿠스켈의 낯빛이 시커매졌다.

“이런……! 더 이상 구울을 지배하는 건……!”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쿠스켈이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난 전개하고 있던 쉴드를 거뒀다.

“괜찮습니다. 우리 편일 거예요.”

“…우리 편?”

…콰앙!

이내 바닥을 뚫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마치 시체 여러구를 엮어 만든 듯한 거대한 덩치.

[그워어억……!]

살더미 거인이었다.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치미는 생김새다.

그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괜찮다.

저건 우리 편이니까.

“이익……!”

쿠스켈은 마지막 남은 마나를 쥐어 짜내 흑창을 만들어 냈다.

이를 살더미 거인에게 조준하려 하자, 난 얼른 녀석의 팔을 잡아챘다.

“지, 지금 뭐하는 겐가!”

“글쎼 우리 편이래두요.”

“정신차리게! 저건 내가 부른 녀석이 아니야!”

“그야 당연하죠. 그쪽한테 남은 마나는 이제 없을 테니까.”

“그럼 얼른……!”

그제야 쿠스켈은 아차 싶은 얼굴로 자신의 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가 붉게 타오른 채 데스 나이트의 검을 붙잡고 있는 구울.

살더미 거인은 성큼성큼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곤 구울이 아닌, 데스 나이트를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내리쳤다.

[…크륵?]

구울에게 붙잡혀 있던 데스 나이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콰앙!

살더미 거인의 주먹이 그대로 녀석에게 내리꽂혔다.

[크라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데스 나이트의 몸뚱이가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그걸 시작으로 사방에서 구울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머, 멈춰!”

[크르륵!]

개떼처럼 몰려든 구울들은 모두 리베라의 흑마법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마탄을 쏴 보고 구울 몇 마릴 지배해 보려 마나를 쏟아 봤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제대로 된 원호도 없이 구울들에게 둘러싸인 놈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콰득! 콰드득!

“끄악!”

구울들의 파도에 그대로 집어삼켜진 놈들은 그대로 다진 고기처럼 으깨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안에 남은 흑마법사라곤 쿠스켈 말곤 없었다.

[크르륵…….]

뒤늦게 정신을 차린 데스 나이트가 자셀 잡았다.

구울들과 살더미 거인은 마지막 남은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도 데스 나이트라 그런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구울들이 쓰러졌다.

[그웍!]

힘껏 내지른 검에 살더미 거인의 몸통이 꿰뚫렸지만.

여기서 가장 강한 마물은 녀석이 아니었다.

콰직!

[크륵!]

데스 나이트의 가슴 갑옷을 뚫고 검은 피로 물든 손이 튀어나왔다.

검술 랭크 6의 기사들과 맞먹는다는 데스 나이트.

하지만 리겔이라 불리우던 구울에겐 역부족이었다.

데스 나이트의 등 뒤엔 리겔이 녀석의 심장을 꿰뚫은 채 서 있었다.

…파앙!

마핵을 통째로 상실해 버린 데스 나이트는 그대로 먼지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

리겔은 주윌 둘러싼 수많은 구울들 가운데서 가만히 고개를 떨궜다.

“아, 아들아…….”

쿠스켈은 그런 아들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대전쟁 이후 평생을 보살피기만 했던 리겔.

그런 그가 이 정도 경지를 보여 줄 줄은 상상도 못한 듯했다.

저게 바로 구울의 상위종.

구울들의 왕.

와이트 킹이다.

[아버지…….]

와이트 킹은 쿠스켈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억.”

쿠스켈은 저도 모르게 녀석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주변을 순식간에 휩쓸어 버리는 걸 보고 겁 안 먹는 게 이상했다.

[…죄송합니다.]

와이트 킹은 쿠스켈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쿠스켈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난 옆에서 두 부자를 조용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미안하구나, 아들아.”

한참을 가만히 서 있던 쿠스켈은 와이트 킹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아버지……?]

“지금껏 날 위해 힘을 숨겨 온 거겠지.”

[…….]

와이트 킹은 아무 말도 없었다.

쿠스켈은 지금껏 녀석을 자신의 아들, 리겔이라 여기고 보살펴 왔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

그건 구울이라 해도 자아를 갖고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리겔은 없었다.

평생 동안 주인을 따라 죽은 아들의 모습을 연기하던 구울만 있었을 뿐.

그리고 녀석도 깨달았을 거다.

쿠스켈이 그를 보살핀 이유는 구울들의 왕이 아닌, 이미 옛적에 죽은 리겔이란 이름의 소년이란 걸.

“아까도 말했지만.”

“…….”

“리겔은 죽었습니다. 대전쟁 당시에.”

“…….”

“이 아이도 그걸 알았겠죠. 그래서 지금껏 리겔이라 연기해 온 걸 테고.”

[그건…….]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20년의 세월이 모두 거짓이 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렇지.”

쿠스켈은 추억에 잠긴 듯 고개를 떨궜다.

녀석이 구울의 상위종으로 거듭나서 상태가 멀쩡한 걸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쿠스켈의 눈물겨운 노력 없인 불가능했다.

덕분에 와이트 킹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거고.

[죄송합니다, 아버…….]

와이트 킹은 쿠스켈을 향해 아버지라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아버지라 부를 면목이 없는 거다.

[…쿠스켈 님.]

“…아니다.”

쿠스켈은 와이트 킹을 향해 고갤 가로저었다.

“넌 내 아들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내 아들이다.”

