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셀렌교라.”
빈트하겐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히테라 주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신, 셀렌.
빈트하겐이 독신한 히테라교 신도까진 아니더래도, 이곳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주신들을 향한 약간의 신앙심은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악신인 셀렌을 섬긴다는 게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뭐… 그래도 생각보다 정상적이네.”
셀렌교 신전은 생각보다 멀쩡한 축에 속했다.
솔직히 그래서 그런지 살짝 아쉬운 감이 없진 않았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악신을 섬기는데다가 신도들이 모두 흑마법사인 종교.
막 해골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시체가 즐비할 줄 알았는데.
시체가 즐비하긴 했다.
신전 안엔 포르겔의 거리에서 본 것보다 구울이 많았으니까.
“뭐하는 놈들이지? 이건?”
“흠, 그러게.”
신전 안엔 구울들이 잔뜩 있었고 그 옆엔 주인으로 보이는 흑마법사들이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긴 줄까지 선 채로 북적이는 행렬 끝엔, 조금 높아 보이는 신도 셋이 있었다.
회색빛깔 로브를 입은 채 두런두런 이야길 나누고 있는 셋.
아마 저 셋이 쿠스켈이 말했던 신관들 같았다.
난 내가 선 줄 맨 앞에 있는 녀석들의 대화를 유심히 살폈다.
조금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신관과 열너덧 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남자 신도였다.
아마 여기서 나서 자란 녀석 같았다.
“자, 다음 분?”
[그워억…….]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희 씩씩이가 많이 아파요……. 울음소리도 예전 같지 않고 걸음걸이에도 힘이 없는 게……. 흐흑.”
“그럼 한 번 움직여 보실래요?”
“네에…….”
신도 하나가 구울을 향해 왼손을 펼쳤다.
약간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구울이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흠… 마나가 부족한가 보네요. 날도 춥다 보니 신체 능력도 많이 떨어졌구요. 매일 아침 운동은 시키시나요?”
“그건… 요새 좀 바빠서…….”
“그러면 안 돼요. 바쁘셔도 매일 구울을 움직이셔야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답니다.”
“죄송합니다, 신관님…….”
“후훗. 죄송은 제가 아니라 친구분한테 해야겠죠?”
“흐흑. 미안해!”
[그웍. 그웍.]
‘이게 뭔 상황이래냐.'
눈 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나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렸다.
이건 뭐 신전도 아니고 동물 병원에 가까웠다.
“우리 씩씩이 친구 분한테는 구울 몸에 좋은 붉은 우산 버섯을 드릴게요. 반나절 정도 푹 끓여서 친구 몸에 바르면 몸이 좀 풀어질 거예요.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하는 거 알죠?”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자세한건 출구쪽에 2급 신도분한테 물어보시면 될 거예요.”
“넵!”
“그럼 다음 분?”
그렇게 어린 신도는 구울을 데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신전을 빠져나갔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게 신전인가?”
빈트하겐도 이를 보곤 어이가 없다는 듯 빈정거렸다.
“뭐 종교의 기원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아프고 힘든 사람들 도와주고 그러는 거니까.”
“…흥.”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히테라교보다 셀렌교가 제대로 된 종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으로 이단 심문을 걸고 난리 법석을 떠는 놈들이니까.
빈트하겐도 이를 잘 아는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셈이지? 이렇게 계속 기다리다 갈 건가? 설마 진짜로 이곳에 정착지를 받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야 당연하지. 그래도 줄은 설 거야. 어쩌면 우리 우군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이참에 어떻게 사는지 봐서 나쁠 건 없지 않나?”
“으음…….”
내가 이렇게 나서자 녀석도 하는 수 없이 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신전에 가득했던 흑마법사들도 조금씩 빠져나갔다.
저녁 시간쯤 되자 더 이상 줄을 선 이들은 없었다.
신관들도 줄이 빠져나가자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예배가 있는 건지 남은 흑마법사들은 신전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슬슬 가 볼까?”
“마침 지루해 미칠 것 같던 참이다.”
“흐흐. 솔직히 나도 좀 그렇긴 해.”
난 세 신관들 중 한 녀석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아! 오늘 성사는 끝이라 내일 오셔야 할 것 같은데… 한 시간 뒤부턴 저녁 예배라 준비를 좀 해야 해서요.”
“…그렇습니까?”
난 대충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반짝이는 짧은 금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나절 정도 살펴 본 결과 적어도 셀렌교 흑마법사 놈들은 믿을 만한 놈들 같았다.
악마 숭배자라면 절대 안 되겠지만 이 녀석들은 다르다.
그저 흑마법을 익혔을 뿐인 평범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녀석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보단, 단도직입적으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본 신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떠올리려 애쓰는 듯했다.
“잠깐…….”
“뭐 바쁘시면 예배 끝나고 찾아뵙겠습니다.”
“…아! …헉!”
이내 내 얼굴을 기억해 낸 신관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헛바람을 삼켰다.
“다, 당신은……?”
“후후.”
다행히 신관은 내 얼굴을 알아봤다.
일반 신도들이라면 모를까, 나름 라스하겐에서 서열 2위쯤 하는 녀석들이니까.
대외적으로 알아 둬야 할 사람들 몇은 알고 있는 듯했다.
‘귀찮게 주절주절 설명할 수고는 없겠군.’
“무슨 일이시죠? 신관님?”
“그, 그게…….”
다른 신관 둘이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다가와 물었다.
