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난 곧장 쿠스켈을 데리고 포르겔을 습격했다는 놈들의 본거지로 향했다.
습격의 주동자는 역시나 마공작 중 하나.
제1마공작 리베라.
총 셋의 마공작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얼마 전 흑마법 랭크 7을 달성했다더니.
‘그래서 포르겔을 습격했던 거군.’
녀석 입장에선 랭크도 비슷한 르델이 왕을 하고 있단게 못마땅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 르델의 랭크는 몇이지?’
소설에서 라크레시아가 녀석을 죽일 땐 흑마법 랭크 8이었다.
아마 지금의 르델도 그 정도 경지거나, 아니면 이제 랭크 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일 거다.
‘어디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상대해야 할 건 르델이 아니라 리베라라는 녀석이다.
포르겔 남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성.
사실 성이라 하기도 뭐한 곳이다.
원래는 포르겔에 속한 전초기지로 쓰이던 요새였으니까.
일단 우린 그곳으로 향했다.
한창 달려가는 와중에 쿠스켈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대체 정체가 뭔가?”
“저요?”
“그 정도 경지의 기사인줄은 상상도 못해서 말이야. 아마… 흑마법사란 것도 거짓말이었겠지.”
“으음. 그렇습니다.”
“…더 말하기 싫다면 안 해도 된다네. 내 아들을 구해 주겠단 사람한테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내가 쿠스켈이었으면 나부터 의심했을 거다.
하지만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절박하고, 순진한 녀석이었으니까.
“…실은 아이소테르에서 온 건 맞습니다. 아버질 잃은 것도 사실이구요.”
“…그렇군.”
“…혹시 임페라 백작령이라고 아십니까? 아이소테르 외곽 쪽에 위치한 영진데.”
“호오. 거기서 온 건가? 대전쟁 이전에 몇 번 들린 적이 있긴 했지. 거기 아주 높은 산이 하나 있지 않나?”
“네. 그리고 거기가 제 영집니다.”
“으음. 그쪽에 살았던 모양이구만.”
쿠스켈은 내가 임페라 영지의 주인이란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해 봐야 임페라 백작령에서 나고 자란 기사쯤으로 생각했다.
“듣기론 거기 영주가 아주 이상한 놈이라던데. 어렸을 땐 망나니였던 놈이 지금은 아이소테르의 여왕과 약혼까지 맺었다 하질 않나. 무슨 수를 썼는지 대전제에서 우승까지 했단 소문도 있고.”
“…….”
“그래도 나쁜 녀석 같진 않던데. 자네도 거기서 그 영주를 섬기는 게 낫지 않았겠나? 왜 여기까지 온 겐가?”
“…제가 그 영주니까요.”
“…응?”
난 쿠스켈에게 품속에 있던 손수건 하날 꺼내 보였다.
손수건엔 임페라 가문의 붉은 사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실례가 많았군…요.”
“아닙니다. 일단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 넘어가죠.”
“그래…요.”
잠시 쿠스켈과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분위기라도 전환할 겸 구하러 가는 아들 녀석에 대해 물었다.
“아들님 이름이 뭐죠?”
“리겔입니다.”
“…어제 듣기론 리겔은 대전쟁 당시에… 그렇게 된 것 같던데. 그렇담 구울로 되살려 데리고 산 건가요?”
“그렇습니다. 딱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있던일이군요. 리겔이 그렇게 된 후로… 흑마법을 익히고 부활시키는 데 성공까지 했지만…….”
쿠스켈은 목이 메이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난 그의 이야기에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다.
“흐음…….”
대전쟁 이후로 줄곧 함께 살아왔다면, 리겔이란 이름의 구울은 올해로 이십 년을 한참이나 넘겼단 소리였다.
이십 년이나 산 구울이라.
구울은 생존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이미 죽은 시체를 흑마법으로 되살린 거에 불과하니까.
1년 이상 가면 오래간 거다.
그런데도 리겔이란 구울은 20년 넘게 살았다.
쿠스켈이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다뤘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이거 그냥 구울은 아니겠는데.’
“저깁니다. 리베라 마공작의 본거지가.”
“…그렇군요. 그리고 그냥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건…….”
“그편이 제가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알겠네.”
어느덧 리베라 공작의 거처에 다다랐다.
“여기가 그놈들의 주둔지군요.”