[…아버지!]

와이트 킹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쿠스켈을 끌어안았다.

구울도 눈물이 흐를 수 있었다면 아마 펑펑 울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난 둘의 모습에 싱긋 미소 지었다.

“이참에 이름도 새로 지어 주시죠. 와이트 킹이니까…….”

와이트 킹에 리겔을 더하면 와겔이라 불러야 하나?

좀 어감이 이상하지 않나 싶다.

“이 아이는 리겔이다. 하나뿐인 내 아들, 리겔이니까.”

[아버지…….]

“리겔…….”

둘은 그렇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자자. 이제 갑시다.”

“후후. 그래. 내 괜한 모습을 보였군그래.”

[헤헤.]

리겔은 마냥 좋은 듯 쿠스켈의 옆에서 방실방실 웃었다.

저런 녀석이 구울들의 왕이라니.

상위종이 무서운 건 이래서다.

진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진 건 물론이고, 인간에 가까운 지능과 감정까지 갖게 되니까.

거기에 자잘한 스킬까지 붙는 건 덤.

‘소설에서도 그랬었지.’

이제 소설이라 말하기도 뭣했지만, 와이트 킹은 거기에도 나온 적 있었다.

주변 구울들을 마치 제 군대마냥 다루는 와이트 킹의 힘.

이는 훨씬 강한 마물인 데스 나이트나 벤시마저 압도할 정도였다.

대전쟁 당시 와이트 킹으로 이뤄진 군세는 연합의 병사들을 상당히 고전시켰다.

그런 놈이 새로 나타난 건데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리겔이 와이트 킹이 되긴 했어도 쿠스켈을 따르는 건 변함 없었다.

그런 쿠스켈과 나름 우호적인 관계가 된 거니까.

‘자세한 건 포르겔로 가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우린 일단 주변을 대충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윽…….”

[크륵!]

아직 살아 남은 리베라의 흑마법사들.

리겔은 구울들을 시켜 녀석들을 꽁꽁 묶어 놓은 뒤였다.

“이놈들은 어쩌지?”

“흠.”

리베라의 흑마법사들이니 그리 정상적인 놈들은 아니다.

이런 놈들은 포르겔에 데려가 봤자 물만 흐릴 놈들인데.

“차라리 죽여서 구울로 만드는 건…….”

“허억……!”

“사, 살려 주십쇼! 제발……!”

무심결에 한 말에 흑마법사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했다.

“자, 자네 그게 진심인가?”

쿠스켈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좀…….]

리겔도 와이트 킹인 주제에 눈살을 찌푸렸다.

“…말이 그렇단 거죠.”

그렇게 일단 녀석들을 밧줄로 꽁꽁 묶은 채로 포르겔로 끌고 가기로 했다.

“포르겔은…….”

쿠스켈은 자기가 한 짓이 떠올랐는지 말끝을 흐렸다.

“아마 난리가 났겠죠. 다른 녀석도 아니고 함께 지내던 구울들이 돌변해 버린 거니까.”

“…….”

“그러니 앞으로 사람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알겠네.”

쿠스켈은 뭔가 새로운 다짐이라도 하는 것마냥 주먹을 꼭 쥐었다.

***

그렇게 우린 다시 포르겔로 되돌아왔다.

구울들도 다시 제정신을 차린 건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포르겔의 흑마법사들은 갑작스런 구울들의 난동에 충격 받아 있는 듯했다.

“…쿠스켈 님!”

“아…….”

“괜찮으십니까! 악마 숭배자 놈들이 습격을…….”

“…….”

흑마법사들은 이 모든 난동의 원인이 쿠스켈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녀석에게 안부를 물었다.

쿠스켈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다.

“자자. 일단 왕성은 멀쩡한지부터 봅시다.”

“아… 그래. 미안하지만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함세.”

“으음, 그래요. 알겠습니다.”

흑마법사들은 고갤 끄덕이곤 다친 이들을 보살피러 황급히 뛰어갔다.

“흠.”

겉보기엔 일단 왕성은 멀쩡했다.

군데군데 창문이 깨지긴 했지만, 조용한 걸 보니 벌써 소동은 일단락된 듯했다.

끼이익!

이내 왕성의 문이 열리고 안에 있던 포르겔의 데스 나이트와 벤시들이 보였다.

그 옆엔 빈트하겐과 신관들도 있었다.

“일은 잘 마무리됐나?”

“흥. 이깟 흑마법사 놈들이 뭘 하겠나.”

“…….”

빈트하겐의 날선 발언에 신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습니까? 신관님?”

“아. 쿠스켈 님! 다행입니다. 성문쪽에서 난동이 났길래 무슨 사고라도 나신 줄 알았어요.”

“그, 그게…….”

“리베라 공작은 어떻게 됐지?”

난 일단은 화제를 돌리려 빈트하겐에게 물었다.

이번 소동의 주역은 리베라 마공작.

본거지에 없던 걸 보면 여기로 왔다는 건데.

타앙!

빈트하겐은 발치에 있던 뭔갈 내 쪽으로 걷어찼다.

축구공마냥 데굴데굴 구르던 뭔가는 내 발등에 닿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거 말인가?”

“…앗.”

괜히 전 기사단장이 아닌 건가.

리베라 공작으로 보이는 녀석은 경악에 물든 얼굴로 이미 죽어 버린 뒤였다.

“보잘것없는 녀석이더군.”

“…….”

빈트하겐의 검술을 직접 본 신관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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