내 앞에 선 녀석은 다른 신관들에게 귀엣말로 뭐라 속삭였다.
“…아!”
“…헉!”
누가 같은 신관 아니랄까 봐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하긴.
놀라는 게 당연했다.
연합의 수장급 되는 녀석이 느닷없이 자기네들 본진에 나타난 거니까.
“이, 이안 임페라 백작 맞습니까?”
“아이소테르 주인과 약혼을 맺었다던…….”
신관들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음. 여긴 좀 소식이 늦군요. 약혼이 아니라 어제 결혼식을 올린 참입니다.”
난 이글렌과 맞춘 반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그녀에게 준 건 불멸의 암석이 박힌 반지.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이 없는 거라 똑같은 걸 맞추진 못했다.
대신 비슷하게 생긴 반지 하날 하룬에게 부탁해 만들어 뒀다.
그냥 장식용으로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이글렌이 섭섭해할 것 같아 그냥 하나 맞췄다.
“겨, 결혼까지 했다면…….”
“뭐 그렇습니다. 아이소테르의 부군이라고들 하더군요.”
“허어…….”
“…그런 분께서 왜 이런 깡촌까지 오신 겁니까.”
신관 중 하나가 제법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왜일 것 같습니까?”
“…….”
내게 질문을 던졌던 신관은 여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네들 영지를 습격한 죄를 물으려는 겁니까?”
“하, 하지만 그건 악마 숭배자놈들이 저지른 짓이오! 우리 셀렌교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었단 말이오!”
자칫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기에 다들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뭐 굳이 그럴 생각은 없다만.’
하지만 앞으로 있을 계획에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난 르델에게 두 가지 길을 내놓을 생각이다.
우리 아이소테르의 지원을 받아 왕이 되든가.
아니면 적이 돼 몰락하든가.
포르겔을 비롯한 라스하겐 왕국이 아이소테르와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놈들을 몰락시킬 방법은 많았다.
당장 르델이 아니라 다른 자칭 왕들을 지지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미안하지만 거기까지 그쪽 상황을 봐줄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으윽…….”
“하, 하지만…….”
신관들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녀석들 같았다.
지금 난 빈트하겐이 있긴 해도 적진 한가운데나 다름없었다. 신관쯤 되는 녀석들이니 그렇게 약한 놈들도 아닐 테고.
지금 우릴 공격해 버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빈트하겐을 알아보고 전력차를 체감한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싸움을 원치 않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가 됐건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악마 숭배자 놈들보단 훨씬 나았다.
“…원하는 게 뭡니까.”
“시, 신관님…….”
“사과로 화가 풀리신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그걸론 충분하지 않으시겠죠.”
“으음.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죠.”
셋 중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신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긴 쫓기고 쫓긴 흑마법사들이 이룬 마지막 보루입니다. 괜한 사고는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점. 알아주시길.”
“호오.”
사과는 하겠다만 더 나선다면 화 내겠다는 건가.
이 정도 으름장이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달까.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는 놈들은 새로운 왕의 보조자로 걸림돌만 될 테니까.
“뭐, 알겠습니다.”
난 고갤 끄덕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내 반응에 신관들도 조금은 안색이 밝아졌다.
“대신. 당신네들의 왕과 얘기가 좀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 전하와 말씀을……?”
“네. 르델 아르칸. 그자 말입니다.”
“으음…….”
신관들은 다시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일단 나갑시다. 여긴 보는 눈들이 많으니.”
신관들은 주변 신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은 괜찮았지만.
가까이 있는 신도들은 언뜻언뜻 듣기라도 한 듯 우리쪽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이소테르에서 왔단 게 들켜서 그리 좋을 건 없다.
“그럼.”
“신도 분들께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 예배는 취소되었습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 셀렌 님께 직접 기도를 올리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에…….”
신도들이 조금은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신전을 나갔다.
“…갑시다.”
신관들은 눈을 가늘게 뜨곤 어디론가 향했다.
난 어깰 으쓱하곤 신관들을 따라 나갔다.
빈트하겐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경계심을 풀지 않은 채 내 뒤를 따랐다.
***
“…….”
쿠스켈은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미 죽은 자신의 아들을 마주하기라도 한 기분이랄까.
제 어미를 쏙 빼닮은 금발을 가졌던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아들은 대전쟁의 화마에 휩쓸려 잃고 말았다.
그 뒤로 흑마법을 익혀 아들을 되살려 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아들이 죽었단 참혹한 진실뿐.
“…하아.”
모처럼 기분이 좋은 하루였지만, 다시금 집에 되돌아오자 무거운 침묵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아들아.”
집에 올 때마다 찾는 그의 아들.
하지만 이미 그의 아들은 죽었다.
처음 그가 흑마법사가 되었을 때, 그는 당연히 아들부터 되살렸다.
영혼이 내세에 머무는 기간은 고작 사흘.
이미 그 기간을 훌쩍 넘어 버린 터라 남은 건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었다.
혹여나 랭크가 높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정진하고 또 정진했다.
어느덧 흑마법 랭크 6.
여전히 죽은 아들은 그대로였다.
“…….”
아직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못한 채 아들의 시신을 집 안에 꼭 간직하고 있었다.
누군가 보면 역겨워할지 모르겠지만, 쿠스켈에겐 그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
“…응?”
지금쯤 아들의 대답이 들렸어야 했다.
하지만 집 안은 아무도 없는 것 마냥 조용했다.
쿠스켈은 섬뜩함을 느낀 채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런 그가 집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