그닥 높진 않았지만 큼지막한 돌기둥에 목책을 덧댄 튼튼한 요새였다.
병력 대부분이 포르겔을 습격하러 갔는지 성벽 주위는 횅했다.
“…리겔도 여기 있군.”
“느껴지십니까?”
“그래. 이십 년 가까이 나와 묶여 있던 아이니까.”
“…….”
아마 쿠스켈의 감이 맞을 거다.
이십 년간 마나를 주입해 온 권속이라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올 테니까.
[크르륵!]
아직 리베라의 요새에 남아 있던 구울들이 우릴 발견했다.
놈들은 곧바로 요새 벽에서 뛰어내렸다.
콰직!
그 바람에 구울들 상당수가 박살이 나긴 했지만, 부서진 살점을 질질 끌며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서걱!
난 곧장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곳 구울들은 포르겔의 구울들과는 달랐다.
온몸에는 채 아물지 않은 상처가 가득했고, 이성을 잃은 구울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놈들은 죽이는 게 구원이다.
놈들의 마핵이 있을 만한 곳을 재빠르게 훑었다.
[크웍!]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구울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파라락!
쿠스켈은 다시금 덮혀 있던 마도서를 펼쳤다.
그리곤 중간쯤을 펼치자 녀석의 주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크르륵?]
당황한 구울들이 멈칫하자, 그런 놈들을 향해 안개가 뻗어 나갔다.
[크륵……!]
안개에 잠식되며 난동을 부리던 구울들이 금세 얌전해졌다.
“…제법이시군요.”
“후후. 배운 게 이것뿐이니 말일세.”
쿠스켈의 권속이 된 놈들은 요새 성문에 달라붙었다.
하나하나 힘은 그리 세지 않았지만, 수가 수이다 보니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란…….”
“헉!”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흑마법사들이 성벽 위로 고갤 빼꼼히 내밀었다.
“흥!”
쿠스켈이 마법서의 첫장을 빠르게 펼쳤다.
그러자 검은 안개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마창으로 자라났다.
쐐액!
이는 그대로 성벽 위 흑마법사들에게 향했다.
파각!
“커헉!”
마창은 사정 없이 놈들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이익! 마, 막아……!”
부랴부랴 방어막을 전개해 봤지만, 쿠스켈의 분노를 막을 순 없었다.
파캉!
마창을 쉴드째로 리베라의 흑마법사들을 박살 냈다.
“오우.”
이래서 쿠스켈이 착한 건 어디까지나 포르겔의 흑마법사들에 한해서다.
자기 아들을 납치해 간 놈들한테까지 자비를 베풀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자! 얼른 가세!”
“후후. 좋습니다.”
그그극……!
이내 구울들이 달라붙어 있던 성문이 입을 벌렸다.
성문 뒤로 수많은 구울들과 흑마법사들이 달려들긴 했지만, 모두 쿠스켈의 흑마법 아래 쓰러졌다.
파각! 파각!
“에잇!”
이따금 요새의 흑마법사들이 마탄을 날려 보긴 했지만, 유효한 타격을 입히기엔 역부족이었다.
파앙!
날아온 마탄에 검을 휘두르자 공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마탄이 산산조각 났다.
“허억……!”
파각!
뒤이은 쿠스켈의 마창에 녀석은 그대로 심장이 꿰뚫리며 숨이 끊어졌다.
우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문을 돌파할 수 있었다.
분노한 쿠스켈이 꽤나 강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본대 대부분이 포르겔을 습격하러 간 이상, 이곳에 제대로 된 병력은 없었다.
‘그래도 몇 놈은 있겠지만.’
놈들도 바보는 아니다.
아마 리겔을 인질로 잡은 놈들은 꽤나 강할 거다.
“…아들이 점점 가까워지는군.”
“너무 긴장하지 마십쇼. 괜찮을 겁니다.”
“…고맙네.”
우린 성문을 지나 요새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건물로 다가갔다.
네모 반듯하게 생긴 목조 건물 위로 높게 뻗은 깃발 하나.
거기엔 뚜껑이 열린 해골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마공작이란 녀석 나름대로 영주 흉내를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잠겨 있군.”
굳게 잠긴 문을 향해 쿠스켈이 마나를 그러모았다.
그런 쿠스켈은 현기증이 이는 듯 식은땀을 흘렸다.
벌써 꽤나 많은 수의 구울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나설 차례였다.
“잠시만 비키세요.”
