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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백작으로 살아남는 법-188화 (188/222)

188화

“…….”

아직 밤 하늘의 어둠이 채 가시지도 못한 이른 새벽.

쿠스켈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지금부터 그가 행할 행동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대전쟁 이전, 가지고 있던 귀족 작위마저 버리고 향한 포르겔.

어쩌면 그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건 그와 함께한 구울 하나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치가 있다.

아니, 반드시 해야만 했다.

‘포르겔의 성문에서 난동을 부려라.’

나머진 놈들의 본대가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하면 아들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그의 아들일까?

‘…리겔.’

지난 이십 년간 데리고 살던 구울.

죽은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행했던 강령술.

이미 대전쟁 당시 죽었던 아들이지만, 구울로 되살려 내 지금껏 그와 함께 살아왔다.

그건 이미 그에겐 뗄 수 없는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천천히 포르겔의 성문으로 향했다.

“…쿠스켈 님?”

[그웍.]

성문의 구울을 점검 중이던 흑마법사가 그를 알아보곤 인사를 건넸다.

“요새 영내로 자주 들르시네요!”

[그웍. 그웍.]

반갑게 맞이하는 구울들과 담당 흑마법사.

쿠스켈도 잘 아는 이였다.

흑마법 랭크 4의 약하지만은 않은 경지.

하지만 쿠스켈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참에 영내로 옮기시는 건….”

“…미안하네.”

“…네?”

쿠스켈은 착잡한 얼굴로 마법서를 펼쳤다.

악마의 마법서는 아니었다.

그가 그간 연구하던 흑마법의 정수가 담긴 그만의 아티팩트.

쿠구구……!

마법서를 펼치자 쿠스켈 주위로 검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지, 지금 뭐하시는……!”

콰직!

검은 기운은 그대로 흑마법사를 향해 마수를 펼쳤다.

“크악!”

별다른 저항도 없이 검은 기운에 잠식당한 그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쿠스켈이 마음만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렸겠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는 그저 땅에 처박힌 것뿐 죽은 게 아니었다.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그워억…….]

구울들은 둘 사이에 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서성거렸다.

“움직이지 말게. 그래도 십수 년간 한솥밥 먹던 이를 죽이고 싶진 않다네.”

“크윽……!”

흑마법사는 쿠스켈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

콰드득!

한줄기 뻗어 나간 검은 줄기가 그대로 흑마법사의 목을 졸랐다.

“커…헉…….”

결국 버티지 못한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조금만 자고 있게. 그럼 다 끝나 있을 거야.”

[크르르…….]

이쯤 되자 주위의 구울들도 경계 자셀 취했다.

하지만 주인을 잃은 구울들을 쿠스켈이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좋아하면 모를까.

쿠스켈은 다시 책의 새로운 장을 펼쳤다.

파앗……!

그러자 검은 기운이 여러 갈래로 나눠지기 시작했고.

이는 구울들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르륵!]

방금까지 그를 경계하던 마물들은 어느새 그의 충실한 심복으로 전락했다.

“…무기는 내려놓아라.”

챙그랑!

검이며 창 같은 날붙이가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릴 냈다.

“가능한 죽이지는 말아라. 어쩔 수 없다면…….”

쿠스켈은 구울들에게 명령을 내리다 말끝을 흐렸다.

사나운 구울 본연의 모습을 한 녀석들은 그대로 포르겔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 * *

“…조용하구만.”

왕성은 상상 이상으로 조용했다.

데스나이트는 움직이지도 않고.

발 없는 벤시가 걸어 다닌다고 무슨 소리가 나겠나.

덕분에 포르겔의 왕성은 개미 새끼 하나 없는 듯 조용했다.

‘아니, 어쩌면 개미 새끼도 없을지도.’

지금 이 성에 살아 있는 놈들이라곤 나랑 빈트하겐 말곤 없을지도 모른다.

푸르륵.

오죽하면 빈트하겐 콧수염 펄럭거리는 소리까지 들릴까.

‘거 참 듣기 거슬리네.’

밤에도 옆 침대에서 자는데 얼마나 거슬리던지.

딱히 코를 고는 건 아닌데도 시끄럽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녀석과 좀 껄끄러운 사이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았다.

“어이. 이제 일어나지.”

잠에서 깼는지 녀석은 눈을 꼭 감은 채 대답했다.

“…싫다. 아직 할 것도 없는 것 같다만. 그럴 때일수록 체력을 보충해 놔야지.”

