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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89화 (189/222)

189화

르델을 찾아라.

저런 소릴 하는걸 보면, 르델의 부재는 모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랭크 6을 제압한 놈들이 그저 눈속임용이라면.

포르겔에 쳐들어온 녀석들은 더 강한 놈들이란 거니까.

르델도 부재중인 지금, 자칫하면 왕성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쿠구구……!

침입자들이 들이닥치자, 왕성을 지키고 있던 벤시들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녀석들의 주위로 검고 긴 마창이 소환됐다.

[크르륵……!]

제일 먼저 창문을 뚫고 들이닥친 덩치 큰 구울.

지금껏 포르겔에서 봤던 구울과는 생김새부터 많이 달랐다.

파괴력을 증강시키려 한 건지, 어깨엔 큼지막한 마석이 박혀 있었고.

얼굴 살가죽은 반쯤 벗겨진 채 피와 침이 섞인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구울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저게 보통 구울이지.’

…콰직!

벤시들의 마창은 그대로 구울을 향해 날아갔다.

덕분에 구울의 몸이 산산조각 나긴 했지만,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두두두두……!

곳곳에 깨진 창문 틈으로 구울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벤시들은 계속 마창을 소환해 놈들에게 날려 댔다.

이내 데스 나이트까지 들이닥치자, 왕성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데스 나이트들과 벤시, 그리고 수많은 구울들이 한데 섞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빈트하겐. 부탁 하나만 하지.”

“…….”

녀석은 듣기 싫다는 듯 내 눈을 피했다.

난 그런 녀석에게 손에 낀 반지를 내보였다.

이안 백작이 아닌 아이소테르의 부군으로서 하겠단 말이었다.

이글렌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데.

가끔은 마누라 덕도 좀 봐야지.

“부.탁. 좀 할게. 응? 괜찮지?”

“…젠장.”

고지식한 녀석답게 권력으로 밀어붙이자 하는 수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성문 쪽은 내가 가 볼 테니까. 왕성 쪽은 부탁 좀 한다?”

“…알겠…다.”

빈트하겐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침입자들에게 향했다.

우우웅……!

녀석의 검에서 짙고 선명한 오러가 터져 나왔다.

여러모로 귀찮은 놈이긴 해도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놈이다.

다른 놈도 아니고 아이소테르의 기사단장이었던 놈인데.

…콰아앙!

빈트하겐의 첫 합.

끝없이 밀려들던 구울들의 파도에 검격이 닿았다.

[크워어억!]

단지 그것만으로 한 번에 십수 마리의 구울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됐다.

천장에 매달려 이를 지켜보던 흑마법사 놈이 소리쳤다.

“저기 강한 데스 나이트 녀석부터 노려라!”

[크르륵!]

빈트하겐의 주위로 침입자들의 데스 나이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까드득!

‘오우야.’

빈트하겐의 이 갈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지금 누굴 데스 나이트라 하는 게냐!”

콰아앙!

빈트하겐은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곤 데스 나이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천장에 매달린 흑마법사들이 마탄이 녀석에게로 집중됐다.

콰앙! 쾅!

하지만 빈트하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침입자 놈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 냈다.

아마 왕성은 괜찮을 거다.

마공작인가 하는 놈들이 온다 해도 빈트하겐이면 막아 낼 수 있을 테니까.

“…마공작들이 서로 연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까?”

난 손에 땀을 쥔 채 구경 중인 신관들에게 물었다.

“그,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다들 서로 왕이 되겠다며 나서는 입장이라…….”

“그럼 다행이군요.”

마공작 셋이 덤비면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만.

한둘이면 상대하고도 남았다.

난 황혼을 허리춤에 잘 매 둔 걸 확인하곤 신관들에게 고갤 까딱였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신다구요? 그럼 저 기사님은…….”

“흐흐. 당연히 민가 쪽을 보러 간다는 거죠. 절 뭘로 보고.”

“아.”

타닷!

난 짧게 대답하곤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타앗.

아직 시간은 이른 아침.

어제까지만 해도 활기차던 포르겔이 지금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꺄아악!”

“끄악!”

구울들은 포르겔의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목을 조르고 있었다.

[크르륵……?]

느닷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날 보곤 구울들이 공격을 멈췄다.