“…그래. 부탁하네.”
쿠스켈이 한발짝 뒤로 물러서자, 난 발에 마나를 그러모았다.
그리곤 굳게 닫힌 문을 힘껏 걷어찼다.
콰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잠겨 있던 문이 박살 났다.
“히, 히익!”
예상했던 대로 건물 안엔 꽤나 많은 수의 흑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엔 검은 투구를 쓴 채 짙푸른 안광을 내비치는 데스 나이트도 한 구 있었다.
데스 나이트는 조용히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구울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리베라라는 녀석이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보험용으로 남겨 둔 데스 나이트였다.
[…아버지!]
쿠스켈을 또박또박 부르는 구울.
“리겔!”
그 구울이 바로 리겔이었다.
열셋쯤 돼 보이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리겔.
쿠스켈이 말한 대로 어렸을 적 이안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구울임에도 누런 금발과 옅은 핏기가 도는 듯한 살점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리겔이 죽었던 건 대전쟁 당시다.
게다가 당시엔 겨우 다섯 살.
지금도 그리 나이가 많은 것 같진 않았지만, 다섯 살처럼 보이진 않았다.
‘구울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미 죽어 버린 구울의 특성상 신체 성장이란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우, 움직이지 마라! 한 발짝이라도 움직였다간 이 녀석은 죽는다!”
“젠장……!”
쿠스켈은 분한 듯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녀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아무 말 없이 리겔의 목에 칼을 들이민 데스 나이트.
옆에 흑마법사 놈이 말만 한다면 주저 없이 리겔의 목을 베리라.
“…쿠스켈.”
난 작은 목소리로 쿠스켈을 불렀다.
쿠스켈은 기습을 노리고 있는지 내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내가 저 데스 나이트 놈의 시선을 끄는 동안 자네가…….”
“아뇨. 그건 힘들 겁니다. 거리가 이만큼 벌어진 이상 무슨 수를 쓰더라도 데스 나이트가 더 빠를 테니까요.”
“그, 그런……!”
쿠스켈의 낯빛에 절망이 드리웠다.
이를 본 흑마법사 놈들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크흐흐! 멍청한 놈! 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르기만 했어도 리베라 님께서 요긴하게 쓰셨을 텐데! 사람 하나 더 데리고 오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았나?”
“…잘 들어라.”
“…응?”
뜬금 없는 말에 흑마법사들과 쿠스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구울의 수명은 길어 봐야 1년이지.”
“…….”
“게다가 되살리는 데 시간이 너무 지난 시체는 이미 예전의 사람이 아니야. 그저 강령술로 흉내만 내는 시체일 뿐이라고.”
“자, 자네 지금 무슨 소릴하는 겐가!”
쿠스켈은 자기한테 하는 말인 줄 아는지 목소리가 떨려 왔다.
난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 갔다.
“그렇게 되살아난 구울은, 이미 다른 존재야. 사랑했던 친구나 가족 같은게 아닌 전혀 다른 존재라고.”
내 말에 눈이 동그래진 흑마법사는 누런 이를 훤히 드러내며 조소를 흘렸다.
“크흐흐! 그래서. 이제 와서 인질을 포기하란 소린가?”
“자, 자네 그게 무슨……!”
흑마법사는 내 말을 멋대로 해석하곤 쿠스켈을 도발했다.
“보아하니 그쪽 친구는 아들을 버리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런……!”
“차라리 그럴 바엔 그 친구를 우리 쪽에 넘기는 건 어때? 보아하니 몸도 제법 튼튼해 보이고 말이야! 흐흐흐!”
쿠스켈이 내 팔을 붙잡았다.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아들을 포기하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걸세!”
“그렇죠. 당신한테 자식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잘 압니다.”
인질로 잡혀 온 아들 때문에 자신의 동료마저 배신한 남자다.
그런 그에게 지금 와서 리겔을 포기하란다고 들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전 아까부터 당신한텐 존대를 쓰고 있던 거. 모르세요?”
“…으응?”
쿠스켈은 여전히 영문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이 흔들렸다.
“지금 전, 당신 아드님한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
데스 나이트에게 붙잡힌 채 벌벌 떨고만 있던 구울.
저건 그냥 구울이 아니다. 리겔도 아니고.
이십 년 넘게 쿠스켈의 곁을 지켜 온 구울의 상위종이지.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리겔이라 불리던 구울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