“…그래라. 그럼.”

푸르륵.

녀석은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건지 금세 다시 잠에 빠진 듯 숨소릴 냈다.

기사단장 쯤 되면 수면법 같은 거라도 있나?

“…….”

난 입을 이죽인 채 녀석을 잠시 째려보다가 고갤 돌렸다.

“…에휴.”

창밖의 하늘은 맑았다.

흑마법사들이 사는 왕국이라 해도 다 같구나.

저 멀리 아이소테르에 이글렌이 보는 하늘도 맑을까.

신혼이면 깨가 쏟아져야 할 땐데.

이 머나먼 땅까지 무슨 고생이람.

“…아악.”

“…응?”

성 내가 워낙 조용하다 보니 창밖의 소음도 그대로 들어왔다.

저 멀리 구울 하나가 어린아이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술래잡기라도 하나.'

아침부터 힘도 좋다니깐.

“…….”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어제랑 똑같은 풍경이었지만 느껴지는 위화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둔 눈에 마나를 그러모았다.

그러자 깨알 만하게 보이던 아이의 표정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잠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린아이.

그런 아이의 주변엔 비슷한 얼굴을 한 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도, 도망쳐!”

“꺄아악!”

…펑!

바로 그때, 민가 구역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걸 시작으로 포르겔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제처럼 구울들이 바글바글하긴 했지만.

이건 분명 포르겔의 모습이 아니다.

시귀폭이라도 터진 평범한 인간들의 마을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치기 바빴고, 구울들은 그런 이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방금까지 까무룩 잠에 빠져 있던 녀석이 이변을 감지한 듯 창 밖으로 고갤 빼꼼히 내밀었다.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빈트하겐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 그렇지. 구울과 공존하는 삶이라니……!”

“자, 잠깐……!”

녀석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갑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난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 되는 대로 내뱉었다.

“아직 무슨 일인지 모르는 거잖아?”

“모르긴. 습격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그건…….”

“…아무리 전하께서 결정하신 일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마물들과 함께 사는 놈들과 협력이라니!”

“으음…….”

틀린 말은 아니다.

솔직히 나도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니까.

‘착한 흑마법사는 죽은 흑마법사 말곤 없다.’

그게 지금껏 흑마법사들을 대하는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제 오늘 지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래도 이곳 포르겔에 사는 흑마법사들은 정상적인 놈들이다.

죽은 가족과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흑마법을 익힌 것뿐이니까.

“…사역술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나?”

“뭣……?”

“마물들과 함께 사는 놈들이라면 사역술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 여기서 말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네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흑마법사들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고작 채 며칠도 안 되는 기간 만에 정신이라도 나가 버린 건가?”

“사람들을 죽인 건 기사나 마법사들이 훨씬 많을 텐데? 사역술사들도 만만치 않고! 그럼 그럴 때마다 랭크 보유를 하나 둘 금지 시킬 건가? 나중엔 검술 랭크 보유자들까지 잡아넣을 때까지?”

“그건…….”

“물론 지금 흑마법사들 중에 미친놈들이 많은 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너도 어제 봤을 거 아냐? 여기서 뛰놀던 애들이 네가 보기엔 미친 학살자들로 보였나?”

콰악!

“이 자식이……!”

빈트하겐이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난 가만히 녀석의 눈을 응시했다.

녀석도 알긴 알고 있을 거다.

이곳에 사는 흑마법사들이 그리 나쁜 놈은 아니란 걸.

쾅쾅쾅!

“…뭐야!”

한창 분위기가 험악한 와중에, 누군가 방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하는 수 없이 빈트하겐은 잡고 있던 멱살을 풀곤 문을 열어젖혔다.

“…오! 손님들은 무사하셨군요!”

“무슨……?”

문 앞엔 어제 본 신관들이 서 있었다.

그 뒤로 포르겔 왕성을 지키는 벤시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난 차분히 신관들에게 물었다.

녀석들은 우물쭈물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 그러게 이 손님들은 관계없다고 했잖습니까?”

“그래도 시기가 좀…….”

“차라리 다행입니다. 괜히 이분들이 다치기라도 했다간 연합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녀석들은 영문 모를 소릴 웅얼거렸다.

“누가 습격이라도 한 겁니까? 설마 그 마공작이란 놈들이?”

“…지금 우리도 파악 중이긴 합니다만. 요새 마공작 놈들 낌새가 심상찮긴 했습니다.”