“…잠깐.”

방금 왕성에 쳐들어온 구울들을 봐서 그런지, 지금 눈앞의 구울들의 모습이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피나 침을 흘리지도 않고, 어제처럼 조금 피부가 창백한 수준의 구울들이었다.

‘포르겔에 있던 구울들을 쓴 건가?’

쿠스켈을 쓰러뜨린 흑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주인이 없는 상태라면 구울은 그저 평범한 시체니까.

그걸 다시 제 권속으로 삼은 거겠지.

“으윽…….”

“…응?”

주윌 둘러보자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쫓기듯 도망치는 사람들과 이를 쫓는 구울들.

“도, 도망쳐!”

[크라아악!]

하지만 구울들은 사람들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적당히 겁만 주더니, 애먼 건물 벽이나 잡동사니들을 부수기 바빴다.

“…….”

난 옆에 쓰러진 사람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자세히 보니 쓰러진 사람들은 죽은 게 아니었다.

잠시 기절만 한 상태였을 뿐.

“…뭐야?”

[크르륵!]

구울들은 내게도 그랬다.

주변 사물을 집어 던지거나 괴성을 지르긴 했지만, 제대로 된 공격은 없었다.

게다가 무기도 없이 맨손만 휘적거리는게…….

‘이상하다.’

아무리 구울이라 해도 무기를 들고 있는 게 더 강하단 건 당연한 상식이다.

굳이 이렇게 군다는 건…….

“…설마?”

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크륵!]

내가 계속 멀뚱히 서 있자 그제야 구울들이 달려들었다.

…파각!

난 구울들의 심장에 손날을 내질렀다.

그러자 자그마한 자갈 같은 게 손끝에 걸렸다.

구울도 결국엔 마물.

체내의 마핵을 부수면 작동을 멈춘다.

[크륵……?]

이를 부수자 구울들은 전원이 꺼진 기계마냥 풀썩 주저앉았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싸울 마음이 없는 것처럼.

“…젠장.”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성문에 난동을 부리는 놈이 내가 생각하는 그놈이 아닐까 하면서.

난 서둘러 포르겔의 성문 쪽을 향해 달려갔다.

곁눈질로 주변 구울들을 봤지만, 모두 상황은 비슷했다.

반격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기절만 시키고, 도망치는 이들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구울이라.

누가 주인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쿠구구……!

어느덧 성문에 가까워지자, 묵직한 마나의 요동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 대기의 마나는 모두 한 남자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책 한 권을 펼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흑마법사.

어제 만났던 쿠스켈이었다.

이번 습격에 쿠스켈이 당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습격을 한 게 쿠스켈이었던 거지.

[크르륵!]

쿠스켈에게 가까워지자, 다른 구울들이 내 주윌 에워쌌다.

하지만 모두 다가오지는 않은 채 거릴 벌리고 있었다.

“자, 자네는……!”

눈물까지 흘려 가며 포르겔에 난동을 피던 쿠스켈.

그는 날 보자 구울들을 조종하던 팔을 멈췄다.

이 많은 수의 구울들을 혼자 조종하다니.

신관들의 말대로 상당한 경지의 흑마법사였다.

“또 뵙는군요.”

“…허튼짓 말고 얼른 물러서게! 그러다 죽는 수가 있어!”

“그러지 않을 거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난 천천히 쿠스켈에게 다가갔다.

구울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물러서래도!”

파라락!

쿠스켈은 들고 있던 책의 맨 앞부분을 펼쳤다.

그러자 자그마한 검은 마탄이 생성되더니 그대로 내게 쏘아졌다.

…파앙!

“….”

조금 따끔한 수준의 마탄이 어깨를 때렸다.

미안하지만 지금의 난 이런 마탄으로 쓰러지는 수준이 아니다.

쿠스켈의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한다 해도 아마 내가 이길 거다.

“으윽……!”

하지만 난 마치 엄청난 공격이라도 맞은 것마냥 어깰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러게 오지 말래도!”

“…하.”

방금 그걸로 알았다.

이 남자는 기본적으로 더럽게 착하다.

이렇게 착한 남자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솔직히 이대로 녀석의 목을 베어 버리면 그만이다.