“그러니까요. 요번 달만 해도 쿠스켈 님한테서 온 연락이 다섯 번은 됐으니까요.”

“쿠스켈… 님?”

쿠스켈이 누군진 안다.

내 흑마법사들을 향한 인식을 가장 많이 바꿔 준 녀석이니까.

날 아들 보듯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려 보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시큰시큰 할 정도였다.

그런데 쿠스켈… 님이라고?

‘어젠 무슨 신관 바로 아랫급이라더니만. 신관이 왜 존칭을?“

“쿠스켈은 1급 신도라 하지 않았나요?”

“…제가 그런 걸 알려 드렸었나요?”

“어제 오는 길에 잠깐 만났던 사이입니다. 그때 그 사람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아. 뭐…. 일단은 맞긴 합니다만. 사실 흑마법 랭크만 놓고 본다면 그분이 우리 신관들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요?”

“하긴. 그런 녀석이니 포르겔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겠지.”

빈트하겐이 입을 비죽 내밀며 고갤 끄덕였다.

“…잠깐.”

포르겔의 문지기라.

하지만 지금 포르겔의 상태를 보면 쿠스켈에게도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거다.

“쯧.”

인연이라곤 어제 하루 본 게 전부다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쿠스켈… 님은 어느 정돕니까?”

“어느 정도라심은……?”

“뭐겠어요. 당연히 흑마법 랭크죠.”

“아! 그건…….”

신관 하나가 대답하려다 다른 신관들이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으븝!”

“그, 그걸 왜 알려 드려야 합…….”

“…지금 쳐들어온 놈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히끅!”

“그, 그건…….”

신관들은 우물쭈물하다 제일 나이가 많아 뵈는 신관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흑마법 랭크 6입니다. 다른 랭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오로지 흑마법만 정진하며 살던 분이셨으니.”

“허어…….”

흑마법 랭크 6이라고?

그 정도면 부마탑주급이다. 그런 사람이 왜 영지 밖에서 농사나 짓고 사는 거지?

“그럼 마공작인가 뭔가 하는 놈들은요?”

“…리베라 공작은 흑마법 랭크 7입니다. 다른 둘은 흑마법 랭크 6으로 알려져 있구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난 침대 옆에 세워 둔 황혼을 집어 들었다.

흑마법 랭크 6이 당했다면 그리 만만한 놈들은 아닐 거다.

아마 리베라 공작이란 놈이 쳐들어온 거겠지.

“일단 가 보자고. 빈트하겐.”

“…흥. 싫다. 내가 왜 흑마법사들을…….”

녀석은 사춘기 애새끼마냥 꼬장을 부렸다.

이를 본 신관들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녀석의 꼬장 때문은 아니었다.

빈트하겐.

아이소테르에서 이런 이름을 쓰는 건 하나밖에 없으니까.

“서, 설마 빈트하겐 칼로스……?”

“허어…….”

아이소테르의 전 기사단장 이름은 포르겔 사람들이라도 알고 있는 듯 했다.

“뭐. 불만이라도 있나?”

빈트하겐은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눈을 부라렸다.

“아, 아닙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말은 그렇게 해도 내가 나서면 빈트하겐도 하는 수 없이 따라 나설 거다.

거기에 왕성에 있는 데스 나이트나 벤시가 나서면…….

[저희는 왕성에 있을 겁니다.]

“…뭐?”

[들으신 그대롭니다.]

어제 딱딱하게 굴던 벤시가 짧게 대답했다.

녀석뿐만 아니라 다른 벤시들과 데스 나이트들도 마찬가지인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고집을 부린다고? 제정신인가?

“벤시가 되더니 뇌도 썩은 건가?”

[저건 어디까지나 눈속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전하께서도 안 계신 지금. 적들이 왕성을 점거하기라도 했다간 골치 아파질 겁니다.]

“그건…….”

[그리고 전하께서 저희들한테 내린 명령은 ‘왕성을 지켜라.’였습니다. 포르겔이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지금 상황이 이런데! 하다못해 데스 나이트만이라도…….”

챙그랑!

녀석들에게 소리치던 그때.

포르겔 왕성의 창문이 날카로운 소릴 내며 박살 났다.

그 틈으로 무수히 많은 구울과 데스 나이트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워어억……!]

“르델을 찾아라! 놈을 제압하기만하면 끝이다!”

“…앗.”

벤시의 말대로 성문의 소동은 그저 눈속임이었다.

[그렇죠?]

“…….”

벤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보며 어깰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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