아무리 흑마법 랭크 6인 흑마법사라 해도, 에고 소드에 갖가지 주인공 버프를 빨아먹은 날 이길 순 없을 테니까.

게다가 흑마법을 이용한 전투보단 농사만 짓고 살아온 쿠스켈.

아무리 상성이 있다 해도 그런 녀석에게 당할 멍청이는 아니었다.

이대로 쿠스켈이 죽는다면.

그의 권속으로 묶인 구울들도 다시금 제 정신을 차릴 테고, 그러면 금방 소란도 정리될 거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은 X 같은 세상이다.

착한 놈들은 나쁜 놈들한테 죽을 때까지 이용만 당하거나, 개죽음만 당하는 세상이다.

적어도 나만은 그런 쿠스켈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분… 아니시잖습니까.”

“…자네가 나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난 흑마법사일세! 연합의 땅에서 온 자네라면 알 것 아닌가! 흑마법사들이 어떤 사람인지!”

“끄윽…….”

힘겨운 척 다리까지 후들거리며 일어섰다.

“그만!”

파앙!

이번엔 마탄 한 발이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왔다.

아까 던진 마탄보다 위력이 훨씬 더 약해져 있었다.

이번에도 난 치명상이라도 입은 것마냥 풀썩 쓰러졌다.

“으윽!”

“괘, 괜찮은가!”

“…….”

이런 상황에서도 내 걱정을 해 주다니.

난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소동을 피울 만한 이유를 떠올렸다.

“…아들 때문입니까?”

“…….”

내 물음에 쿠스켈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다.

아들 때문에 가문을 버렸고, 아들 때문에 난생처음 보는 외지인에게도 살갑게 대했다.

그런 쿠스켈이라면 아들 때문에 이런 끔찍한 짓을 벌이고도 남았다.

“제발……. 또다시 아들을 잃고 싶지 않다네… 그러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

“당신 덕분에 수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게다가 왕성엔 데스 나이트들과 구울들이 들이닥쳤구요. 아마 당신한테 이런 짓을 시킨 자들이 벌인 일이겠죠.”

“그건…….”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포르겔에선 지금 같은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식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흑마법사들의 왕국이 되겠죠.”

“…흐흑.”

쿠스켈은 풀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럼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이대로 또 아들을 잃으란 소린가?”

“…본인의 힘으로 안 되면 도와달라 하셨어야죠.”

“대체 누구한테? 포르겔에 나보다 흑마법 랭크가 높은 이는 르델 전하 말곤 없단 말일세! 게다가 지금은 그분도…….”

“하아.”

난 엉덩일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자네……? 괜찮은 겐가……?”

“…….”

…파앙!

난 대답 대신 지면을 향해 강하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푸른 오러가 지면을 타고 주위에 바글바글하던 구울들을 덮쳤다.

크로드가 사용하던 기술.

주변 적에게 이질적인 오러를 주입시켜 일순간 무력화시키는 광역기.

랭크가 높아져서 그런지 조금 더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예를 들면 구울들의 심장 옆에 위치한 마핵을 부수는 것까지 말이다.

[…크륵!]

그러자 주위에 구울들이 한순간에 모두 풀썩 주저앉았다.

난 허리춤의 황혼을 뽑아 들었다.

타오를 듯 붉게 물든 도신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이, 이게 무슨……?”

쿠스켈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조차 안 되는 듯했다.

난 황혼을 든 채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검을 찔러 넣으면 끝이다.

하지만 난 그러는 대신, 황혼을 옆에 바닥에 찔러 넣었다.

[아얏.]

‘미안허이.’

전언으로 황혼이 아프다는 듯 짜증을 냈다.

그런 그녀에게 짧게 사과하곤, 쿠스켈 앞에서 무릎을 굽혔다.

그리곤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을 덮었다.

파앗.

그러자 포르겔에 난동을 부리던 구울들이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더 이상 다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자, 자네… 대체 어떻게……?”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쿠스켈.”

“하, 하지만…….”

“가끔은 착한 사람들이 득 보는 일도 있어야죠.”

“아…….”

쿠스켈은 눈물을 글썽인 채 고갤 땅에 처박았다.

“제발… 아들을 살려 주게.”

난 그런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갤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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